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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공제 EPUB
eBook 미추홀, 제물포, 인천 1
EPUB
복거일
무블출판사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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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목차

1권
이야기의 실마리
첫째 이야기_황해의 탄생
둘째 이야기_한반도의 원주민
셋째 이야기_인류 문화의 발전
넷째 이야기_한반도의 문화
다섯째 이야기_졸본성
여섯째 이야기_므음드레
일곱째 이야기_새 터전을 찾아서
여덟째 이야기_낙랑성
아홉째 이야기_위례성
열째 이야기_미추홀
열한째 이야기_원양국
열두째 이야기_백제의 성립
열셋째 이야기_고구려의 융성
열넷째 이야기_삼국의 각축
열다섯째 이야기_한반도의 통일
열여섯째 이야기_경기만의 번성
열일곱째 이야기_고려의 성립
열여덟째 이야기_거란과의 전쟁
열아홉째 이야기_몽골의 흥기
스무째 이야기_몽골의 침입
스물한째 이야기_다루가치 탈타아
스물두째 이야기_경기만의 교역
스물셋째 이야기_왜구의 침입
스물넷째 이야기_조선 왕조의 성립
스물다섯째 이야기_성리학의 정착
스물여섯째 이야기_훈민정음의 탄생
스물일곱째 이야기_탐험의 시대
스물여덟째 이야기_임진왜란
스물아홉째 이야기_병자호란
서른째 이야기_병인양요
서른한째 이야기_광성보
서른두째 이야기_개항
서른셋째 이야기_임오군란
서른넷째 이야기_센자이마루
서른다섯째 이야기_셰챵 바늘
서른여섯째 이야기_동학란
서른일곱째 이야기_청일전쟁
서른여덟째 이야기_갑오경장
서른아홉째 이야기_삼국 간섭
마흔째 이야기_약대인
마흔한째 이야기_을미사변

저자 소개 1

BOK,KOH-ILL,卜鉅一

1946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최전방에서 포병부대 관측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 1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7년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문단과 독자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주요 작가가 된다. 『역사 속의 나그네』(전 6권, 2015),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 등 소설 수십 권을 출간하였는데, 그의 문학은 이전의 우리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체역사소설, SF 등 상상력의 영역을 크게 확대한 작품들이었다. 한편 한국 사회의 갈등은 그를 소설만
1946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상과대학을 졸업하고, 최전방에서 포병부대 관측장교로 복무했다. 전역 후 16년 동안 직장생활을 하다가 소설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7년 『비명(碑銘)을 찾아서』로 문단과 독자 대중의 폭발적인 관심을 받으면서 주요 작가가 된다. 『역사 속의 나그네』(전 6권, 2015),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 『캠프 세네카의 기지촌』(1994) 등 소설 수십 권을 출간하였는데, 그의 문학은 이전의 우리 문학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대체역사소설, SF 등 상상력의 영역을 크게 확대한 작품들이었다.

한편 한국 사회의 갈등은 그를 소설만 쓰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는 사회·정치 평론을 쓰기 시작한다. 자유주의 사상을 바탕으로 진화생물학, 천체물리학 등을 수용한 도저한 그의 평론과 에세이는 한국 사회의 금기에 도전하는가 하면 지식의 미개지를 탐험하기도 했다. 『현실과 지향』(1990), 『진단과 처방』(1994), 『자유주의의 시련』(2009), 『쓸모없는 지식을 찾아서』(1996) 등 평론집 수십 권을 출간하면서 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한국의 대표적인 보수 논객으로 자리 잡는다. 또한 시집을 상자(上梓)하면서 소설가, 평론가에 이어 시까지 글쓰기를 두루 섭렵하는 대작가의 반열에 오른다.

2014년 간암 판정을 받고, 그를 오랫동안 짓눌러 오던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전기소설 집필을 시작한다. 9.19 남북군사합의에 대해 여적죄, 그리고 김정은 반인도 범죄자 고발을 주도했다.

