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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ㆍ4
서문ㆍ10 제 1장 구루 나나크와 시크교의 기원ㆍ21 제 2장 구루 아르잔과 시크 신앙의 정립ㆍ59 제 3장 구루 고빈드 싱과 시크 정체성의 확립ㆍ93 제 4장 시크교의 형이상학, 윤리학, 미학ㆍ128 제 5장 예배, 의식, 통과 의례ㆍ165 제 6장 가부장적 맥락에서 여성주의 텍스트ㆍ203 제 7장 식민주의와의 만남ㆍ237 제 8장 시크 예술ㆍ302 제 9장 시크 디아스포라 ㆍ375 역자 후기ㆍ443 용어 설명ㆍ445 참고문헌ㆍ452 색인ㆍ461 미주ㆍ466 |
Nikky-Guninder Kaur SDin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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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루 나나크의 소통 양식은 생각을 일으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현대적 학문 분위기에 적합하다. 그는 설교를 하지 않았다. 그는 신자들에게 체계적인 믿음을 전달하지 않았다. 그 대신에 그는 질문하고 배우고 함께 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이 되라고 요구했다. 어떤 법칙이나 교리에 규정되지 않고 구루는 자신의 독자들이 각자의 지적 재능을 사용하여 새로운 행로를 발견하도록 예술적으로 훈련시켰다. 예를 들어, 자프 21연에서는 태초의 기원에 대한 물음이 제기된다:
시간이 무엇인가, 세월이 무엇인가, 날짜는 무엇인가, 요일은 무엇인가, 계절은 무엇인가, 달은 무엇인가, 언제 창조되었는가? 구루 나나크의 질문은 예리하고 그 걸음은 민첩하다. --- p.58 힌두 사원이나 이슬람의 모스크와 많은 것을 공유하지만, 시크교의 하르만디르는 전혀 다른 공간이다. 이슬람 모스크에 감도는 전능한 창조자에 대한 전적으로 순종적인 느낌은 구르드와라의 당당한 느낌에 의해 전복된다. 시크교의 장소에는 기도벽(미르합mirhab)과 설교단(민바르minbar), 그리고 성인들의 무덤(특히 수피의 신성한 장소에 많이 있는)과 같은 모스크의 기본적인 양상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하르만디르에는 전통적인 인도인의 지형학적 의식으로 미루어볼 때 특별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아주 특별한 장소에 건축되는 - ‘신이 임하시는’ - 힌두 사원과 달리 하르만디르가 건축된 장소는 어떤 특별한 이유로 선택되지 않았다. 구루 아르잔이 건축했던 바, 내부에 위치한 연못에 대한 아이디어는 고인드발이 시크의 중심이었던 3대 구루 아마르 다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다. --- p.86 열 번째 구루의 시는 지금까지 우리의 글로벌 사회에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서로 알아가는 과정에서 차이는 길을 비켜서야 한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온 서로 다른 옷들은 우리를 서로 다르게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눈을 갖고 있고, 같은 귀를 갖고 있고, 같은 몸을 갖고 있고, 같은 목소리를 갖고 있다’(Akal Ustat: 86). --- p.109 열 번째 예언자, 구루 테그 바하두르의 아들, 구루 하르고빈다의 손자, 구루 아르잔의 손자의 손자, 구루 람 다스의 가족, 수라즈반시 고살(Surajbansi Gosal)의 씨족, 소디 카트리(Sodhi Khatri), 아난드푸르의 거주자, 파르가나흐 카흘루르(Parganah Kahlur), 현재 데칸의 고다바리 지방의 난데르에 있는 구루 고빈드 싱은 부드바르(Buddhvar)[수요일] 카틱 차우트(Katik chauth), 슈클라 파크(shukla pakkh), 삼바트(samvat) 1765 [1708년 10월 6일]에 바이 다야 싱(Bhai Daya Singh)에게 〈스리 그란트 사히브〉를 가져오라고 말했다. 