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속세의 괴로움
설산의 사랑 아프리카봉선화 UFO가 온다 잿물 늦둥이 자카트 작가의 말 |
|
한참을 가만히 누워 있었지만 밤의 기운은 도통 걷힐 줄 몰랐다. 그러나 집 밖 먼 곳에서 때아닌 수탉 울음소리가 한번씩 들려왔다. 대나무 장대가 부러지는 것처럼 귀에 거슬리는 그 소리가 하늘로 힘껏 솟구쳐 오르면서 도시 전체를 어둠 속으로 띄워올리는 듯했다. 장대 꼭대기에 이른 도시는 아무 가치도 없는 얇은 지도로 변했다.
--- p.52 외롭지는 않았지만 자기 자신에게 버림받은 기분이었다. (…) 막상 오고 나니 아버지 얼굴 한 번 보는 것이 안내판도 종착지도 없는 길고 긴 여정이 되고 말았다. 쇠고기 냄새가 목표물을 찾는 독수리처럼 소리 없이 천천히 공기 속을 맴돌고 있었다. --- p.57 이른 새벽의 해가 머리 높이 걸려 있었는데 마치 술병에 너무 오래 담근 청매실처럼 푸르뎅뎅했다. 광활한 하늘은 회색도 푸른색도 띠지 않고 구름 한 점 띄우지 않은 채 냉랭하게 세상을 뒤덮어 을씨년스러운 광경을 연출했다. 세 사람은 차를 세우고 골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문 밖으로 뻗은 마른 나뭇가지가 희망이 없음을 알리는 외로운 손짓처럼 보였다. --- p.70 샤오줘는 불좌 앞에 나서는 대신 불당 밖 멀리에 서 있었다. 마음이 멋대로 흔들리는 작은 쑤유등 같아서 거센 바람에 꺼질세라 두 손으로 잘 감싸쥐어야 했다. 하지만 불길이 계속해서 이리저리 흔들리는 탓에 손바닥이 뜨거워 고통스러웠다. --- p.81 그러나 조금만 더 깊이 파고들어 결과만 놓고 얘기하자면 피는 위에서 아래로 흘러 이어지므로 무고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p.97 또다시 추운 겨울이었다. 하늘은 잿빛이었고 대지는 흰 눈으로 뒤덮여 있었다. 세상은 여전히 흑백 이미지 속 구도처럼 참혹했다. 샤오줘가 저 멀리에서부터 혼자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맞은편에 사원이 보였는데 담벼락부터 처마까지 오랜 풍파를 겪은 모습이었다. 조금 더 앞으로 걸어가자 비구니들의 진홍색 승복이 나타나더니 눈밭 위에서 오르락내리락하기 시작했다. 무한한 속세가 눈밭으로 뻗어 나오는 것 같았고 그 속세에서 벗어나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 p.98 사방을 둘러봤지만 주위 사람들이며 저 멀리 떨어진 설산이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은 고요하고 엄중하기만 했다. 냉담하고 엄숙하며 고요한 그것들은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몇 걸음 걷다보니 공기 중에서 뭔가 다른 것이 요동치는 것 같았다. 타인에게 확 떠밀린 것 같기도 했고 바닥에 엎어진 물통에서 물이 세차게 튀어 오르는 것 같기도 했으며 빛에 노출된 상처가 스스로 긴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 같기도 했다. --- p.117 삶의 기질은 타고난 운명의 결과다. 그 신비한 운명이 서로 다른 사람들의 삶에 각기 다른 질서와 복종의 암호를 만들어내면 그들의 목표와 방향은 완전히 달라진다. 근원이 다른 두 개의 물줄기가 각자 굽이쳐 흐르면서 서로 다른 것을 갈망하고 추구하는 것과 같다. 