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엮은이의 말_우리는 영조에 대해 너무나도 모르고 있다!
1장 애민을 몸소 실천하다 한 사람의 백성이 쓰러지면 위를 저버리는 것 한 조각 이 마음은 오직 백성들에게 있다 내가 덕이 없어 백성이 배고프다 내가 때때로 친히 농기구를 잡는 이유 백성을 끝까지 돌보아 진휼하도록 하라 형벌과 옥사를 안이하게 처리하지 말라 백성의 부모로서의 도리를 스스로 묻다 나라의 큰 공사에 앞서 백성의 의견을 묻다 늘그막에 왕이 친히 밭을 가는 이유 위엄으로써 백성을 부리고 싶지 않다 임금이 친히 보는 것처럼 백성을 진휼하라 왕비가 직접 누에를 치는 이유 친경과 친잠은 그저 구경거리가 아니다 비가 쏟아지기만을 바라고 또 바라네 혹독한 가뭄에 내 마음 또한 마르네 백성을 위하는 일에 예만 따를 수는 없다 임금이 덕을 닦아야 백성이 편안해진다 지금의 가뭄은 오직 나 때문 백성의 사정을 해결하는 왕이 되고자 한다 백성을 위해서는 풍년을 빌 뿐 근본인 백성이 튼튼해야 나라가 편안하다 백성이 잘살아야 비로소 성군이다 늘그막의 마음이 오직 백성에 있다 백성을 구제하는 데 진심을 다하라 백성에게 혜택을 못 주었으니 매우 부끄럽다 법보다 위에 있는 간곡한 백성의 사정 2장 수많은 개혁정책을 단행하다 팔순의 업적에 대해 나에게 묻는다면 균역이라는 큰 사업은 후세를 위한 것 마침내 함께 살기 위한 어진 정치 그 뒷날의 폐단을 어찌할 것인가 백성에게 원망이 있으면 그 원망은 내가 듣겠다 오늘날 폐단이 없을 수는 없다 지금의 잘못된 폐단을 고치도록 하라 회계로 비용을 줄여 백성을 위한다 큰 민폐인 양역을 반드시 고쳐야 한다 폐해를 구제할 좋은 방법을 찾아라 균역에 관여하는 여러 신하들에게 균역법을 추호도 늦출 수 없다 백성을 위해 군포를 감면해주는 것 나라의 직물에는 무늬를 금지한다 나라의 흥망이 금주의 실행에 달렸다 지금의 인심으로는 원망을 불러올 청계천 나의 마음은 오직 준천에 있다 도랑을 파내는 대사업을 시작하며 서생의 붓으로 개천을 파낼 수 없다 균역청은 백성을 위해 설치한 것 준천과 양역이 느슨해짐을 경계하다 여종의 공납을 정지시킨 것은 나의 사업 세 감면 그 자체가 아닌 실질적인 혜택이 중요하다 첩실의 자식들은 왜 적통을 잇지 못하는가 3장 탕평책으로 정치를 맑게 하다 두루 사귀면서 편을 가르지 않는 것 신하들에 대해서는 탕평 두 글자를 생각했다 피차에 어찌 역적이 없는 당이 있었는가 탕평은 공, 붕당은 사 이제는 탕평에 먼저 힘써야 할 때 보복의 정치에서 벗어나야 한다 당습에 관계된 자를 내 앞에 천거하지 말라 붕당은 조정의 허물로 당의가 불러온 것이다 조선 이외에 또 다른 조선이 있는가 당파의 소굴이 없는지 어찌 알겠는가 ‘당’이라는 글자를 신하들이 잊는다면 붕당이 반드시 나라를 망하게 할 것 노론, 소론의 조선이 아니라 곧 나의 조선이다 역적으로 모는 것은 이 또한 당심이다 한 사람의 말 때문에 역적으로 의심한다면 당파의 우두머리만 알 뿐 임금을 알지 못한다 편을 가르는 것이 어찌 당이 아니겠는가 당론을 하지 않겠다고 스스로 말하라 탕평은 어찌 해냈다고 하겠는가 4장 욕망을 경계하며 수신하다 사사로움이란 무엇인가 막아내고 이겨내야 할 사람의 욕망 반성하고 살피며 자신을 이기자 일의 낌새를 깊이 살펴야 한다 공은 무엇이고 사는 무엇인가 스스로를 가다듬는 임금의 의지 스스로를 권면하고 세상에 경계를 내린다 하늘을 공경하는 정성과 백성을 사랑하는 덕 사사로운 욕망을 물리쳐야 한다 모든 것은 내 부덕이 초래한 것이다 학문이 아니면 정신을 가다듬을 수 없다 날마다 스스로 새로워져야 한다 존호를 올리자는 청에 곤혹스럽고 부끄럽다 어떻게 완전히 마음을 늦출 수 