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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와 고양이
개 다음으로 가장 사랑 받는 애완동물은 고양이다. 외모와 성격, 애교가 많은 탓일 게다. 그래서 흔히 사람들은 고양이라고 하면 ‘귀엽다’고 한다. 애완동물이 사람에게 주는 일반적인 의미는 제쳐 두고, 고양이는 특히 예술가들에게 영감을 주는 존재로 알려져 있다. 헤밍웨이는 “고양이 한 마리는 또 다른 고양이 한 마리를 더 데려오고 싶게 한다”고 했다. 마크 트웨인은 “신의 모든 창조물 중, 끈의 노예로 만들 수 없는 것이 딱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고양이다. 만약 인간과 고양이와의 교배가 가능하다면 인간의 질은 더 향상될 것이다. 그러나 고양이의 질은 떨어질 것이다”라고 했다. 르누아르와 모네는 고양이를 너무나 사랑해서 그림 속에 그려 넣었다.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튼은 발명가이기도 했다. 그는 고양이를 여러 마리 키웠는데, 드나들기 좋으라고 고양이용 회전문을 발명했다. T. S. 엘리엇도 고양이 애호가였다. 잘 알려진 대로 그는 뮤지컬 ‘캣츠’의 원작이 된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Old Possum's Book of Practical Cats』이라는 극시를 썼다. 그리고 여기 고양이에게서 영감을 받은 58세의 영국 출신 카툰 작가가 있다. 사이먼 본드는 34세 때 고양이를 소재로 삼아 그림만으로 된 『101 Uses of a Dead Cat』을 발표하여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다른 예술가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사이먼 본드의 책 속에 나오는 고양이는 죽었다는 것이다. 그의 ‘죽은 고양이’ 시리즈 3권(101 Uses of a Dead Cat, 101 More Uses of a Dead Cat, Uses of a Dead Cat in History)이 한 권으로 묶여 나왔다. 기획출판 거름에서 나온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Complete Uses of a Dead Cat』다. 죽은 고양이를 어디에 쓸까? 역시 영국 출신의 카툰 작가 앤디 라일리는 자살토끼라는 작품을 그렸는데 이 책은 젊은 층의 폭발적인 인기를 얻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작고 흰 토끼가 온갖 방법을 동원해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을 담은 이 책은 속편까지 나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토끼는 왜 자살하려고 하는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토끼로 태어난 운명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인지, 사는 게 힘든 건지, 그저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풀이나 뜯기에는 인생이 무료하다고 느낀 건지 알 수는 없지만, 끊임없이 자살을 시도하는 모습에서 오히려 더욱 활기차게 살아가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앤디 라일리가 죽으려는 토끼를 묘사했다면, 사이먼 본드는 이미 죽은 고양이에 주목한다. 자살을 한 건지, 사고가 난 건지 알 수 없지만, 죽은 고양이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완벽하게 보여준다. 죽은 고양이는 일상생활의 도구로 쓸 수 있다. 양탄자, 주걱, 빗자루, 펜, 소파, 반짇고리, 톱, 칫솔 등 안 되는 게 없다. 어디 그뿐이랴. 테니스 라켓, 야구방망이, 권투 글러브, 역기 등 스포츠에도 쓰인다. 더 나아가 고양이 몸의 특징을 이용한 쓰임새도 있다. 레코드판을 읽는 바늘, 연필깎이, 등 긁는 ‘효자손’ 등 기가 막힌 용도도 있다. 죽은 고양이는 역사 속 장면으로 들어가면서 절정을 이룬다. 골리앗과 대적한 다윗이 돌멩이를 던지다가 돌멩이가 바닥나자 어떻게 했을까? 기원전 44년 브루투스가 카이사르를 찌를 때 쓴 물건은 과연 칼이었을까? 예수는 죽어서 무덤에 누워 있던 나사로를 과연 한번에 살렸을까? 뉴튼이 나무 밑에 앉아 중력에 관해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을 때 떨어진 것은 무엇일까? 히틀러는 나치스의 상징 하켄크로이츠를 정할 때 시안을 한두 개 보지 않았을까? 죽은 고양이가 선사하는 이빨 없는 웃음 어떤 개그맨들이 바보 연기를 한다고 하자. 