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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국경일 ‘8.15’와 8.15 기억하기_ 박영균 5
1부 동아시아의 탈식민과 냉전, 공식 기억의 교차 1. 1945년, 중국의 기념일과 배제된 재만조선인의 기억_ 박솔지 36 2. 해방과 패전의 카오스, 재일조선인과 일본인의 서로 다른 기억_ 정진아 62 3. 한·중·일의 공동 역사 기억과 8.15_ 박민철 85 2부 문학을 통해 본 8.15의 풍경과 기억들 4. 8.15 전후 새로운 빛과 남겨진 그림자 - 이태준의 단편소설_ 박재인 108 5. 해방의 두 얼굴, 환희와 공포 - 중국 동북 지역 조선인 문학_ 전은주 132 6. 적지에서 부르는 해방 찬가 - 재일조선인 문학_ 전영선 153 3부 해방과 함께 온 냉전, 살풍경의 현장들 7. 새로운 세상을 설계하다, 보성 회천면의 8.15_ 김종군 174 8. 해방 후 북한 사회의 불안과 공포, 그리고 희망_ 김종곤 195 9. 누가 반역자인가? 해방 직후 재일조선인의 좌우 대립_ 도지인 213 4부 2025년에 바라본 1945년 코리언의 해방과 분단 10. 레드 콤플렉스 때문에 막혀 있는 상상력이 넓어진다면 - 남과 북 청년의 대담 _ 조경일·김연우·강태성 234 11. 냉전적 인식과 혐오를 넘어서 서로를 만나는 것 - 재중조선족과 한국인의 대담 _박솔지·최연·안걸 268 12. 코리언의 미래를 위한 약속, 반차별주의와 페미니즘 - 재일조선인과 한국인의 대담 _이태준·김리화·김리이슬 306 나가며: 2025년 코리언‘들’에게 1945년 8월이란? 342 참고문헌 361 이 책의 집필진 36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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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런 점에서 일제가 항복을 선언한 8.15가 가져온 해방이 다시 미소 냉전 체제로 흡수되면서 분단으로 나아간 한반도의 비극적 역사와 더불어 한·미·일(남방삼각) 대 북·중·러(북방삼각)라는 동북아시아의 냉전 기억은, 미소 또는 동서 냉전이라는 이데올로기적인 대립에 관한 냉전으로 기억하는 서구 제국의 기억과 같을 수 없다. 거기에는 완전한 자주와 자립을 달성하려는 탈식민적 주체들의 투쟁이 있었다. 1945년 일본의 패망은 중국에서 국공내전을 거쳐 중국공산당의 승리(1949년)로 귀결되었고, 동아시아에서는 한국전쟁(1950~1953)을 거치면서 미일 동맹을 구축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면죄부를 준 샌프란시스코조약(1951~1952)이 맺어졌다. 이런 과정 중에 1947년 대만에서 ‘2.28’ 국가폭력과 학살이, 제주도에서 ‘4.3’ 국가폭력과 학살이, 미군기지가 된 오키나와에서 비극이 발생했다.
