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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mail Kada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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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법칙에서 벗어났으나 망각의 먼지로 뒤덮인 조용한 삶과, 떨리는 시침실처럼 한 끝에서 다른 한끝으로 번쩍이며 흐르는, 위험하기는 하나 죽음의 광휘로 장식된 삶 중에서 어느 것이 더 나은지 말할 수 없게 되었음을 그는 느꼈다. 그러한 두 삶을 모두 경험해 본 지금, 누군가가 '하나를 고르시오' 라고 말한다면, 그조르그는 분명 주저하리라. 평화없는 삶에 익숙해지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했던 것처럼 평화에 익숙해지기 위해서도 수년의 세월이 필요하리라. 피의 법칙은 이러한 것이어서, 누군가에게 행동의 자유를 주었을 때라도 한 동안은 그 틀 속에 그의 영혼을 붙들어 놓는 것이다.
--- p. 5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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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것은 칠십 년 전, 한 남자가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리던 날, 시월의 어느 추운 밤에 시작되었다. 누군가 대문 앞에서 문을 두드렸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어린 그조르그는 그게 누구였어요? 라고 물었다. 그것은 그의 집안에서, 당시에, 그리고 그 이후로도, 수만 번도 더 묻고 또 되묻던 물음이었지만 아무도 그에 대해 대답할 수 없었다. 아무도 그 남자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과거지사를 더듬고 있는 지금, 그조르그는 실제로 누군가 그의 집 대문을 두드리기는 한 건가 하고 의아해할 정도였다. 그에게 있어서 그소리는 신원을 알 수 없는 무명의 길손이 냈다기보다는 차라리 유령이나 운명 자체가 낸 소리였다고 생각하는 편이 훨씬 수월했다.
--- p.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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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매에는 검은 리본이 꿰매어져 있었다. 베시안은 주막집 주인에게 물었다. '저 청년은 피를 회수했나 보군요. 아는 사람입니까?' (중략)
'어이, 청년, 자네 이름이 뭔가?' (중략) 필시 주막집 주인의 부름에 놀란 산악 지방 청년은 그를 향해 돌아섰다. 디안은 이미 마차 안에 올라 있었으나 베시안은 낯선 청년의 대답을 듣기 위함인 듯 디딤대 위에 멈추어 섰다. 다소 푸르스름한 디안의 얼굴이 차창 너머로 보였다. '그조르그요.' (중략) 베시안은 의자에 몸을 붙이며 말했다. '얼굴이 어떻게 저토록 창백할까! 이름이 그조르그래.' 디안은 여전히 차창에 이마를 붙이고 있었다. 밖에서는 주막집 주인이 마부에게 늘어지게 충고를 하고 있었다. '길 아시우? 크루쉬크 무덤을 만나면 조심해야 해요. 그곳에서 사람들이 번번이 실수를 저지른단 말요. 오른쪽으로 가지 말고 왼쪽으로 가도록 해요. 명심해요.' 마차가 움직였다. 창백한 얼굴과 대조되어서 그런지 눈이 매우 어두워 보이는 낯선 청년은 네모난 차창 너머로 보이는 디안의 얼굴에서 눈을 뗄 줄 몰랐다. 디안 역시 더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느닷없이 한길 가에 나타난 그 청년에게서 도저히 눈을 뗄 수 없었다. 마차가 멀어져가는 동안, 그녀는 두세 차례 차창에 서린 입김을 닦아내었으나, 그들 둘 사이에 커튼을 치는 것보다 더 급한 일이 없다는 듯, 입김은 이내 다시 서리곤 했다. --- pp. 132-1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