1987년 장편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를 발표하며 문단에 데뷔한 작가 복거일은 책이 좋아 읽다보니 어느새 소설가가 되어 있었다고 말한다. 젊은 날, 넉넉한 보수를 주던 은행을 그만둔 이유도 오롯이 책 읽는 시간을 더 늘리고 싶어서였다고 한다.

소설가이자 비평가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대체 역사 소설’이라는 장르를 만들기도 한 작가이다. 작가는 문학 창작 활동뿐만이 아니라 우리 시대의 짚어야 할 문제들에 주목하여 ‘우리 시대의 논객’으로 불리면서 사회평론가로도 활동해 왔으며 그의 여러 저서를 통하여 독자들로 하여금 사회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성찰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하기도 했다.

복거일은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암살이 실패했다는 가정에서 출발하여 1980년대 식민지 서울을 살아가는 반도인의 1년을 쫓은 작품인 『비명을 찾아서』로 1987년 데뷔하였다. 이 소설은 2002년 영화 『2009 로스트 메모리즈』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또한 그는 SF 장편소설 『목성잠언집』으로 정권을 신랄하게 비판하여 다시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하여 전통 경제이론에 정통 하면서도 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전파에 앞장 서는 보수내 지식인으로 활동해 왔다. 1998년 한국어 대신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자는 '영어 공용화' 제안으로 논란이 대상이 되었고 원화 대신 달러를 통화로 채택하자는 견해를 제시하면서 탈민족주의를 주장하기도 했다.

그의 작품으로는 시집『오장원(五丈原)의 가을』,『나이 들어가는 아내를 위한 자장가』, 장편소설 『높은 땅 낮은 이야기』,『역사 속의 나그네』,『파란 달 아래』,『캠프 세네카의 기지촌』,『목성잠언집(木星箴言集)』,『그라운드 제로』, 『한가로운 걱정들을 직업적으로 하는 사내의 하루』,문학평론집『세계환상소설 사전』, 사회평론집『현실과 지향』,『진단과 처방』,『소수를 위한 변명』,『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동화를 위한 계산』,『2002 자유주의 정당의 정책』, 『자유주의의 시련』, 과학평론집『쓸모 없는 지식을 찾아서』, 산문집『아무것도 바라지 않은 죽음 앞에서』,『현명하게 세속적인 삶』등이 있으며, 최근작으로 『서정적 풍경, 보나르 풍의 그림에 담긴』,『역사가 말하게 하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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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일
2025년 07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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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용량
EPUB(DRM) | 36.91MB ?
ISBN13
9791191433845

출판사 리뷰

■ 책 속으로
그는 아내 얼굴을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어머니와 자식들은 어쩔 수 없지만, 아내는 얼굴도 떠올릴 자격이 없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깊은 한숨을 내쉬고서, 그는 서해 바다를 대신 떠올렸다. ‘황해’라는 본 이름이 드러내듯, 깊지도 않고 차갑도록 파랗지도 않은 그저 뿌연 빛깔의 바다를, 그의 몸속에 든 그 부드럽고 너그러운 바다를 떠올렸다 _<1권> 12쪽

(황해의) 동해안에서 흥미로운 부분은 단연 경기만(京畿灣)이다. 크고 작은 섬들이 모여 있고, 한반도 중부의 큰 물길들이?예성강(禮成江), 임진강(臨津江), 한강(漢江), 삽교천(揷橋川)이?삼면에서 흘러든다. 그 물길들을 따라 평야가 펼쳐져서 물산이 풍부하다. 자연히, 좋은 항구들도 많아서, 교류와 교역의 중심이 되었다.
고려가 개경(開京)을 도읍으로 삼자, 경기만은 번창하기 시작했다. 조선이 한성(漢城)을 수도로 삼았으므로, 경기만의 번창은 이어졌다. 근대에 서양 세력이 밀려오고 조선이 제물포(濟物浦)를 개항장으로 삼자, 경기만은 세계 역사의 숨 가쁜 현장이 되었다. _<1권> 16~17쪽