--- p.27 재일조선인에게 학교는 ‘우리 학교’였다. 학교 폐쇄를 우려한 재일조선인은 밤마다 당번을 정해 불침번을 서면서 학교를 지키기도 했다. 민족교육이 지닌 공동체성과 재일조선인에게 갖는 의미는 오히려 조선학교 폐쇄령 이후 더욱 커졌다. 한신교육투쟁을 계기로 재일조선인은 자신들의 손으로 학교를 지켜 냈다는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신교육투쟁은 해방 민족이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자 해방 민족의 승리의 결과물이었다. --- p.71~72 8.15는 동아시아가 새로운 세계와 국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고민했던 순간이기도 했으며, 동아시아의 또 다른 역사적 아픔이 재생산된 시점이기도 했다. 8.15를 기점으로 동아시아에 몰아닥친 냉전과 분단은 여전히 존속하고 있으며, 그 속에서 중국과 일본의 패권주의적 경합, 한국과 북한의 군사적 긴장, 한·중·일 삼국의 역사 갈등, 미국의 억압적인 자본주의 세계화 전략 등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화해가 여전히 멀리 있음을 보여 준다. 하지만 『미래를 여는 역사』는 동아시아의 평화로운 미래를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미래를 여는 역사』는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인식의 차이를 넘어서 오랜 기간 논의를 거쳐 합의한 역사 교재였다. 이에 따라 이 책은 여러 의미를 지닌다. 우선 일제 침략의 실상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그에 따른 한국·중국 민중의 고통과 저항의 역사를 복원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구체적으로 여기에서 침략 전쟁의 국제법적 문제, 일제의 비인도적 학살, 강제동원 문제 등이 포함되었다. 나아가서 국가 중심의 역사 인식을 벗어나 동아시아 근현대사의 흐름을 비교사적으로 구성하여 동아시아 공동의 역사 인식과 기억을 공유했다는 점에서도 중요하다. --- p.103 이 소설은 이태준이 월북 이후 북한 당국으로부터 의뢰받아 창작한 작품이다. 북쪽 이데올로기에 맞춰 쓴 허구의 서사일지라도, 이 작품에서 분명히 전하는 것은 이 혼란의 시기에 힘이 없고 가난한 사람들의 소망이다. 무슨 무슨 이념이니 사상이니 해도, 농민들 손에 쥐어지는 쌀알만큼이나 분명한 것이길 바랐던 점은 사실일 것이다. 억쇠는 그토록 바라던 세상을 맞이했을까? 억쇠의 입을 빌려 자신이 꿈꾸던 세상을 노래했던 이태준의 명성이 북쪽 바람에 휩쓸려 사라진 것처럼, 억쇠의 땅과 꿈도 사라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또 다른 억쇠들이 그 꿈을 이어받아 내 땅의 주인으로 사는 세상을 노래하고 있을까? --- p.123 그럼에도 일제의 교묘한 민족 이간 정책은 이들의 관계를 더욱 갈라놓았다. 이를테면 일본인은 흰색 통장으로 고급스러운 입쌀을, 조선인은 누런색 통장으로 보리쌀을, 중국인은 적갈색 통장으로 콩깨묵이나 수수 같은 하급 식량을 배급받았다. 이런 배급 제도는 일제가 썼던 간교한 이간책이었다. 조선인과 중국인을 갈라놓는 방식으로 일제의 적대세력을 분산하는 술책이었다. 물론 또 일부 조선인 친일 세력은 일본의 앞잡이로 활동하며 중국인을 멸시하고 우월감을 드러내면서 두 민족 간의 갈등을 더욱 악화하는 데 일조하기도 했다. 일제의 패망 이후, 간교한 보호 장치가 사라지자 그동안 조선인에 대해 불만이나 증오심을 지녔던 일부 중국인, 특히 토비들은 억눌렸던 분노와 증오를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들은 조선인 마을을 습격하고 폭행이나 약탈, 살해 등을 자행했다. 국민당의 도망병, 만주국 군대 해산병, 살인자, 강도 등으로 구성된 이 토비 무리는 그 수가 20여만 명에 달했다. 이들은 일제 패잔병들로부터 무기를 압수해 무장하고 조직적인 노략질을 일삼았다. --- p.145 재일조선인 문학가들은 많은 작품을 ‘자전’, ‘사소설’ 형식으로 발표했다. 하지만 이들 작품에 묘사한 삶은 온전히 개인의 삶이 아니었다. 개인적인 삶일 수 없었다. 자전적인 소설이라고 하지만 나라 잃고 버려지고 보호받지 못하고 살아온 가족의 역사가 있었으니, 이들의 문학은 문학을 넘어 기록이고 어쩔 수 없는 재일조선인 작가의 외면할 수 없는 자기 서사의 특징이 되었다. 자전이라는 형식을 빌린 재일조선인의 기록이었다. 재일조선인 문학가에게 문학은 자기 서사의 기록이자 역사 기록이며, 재일조선인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발화, 그 자체였다. --- p.165 정해룡과 정해진 형제는 회천이라는 면 단위의 해방 후 안정과 평화를 주도한 인물이었다. 