있겠는가 힘써 실행하지 않으면 물욕에 가릴 것이다 사치가 어찌 이렇게 심하게 되었는가 마음이 크게 부끄러워 몸을 둘 곳이 없다 분노하는 것도 사사로운 것 금을 쓰지 말고 주석으로 대신하라 임금으로서 진심으로 두려워할 만한 것 매우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사치스러움 스스로 마음을 결정하고 스스로 지켜야 할 뿐 해이해진 법도와 기강을 깊이 개탄하며 인재가 없음은 내가 부덕하다는 것 5장 영조와 사도세자, 부자간의 비극 모든 사람이 세자를 우러러보게 하라 식색에 대해 더욱 경계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이 어린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는 이유 신하를 엄히 한다는 것의 의미 나한테도 물어본 다음에 시행해야 될 것이다 덕을 갖춘 세자에게 대리청정을 맡기면서 ‘쾌’라는 한 글자를 경계하고 경계하라 오직 안락함 속에서 태어나 자란 세자에게 사람에게 학문은 일생의 맛이다 언제라도 백성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라 내가 균형에 고집했던 것은 단연코 옳다 세자는 백성들과 함께 도성을 지켜야 할 것이다 세자의 천연두를 크게 걱정하며 강연을 열지 않는 세자를 크게 타이르며 어찌 아비가 자식을 보러 갈 수 있겠는가 종기에 걸린 세자의 온천행을 허락하며 세자의 행동이 이상하고 괴이하다 이것이 어찌 세자가 할 수 있는 일인가 세자의 과실을 숨긴 자는 모두 죄인이다 이 또한 나라를 망하게 할 말이다 죽은 세자의 시호를 사도세자라 한다 만고에 없던 일을 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네가 만약 일찍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면 세자의 생명 경시를 크게 참담해하며 20여 년에 걸친 부자 사이의 은혜를 끝낸다 나만 혼자 아무도 없으니 6장 정조에게 제왕의 길을 가르치다 너의 도리는 할아비의 마음을 따르는 것 도성을 지켜야 반역을 막을 수 있다 비록 말로 가르치더라도 마음에서 나온 것이다 어린 세손은 마음에 새기고 따르라 너희 신료들에게 세손을 부탁한다 할아비와 손자, 오직 두 사람밖에 없다 어린 세손이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저 네가 알게 하려는 것이다 세손을 가르치고 이끌려는 생각을 다지며 세자가 자라기만을 날마다 간절히 기다렸다 조선의 명맥이 오직 세손에게 달려 있다 세손에게 검소의 미덕을 보일 것을 당부하며 근본을 단정하게 하는 뜻을 본받게 하라 임금은 굶더라도 백성은 굶지 않아야 한다 네가 비록 글을 잘한다고 해도 세손의 총명함에 크게 기뻐하며 네 아비의 일을 다시 들추어낸다면 임오년의 대의를 세손에게 말하다 옳지 않은 것은 씻어버리고 옳은 것은 따르라 어린 세손은 내 마음을 알 것이다 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농사에 의지한다 세손이 정치를 알도록 만들고 싶다 영조 상세연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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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백성에게 의지하고 백성은 먹을 것에 의지하니, 중대하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날에 신농(神農)은 처음으로 농사를 가르쳤고, 주(周)의 후직(后稷)은 농사를 근본으로 삼았고, 우리 조정의 창업도 또한 주나라와 같았다. 