… 중국 문명은 다른 문명들보다 훨씬 늦게 일어났다. 현생 인류가 동아프리카에서 북쪽으로 진출하기 시작했으므로, 인류 문명은 자연스럽게 서남아시아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먼저 발전했고 둘레로 퍼졌다. 그래서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문명은 인류 문명의 주변부였다. 문명의 중심부는 늘 메소포타미아의 문명과 그것을 이어받은 문명들이었다. 그런 상황은 석기시대 이래 지금까지 바뀌지 않았다.
한반도는 줄곧 중국 문명의 주변부였다. 즉 문명의 주변부의 주변부였다. 그것이 한반도의 역사와 문화를 규정한 근본적 조건이었다. 한반도의 대한민국은 그런 근본적 조건을 뛰어넘어 마침내 21세기에 통합된 인류 문명의 중심부로 진입했다. 현실에선 나올 법하지 않은 동화 같은 그 일을 찬찬히 살피는 것이 이 이야기의 주제다. _<1권> 29~30쪽

“전하, 여기 보소서.” 그녀는 돌아서서 너럭바위의 위쪽을 가리켰다. “저기 ‘늑대바위’ 옆에 므음드레가 피었지요?”
‘늑대바위’ 아래쪽에 깊게 파인 부분이 있어서 거기 흙이 좀 모였는데, 그 좁은 터에 민들레 두 송이가 피어 있었다. 좀 작은 송이는 이제 꽃이 활짝 피었지만, 큰 송이는 이미 쇠어 씨를 날리고 있었다.
“전하,” 그녀는 간곡하게 말했다. “풀도 저렇게 씨를 퍼뜨립니다. 씨가 널리 퍼지라고, 깃털들이 달렸습니다. 한데 모여 오글오글 산다면, 제대로 살겠습니까?”
추모는 유난히 작은 므음드레 송이들을 처연한 눈길로 내려다보았다 _<1권> 59쪽

온조는 여드레 뒤에 돌아왔다. 그가 내놓은 목패엔 ‘미추홀 성주 고비류(彌鄒忽 城主 高沸流)’라고 씌어 있었다. … 떠나기 전날 밤, 비류는 어머니에게 생각을 밝혔다. 이제 여기 위례성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않겠노라고, 미추홀에 뼈를 묻겠노라고. 어머니 생신에만 위례성을 찾겠노라고. 아버지 제사도 미추홀에서 지내겠노라고.
소서노는 그런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그녀는 자신이 추모왕에게 했던 므음드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새로운 땅에서 자라나라고 축복해주었다. _<1권> 110~111쪽

역사적으로, 이 시기는 형제 상속에서 부자 상속으로 옮겨가는 시기였다. 수렵-채취 사회나 유목 사회는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늘 낯선 상황에서 활동해야 했다. 따라서 종족이나 씨족의 지도자는 건장한 성인이어야 했고, 지도자의 지위는 형제 상속을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농경 사회에선 지도자의 어린 자식이 자라나도록 기다릴 수 있었다. 그래서 부자 상속이 점차 대안이 되었다. 일정한 지역에 자리 잡은 농경 사회에선 그래서 형제 상속의 풍습이 부자 상속의 욕망과 부딪치는 경우들이 흔했다
고비리국이 마한의 국방에서 중요한 변경 국가였고 말갈군이 실제로 침입했던 터라, 신지 집안의 분열은 모두에게 걱정스러웠다. 그래서 인근 국가들의 신지들이 모여서 사태를 논의했다. ... 자신의 사위 일인지라 나서지 않던 국왕은 여론이 호의적이 되자, 온조를 고비리국 신지에 임명했다. 그리고 국명을 고쳐, 백제국(百濟國)이라 칭하도록 했다. ‘백 개의 나루를 가진 나라’라는 뜻이었다. _<1권> 144~145쪽

