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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문 20
COVER STORY 湖南벌을 촉촉히 적셔준다 58 interview “물의 基本法 제정 서둘러야 합니다” 73 머리말 82 [제1장] 세계로 향하는 한국수자원공사 01 국토개발의 역군 한국수자원공사 88 02 물문화 창달의 모체 91 03 수환경 변화와 수자원공사의 역할 96 04 희망찬 새해를 맞아 108 05 우리 세대의 의무 114 06 앞서가는 수공을 위한 MIND-90운동 118 07 세계로 향하는 한국수자원공사 142 08 아름다운 수공동산을 떠나며 159 09 물따라 인생따라 164 10 조직의 長이 솔선수범하여 위기 극복 176 [제2장] 세계 일류를 향하여 01 성공적인 삶 184 02 좋은 기업의 사풍 194 03 새해 새출발을 위한 간부의 역할 202 04 워토피아 창조의 주역 213 05 간부는 수자원공사의 근간 238 06 환경변화에 적응해야 생존 254 07 변화는 발전의 원동력 269 08 새시대의 간부상(幹部像) 282 09 공직자의 삶 294 10 성공의 필수조건 내조 304 [제3장] 수자원 정책과 생활 01 수자원의 개발과 관리 314 02 수자원·수질 종합관리 문제점 및 신기술개발 전략 326 03 수자원 개발과 수환경 관리 342 04 남북 수자원회담 제의하라 351 05 물 기본법 제정 서둘러야 355 06 ‘물도 工産品’ 인식 확산돼야 363 07 물 죽기 전, 사람이 죽는다 367 08 수자원 위기, 물 절약 관리정책 시급 37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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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꿈 나의 진로
나는 봄이 되면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가 꽃 대궐을 이루는 대구 팔공산자락에 자리한 깊은 산골 대구시 동구 평광동 당남리 외가에서 태어났다. 당시는 딸이 시집을 가서 임신하면 친정에 가서 애기를 낳는 풍습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 어머니도 나를 외가에서 출산한 것이었다. 그 후 나는 아주 어린 시절을 본가인 대구시 동구 입석동, 선돌마을에서 자라다 아버지가 분가하면서 대구시에 가까운 대구사과의 본고장 동촌으로 이사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대구의 교외 전원도시 동촌에서 자라면서 나는 해안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장래 과학자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대구공업중학교 화학과에 입학했다. 그러나 3년 간 화학공부를 하면서 나는 이과분야가 내 적성에 전혀 맞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후로 이과에 대한 헛된 꿈을 버리고 진로를 바꿔 인문계인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진학했다. 역시 나는 문과체질이었다. 이때부터 내 장래의 꿈은 훌륭한 정치가가 되는 것이 목표가 되었고, 고1 때부터 정치가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준비단계로, 대중을 설득하는데 절대적 무기인 웅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다행히도 고등학교 재학 중, 웅변반 동아리에서 활동하면서 대구에서 열린 각종 ‘고등학교 학생웅변대회’에서 여러 차례 대상(1등)을 수상했다. --- p.20~21 - ‘물과 인간생활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따라서 물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 문제를 전담하는 수자원공사의 사장으로서 물에 대한 평소 생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물은 하늘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가장 귀한 자원인 동시에 또한 유한한 자원이란 게 물에 대한 평소 생각입니다. 흔한 얘기지만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경제활동의 원천인 만큼 지구 상의 어떤 자원보다도 중요하죠. 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도 있고, 엄청난 재난을 자처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그와 같은 평범한 진리를 곧잘 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가만히 따져보면 물은 우리에게 어떤 질서를 가르 쳐 주고 있지요. 예컨대 물은 모든 것을 용해하고, 딱딱한 것을 부드럽게 하며, 더러운 것을 씻어주기도 하고 막혔던 것을 뚫어주기도 합니다. 항상 낮은 데로 흘러 겸허하지만, 폭포와 강과 바다를 만들 만큼 큰 힘을 갖고 있습니다. 