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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내면서
1부 송몽규·윤동주, 삶 용정에서의 삶 한인 첫 동네, 명동촌이 세워지다. 윤동주 집안, 명동촌에 자리잡다. 명동촌에 명동학교와 명동교회가 들어서다. 간민회, 사우계·농문계와 대립하다. 송몽규 부친, 송창희가 명동촌에 들어오다. 송몽규와 윤동주가 태어나다. 명동학교 교사를 신축하다. 일본군이 불태운 명동학교를 재건하다. 송몽규·윤동주, 재건한 명동학교에 입학하다. 송몽규·윤동주, 문학소년을 꿈꾸다. 송몽규·윤동주, 은진중학교에 진학하다. 송몽규, 동아일보 신춘 문예 ‘콩트’ 부문에서 뽑히다. 윤동주, 최초의 작품 ‘초 한 대’ 등의 시를 짓다. 윤동주·문익환, 숭실중학교로 전학하다. 윤동주·문익환, 숭실학교를 자퇴하고 광명학원 중학부에 입학하다. 송몽규, 은진중학교 재학 중 한국특무대 예비훈련소에 입교하다. 송몽규, 대성중학교에 편입하다. 서울에서의 삶 송몽규·윤동주, 연희전문학교에 입학하다. 송몽규·윤동주,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을 체험하다. 윤동주, 시로서 힘든 시기를 극복하다. 송몽규·윤동주, 1학년 첫 여름방학을 맞아 귀향하다. 윤동주, 2학년 재학 중 동경하던 정지용을 만나다. 윤동주, 일제의 더욱 가혹해진 민족말살정책에 절필하다. 윤동주, 연희전문 3학년 재학 중 정병욱을 만나다. 윤동주, 기독교 신앙에 회의를 느끼다. 1940년 12월 윤동주, 1년 3개월 만에 다시 시를 쓰다. 윤동주, 4학년 재학 중 종로구 누상동 마루터기에서 하숙하다. 송몽규·윤동주, 〈문우(文友)〉 잡지를 발간하다. 윤동주, 정병욱과 함께 북아현동에서 하숙하다. 윤동주, 첫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내다. 윤동주, 창씨개명에 『참회록』을 짓다. 일본에서의 삶 송몽규·윤동주 일본에 유학하다. 윤동주, 도쿄 릿교대학에서 교토 도시샤 대학으로 옮겨가다. 송몽규·윤동주, 일본에서 비밀결사를 조직하려다 특고경찰에 체포되다. 송몽규·윤동주, 교토 검사국에 송치되어 재판을 받다. 송몽규·윤동주, 후쿠오카 형무소에 투옥되어 순국하다. 2부 주검과 추모 그리고 기억 고향 용정에서 윤동주를 기리는 사업 윤동주 유해, 고향에 돌아오다. 윤동주 유해, 용정 동산의 중앙교회의 묘지에 묻히다. 송몽규 유해, 고향에 돌아와 장채촌 뒷산에 묻히다. 1985년 5월, 잊혀졌던 윤동주 묘소를 찾다. 윤동주 묘소를 1차(1988.6), 2차(2003.7)로 정비하다. 송몽규 묘소를 찾아 윤동주 묘소 옆으로 이장하다. 윤동주 생가를 복원하다. 중국 정부가 윤동주 생가를 복원하고 윤동주 시인을 ‘조선족’으로 공식화하다. 중국 정부 방침에 따라 ‘윤동주 생가 옛터’ 표지석 내용이 바뀌다. 옛 대성중학교에 윤동주 시비를 건립하다. 윤동주, 중국 연변에 알려지며 각종 기념사업이 펼쳐지다. 국내에서의 윤동주 시집 편찬과 추모 해방 직후 윤동주·송몽규의 첫 추도회가 열리다. 윤동주 첫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발간하다. 윤동주 여동생, 윤혜원 부부가 월남하다. 1955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증보판을 발행하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시인, 윤동주 윤동주, 1950년대 중반 이후 세상 사람들에게 주목받기 시작하다. 저항시인으로 자리매김하다. 윤동주 시, 외국어로 번역되다. 윤동주 시가 낭독, 작곡되고 시화전이 열리다. 1980년대 초 윤동주·송몽규 생체실험 사망설이 불거지다. 1980년대 윤동주 시집 출판이 확산하고 평전이 출판되다. 윤동주 시, 1980년대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전 국민에게 알려지다. 윤동주와 그의 시, 소설로 재탄생하다. 일본에서의 윤동주 윤동주, 일본에까지 알려지다. 일본 내 윤동주의 시비가 세워지다. 일본 내 윤동주를 기리는 모임이 탄생하다. 