조선 사회에선 노비들이 많았을 뿐 아니라 경제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지배계급인 사족은 노동을 전혀 하지 않아도 노비들의 노동으로 유복하게 살아갈 수 있었고, 관노비들이 없으면, 중앙과 지방의 행정 기구가 마비되었다. 더구나 조선 사회에선 노비들이 자신들의 실질적 가족을 유지할 길이 없었다. 노비들의 신분은 그들의 자식들에게 세습되었고 천인 신분에서 벗어나는 속량(贖良)의 길이 실질적으로 막혔었다. 그래서 조선 사회는 ‘진정한 노예 사회’를 넘어 ‘완전한 노예 사회(complete slave society)’가 되었다. _<1권> 1239쪽

결정적 요인은 이순신이 이끈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압도하고 제해권을 장악했다는 사정이었다. 조선 수군의 공격을 피하면서 조선의 일본군에 보급하는 일은 점점 어려워졌다. 아울러, 조선 수군의 우세는 서해를 통해서 북쪽으로 진출한 일본군 주력에 직접 보급하는 길을 막았다. 이런 상황은 히데요시를 비롯한 일본 지도부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제해권을 잃는 상황은 특히 뜻밖이어서, 일본으로선 대처하기가 힘들었다. 그때까지 해전에선 거의 언제나 왜구가 명군과 조선군을 압도했었다.
조선 수군의 승리는 온전히 이순신의 공이었다. 그의 고결한 인품과 빼어난 지도력은 세계 해전의 역사에서 유례가 없는 승리를 이루었다. 이순신의 높은 인품을 증언하는 일화들은 많다. 아마도 가장 시사적인 것은 조선을 구원하러 온 명의 수군 장수 진인(陳璘)이 그를 흠모했다는 사실일 것이다. _<1권> 275쪽

당시 일본 사람들은 “중국에 몰려드는 이슬이 일본에 서리가 되어 내리지 않으리라고 어찌 알겠는가?”라고 걱정했다. 그런 걱정은 일본이 유럽 문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화를 시도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조선의 지식인들이 먼 대륙에서 몰려온 세력이 일으킨 그 전쟁의 뜻에 대해서 깊이 생각했던 자취는 없다. 청과 빈번하고 정기적인 사신 교류를 가졌지만, 『헌종실록』 9년 3월 임신일조엔 “돌아온 동지겸사은사(冬至兼謝恩使)를 [임금이] 희정당(熙政堂)으로 불러서 보았다”는 기록만 달랑 나온다. 남경조약이 체결된 해에 북경에 다녀온 사신들이 중국 대륙을 흔든 사건에 대해 전혀 보고하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지적 폐쇄성은 정책적 폐쇄성을 낳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서양 세력과의 교류를 전적으로 거부하는 쇄국이 조선의 기본 정책이 되었다. _<1권> 303~304쪽

제물포의 개항은 미추홀의 긴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비운의 고구려 왕자 비류가 정착한 뒤 2,000년 동안, 미추홀은 실질적으로 바뀌지 않았다. 황해에서 가장 복잡한 지형인 경기만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지만, 미추홀이 중심적 역할을 한 적은 없었다. 남만주에서 내려온 고구려 이민들이 정착한 시기엔 한강 유역의 위례성에 밀렸고, 고구려 시대와 통일신라 시대엔 바로 남쪽 당항성이 군사적으로나 상업적으로나 요지였다. 고려 시대엔 도읍 개경의 외항인 예성항이 중심이었다. 고려 시대나 조선 시대나 군사적 요지는 섬인 강화도였다.
이제 문득 제물포가 경기만의 중심이 되었다. 밀물과 썰물의 차이가 아주 큰 서해에서도 수심이 얕아 큰 배들이 드나드는 항구로선 적합하지 않은 포구가 외국에 열린 항구가 되면서, 국제적 중요성을 지닌 곳으로 바뀌었다. 미추홀의 제물포 시대가 열린 것이었다. _<1권> 341~34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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