대대로 기꺼이 전통을 계승하고 대대로 일궈온 토양에서 열매는 자연스레 익어 떨어진다. 생각이 많아진 마전은 문득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고원에 내린 눈 속에는 눈보다 몇 배 더 무거운 무언가가 들어 있었다. 그 특별한 무게감이 그에게 부딪히면서 그의 머리를 어지럽혔다. --- p.119 창밖에서 비쳐 들어오는 새하얀 빛이 와들와들 떨었다. 그러자 갈라진 벽의 한 부분이 부풀어 오르더니 더 버티지 못하고 툭 떨어져 내렸고 그 위에 그려졌던 그림 조각은 가루가 되었다. 벽화 역시 강력한 환영의 거울에 지나지 않았다. 그 안에 담긴 갖가지 환상은 떨어져 내리는 순간 바닥에 흩어진 파편에 불과했다. 환영은 사라지고 벽화는 먼지가 되었다. 마전은 이토록 극단적인 관점의 변화에 화들짝 놀랐다. 정체불명의 공포가 마음 깊은 곳에서 그를 압박하는 듯하여 더는 거기 서 있지 못하고 복도 쪽으로 향했다. --- pp.130-131 하려다 만 말들이 허공에 걸려 파리 날개처럼 번득이다가 온몸을 이끌고 날아올라 종적을 감추었다. --- p.133 마치 모욕과 공포를 뒤섞고 고요함으로 끈적임을 더한 시커먼 소스 같은 것이 머리 위에서 흘러내려 그의 눈을 가리고 코를 뒤덮고 입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듯했다. 머리까지 잠긴 시커먼 소스 속에서 흉악한 귀신들이 외치는 날카로운 소리가 어둠 중에서도 가장 어두운 곳까지 울려 퍼졌다. 햇빛 아래 새하얀 설산이 무너지더니 산더미 같은 얼음과 눈이 천지를 뒤덮고 와르르 몰려들었다. 마전은 그 광경 속에서 수많은 환각을 보았고 환각이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 p.159 |
|
가슴속에서 들풀처럼 번지는 속세의 삶
상투적인 일상에 심겨진 문학의 씨앗 다섯 살 때 티베트 불교 사원에 보내져 진홍색 승복만 입고 살아온 샤오줘는 매년 절에서 보는 시험을 통과했는데도 아직 입전 의식은 치르지 못했다. 향냄새 속에서 산 지 10년 넘었으니 이젠 정식 비구니가 되고 싶다고 선사께 말하자 그는 한 가지 조건을 내건다. “아버지부터 만나고 오너라.” 절 밖으로의 첫 외출이 이뤄지면서 「속세의 괴로움」은 전개된다. 쪽지에 적힌 집주소로 찾아가 샤오줘가 처음 만난 건 아버지가 아닌 고모였다. 고모는 바짝 깎은 머리의 조카를 보고는 너는 ‘회족’, 즉 무슬림을 조상으로 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애초에 비구니가 되어서는 안 되는 핏줄이었던 것이다. 속세로 나온 꽃 같은 처녀를 돌려보내지 않으려고 친척들은 갖은 애를 써 혼처를 알아본다. 그렇게 해서 샤오줘는 밍한을 만나고 둘은 서로 호감을 품는다. 딩옌의 서사는 복잡하지 않다. 하지만 그 속에서 딩옌은 주인공들의 내면과 외면을 들락거리며 속세의 욕망과 허무함 속에서 바닥으로 가라앉으려는 그들을 끌어올려 감정이 정점에 이르게 한다. 주변 인물들의 일상과 생각은 상투적이기 그지없다. 하지만 송곳처럼 찌르고 들어오는 샤오줘와 밍한의 감정을 상투적인 일상에 배치하자 이야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격렬하게 흘러간다. 샤오줘는 한번 속세에 발을 담갔지만 다시 절로 돌아갈 기회를 잡는다. 하지만 절에 되돌아와서도 속세의 냄새는 벗겨지지 않았다. 잠자리에 들면 속세의 경험이 환영처럼 나타났다. 