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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
고상훈
한그루 2025.0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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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Prologue) 사랑할 수밖에 06
교실敎室 말고 교실交室 12
학교 괴담 24
교실이 운동장이라면 32
[쉬는 시간]
1년짜리 일회용 교실 44
교실의 턱 52
구글 교실 62
온실 72
[교실 신조어]
기분 좋은 균형감 92
가장 결정적이면서도 적당하고 안전한 싸움판 102
네가 있어 비로소 교실 112
덕업합치合致 122
[쉬는 시간]
두서 없음 134
(Epilogue)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 144

저자 소개1

1992년 봄에 태어났습니다. 2014년부터 제주에서 초등학교 선생님으로 어린이들과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도 쓰고 있습니다. 에세이 『신규교사 생존기』를 썼고, 동화 『졌잘싸_좌충우돌 여자축구 도전기』, 『버스가 좌회전했어요』를 썼습니다. 두 번째 에세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실』은 신규교사로서 생존에 성공한(?!) 선생의 교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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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6월 20일
쪽수, 무게, 크기
150쪽 | 110*178*20mm
ISBN13
9791168672222

책 속으로

어린이들이 여전히 학교에 오지 못하던 2020년 그해의 어느 날, 해가 한복판에 떠 있던 대낮에 교실에서 나와 복도 끝 교실을 바라보는데, 낯선 피아노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문득 어렸을 적 그때의 괴담이 떠올라 조금 웃음이 났다. 그리고 바로, 괴담의 복판에 서 있는 순간이 오싹하게 느껴졌다. 원격수업이랍시고 아침마다 화면으로 인사를 나누는 일도, 음소거가 된 채 고요하게 공부하는 일도, 대꾸 없는 쉬는 시간을 혼자의 교실에서 외롭게 보내는 일도 오싹하게 느껴졌다. 가끔 그때의 학교를 회상한다. 이제는 웃어넘기며 이순신 동상 아래에 숨겨놓을 만한, 한낱 괴담이었네 싶으면서도, 다시는 학교가 어린이를 떼어놓는 괴담은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가득 들어찬, 당연한 교실에 감사한 마음을 갖는다.
--- pp.30-31

나는 어린이들에게 선생이지만, 한 사람으로서의 감정과 기분을 숨기지 않는다. 어린이에게 미안하다고 말하는 걸 아끼지 않고, 고맙다고 말하는 걸 아끼지 않는다. 또한, 슬픈 건 슬프다고 속상한 건 속상하다고, 놀란 건 놀랍다고 기쁜 건 기쁘다고 말한다. 당연한 문장이지만 교단이 있었던, 권위주의적 교실에서는 선생이 어린이들에게 솔직하게 표현하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단지 교실의 이야기만이 아닐 것이다. 가정이 그러할 것이고 회사가 그러할 것이다. 존중은 상향식이나 하향식이 아니다. 양방향에서 수없이 당연토록 주고받아야 하는 게 존중이다. 누군가에게 만들어지는 권위는, 그토록 교실에서 되찾아야 한다고 말하는 권위는, 존중에서부터 당연하게 싹이 터야 하는 것이다.
--- p.60

교실 공동체를 만든다는 게, 아싸를 인싸로, 인싸를 더 인싸로 바꾸자는 건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고 그럴 수도 없다. 인싸든 아싸든 그건 어린이들 나름의 모습일 테니까. 이건 다만 어린이 한 명, 한 명의 존재를 안아주기 위한 것이다. 어린이가 교실에서 소속감을 느끼게 해주기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교실에서의 소속감은 다시 자신의 존재에 대한 자존감으로 이어진다. 끈질긴 연결 시도를 통해 내가 필요한 존재임을 인식하게 하고, 없어도 되는 존재가 아니라 없으면 티 나는 존재임을, 교실의 누군가가 기대하는 존재임을 알려주는 셈이다. 네가 있기에 비로소 교실이라고.
--- p.120

내가 선생이 되었을 때 기뻤던 것 중 하나는 엄마와 아빠의 기쁨이었다. 이곳저곳 선생이 된 아들 자랑을 더러 하시며 기분 좋은 부러움을 샀고, 걱정을 덜었다며 비로소 내가 태어난 순간부터 짊어지셨을 짐을 내려놓으셨다. 그렇게 아들로서 효도하는 기분이 정말 좋았더랬다. 그랬던 내가 “엄마, 누가 날 자르기 전에 내가 그만둬야 할지도 모르겠어.”라고 말할 줄이야. 오만했던 나는 예전부터 꽤 자주 들렸던 교실 붕괴, 교권 침해 사례 등을 들으면, 자세한 내막이야 잘 모르지만, 어느 정도는 선생에게도 잘못이 있는 게 아니겠어, 생각했다. 요새의 나는 능력 좋은 선생이 아니라, 그저 운이 좋은 선생이었을 뿐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 p.139

교실이 ‘희망을 노래하는 곳’임을, 그는 끝내 믿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떠난 지금, 세상에 남아 교실을 지키고 있는 나는 그것을 믿는다. 교실을 누가 어떻게 괴롭히든 어린이가 있는 교실엔 여전히 희망이 있다. 분명히.

