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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교회 이야기(광주, 안동 편)
파트너십으로 본 미국장로교회의 한국 선교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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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교재를 펴내면서 | 6

파트너십 1. 플로렌스 루트와 광주 사람들

플로렌스 루트 선교사를 중심으로 본 동반자 선교(1893~1995년) | 12
1904 광주에서 첫 예배를 드리다 | 14
1905 의료 선교지 광주 제중원이 세워지다 | 15
1908 선교사와 한국인이 서로 도와 여성교육을 시작하다 | 16
1909 기억해야할 이름 윌리 포사이드, 한센환자 돌봄사역을 시작하다 | 16
1920년대 광주 선교구내 모습 | 17
1922 광주여성운동사에 기억해야 할 일들이 일어나다 | 18
1927 플로렌스 루트 선교사가 한국에 도착하다 | 20
1924 플로렌스 루트가 출석한 양림교회 초기역사 | 21
선교사역 동반자 ‘양림정의 전도부인 선신애’ | 23
1929 메리와 플로렌스가 함께 사역하다 | 23
선교사역 동반자 김필례(1891-1983) | 24
선교사역 동반자 조아라(1912-2003) | 26
1933 한센인 행진은 동반선교사역의 역사이다 | 27
1933 광주농업실습학교를 설립하고 함께 사역하다 | 28
1937 신사참배를 거부한 기독학교가 폐교되다 | 29
1941 일제치하 남장로교 최후 4인의 선교사역은 한센인 병원사역이었다 | 31
1950 서로 사랑하고 존경한 플로렌스와 한국인 성도들이 목숨을 건 피난여정을 함께하다 | 32
1952 선교 25주년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감사였다 | 33
1957 한국인에게 선교사역의 지도력을 이양하다 | 34
1959 성경학교를 지역 선교지도력 형성의 터전으로 삼다 | 36
1964 정년퇴직 후에도 사랑의 사역은 계속되다 | 37
1995 한국성도와 플로렌스 루트, 서로를 향한 사랑과 감사가 표현된 마지막 장면은 플로렌스의 장례식이었다 | 39
질문 | 40
인물 : 소심당 조아라(1912-2003) | 41

파트너십 2. 기독청년면려회와 안동 사람들

기독청년면려회를 통해 본 선교사와 한국 청년의 만남 | 48
선교역사에서 본 파트너십: 일제강점기 기독청년면려회 | 50
1909 안동에 선교지부를 설립하다 | 52
김병우와 김영옥| 53
안동 개척 선교사의 부인 새디 이야기 | 53
질문 | 58
1910 안동 선교부의 역사 크로더스 부부 | 59
1917 안동에 온 앤더슨 부부 | 60
1919 기독교를 보는 시각이 바뀐 이유 | 61
1920 여성과 남성 모두를 위한 인노절기념성경학교 | 62
1921 안동기독청년면려회 종교활동 그 너머 | 63
1921 경북지역 면려회를 조직하다 | 65
안동 청년 권중윤(1900-1927) | 66
1922 면려회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다 | 68
1923 여자 청년계에 새날이 밝아오다 | 69
1920년대 이대위와 기독청년면려회 | 70
경안지역 청년들의 지도자 강병주(1882-1955) | 71
1924 성장하는 기독청년면려회 | 73
1925 월간 「진생」을 발행하다 | 74
유소년 교육을 위한 활동 | 75
1930 세계기독면려회 가입하다 | 76
기독교 농촌운동 | 77
1933 가난한 농촌과 건강한 기독교 신앙 | 79
1932 면려부, 장로교 총회 상설부서가 되다 | 80
1933 지침서 『면려회지남』 발행하다 | 80
1934 전국면려회 날개달다 | 72
1937 청년면려회지도부 탄압받다 | 73
1938 면려회 활동 위축되다 | 85
장로교의 보수화와 일제하 기독청년운동의 결말 | 85
인물 : 이대위(1896~1982) | 88
질문 | 92

더 읽을 거리 | 93
격려사 | 94

저자 소개3

예장통합 전국여교역자연합회 사무총장. 서울대학교 분자생물학과를 졸업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서 신학(M.Div)을 공부하고 역사신학(Th.M)을 전공했다. 관심 분야는 에큐메니즘과 교회여성운동의 역사이며, 연세대학교에서 교회사 전공으로 박사학위(Th.D)를 받았다. 연세대학교와 숭실사이버대학교에서 강의하며, 지은 책으로 『씨가 자라 나무가 되듯이: 한국교회여성연합50주년 하이라이트』, 『미국북장로회 한국선교와 전도부인』 등이 있으며, 함께 지은 책으로 『기독 여성을 通해 역사를 보다』, 『내 양을 먹이라: 교회사 속의 목회』, 『두 교회 이야기』 등이 있다.