동분서주하는 자동차, 영원히 위로 오를 수 없는 어둡고 좁은 계단, 미친 듯이 자라나는 머리카락, 어두운 여관 객실, 숨 막히는 외양간, 천지를 뒤덮은 박쥐, 백골이 된 시신, 시커먼 들풀에 뒤덮인 무덤, 끝이 보이지 않는 깊은 우물…… 점점 속세의 과거가 절에서의 현재를 집어삼켰다. 그 광기 속에서 샤오줘는 다시 속세로 내려올 결심을 한다. 승복을 벗고, 히잡을 쓰며, 밍한과 결혼한다. 불교와 이슬람교 사이, 사원과 모스크 사이, 라마와 이맘 사이는 그렇게 좁혀지는 듯했으나 작가는 구름 한 점 띄우지 않은 냉랭한 풍경을 묘사하며 비극을 암시한다. 속세에서 샤오줘의 가슴은 자기모순의 고통 같은 것을 들풀처럼 키운다. 더욱이 아버지 죽음의 비밀이 밝혀짐으로써 속세는 모든 것을 게워내야 할 만큼 어지러운 곳이 되어버린다. 그녀는 비구니 사원으로 돌아갈까? 전설 속에 기록된 떠돌이 수행자들처럼 그녀도 속세와 떨어질 수 있을 것인가? 단 한 번도 고백되지 않는 사랑 주도면밀한 타협이 시간을 이끌다 라브랑 사원 뒤쪽으로 얼핏 비치는 설산 꼭대기를 배경 삼아 전개되는 「설산의 사랑」을 지배하는 것은 쉼 없는 긴장감이다. 티베트족 여성인 융춰와 회족 출신인 마전, 둘 사이에 깊은 감정이 싹튼 건 분명해 보이지만 절대 입 밖으로 흘러나오지 않는 건 물론이고, 각자의 마음에서도 억눌린다. 마전은 명성 높은 골동품 가게의 막내아들이었다. 하지만 가게에 불이 나고 그 화재로 점원까지 죽자 목숨값을 대신해 죽은 남자의 여동생과 할머니가 사는 집에 ‘인질’로 들어간다. 그 집으로 가던 날 마전은 젊어 탕진했던 지난 세월이 발을 되돌려와 자신의 뺨을 휘갈긴다고 느낀다. 할머니와 손녀딸 융춰, 마전이 함께 살면서 이야기의 반경은 마전이 다니는 모스크와 융춰가 매일 가는 티베트 불교 사원 밖을 넘지 않으며, 이질적인 두 종교의 공기 속을 맴돌며 축적된다. 라마단 기간이 되자 마전은 모스크에 가 예배를 드리고, 융춰는 사원에 가서 오래된 벽화의 보수 작업을 한다. 알라의 모스크와 때 낀 불교 벽화가 두 사람 사이에 놓인 시공간이다. 그렇지만 둘은 한집에 산다. 마전은 할머니와 융춰에게 자신의 아버지를 대신해 사죄하는 마음으로 매일 과일을 사다가 문 앞에 놓는다. 그러면 융춰는 과일을 봉지째 쓰레기통에 처박고, 그 쓰레기통을 바라보는 마전은 눈송이가 몸속을 타고 흐르는 것처럼 차갑게 식어버린다. 매일 버려지는 과일 봉지로 둘 사이에는 호감과 혐오가 공기를 타고 흐른다. 융춰는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표정을 짓지만, 거기에 숨겨진 건 건드리기만 하면 용수철처럼 튀어오를 사랑의 감정이었다. 그게 에너지를 축적하며 이 소설을 터질 듯이 부풀어오르게 만든다. 「설산의 사랑」은 여러 번 재독해도 그 신비로움, 감정의 폭발력을 잃지 않는다. 그건 아마 작가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땅에서 일어나는 일상을 다루면서 이야기의 원숙미와 장악력을 높이기 때문일 것이다. 줄거리는 천천히 흘러간다. 말이 나오려다 삼켜지고, 설산을 바라보며 환영을 마주하는 듯한 심경, 두 종교 신자들의 일상이 침묵으로 뒤엉키면서 애틋한 감정이 넘실거리며, 마침내 각자의 마음속 비명까지 담아낸다. 이런 독특한 분위기는 소설의 내러티브와 떼어놓을 수 없는 핵심적인 요소다. 둘 사이의 사랑이 이뤄지든 파열되든 독자를 이끄는 힘은 분위기이고, 그 과정에서 문장이 모든 감정을 충족시킨다. 즉 플롯보다 더 중요한 것은 문장이다. 이 소설은 짙은 슬픔을 시종 놓지 않는다. 