구루는 그 앞에 다섯 개의 동전과 코코넛 하나를 놓고 고개를 숙였다. 그는 신도들에게 말했다, ‘나의 명령이다; 〈스리 그란트 지〉가 나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자는 누구든지 그녀/그의 보상을 받을 것이다. 구루는 시크교인을 구원할 것이다. 이것이 진리임을 알아라.’ 구루는 자신의 제자 중 하나에게 구루십을 전수하지 않았다. 그는 구루 〈그란트〉에게 영원히 전수했다. 시크교인은 구루를 다른 형식으로 감지하지 않는다. 말씀만이 영원한 구루였다. 이에 구루 〈그란트〉는 구루들의 물리적 신체인 동시에 그들이 지은 시의 형이상학적 신체로 존중 받게 되었다. --- p.122~123 명명식은 아주 간단할 수도 있고 공들여 할 수도 있지만, 신성한 책을 참고하여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구루 〈그란트〉가 쿠션에 등을 대고 쉬고 있는 동안 낭독자(집에서 진행되는 경우 가족의 일원, 구루드와라일 경우에는 공적인 낭독자)는 두 손을 구루 〈그란트〉에 대고 임의로 부드럽게 페이지를 펼친다. 아이의 이름은 펼쳐진 구루 〈그란트〉의 왼쪽 페이지의 첫 번째 문자로 시작된다. 시크교는 소년과 소녀의 이름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아이의 성별은 이름에 싱(Singh, 남아의 경우) 혹은 카우르(Kaur, 여아의 경우)가 덧붙여져 표현된다. 아이는 또한 첫 번째 카라(kara), 강철 팔찌를 받는다. 키르탄(찬양의 휨)의 낭송, 구루 〈그란트〉 페이지의 낭독, 아르다스(일상의 기도)의 낭송, 그리고 랑가르의 참여가 주요 일정인데, 이는 시크교인의 모든 통과 의례에서 마찬가지이다. --- p.195 10대 구루는 이러한 이상을 받아들였고 가부장적 구도에 변화를 가져왔다. 그가 창조한 칼사 가족 내에서 서로 다른 계급과 카스트, 지역의 사람들은 같은 그릇에 암리트를 마시고 새로운 정체성을 부여받았다. 앞서 언급했듯이, 남성이 ‘싱’이란 성을 갖는 것처럼 시크 여성은 ‘카우르’(Kaur, 공주의 뜻)란 성을 갖는다. 이렇게 해서 여성이 아버지와 남편의 계보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카우르’가 된 여성은 자신의 인생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갖게 된다. 여성들은 태어날 때 지녔던 아버지의 이름이나 결혼하면서 생긴 남편의 이름을 갖지 않아도 된다. 아들과 딸, 남편과 아내는 평생 동안 동등한 인격을 갖는다. 구루들로 거슬러 올라가는 부계 구조 속에서의 이러한 변형은 여성의 정체성과 자율성에 급진적인 함의를 갖고 있다. --- p.213 아칼리 운동은 대규모로 조직된 수동적 저항운동이 완전히 성공한 첫 번째 예이다. 마하트마 간디에 의해 시작되어 인도 국민의회에 의해 조직된 가장 커다란 시민 불복종 운동은 아칼리의 성취에 대한 단순한 모방에 불과했다. --- p.294 구르드와라는 언제나 시크교의 제일 중요한 기관이었다. 실제로, 시크 공동체의 크기와 번영은 구르드와라(들)의 ‘양’과 ‘질’에 반영되었다. 인도 밖에서 가장 큰 구르드와라는 사우스올에 있는 스리 구루 싱 사바(Sri Guru Singh Sabha)이다. 2005년 구르드와라가 문을 연 직후, 영국에 존재하는 이 시크교의 최고 상징은 찰스 황태자의 방문을 받았다. 전 지구상에 있는 모든 구르드와라는 시크들의 지역 공동체의 중심점이었다. 구르드와라는 정보와 협력, 식량, 쉼터, 친교의 원천이었다. 새로 도착한 시크에게 있어 구르드와라에서 묵는 것은 초기 단계의 중요한 과정이었다. 시크 공동체는 구르드와라를 통해 그 사회적, 문화적, 지적, 정치적 유대를 창조하고 지속했다. 1902년 캘리포니아의 스톡톤(Stockton) 시에 세워진 미국의 첫 번째 구르드와라는 종교적 중심일뿐 아니라, 가르다르 당[Ghardar Party, 인도의 독립을 위해 설립된 당]의 정치 활동의 격동적인 중심이기도 했다. 