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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 끝이 아닌 탄생
-로미오와 줄리엣Romeo and Juliet, 젊은이와 죽음Le Jeune Homme et la Mort, 지젤Giselle 무너질 때 비로소 시작되는 사랑이란 -오네긴Onegin, 공원Le Parc 무대라는 세계를 지각하는 주체, 몸 -카르멘Carmen, 카멜리아의 여인La Dame aux Camelia, 벨라 피구라Bella Figura 극장이라는 환상, 현실이라는 환멸 -라 실피드La Sylphide, 코펠리아Coppelia, 라 바야데르La Bayadere 움직임은 어떻게 아름다운가 -세레나데Serenade, 상승의 한가운데In the Middle, Somewhat Elevated, 정교함의 짜릿한 전율The Vertiginous Thrill of Exactitude 예술은 또한 정치적이다 -파리의 불꽃Flames of Paris, 스파르타쿠스Spartacus 우아하게 살아가기 위하여 -잠자는 숲속의 미녀The Sleeping Beauty, 주제와 변주Theme and Variations 작품 찾아보기 도판 출처 마치며 reverenc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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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는다는 것은 결코 상황의 종결이 아니다. 오히려 죽음을 통해 모종의 의미가 생겨날 수 있다.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면서 죽기를 결심한 젊은 연인이 우리에게 남긴 메시지를 읽어내고, 젊은이와 죽음을 통해 살아가는 가운데 끊임없이 흔들리다 끝내 소멸함으로써 스스로를 해방하는 존재를 발견하며, 낭만성이 가득한 지젤에서 죽음 이후에야 펼쳐지는 사랑의 의미를 마음에 새긴다. 모든 것을 삼켜버린 죽음을, 예술은 기꺼이 건져 올려 무대 위에 펼쳐놓는다.
--- p.7~8 몸은 사랑을 드러내는 가장 솔직한 방법이다. 그 움직임은 바라보는 이가 자신의 심상을 들여다보게 하고, 또한 여러 가지 모양새로 하여금 마음먹기에 따라 사랑의 모양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에 정답이 있겠느냐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직임은 그 마음을, 감정을 투명하게 비춘다. --- p.57 라 실피드에서 우리에게 낭만적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건 주인공 실피드의 존재다. 아름다움과 욕망의 화신이자 닿을 수 없어 더욱 애타게 만드는 존재, 순수한 사랑과 자유의 영역이자 시와 예술의 원천이 되는 존재. 우리는 그 환상에 사로잡힌 제임스에게서 낭만주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발견한다. 그는 현실 세계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고 심지어 약혼한 상태이지만, 그 이면에는 어쩌면 결혼이 이뤄지지 못할 수도 있다는 불확실한 감정이 존재한다. 그래서 자신을 홀리게 하는 실피드를 확실하게 손에 넣고 싶어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피드는 교묘하게 그의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제임스는 자신의 현실과 꿈을 일치시킬 수 있을까? 잠에 취해 있을 때 더없이 평화로워 보이는 그의 모습에는 색정적인 환상이 깃들어 있다. 시적 갈망과 환상에 취한 정신 상태의 제임스를 붙잡는 건 다만 에피뿐. 제임스와 실피드·에피의 파드트루아가 끝날 무렵 그의 두 눈을 가리는 에피의 손을 놓치지 말았어야 한다. --- p.80 그러니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떨까. 예술 작품에 시대와 역사, 국가와 종교를 대입하기보다 이 모든 것이 예술가의 환상에서 비롯한 산물이라고. 모든 감각을 동원해 그 순간을 만끽하지만 영원히 포착할 수는 없고, 이내 어두운 객석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서서히 사라져 버릴 환상일 뿐이라고. 주변의 빛을 지우고 그러한 환상의 세계로 들어서는 일, 그것은 예술을 경험하기로 마음먹은 자만이 누릴 수 있는 ‘환상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 p.86 예술을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이 있겠으나, 춤의 주인공은 춤 자체여야 한다고 믿는다. 핵심은 춤추는 몸에 깃들어 있다고 하더라도 공연이라는 형식 안에서 그 주인공은 춤이 될 수밖에 없으니. 존재 자체로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 앞에서, 아름다움의 현현을 본질로 삼는 예술에서 무언가를 읽어내려는 것은 어쩌면 욕심이 아닐까. 물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시선에는 제한이 없다. 예술이 무엇을 표현하려고 하는지, 어떻게 가닿고자 하는지 탐구하는 행위 자체가 예술을 향한 사랑이니 말이다. --- p.89 이렇듯 포사이스는 발레로 ‘무엇’을 표현할 것인지를 넘어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에 주목한다. 테크닉을 해체하고 재배열함으로써 문자 그대로의 발레를 실천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장르가 내포한 규범과 형식에서 비롯하는 안정감은 깨트리고, 무용수는 그의 작품을 춤추기 위해 스스로 몸을 파편화한다. 발레를 통해 발레를 부정함으로써 발레를 활성화한다. 그간 전승해 온 전통과 문법, 서사와 이미지는 이미 무력해진 지 오래다. 법칙과 관습이 사라진 곳에서 새로운 움직임과 이미지가 태어난다. --- p.101 발레를 아는 것은 나아가 우리 삶에 우아함을 더해 주는 일이다. 예술에서 비롯하는 태도를 바라보며 그 세련미와 기품을 느껴본다. 이로써 함께 살아가는 사회의 원칙을 지키는 가운데 나만의 속도와 표현을 더해 본다면 어떨까. 보고 느끼는 것을 넘어 즐기고 감응할 때 감상자 또한 우아함의 물결에 올라탈 수 있을 터이니. --- p.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