얼굴도 못 생기고 행동도 어수룩하고 말할 때도 논리가 없어서 영락없이 바보로 보인다. TV를 보는 사람은 그 개그맨의 연기에 배꼽을 잡는다. 사람들은 그 개그맨보다 상대적으로 정상적이고 우월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그 개그맨은 ‘정말 웃기고 연기 잘하는’ 개그맨이 된다. 보들레르는 웃음에는 이빨이 달려 있다고 했다. 가장 쉬운 웃음은 상대방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웃음에는 공격성이 있다는 것이다. 만화평론가 박인하 씨는 ‘죽은 고양이’가 주는 웃음은 TV 코미디 쇼에 나와 너스레를 떠는 바보들과 같은 ‘이빨 없는 웃음’이라고 한다. 공격성의 방향이 자신에게 쏠려 있기 때문에 이빨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자살토끼에서 보는 웃음과 성격이 비슷하다. 남을 해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파괴하면서 독자에게 즐거움을 주니까 말이다. 이 책에 나오는 카툰은 정말 재미있고 기발하고 ‘깬다.’ 그런데 이렇게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보는 사람이 혐오감을 느끼거나, 잔인하다, 심하다, 불쌍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가 이 책을 그리는 데에는 단 한 마리의 고양이도 작은 상처조차 입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이먼 본드는 실제로는 고양이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척박한 세계에서 나를 위로하는 죽은 고양이 박인하(만화평론가, 청강문화산업대학 만화창작과 교수) ‘명랑明朗’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그야말로 기분이 명랑해진다. ‘기분이 명랑해진다’는 것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괴롭지 않고, 외롭지 않고, 내면에 상처가 없고, 가족적이고, 따뜻하고, 가라앉지 않고, 좌절하지 않는 것, 뭐 그런 기분이나 상태일 것이다. 만화漫畵하면 흔히 명랑을 떠올린다. 많은 사람들이 만화와 명랑을 동격으로 생각한다. 명랑한 만화가 아닌 다른 만화들도 많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만화의 상징으로 명랑을 고른다. 이런 상황은 비단 우리 나라만의 일이 아니다. 서구에서 만화를 뜻하는 ‘코믹’ 역시 당연하게도 바로 그 Comic, 바로 ‘우스꽝스러운’이란 뜻이 된다. 한자의 ‘만漫’도 ‘자유롭다, 넘치다, 질펀하다’는 뜻이니 아무래도 ‘만화’라는 의미는 본격적인 그림에서 비껴난 상태, 즉 명랑한 상태라는 뜻이 된다. 만화는 몸으로 명랑함을 채득하고 있다. 명랑만화라는 장르가 있었던 때도 그랬지만, 그 장르 자체가 거의 소멸한 지금도 마찬가지다. 많은 상업만화가 우울하거나 칙칙하지 않고 밝은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주로 그린다. 진지한 이야기라도 중간 중간 그림 스타일을 바꿔 명랑함을 채워 넣는다(『슬램덩크』에서는 그림 스타일이 극과 극을 오간다). 명랑함은 독자와 만화를 잇는 안전판 구실을 한다. 독자가 보고 싶은 밝고 명랑한 이미지는 만화의 보편성을 확대한다. 명랑, 보편적 웃음 명랑은 ‘웃음’이라기보다는 ‘보편성’에 가깝다. ‘명랑=웃음’이 아니고, 명랑과 웃음이 교집합을 이루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보통 사물의 희화화나 상황의 전복, 인물과 사건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발 빠른 서술 등을 통해 웃음을 끌어내는데, 이 웃음을 끌어내는 상황이 보편적이라면 ‘명랑’이 되는 것이다. 명랑한 웃음은 우리 나라에서 대중만화가 본격적으로 확산된 1950년대 이후 보편적으로 활용되었다. 그러나 1990년대에 접어들며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웃음이 공격성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공격성을 띤 웃음은 ‘엽기獵奇’라는 개념으로 집중되며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엽기는 대개 가학이나 자학을 동반했다. 가학이나 자학은 모두 공격적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권위주의 시절 강요당한 명랑함 대신 내면의 상처에서 솟아난 자학적 웃음을 좋아했다. 까짓 망가지면 어떠냐, 옛날에는 이렇게 망가질 자유도 없었는데. 