수십 년 동안 스톡톤은 유일한 시크교 센터였는데, 그러나 오늘날 미국에는 150개 이상의 구르드와라가 있다. --- p.403~4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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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 ‘~카우르’ 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영화나 책을 볼 때 인도를 배경으로 하거나 인도 사람이 나오는 경우 그들의 성이 대부분 ~ 싱, ~ 카우르 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도대체 인도에는 얼마나 많은 싱과 카우르가 있는 것인가하고 생각한다. 아마도 대한민국의 김씨만큼 많을 것이다. 싱과 카우르는 바로 시크교인들의 성이다. 시크교인들의 명명식은 간단하다. 신성한 책을 참고하여 어린아이에게 이름을 부여하는 것을 기본적으로 포함하고 있다. 구루 『그란트』가 쿠션에 등을 대고 쉬고 있는 동안 낭독자(집에서 진행되는 경우 가족의 일원, 구루드와라일 경우에는 공적인 낭독자)는 두 손을 구루 『그란트』에 대고 임의로 부드럽게 페이지를 펼친다. 아이의 이름은 펼쳐진 구루 『그란트』의 왼쪽 페이지의 첫 번째 문자로 시작된다. 시크교는 소년과 소녀의 이름이 구분되어 있지 않다. 즉, 남녀가 평등하다는 말이다. 아이의 성별은 이름에 싱(Singh, 남아의 경우) 혹은 카우르(Kaur, 여아의 경우)가 덧붙여져 표현된다. 즉, 영화나 책에 나오는 인도인 대부분이 시크교인인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생각해본다. 사실 시크교인들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다. 그것은 인도에 있는 다른 종교들(불교, 힌두교, 이슬람교 등)과는 격이 다른 개방성과 평등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시크교 창시자 구루 나나크 대한민국 뿐만이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시크교는 힌두교나 이슬람의 분파라고 생각하기도 하고 또는 힌두와 이슬람을 합친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시크교는 1469년 지금은 파키스탄에 속한 북인도의 탈완디(Talwandi) 마을에서 구루 나나크의 탄생으로 시작된다. 2천 3백 만이 넘는 전 세계의 시크교인에게 있어 구루 나나크는 그들의 유산의 출발점이 된다. 시크교인은 누구나 그의 장엄한 시를 낭송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대부분의 시크 가정과 사업장에는 구루 나나크의 그림이 걸려 있다. 구루는 보통 하얀 수염에 후광에 싸여 있는 모습으로 그려지는데, 이때 그는 힌두 양식과 이슬람 양식이 결합된 옷을 입고 있다. 구루 나나크는 어릴 적부터 주변 세계에 순응하기를 거부했다. 학교의 틀은 그에게 답답했으며, 아버지가 그려놓은 ‘성공의 지도’는 그의 내면에 맞지 않았다. 그는 어릴 때부터 늘 밖을 향했고, 풀과 바람, 그리고 현자의 목소리를 더 좋아했다. 세상에 물드는 대신 세상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 나나크는 어쩌면 그때부터 ‘다르게 보는 법’을 알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체험은 나나크의 삶을 바꿔 놓았다. 실재의 일자성, 곧 모든 존재가 하나라는 깨달음은 그를 길 위로 이끌었다. 그는 선언했다. “힌두도 없고 무슬림도 없다.” 그는 수피, 힌두 사제, 불교 승려, 자이나 수도자, 심지어 무슬림 재판관과도 이야기를 나눴다. 언제나 겸손하고 열린 태도로, 상대의 신앙을 존중하면서도 자신만의 진실을 말했다. 그의 다원주의는 ‘모두가 옳다’는 회피가 아니라, 다름 속의 공통점을 꿰뚫어보는 통찰이었다. 시크교와 시크문화에 대한 안내서 이 책은 시크교가 어떻게 시작이 되었으며 어떤 식으로 발전하였는지를 연대순으로 먼저 보여준다. 