공자께서 “나는 그 예(禮)를 아낀다.”라고 하셨는데, 성인이 가르치신 뜻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권농(勸農)이 곧 실속이 없는 말이 되었지만, 몸소 밭에 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권장하겠는가? 때때로 내가 친히 농기구를 잡아 여러 백성에게 권장하고, 각 관청의 신료들이 몸소 밭 가는 기구를 갖추어 첫 해일(亥日)에 거행하는 것이 어찌 다만 농사를 중히 여기는 것일 뿐이겠는가? 바로 내가 처음 정사를 펼칠 때 위로는 제사 때 쓸 곡식을 바치고 아래로는 백성을 권면하고자 했던 뜻이다.
--- p.26 어영대장이 개천이 메워져 막혀 있다고 아뢰었지만, 나는 백성들의 힘을 더욱 지치게 할까 염려된다. 이제 이와 같이 막혀 있는 것을 보았는데, 도성을 지키려고 한다면 준천(濬川: 개천을 파는 것)은 더욱 급한 일이다. 너희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태종 때 성을 쌓은 것은 후손들에게 폐를 끼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해서였던 것이니, 나는 다시 백성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지는 않다. 이제 보건대 이와 같이 다리가 막혀 있으니 개천을 파내고 싶다. 너희들은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가? 나는 개천을 파는 것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백성들 가운데 원하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염려해 이렇게 물어보는 것이다. --- p.32 많은 뱃사람들이 다 나를 만나고 돌아가면, 그 처자식들이 반드시 임금을 만나서 무엇을 받았는지 물을 것인데, 모두 아무 말도 못할 것이다. 이번 행차는 전에 없었던 일이니 만약 전에 없던 일에 대한 혜택이 없다면, 뱃사람들이 비록 원망하지 않더라도 어찌 서강(西江)의 조선점검소(漕船點檢所: 세곡 운반선을 점검하는 곳)에는 부끄럽지 않겠느냐? 뱃사람과 격군(格軍)에게는 선혜청(宣惠廳)의 낭관(郞官)이 빨리 가서 쌀 1말을 각각 나누어주고, 아전들 가운데 혹 역(役)을 겸하는 자가 있으면 금년에만 특별히 역을 면제해주며, 격군은 모두 금년에 한해 특별히 역을 면제해주도록 해당 차사원(差使員)과 첨사(僉使)에게 전하게 하라. --- p.48 팔순의 업적에 대해 만약 나에게 묻는다면 마음속으로 부끄러우니,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첫째는 탕평이니, 스스로 ‘부끄럽다[?]’는 글자뿐이다. 둘째는 균역이니, 그 효과가 중들에게도 미쳤다. 셋째는 준천이니, 그 공덕이 만세에 드리웠다. 넷째는 옛 제도의 회복이니, 여종들이 모두 한가로워졌다. 다섯째는 서얼의 등용이니, 유자광(柳子光) 이후 처음이다. 여섯째는 옛 법도의 개정이니, 곧 『속대전』의 편찬이다. --- p.63 지금의 사치는 옛날의 사치와 다르다. 의복이나 음식은 빈부에 따라 각기 다른 것인데, 지금은 그렇지 아니해 한 사람이 하게 되면 백 사람이 본받는다. 시체(時體: 당시의 유행)라고 이름 붙이고 유한한 재화를 가지고 무한한 비용을 쓴다. 얹은머리[??]