만화로 보자면 그 선두주자는 후루야 미노루의 『렛츠고 이나중 탁구부』다. 이 만화가 처음 이 땅에 등장했을 때, 사람들은 당혹해 했다. 만화 안의 인물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웃음의 정반대 방향에서 자기를 파괴했다. 상식적인 사고가 통하지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듯한 이나중 탁구부원들. 우리는 그때 그 만화가 무엇을 감싸 안고 있는지 찾아낼 수 없었다. 그저 자학적 웃음에 서서히 길들여지고, 거기서 재미를 찾았을 뿐이다. 그러나 이후 후루야 미노루는 자신의 후속작들(『크레이지 군단』, 『그린힐』, 『두더지』, 『시가테라』)을 통해 ‘전복적 웃음’이 결국 상처받은 내면에서 비롯된 것이고 그 앞에는 희망 없는 미래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인터넷이 매체의 중심에 등장하고, 인터넷을 통한 만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요즘, 우리에게 웃음은 이미 명랑함을 넘어 치유할 수 없는 상처를 극복하는 자학적 웃음으로 존재한다. 늘 도처에서 터지는 사고 소식. 백화점이 무너지고, 다리가 무너지고, 물에 빠져서 구조를 요청해도 경찰이 무시하는 이런 불안함 속에서 우리는 깊은 내상을 입게 된다. 상위 10퍼센트와 하위 10퍼센트의 소득격차가 20배에 가까운 나라에서, 상위 10퍼센트의 부가 물려받은 재산, 부동산 재산에 의해 증식된다는 뻔한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미 우리는 불평등한 사회에 살고 있으며 그 불평등이 대를 이어 간다는 것을 깨닫게 되면 희망 없는 미래에 절망하게 된다. 천박한 자본의 논리에 갇혀 있는, 그래서 아파트와 대학 진학률이 모든 것을 결정하는 획일화된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공격 받으면서, 공격하면서 웃었지만 사실 누군가가 손을 내밀어 내 상처를 치유해 주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죽은 고양이’와 ‘바보’ 미국 시민권을 갖고 있고, 영어에 능통한 세계 시민들 속에서 우리는 도대체 어떤 희망을 갖게 될 것인가를 고민하는 당신, 명랑한 웃음이 사라지고 자학적 웃음만이 우리를 공격할 때 그 공격으로 마음이 허해진 당신, 어디에선가 위로를 받고 싶은 바로 당신, 상처를 덧내지 않고 치유 받기를 원하는 당신. 그런 당신에게 단순하고 명쾌한 만화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Complete Uses of a Dead Cat』를 권한다.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는 카툰 잡지 <스퀴브Squib>를 발행하기도 한 카툰 작가 사이먼 본드Simon Bond의 작품집으로 세 권의 작품(101 Uses of a Dead Cat, 101 More Uses of a Dead Cat, Uses of a Dead Cat in History)을 묶어 2001년에 20주년 기념판으로 낸 것이다. 이 시리즈는 전 세계적으로 200만 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인데, 내용은 간단하다. 제목처럼 죽은 고양이를 다양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한 컷의 카툰으로 보여주는 것이 전부다. 우리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죽은 고양이라면 국도변에 널브러진 고양이 변사체 정도이니 괜히 섬뜩할 만도 하지만, 이 만화에서 ‘죽은 고양이’는 진짜 ‘죽은 고양이’가 아니라 하나의 알레고리로 존재하는 ‘죽은 고양이’다. 그래서 이 만화의 ‘죽은 고양이’는 아무런 제한 없이 거의 모든 상황 속에 존재한다. 일상생활, 전쟁, 스포츠 등 우리 삶의 모든 맥락에 다른 물건들과 교체되어 한 자락을 차지하고 있다. 야구방망이가 되고, 수염이 되고, 안대가 되고, 가짜 가슴이 되고, 총이 되고, 펀치볼이 되고, 칫솔이나 전화기나 아무튼 모든 것이 되는 ‘죽은 고양이’는 진짜 고양이 사체가 아니라 그저 TV 코미디 쇼에 나와 너스레를 떠는 바보들과 같은 슬랩스틱한 ‘이빨 없는 웃음’이다. 보들레르는 웃음에는 이빨이 달려 있고, 웃음은 깨무는 것이라고 말했다. 웃음의 공격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가장 쉬운 웃음은 누군가를 바보로 만드는 것이다. 한 사람만 바보가 되면 모두가 즐거워진다. 그러나 깨물린 대상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그리하여 속으로 ‘두고 보자’를 외친다. 이 사람은 기회가 오면 바로 당신을 깨물 준비가 되었다!). 