딩옌은 사물과 풍경을 주의 깊게 파고들며, 역사의 유물에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작가다. 하지만 혈통과 씨족에 대해 말하는데도 현대적인 감각을 놓치지 않는다. 근원이 다른 두 개의 물줄기는 각자 굽이쳐 흐르다가 융춰와 마전의 갈망이 부딪치면서 만난다. 융춰가 실수로 속마음을 드러내자 마전 역시 그녀를 향한 목마름을 더는 감출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건 이성으로 제어되지 않았다. 마전은 살짝 떨리는 융춰의 목덜미를 보며 다가가려 했다. 하지만 순간 두 사람 사이에 뛰어넘을 수 없는 뭔가가 있다는 게 느껴져 펼쳤던 손가락을 꽃봉오리처럼 오므리고 주먹을 꽉 쥐었다. 그 후 둘 사이에는 밤보다도 더한 어둠이 짙게 깔렸다. 모스크 주변 길거리에서는 수많은 남녀가 햇볕을 쬐고 있었다. 그건 마치 여러 개의 긴 줄이 드러난 강바닥 같았다. 그 안에서 깊은 세월 속을 맴도는 핏줄기 소리가 메아리쳤다. 오랜 기억은 밀도를 높여가며 각자의 가슴에 짐을 지웠다. 고개를 들어 더 먼 곳을 보자 눈과 얼음으로 뒤덮인 설산의 산봉우리가 눈에 들어왔다. 그곳은 태양이 비춰도 차가운 하얀빛일 뿐이어서 현실이 아닌 환상으로만 여겨졌다. 융춰와 마전은 햇빛 아래 새하얀 설산이 무너지는 환각 속에서 자신들 사랑의 환각이 부서지고 사라지는 것을 보았다. 서로에게 닿을 길은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았다. 딩옌 소설의 줄거리와 구조, 등장인물은 모두 단순하다. 갑자기 드러나는 구름, 보이지 않는 바람, 툭 부러지는 나뭇가지가 모두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독자에게 일으키는 감정은 웅장한 서사를 요구하지 않는다. 야망 없는 글이 오히려 감정을 격렬히 붙든다. 총 일곱 편의 소설에서 작가는 삶에 도사리고 있는 비극을 파고든다. 회족과 티베트족의 신념 및 방대한 문화가 연극처럼 현실 속 사람들을 무대로 떠밀기 때문이다. 이 책 말미에는 작가론이 덧붙여져 있는데, 딩옌은 자신이 이상으로 삼은 문장을 향해 더 바짝 다가가고 있는 듯하다. |
|
딩옌은 젊은 세대 작가 중 가장 뛰어나다. 그녀의 이야기는 광막한 칭창고원뿐 아니라 혼잡한 도시 속에서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사람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탁월하기 때문에 고통, 한恨, 갈등 같은 것도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녀는 감정을 뜨겁게 써나가는 대신 차갑게 쓴다. 특히 서북쪽 칭창고원의 광활한 땅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속의 가슴 아픈 감정조차 그녀의 펜 끝에서는 얼음장처럼 차갑게 그려진다. - 위화 (소설가)
|
|
이야기는 칭창과 서북 접경 지역에서 펼쳐진다. 펜이 닿는 곳마다 역사와 사람에 대한 작가의 호기심과 기쁨이 묻어난다. 그러나 화려한 문학적 기술의 베일을 걷어내고 진정으로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간의 뿌리에서 비롯된 고통과 비루한 풍파를 마주하게 된다. - 옌롄커 (소설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