는 사치가 아니지만 크게 하는 것은 사치이고, 홍포(紅袍: 관원이 입는 예복)는 사치가 아니지만 선홍색으로 하는 것은 사치이니, 시체의 폐단은 이와 같은 부류다. 무늬 있는 비단을 이미 금지했는데, 상방(尙方: 궁내의 의복 담당 기관)에서는 무늬 있는 비단 주머니를 나누어준다. 이제부터는 나라의 직물에는 무늬를 모두 금지한다고 안팎에 알리도록 하라. --- p.82 아아, 즉위한 지 45년이 되었는데, 비록 추모한다고 했지만, 제사 지내고 알현한 것이 뜻한 것과 같지 않았고, 비록 백성을 위한다고 했지만 목소리를 들려주고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이와 같으면서 그것을 효라고 할 수 있겠으며, 이와 같으면서 백성을 위한다고 할 수 있겠는가? 준천에서는 겨우 그 공적을 이루었으나, 만약 1년만 해이해져도 모래가 백 척은 쌓일 것이다. 백성들에게 거듭 당부해도 법이 오래되면 느슨해질 것이다. 양역에 있어서는 관청의 노비와 각 사찰의 중들까지 모두 혜택을 입었지만, 은혜가 다하게 되면 태만해질 것이다. --- p.94 아, 당습의 폐단이 어찌 이미 백골이 된 세 신하(최석정?남구만?윤지완)에게까지 미치는가? 무관(武官)과 음관(蔭官)이 어찌 당색(黨色)에 연관되고, 서리(胥吏)에 이르기까지도 어찌 붕당에 관계되기에 조정에 나아가고 물러남이 이들에게까지 미치는가? 이미 거듭 당부했는데도 이전만 못하다면, 조정이 명령한 법률을 따르지 않은 죄로 다스려야 할 것이다. 이번의 처분은 다른 것이 아니다. 지난번에 여러 신하들이 사사로운 원한을 앞세우고 나라의 일을 뒤로 미루면서도 양사(兩司: 사헌부와 사간원)에서 아뢰는 말을 장악하고 다른 신하들이 뵙기를 청하는 일도 멋대로 막아서 마침내는 임금을 농락하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내가 크게 고치려고 하는 까닭이다. 나는 다만 마땅히 인재를 취해 쓸 것이다. 만약 당습에 관계된 자를 내 앞에 내세우면, 마땅히 쫓아내고 귀양을 보내서 도성에 함께 있지 않을 것이다. 유학(儒學)과 관련된 일이라면, 본래 조정에 올릴 일이 아니다. 만일 다시 분란을 일으키면 반드시 엄하게 배척할 것이다. 아! 임금의 마음은 이러한데 신하가 따르지 않는다면, 이는 내 신하가 아니다. --- p.114~115 모두들 효경(배은망덕한 사람)이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이 효경이며, 당습이라고 말하지만 자신들이 당습이다. 또한 자칭하기를 충(忠)이요 군자(君子)라고 말한다. 아, 조선의 당은 충?역이나 군자?소인의 당이 아니라 곧 노론?소론?남인?북인의 당이다. 비록 군자라고 하더라도 각기 당을 이루고, 소인이라고 하더라도 각기 당을 이룬다. 공자께서 ‘군자는 두루 사귀고 편을 가르지 않고, 소인은 편을 가르고 두루 사귀지 않는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편을 가르는 것이 어찌 당이 아니겠는가? 내가 본 것이 옳으며, 당이란 말이 맞지 않은가? --- p.128 아, 옛사람이 “창업은 어렵고 수성은 쉽다.”라고 하기도 하고 “수성은 어렵고 창업은 쉽다.”라고 하기도 했다. 나는 “창업과 수성은 그 어려움이 하나같다.”라고 말한다. 좋았던 나라가 무너져 망함에 따라 어려운 새 왕조를 개창하기도 하고, 편안히 즐기다가 혹시라도 타락할까 경계해 스스로 가다듬어 중흥하기도 한다. 만약 그때의 임금이 창업의 어려움과 중흥의 어려움을 생각하도록 한다면, 멋대로 즐기려는 마음이 어찌 한가하고 편안한 사이에 싹틀 수 있으며, 스스로를 가다듬는 의지가 어찌 잠깐 사이라도 소홀할 수 있겠는가? 