그래서 선택하는 차선책이 차라리 내가 바보가 되는 것이다. 코미디가 생긴 이후 바보 연기가 끊이지 않는 까닭이 여기 있다. 우리는 바보를 보며 안도한다. 그들이 던진 웃음의 이빨은 자기를 향해 있기 때문이다. ‘죽은 고양이’란 이를테면 TV 코미디 쇼의 바보다. 어디로까지 가볼까. 배삼룡, 서영춘, 그리고 영구 심형래, 배트맨 이창훈, 마데 홈쇼핑의 안어벙쯤 된다는 말이다. 아! 자신감 넘치는 표정의 만사마님도 사실은 바보다. 전혀 낯선 공간에서 수백 번씩 다른 모습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죽은 고양이’는 이미 고양이(혹은 고양이 사체)의 정체성이 제거된, 그 기표는 고양이지만 기의는 바보인 상태로 존재하는 것이다. 기표는 고양이이자, 기의는 바보인 『죽은 고양이 사용설명서』의 고양이는 역사의 구체성과 결합하기도 하는데, 역사나 소설, 심지어 회화의 중요한 순간에도 죽은 고양이가 개입한다. 이 장황한 농담을 읽다 보면, 죽은 고양이가 벌떡 일어나 나에게 외칠 것 같다. “인생 뭐 있어!” 일상도, 전쟁도, 스포츠도 모두 ‘죽은 고양이’와 함께하고, 역사의 주요 순간에도 늘 ‘죽은 고양이’가 개입되어 있으니 그렇게 ‘죽은 고양이’는 우리의 일상과 역사를 공격한다. “인생 뭐 있어! 결국은 죽은 고양이 아니야!” 희망 없는 세상에서 절망하고 지치고 힘겹게 사는 우리들에게 ‘죽은 고양이’는 자신의 몸을 던져 말한다. “어차피 죽은 고양이니까 힘을 내! 응?” 아, 그러고 보니 이런 말을 누군가에게 들은 적이 있었다. 벨기에 출신의 파란 꼬마들, 바로 페요Peyo의 『스머프Les Schtroumpfs』인데, 스머프들의 언어는 매우 독특해서 모든 동사와 명사가 ‘스머프’뿐이다. ‘내가 스머프해서 스머프를 스머프했다’는 식이다. 그렇다면 이 스머프가 스머프해서 스머프하게 된다(원래 원작인 벨기에어로는 ‘스트럼프’인데, 영어로 ‘스머프’로 번역되었다). 그 꼬마들은 나에게 이야기한다. “인생 뭐 있어, 스머프지!” 나는 대답한다. “거시기야!” 고양이들도 나에게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던진다. “그래, 인생 뭐 있어!” 앤디 라일리Andy Riley의 『자살토끼The Book of Bunny Suicides』가 자신의 몸을 던져 죽고 싶은 이 세상을 이길 힘을 주었다면, 우리의 죽은 고양이들은 이미 죽어버린 그 상태로 몸을 던져 이 세상을 이길 힘을 준다. 기특하다. 카툰이 읽히는 나라 사이먼 본드는 1947년 뉴욕에서 태어났다. 1965부터 1968년까지 영국 웨스트 서섹스 대학 예술디자인과를 다녔고, 1970년에 건강상의 문제로 미국으로 돌아갔다. 아리조나 주 피닉스에서 10년 이상 살면서 다양한 직업을 전전했으며, 『새터데이이브닝포스트Saturday Evening Post』 『에스콰이어Esquire』 『내셔널 램푼National Lampoon』 『뉴요커New Yorker』 『맨온리Men Only』 『볼Vole』 등 여러 매체에 카툰을 기고했다. 이후 1982년 유머 카툰의 본고장인 영국으로 돌아와 『펀치Punch』와 『프라이빗아이Private Eye』 등에 프리랜서로서 카툰을 발표했다. 그는 1981년에 『101 Uses of a Dead Cat』를 발표하면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었다. 사이먼 몬드가 활동한 나라가 영국이라는 점을 주목하자. 1867년 8월 14일 영국의 잡지 『주디Judy』는 한 페이지 전체가 그림으로 이루어진 찰스 헨리 로스Charles Henry Ross의 「대출과 할인의 몇몇 신비들Some of the Mysteries of Loan and Discount」이 실려 큰 인기를 끌었다. 이후 1896년에는 『일러스트레이티드칩스Illustrated Chips』에 실린 톰 브라운Tom Brown의 「지친 윌리와 피곤한 팀Weary Willie and Tired Tim」과 같은 작품이 큰 인기를 끌었다. 근대 만화 정착 초기 영국의 잡지인 『코믹컷츠Comic Cuts』나 『일러스트레이티드칩스』 등은 만화에 여러 지면을 제공하며 초창기 만화가 정착하는데 기여했다. 그 이후 이런 전통은 면면히 이어져 영국은 카툰이 읽히는 나라가 되었고, 유머 카툰이 가장 발전한 나라가 되었다. 처음 몇 장의 카툰을 보면 대부분 ‘뭐 이런 정도쯤이야’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무려 300장에 가까운 카툰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 만화를 다 보고 나면, 아마 내 주변의 물건들에 죽은 고양이가 겹쳐지는 환영을 볼 것이다. 자꾸 키보드를 죽은 고양이가 감싸고 있는 것 같다. 마우스패드가 죽은 고양이로 변했다. 그러고 보니, 300여 장의 카툰에 컴퓨터가 등장하는 장면은 없었던 것 같은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