일본 내 윤동주 시집 번역서·평전이 출판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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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2025년은 송몽규와 윤동주가 저 세상으로 떠난 지 꼭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해방을 앞둔 1945년 2월 16일, 윤동주가 먼저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순국했고,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은 3월 7일, 송몽규가 그 뒤를 따랐습니다. 두 사람은 1917년, 용정 명동촌에서 불과 세 달 간격으로 태어났습니다. 같은 집, 윤하현 댁에서 태어났는데, 그 집 주인 윤하현은 윤동주의 친할아버지이자 송몽규의 외할아버지였습니다. 고종사촌으로 맺어진 두 사람은 어린 시절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말 그대로 생사고락을 함께한 둘도 없는 벗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닮은 만큼 다른 점도 있었습니다. 송몽규는 외향적이고 행동이 앞선 성격으로, 일제의 괴뢰국 만주국이 세워지고 통제가 심화되던 은진중학교 시절, 독립운동에 몸을 던졌습니다. 1935년 5월, 그는 용정을 떠나 남경으로 가서 김구가 이끄는 학생훈련소에 입교하며 투사의 길을 걸었습니다. 반면 윤동주는 조용한 성품으로, 신사참배 강요와 식민지 현실의 고통을 시로 받아내며 고뇌를 극복해 나가고자 하였습니다. 1937년 두 사람은 1년여의 이별 끝에 다시 만나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함께 입학했고, 졸업 후에는 일본 유학길에도 함께 올랐습니다. 그러나 둘은 1943년 7월, ‘재교토 조선인학생 민족주의 그룹 사건’으로 함께 체포되었고,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수감된 뒤 재판을 받은 뒤에 후쿠오카 형무소에 옮겨졌다가 그곳에서 옥사하였습니다. 해방이 겨우 반 년 남짓 남은 시점이었습니다. 이 책은 광복 80주년이자, 두 사람의 순국 80주년을 맞아 출판하게 되었습니다. 제1부에서는 두 인물의 생애를 다시 조망하고자 했습니다. 윤동주는 이미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아온 시인이기에, 익숙한 삶의 궤적 속에 그의 시를 함께 배치하여 그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고자 하였습니다. 반면 널리 알려지지 않은 송몽규에게 더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자 하였으나, 관련 자료가 매우 부족하여 아쉬움이 남습니다. 그나마 용정에 계신 이광평 선생님의 증언과 도움으로 송몽규에 관한 새로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던 것은 큰 행운이었습니다. 특히 윤동주 묘소 곁으로 송몽규의 묘소를 이장할 당시 선생님이 촬영한 사진은, 지금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 없는 귀중한 자료로, 빈틈을 메워주는 소중한 기록이 되었습니다. 제2부는 1945년 이후 2025년에 이르기까지 두 인물이 어떻게 기억되고 추모되어 왔는지를 국내뿐 아니라 중국 용정, 일본까지 범위를 넓혀 살펴보았습니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송몽규와 관련한 기록은 드물어, 결국 윤동주 중심의 기술로 흐를 수밖에 없었던 점 역시 아쉬움이 큽니다. 이 책은 2년에 걸쳐 준비해온 작업의 결실입니다. 처음 원고는 울퉁불퉁하고 부끄러울 정도로 거칠었지만, 선인출판사의 윤관백 사장님의 격려와 조언, 박애리 실장님의 세심한 교정과 편집 덕분에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모양새를 갖추게 되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 책이 독자들에게 그저 조그만 조각보 같은 기록일지라도, 윤동주와 송몽규, 두 젊은 영혼이 걸어간 길을 다시금 되새기고, 그들이 지켜내려 했던 자유와 조국의 의미를 새기는 작은 디딤돌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들의 이름을 다시 부르며, 이 글을 맺습니다. - 2025년, 이계형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