초대 구루인 구루 나나크가 어떻게 시크교의 기반을 닦았는지 보여준 뒤 10대 구루까지의 계보를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사람 구루였던 구루 고빈드 싱이 시크의 정체성을 확립한 후 성서인 그란트가 구루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크교의 철학을 상세하게 설명해준다. 우리는 여기서 시크교가 세계 종교 최초로 남녀 평등과 인류 평등에 앞서 갔음을 볼 수 있다. 이후 다른 종교인들과 어떻게 싸워서 자기 정체성을 보존할 수 있었으며 영국 식민지 시절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이렇게 살아남은 시크교인들은 세계로 진출하기 시작한다. 시크교인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것은 그들의 평등사상이 가장 크게 역할을 하였다. 이렇게 세계 각지로 퍼져 나간 시크교인들은 세계 각지에 시크 공동체를 만들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형성하였다. 그리고 문화 예술 분야에서도 독특하고 특출난 모습을 보여준다. 2005년 통계에 따르면, 약 1천 5백 만의 시크교인이 펀자브에 살고 있고, 약 5백만 명은 인도의 다른 지역에, 약 3십 3만 명은 아시아에, 약 5십만 명이 유럽에, 그리고 약 5십만 이상이 북아메리카에 각각 살고 있다. 각 지역에 살고 있는 시크교인들의 생활 모습과 시크교인 예술가와 작가들의 성과물들을 마지막 장에서 살펴보았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시크교인뿐만 아니라 인도에 대한 이해가 더욱 넓어질 것이다. 역자 후기 이 책은 인도에서 발생한 시크교(Sikhism)에 대한 것이다. 시크교는 15세기 말 인도의 북부 펀자브(Punjab) 지방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시크교는 ‘찾는 자’(seeker), ‘제자’(disciple)를 의미하는 단어 ‘시크’(sikh)에서 유래했다. 시크교의 창시자는 나나크(Nanak, 1469-1539)이다. 나나크를 시초로 시크교에는 모두 열 명의 구루(Guru, ‘스승’)가 존재했다. 마지막 열 번째 구루인 고빈다 싱(Guru Gobind Singh)은 시크 경전 『그란트』(Grant)를 자신의 후계자로 지명하였다.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크교는 인간이 아닌 경전이 구루의 자리에 있는 독특한 전통을 유지하고 있다. 『시크교』는 이러한 시크교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니키-거닌더 카우르 싱(Nikky-Guninder Kaur Singh)은 수 년 동안 대학에서 연구하고 강의하면서 시크교에 대한 여러 저서를 집필했다. 이 책에서 저자는 시크교의 발생과 그 발전의 역사, 종교적 교리와 철학, 그리고 시크 윤리에 대해 포괄적이면서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와 함께 시크교의 문화와 의식, 제도, 예술과 건축, 디아스포라 등 다양한 이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렇게 시크교의 여러 양상들을 개관하면서 저자는 전통적인 종교 체계를 변화하는 현대의 관점에서 포착하고 이를 균형 잡힌 시각으로 서술한다. 시크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 힌두교와 불교에 이어 세계에서 다섯 번째로 커다란 종교 공동체이다. 현재 지구상에 거주하는 시크교인은 약 3천만 명으로 추정된다. 이렇게 시크교는 세계적인 종교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한국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이 책의 출간이 시크교를 한국에 알리고 그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