김은정의 다른 상품

뜻으로 역사보기에 빠져있는 기독교역사 연구자이며 일하는 목사이다. 출판사 서로북스를 운영하고,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사무국장으로 일하며, 파주 서로교회 목사로 활동한다.
미국장로교 목사이다. 관심사에 반응하며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관심사는 문화다양성을 경험하는 것, 그 경험과 성찰 내용을 페미니즘 관점으로 다양한 환경에서 나누고, 교육하고, 예배하는 일이다. 일산에서 관상 깃든 삶을 살고 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3월 31일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크기확인중
ISBN13
9791187254614

책 속으로

이 교재는 역사를 알리는 것과 더불어 세대, 국적, 피부색, 성별, 나이, 신체 능력, 성적 지향 등등의 차이를 넘어서서 서로 간의 대화를 촉진하고 우리의 현재를 성찰하기 위해 만들었다.
--- p.10

(프롤렌스 루트 선교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기에 끝까지 선교 현장에서 ‘버티는’ 선교사였다. 102세에 소천하기까지 태극기와 애국가 가사를 벽에 걸어두고 매일 한국을 위해 기도했다.
--- p.20

광주민주항쟁 과정에서 조아라가 일하는 광주 YWCA 건물은 시민들의 피난처로 제공되었고, 조아라는 광주 시민사회를 품는 지도자 역할을 했다.
--- p.26

광주-서울 간 ‘구라행진(求癩行進)’은 최흥종이 앞서고 500여 명의 한센인 환자가 자발적으로 참여한 역사적 사건이다.
--- p.27

(6.25 전쟁 중) 플로렌스는 동광원 원장 이현필, YMCA 총무 정인세, 조용택과 김재택 전도사의 치밀한 계획과 돌봄 아래 전남 화순군 청풍면과 도암면 화학산 계곡과 산지, 동굴에서 76일간 피난 생활을 이어갈 수 있었다.
--- p.32

70을 바라보는 나이의 조아라는 지킬 것이 많았다. 그러나 불의한 국가의 횡포에 굴하지 않고 맞서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자신을 바라보며 꿈을 키워나가고 있는 어린, 또는 젊은 여성들을 위한 길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그의 스승이었던 플로렌스 루트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 p.44

기독청년면려회는 여성청년과 남성청년을 아우르는 단체였으며, 특히 면려회가 모일 때 평소에는 침묵하고 있는 많은 여성들과 대비해서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게 연설하는 여성 연사의 인기가 많았다.
--- p.52

네 자녀를 키우며 활동해야 했던 새디 선교사였기에 선교사의 집안일을 도우며 함께 했던, 선주민들의 선교사 돌봄사역이 기억되길 바란다. 또한 신앙을 받아들이고 적극적으로 전도와 교육활동에 나섰던 전도부인들의 선교 협력활동은 소중한 역사적 선교자산으로 기억되기를 바란다.
--- p.57~58

(1919년 3.1운동 당시) 경상북도 북부 지역에 있는 교회에서 장로와 목사, 청년들이 시위에 참여했다가 체포되고 옥고를 치렀다. 이러한 교회의 활동은 기독교에 대한 지역민들의 인식을 바꿨고, 안동 사람들은 교회가 민족독립운동에 실제적인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갖고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 p.61~62

면려회에 지역교회들이 적극 호응한 이유는 교회 지도자들의 자녀들이 대부분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중등학교를 다니거나 졸업하고 사회에 배출되는 시기였기 때문이다. 사회 분위기도 선교 초기에 기독교를 받아들일 때와 사뭇 달라졌고, 청년들에게 부모 세대의 기독교는 시대에 뒤처진 느낌을 주어 새로운 기독교를 요구하고 있었다.
--- p.65

안동 지역은 1922년에 경북노회에서 분립하여 경안노회가 성립되었고, 노회 차원에서 농사강습회를 개최하여 농촌 지도자를 양성했다.
--- p.78

자유를 빼앗긴 땅, 그곳에서 민족을 위해 새로운 일을 도모해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만주는 이른바 자유의 땅으로 기능했다. 짧은 도피 기간이었지만 이대위는 그곳에서 ‘자유’를 배웠을 거다. 그리고 자유를 향한 꿈을 이제-여기, 그러니까 조선 땅에서 어떻게 실현할 것인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 p.89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타인의 문화를 수용하며 함께 연민의 관계로 발전하여 상호 의존적인 선교 동역자로 살아간 선교사들의 이야기를 찾고 싶었다. 특별히 한국교회가 익히 알고 있는 언더우드, 마포삼열, 유진 벨 등 선교 영웅들의 이야기가 아닌 남성 선교사들에 비해 자료조차 찾기 힘든 여성 선교사들의 이야기, 이름 없는 선교사들과 동역자들의 이야기를 찾는다는 생각으로 역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 「격려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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