말하자면 물이란 겸허한 생활철학을 배우게 하는 스승이라 할 수 있어요. 그런 것들이 바로 물에 대한 나의 일관된 생각들입니다.』 --- p.73 “한국수자원공사의 활동범위는 한눈에 뚜렷하게 드러나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수자원공사에 사법권이 없는데서 그 이유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좋은 물이 들어오건 독극물이 함유된 물이 들어오건, 법적 권한이 없으므로 물을 달라는 곳에 주면 그만입니다. 할 수 있는 일은 희석시키는 정도일 뿐, 오염물질을 배출한 공장이나 호텔 등에 법적 제재를 가할 수는 없습니다.” 수자원공사에 사법권이 주어져야 인력이 부족한 환경부를 뒷받침하면서 전 국민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이 이태교 전 한국수자원공사 사장의 의견이다. 수자원공사는 현재 건설부에 소속되어 있다. 그러나 요즈음 개발 측면보다는 보존 측면이 강조되는 시점에서 볼 때, 수질을 감시하고 적발사건을 검토·조치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환경부를 충분히 보충해 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지 못한 점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다. --- p.164~165 초급간부는 공사의 근간 여러분은 이제 초급간부로서 우리 공사의 근간입니다. 앞으로 공사를 이끌어나갈 입장에서 마라톤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본격적인 전투에 투입된 병사입니다. 그런데 마라톤에서, 전쟁에서 승리하는 뒷받침은 건강입니다. 건강관리는 과거와 달리 육체적 건강만으로는 부족하며 정신적 건강도 병행해야 합니다. 천하를 얻은들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대단한 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죽어버리면 무의미합니다. 성공적인 삶을 위해서는 건강관리에 매진하십시오. 스스로 건강관리 방법을 찾아서 체력을 단련하고 정신을 연마해야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이제 여러분은 우리 공사의 대표입니다. 어디를 가더라도 수자원 공사의 과장으로, 우리 공사를 대표하는 외교관이 되어야 합니다. 행동면에서 또 언어면에서 우리 공사의 분위기를 심취시키는 사람이 돼야 합니다. 아울러 여러분은 문자 그대로 공인입니다. 물을 다루는 공인으로서 물처럼 깨끗해야 합니다. 머리도 단정하게 다듬고 복장도 단정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간부로서의 체통을 유지하면서 물처럼 청결한 이미지를 주어야합니다. --- p.252 - ‘물과 인간생활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따라서 물의 중요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습니다. 물 문제를 전담하는 수자원공사의 사장으로서 물에 대한 평소 생각이 어떤 것인지 궁금합니다. 한마디로 물은 하늘이 인간에게 베풀어준 가장 귀한 자원인 동시에 유한한 자원이란 게 평소 생각입니다. 흔한 이야기지만 물은 생명의 근원이고, 경제활동의 원천인 만큼 지구상의 어떤 자원보다도 중요하죠. 물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번영과 행복을 누릴 수도있고, 엄청난 재난을 자초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그와 같은 평범한 진리를 곧잘 망각하고 함부로 대하는 것같아 안타깝기도 합니다. --- p.355 - ‘끝으로 당부의 말씀이 있으시다면? 현재 수자원은 양적 부족과 질적 저하로 커다란 위기에 봉착해 있습니다. 그러나 더 큰 위기는 국가와 국민이 이 같은 문제를 위기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습니다. 물은 국민의 생활에 절대적이며 안보와 직결된 전략적 자원입니다. 국민들의 의식전환이 선결돼야 할 과제임은 물론, 국가도 적극적인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모두의 합심된 노력이 요구됩니다. --- p.3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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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흔적이 현재나 미래의 수공 후배들이 업무를 수행하거나 사사를 집필할 때에 참고가 되었 으면 하는 바람에서 이 글을 남기게 되었다. 이 글은 수공 사장으로 재직하던 시기에 사내외에서 했던 강연과 직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 내용, 신문 잡지 인터뷰의 기사들을 모아서 엮은 것이다. 내가 1989년 3월 수자원공사 제5대 사장으로 취임할 당시에는 25개 국영기업체 사장 중에서 유일한 민간기업 출신 전문경영자였다.