이들은 해방 후 며칠 동안의 혼란을 안정으로 이끌고 난 후 평소 꿈꾸었던 새로운 세상에서 추진되어야 할 사회 개혁을 집안 내부에서 직접 시행하여 획기적이라고 할 수 있다. 바로 자신의 집안에서 일하던 하인들의 신분을 해방하고, 토지를 분배한 사건이었다. 집에서 일하던 사람들에게 각자 살길을 찾아 떠나도록 자유를 준다고 해도 실제 경제적인 밑천이 없는 상황에서는 그 자유가 무의미할 수 있다고 판단하여 봉강리 일대 토지를 많지는 않지만 개별적으로 분배해 주었다. 이는 소작농에게도 적용되었다. --- p.189 제가 가지고 있던 8.15 해방의 인상에 대해 말씀드릴게요.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입니다. 이날은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 날짜로, 8.15와 날짜가 연달아 있어서 8.14 기림의 날과 8.15 해방을 함께 공부하고 논의해 왔습니다. 할머니들은 해방을 맞이했는가, 해방을 무엇으로 규정할 것인가, 인권 문제 해결에는 원상 복구의 원칙이 적용되는데 일본군성노예제 피해를 어떻게 원상 복구할 수 있는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전방위적으로 토론합니다. 할머니들은 항상 아직 해방이 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하세요. 광복과 해방이 왔는데 일본군성노예제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고, 더군다나 길원옥 할머니는 분단이 되면서 고향인 북쪽으로 돌아가지도 못했으니까요. 그래서 8.15 해방을 논의할 때 분단과 통일까지 이어서 논의하곤 했습니다. 미완의 해방이 8.15 해방의 인상일 것 같습니다. p.239 그런 부분이 앞에서 이야기했던 조국과 모국이라는 각 표현 속에 담긴 의미 차이에 대한 몰이해, 그리고 서로의 역사적 과정에 대한 무지가 가장 부정적으로 작동하면서 나타나는 문제 상황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에게는 내재적인 편견으로서 ‘혐중’이 매우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습니다. 작년에 한국에서 계엄과 내란 사태를 지나면서 반중을 넘어 혐중 정서가 극도로 빗발치고 이것을 스스럼없이 생활공간과 정치공간에 분출하고 있는 지점들을 보면서 더 그런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서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분단 트라우마를 기억화할 때, 중국에 대한 혐오를 자극하는 역사적 소재와 서사 구조를 기묘하게 많이 활용해 왔습니다. 2010년대부터는 익히 알려진 대로 조선족에 대한 혐오 정서를 자극하는 왜곡된 미디어 콘텐츠가 확산되면서 중국과 재중조선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더 확장되기도 했어요. 우리가 서로의 역사와 정체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것이 더 많이 확산되는 것은 아닐까요? 두 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 p.300~301 저는 두 분과 대담을 하면서 애써 외면하고자 했던 ‘민족’에 대한 애정을 일깨울 수 있었습니다. 식민과 분단의 시간 속에 새겨진 아픔과 그 시간을 살아 냈던 존재들을 향한 고마움도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저에게 페미니즘은 권력 없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기입할 것인지에 대해 무한한 질문과 실천을 제공해 주는 사유예요. 페미니즘과 함께 만난 존재들은 여성일 수도 있고, 성소수자일 수도 있고, 장애인일 수도 있고, 이주노동자일 수도 있고, 민족 바깥에 있는 타민족일 수도 있고, 두 분처럼 민족 바깥에 있는 우리 민족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두 분과 대화를 나누면서 저는 또 다른 방식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가 다시 만날 ‘민족’이라는 미래가 식민과 분단의 폭력을 극복하는 것을 넘어 페미니즘의 부단한 실천으로 구축한 평등한 세계일 것 같아서 상상만으로도 행복한 시간이었어요. --- p.34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