--- p.143

출판사 리뷰

작가의 말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우릴 조그만 교실로 몰아넣고
전국 구백만의 아이들의 머릿속에 모두 똑같은 것만 집어넣고 있어.
막힌 꽉 막힌 사방이 막힌 널 그리고 우릴 덥석 모두를 먹어 삼킨
이 시꺼먼 교실에서만 내 젊음을 보내기는 너무 아까워.
- 서태지와 아이들, 1994

94년의 서태지와 아이들은 강렬한 헤비메탈로 교육 현실을 비판하는 노래를 발매했다. 내가 고작 2살 때의 노래니, 난 사실 서태지와 아이들도 잘 모르고 「교실 이데아」라는 곡이 당시에 사람들에게 선사했던 충격 또한 잘 모른다. 내가 애초에 「교실 이데아」를 처음 듣게 된 것도 역방향으로 들으면 “피가 모자라”라는 악마의 메시지가 들린다는 괴소문 때문이었으니. 그거야 어쨌든, 30년 전에 쓰인 노랫말이지만 지금의 교실 모습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매일 아침 일곱 시 삼십 분까지’ 오는 일은 없어졌고 날이 갈수록 아이들 숫자도 부쩍 줄고 있지만, “네 옆에 앉아있는 그 애보다 더 하나씩 머리를 밟고 올라서도록 해.”라고 조언하는 서태지처럼 여전히 교실의 일부는 경쟁을 통해 ‘대학이란 포장지로 멋지게’ 싸 버리는 공간으로 기능하고 있다.

94년에도 ‘시꺼먼’ 교실은 안타깝게도, 여전히 시꺼멓다. 학교폭력이 드리운 거대한 그림자 때문이다.(아니, 더 시꺼메졌나…?) 반올림(2003), 공부의 신(2010), 드림하이(2011) 등 학생들의 몽글몽글한 성장기를 그린 드라마들이 한동안 자리 잡았던 때를 지나 소년심판(2022), 돼지의 왕(2022), 약한영웅(2022) 등의 학교폭력을 주제로 한 드라마들이 큰 인기를 끌었다. 더 글로리(2022-23)는 학교가 주된 배경은 아니었지만, 감히 학교폭력을 다룬 드라마의 정점을 찍은 작품이었다. 이렇게 교실의 어두운 면이 드라마 소재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표현의 자유가 어느 정도 넓게 보장되는 OTT 플랫폼의 등장 때문이라는 점을 무시할 수 없겠으나, 오랜 시간 암암리에 드리운 교실의 어두운 그림자가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기 시작하면서 범시대적 공감을 이끌었다는 게 먼저일 것이다.

그러니 누군가에게 교실은 ‘교실 이데아’적인 감옥이자 ‘더 글로리’적인 지옥이다. 교실이 곧 잠재적 옥(獄)인 셈이다. 그럼에도 잠재적 옥으로서의 세상 모든 교실에는 어쩔 수 없이 매일 어린이로 북적거린다. 교실은 순진하게도 응당 그런 곳이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교실의 어두운 면이야 어쨌든, 나는 교실을 사랑할 수밖에 없다. 어린이가 교실에 깃들어 있는 한, 교실은 사랑받아야 마땅하다. 나는 교실을 사랑한다. 교실에 담길 숱한 이야기를 사랑한다. 어쩌면 그렇게 믿고 싶은 건지도 모른다.

3월 1일은 공휴일이지만, 선생에게는 마냥 쉴 수 없는 날이다. 다음 날이 역사적인 개학 날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어린이들을 만나기 위해 차려야 할 것이 많다. 교실도 마지막까지 정돈하고 새 교실에 알맞게 마음도, 생각도 정돈한다. 어느 정도 정돈이 되었다 싶으면, 교실 앞에 서 본다. 아직은 빈 교실이라 썰렁함이 감돈다. 아직은 사랑을 기다리는 중이다. 그래도 괜찮다. 겨우 하루만 있으면 거대한 에너지로 가득 찬 곳이 될 것이다. 살짝 떨리는 마음을 느낀다. 기분 좋은 떨림이다. 비어있는 깨끗한 칠판에 공들여 첫 인사를 쓴다.

자리는 편한 곳에 앉고, 새로운 친구들과 인사해요.
오늘은 우리가 함께하는, 12월에 돌이켜보면 그때 그랬지,
하고 웃으면서 그리워할 정말 귀한 시간이랍니다.
부디,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반가워요.

3월 2일이 되면, 나는 일부러 교실에 느지막이 들어가는 편이다. 대략 8시 55분. 어린이들이 그때까지 나를 기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나를 기대하는 날은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일 거다. 어린이들이 서로에게 조심스러웠으면 하는 마음이다. 어린이들은 처음이자 마지막일,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견디고 있을 거다. 어린이들이 교실을 마음껏 상상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새 교실에서 꾸는 첫 번째 꿈인 셈이다. 나 역시 그동안 더디 가는 시간을 기대하고 상상하며 참아낸다. 우리 각자가 꿈꾸는 첫 번째 꿈에는 옥(獄)살이가 없다. 옆 친구의 머리를 밟고 올라설 생각도, 대학이라는 멋진 포장지를 기다리는 생각도, 학교폭력으로 교실이 얼룩질 생각도 없다. 단지 교실에 켜켜이 쌓여갈 사랑의 시간을 마음껏 꿈꾼다. 그리고 그것이 내내 이루어지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교실로 들어서며, 큼지막하게 인사한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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