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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7
내 안의 문어………………11 계단 아래 우리………………41 증발………………73 내일은 해피 엔딩………………105 옥상 정원………………137 내 친구 긴코………………167 세상의 끝, 거북이, 자그레브 박물관………………195 해설_위반과 탈주하는 인물들(이덕화 문학평론가)……2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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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조금 내밀었다. 녹진녹진해진 껌이 혀를 감싸며 삐죽 튀어나왔다. 입술을 동그랗게 하고 천천히 불었다. 작은 공기 방울이 입술에 걸렸다. 그것은 점점 커지고 붉은색은 점점 희미해졌다. 풍선 안으로 한낮의 햇살이 빨려 들어왔다. 만지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만 같은 연약한 무지개 하나가 안에 만들어졌다.
--- p.53 「계단 아래 우리」 중에서 “남편이 사라졌어요.” 경찰에 신고했냐는 물음에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스스로 집을 나간 것 같다고 했다. 기태의 자발적 실종이라니. 듣고도 믿기지 않았다. 정말 그렇다면 신고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성인 단순 가출의 경우 보통은 72시간 이내에 집으로 돌아오니 일단 기다려 보라는 틀에 박힌 대답뿐일 테니까. “그이는 증발한 겁니다.” 증발이란 단어에서 이질감이 느껴졌다. --- pp.76-77 「증발」 중에서 “너, 그거 아니? 은행나무에도 암수가 있다는 것.” “그래?” “주변에 열매가 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암나무야. 군것질거리가 별로 없던 시절, 사람들은 열매를 서로 가져가려고 했지만 이젠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아. 껍질 까기도 불편하고, 중금속에 절어있고, 냄새까지 구리니까. 그래서 앞으로 길거리의 은행나무를 모두 수나무로 교체한대.” “그렇구나.”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어. 맨눈으로는 어린 은행 묘목의 암수를 구별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거야. 적어도 10년은 지나 열매가 맺힐 때쯤에나 확실히 알 수 있거든.” --- p.175 「내 친구 긴코」 중에서 “정…아…야.” 자기도 모르게 이름이 튀어나왔다. 정아. 그녀는 윤정아였다. 젊은 날의 모습 그대로였다. 진석은 눈을 의심했다. 정아는 고장 난 형광등처럼 시야에서 깜빡거렸다. 버퍼링 걸린 동영상처럼 툭툭 끊기며, 흐릿하게, 애잔하게, 서늘하게 그녀는 서있었다. 정아의 뺨에 맺힌 눈물이 빛줄기와 만나 부서졌다. 정아는 다시 어둠에 매몰됐다. 같은 장소가 밝아졌을 땐 그녀의 모습은 이미 사라진 후였다. --- p.205 「세상의 끝, 거북이, 자그레브 박물관」 중에서 수연은 언제 가게 될지 모르지만, 그곳이 여행의 끝이 될 거라 했다. 가보지도 못한 그곳 이야기를 쓰고 있는 그녀는 어느새 두 뺨이 빨갛게 변해있었다. 약한 도수지만 라들러도 술이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은 부서진 인연만을 남긴다(Every love in the world leaves only broken ties)’ 이 박물관의 모토예요. 이 말, 참 멋지지 않아요? 하지만 저는 모든 사랑이라는 표현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더 좋은 것이 없을까? 지금도 고민 중이에요.” --- p.243 「세상의 끝, 거북이, 자그레브 박물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