당시 4성급 군 장성이나 장관급 고위관료 출신이 아니면서 민간전문 경영인인 내가 수자원공사 5대 사장으로 발탁될 수 있었던 것은 제6공화국 노태우 정권 때 황태자로 평가받던 박철언 장관과 그의 핵심참모였던 염돈재 안기부 차장, 박원출 보사부차관의 강력한 추천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파격적인 인사였다. 이 자리를 빌어 이분들의 추천과 성원에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한다. 중앙일보 정치부 청와대 출입기자,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등 민간기업에서 잔뼈가 굵은 나는, 생소한 공직사회를 접하면서 수자원 공사의 임직원들이 정말 순수하고 인간미가 넘칠 뿐 아니라 자질이 우수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마 물을 다루는 인재들이라 그랬던 것 같다. 반면 부정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공기업 특유의 비전부재, 안일무사, 연공서열중심의 인사 등 공무원 사회의 단점과 민간기업의 나쁜 점을 고스란히 합쳐놓은 것 같은 조직이라는 인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내가 사장에 취임하고 느꼈던 솔직한 심정은 수공의 사풍을 혁신, 환골탈태하지 않으면 공사의 미래가 보장될 수 없다는 위기감이었다. 이 때문에 나는 최우선 과제로 과감한 경영혁신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심했다. 새로운 비전과 철학, 철저한 의식혁명, 공정한 인사 등을 통하여 일류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앞서 가는 수자원공사운동”이라는 슬로건으로 내걸고 경영혁신운동에 착수했다. 1990년대에 들어서 이 운동 이 본궤도에 오르면서 명칭을 “MIND 90운동”으로 변경했고, 내용 과질 면에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어 본격적인 경영개선운동으로 추진되었다. 이 경영혁신운동은 짧은 기간에 실로 놀라운 성과를 나타냈다. 사장 취임 당시 25개 국영기업체 경영평가에서 23위로 바닥을 맴돌던 수자원공사를 3년만에 당당히 최우수 기업으로 올려놓는데 성공한 것이다. 사장인 내가 솔선수범하면서 쉽고, 간단하고, 가시적인 일부터 하나하나 고쳐나가기 시작하자 모든 부분에서 엄청난 변화가 일어났다. 25개 국영기업체 경영평가에서 정상(1위)을 정복한 여세를 몰아 수자원공사는 3년 연속 노사협조 모범기관, 정부시책 홍보모범기관으로 선정되어 부총리 표창을 받게 되었고, 개인적으로는 한국능률 협회로부터 한국산업교육대상 관리교육상을, 모교인 경북사대부고 동창회로부터는 “자랑스런 군성인(郡星人)”으로 뽑혔고, 마지막은 수공 사장으로서 국가발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은탑산업훈장 쌀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았다. 이 자리에서 먼 훗날 수공의 역사를 집필할 후배들을 위해 몇 가지 밝히고 싶은 사실이 있다. 내가 사장에 취임할 당시 회사의 위상과 권위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본사 사옥이 너무나 초라했다. 그래서 나는 공사의 위상제고를 위해 본사 건물 증개축을 지시했다. 그 결과 현재의 본사 사옥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공기업으로서 연수원과 연구소가 없는 수자원공사를 지금 상상할 수 있을까? 그러나 당시 수공의 연수원은 대청댐 근처 허허벌판에 있던 초라한 가건물이었다. 나는 토지공사 사장과 협의, 대전 대덕연구단지의 부지를 특별히 분양받아 오늘날의 연수원과 현대적인 수리모형시험장을 건설하게 되었다. 또 한 가지 잊을 수 없는 일은 한전과의 전기요금 협상 때마다 우리 간부의 직급이 한전보다 낮아 망신을 당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곤 하였다. 그때 한전은 우리의 부장급인 처장이란 직급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부장급이 최상위 실무자였다. 나는 건교부 장관을 면담한 자리에서 한전과의 전기요금교섭상의 애로사항을 설명하여 수공 직원들의 직급을 한 단계 상향조정하는 성과를 이루어 냈다. 이 일을 계기로 건교부 산하 토공, 주공 등 공기업 직원들의 직급이 모두 한 단계씩 상향조정되는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지금의 처장제도는 그때 탄생한 직급이다. 이 밖에 유엔이 ‘세계 물의 날’을 제정하기 이전인 1990년에 매년 7월 1일을 ‘물의 날’로 제정·선포한 일, 굴포천 방수로라는 이름으로 착공한 경인아라뱃길, 수도권 광역 상수도의 복선화 및 LOOP화, 수자원공사법을 개정하여 광역 상수도 운영관리권과 공업단지조성사업의 계속성 및 특수지역 개발사업권을 확보한 일들이 기억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