선비나 백성은 비록 덕을 닦지 않더라도 오히려 선비나 백성의 이름을 갖는다. 임금은 천명이 사라지고 인심이 원망해 필부가 되려고 한다 해도 어찌 그렇게 될 수 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치면 깨닫지 못하는 사이에 모골이 송연해지고 마음이 서늘해진다. --- p.140 내가 일생토록 얇은 옷과 거친 음식을 먹어서 자전(慈殿: 인원왕후)께서는 늘 염려하셨고, 영빈(寧嬪: 영조의 후궁이자 사도세자의 생모)도 늘 경계하면서 “스스로를 너무 박하게 대하시니, 늙으면 반드시 병이 날 것입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지금도 병이 없으니 옷과 음식이 과하지 않았던 덕분이다. 무릇 사람의 근력은 순전히 과한 옷과 과한 음식에서 소모된다. 듣건대 사대부의 집에는 담비 가죽으로 만든 이불과 이름도 모를 반찬이 많이 있다고 하니, 사치가 어찌 이렇게 심하게 되었는가? --- p.155 임금이 덕이 있다면 신하가 어찌 감히 떠벌릴 수가 있겠으며, 임금이 만약 성의가 있다면 신하가 이와 같이 우매했겠는가? 삼정승은 있는가? 구경(九卿: 좌우찬성?육조판사?한성판윤)은 있는가? 임금이 병이 조금 나았지만 신하에게 도리어 곤욕을 당하니, 존호 여덟 글자를 굳이 더 청하려고 한다면 이것은 만고에 아첨하는 것이다. 아, 요?순의 110년 동안 과연 이러한 청이 있었으며, 무왕(武王)의 93년 동안 또한 이러한 청이 있었던가? 하례하는 것과 연회하는 것도 오히려 아첨에 가까운데 하물며 이러한 청이겠는가? 당직을 폐지하자 그들이 이것을 하려고 하니 이것이 과연 임금을 사랑하는 것이며, 그것이 또한 임금을 본받는 것이겠는가? 아아, 이제 나는 누구를 믿겠느냐? 스스로 그 마음을 결정하고 스스로 지켜야 할 뿐이구나. --- p.162 너는 안락한 곳에서 태어나서 안락함 속에서 자랐다. 대리청정하게 된 후에 만약 의심스럽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반드시 나에게 물어보고 해야 한다. 동해왕(東海王) 유강(劉彊: 광무제의 큰아들)은 광무제(光武帝)에게 경계하는 말을 올릴 수 있었으니, 내가 잘못한 것에 대해 네가 만약 경계하는 말을 해준다면 세상을 사는 즐거움이 어찌 이보다 더한 것이 있겠느냐? --- p.181 아, 예로부터 무도한 임금은 너무도 많았지만, 세자 시절에 이와 같았던 자는 내가 듣지 못했다. 그는 본래 풍족한 곳에서 태어났지만,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 미치기에 이르렀다. 새벽부터 밤까지 바랐던 것은 태갑(太甲: 중국 상나라의 왕)처럼 뉘우치는 것이었지만, 끝내 만고에 없던 일에 이르렀고, 백발의 아비가 만고에 없던 일을 저지르게 했다. 아아, 이것이 누구의 허물인가? 곧 내가 잘 가르치고 이끌지 못한 소치이니, 너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아아, 윤5월 13일의 일을 어찌 내가 즐거워서 했겠는가? 어찌 내가 즐거워서 했겠는가? 네가 만약 일찍 제정신으로 돌아왔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었겠는가? 강서원에서 여러 날 가둬둔 것이 어찌 종사를 위한 것이었고, 백성을 위한 것이었겠는가? 생각이 여기에 미쳐 아무 일이 없기를 바랐는데, 9일이 지나 비보를 듣게 되었다. 너는 무슨 마음으로 일흔이 된 아비에게 이런 지경을 만나게 했는가? 이에 이르러 참지 못해 불러서 받아쓰게 하는 것이다 --- p.204~205 내가 나라의 일에 마음을 쓰면서 곧 ‘스스로 힘쓰고 스스로 가다듬는 2가지 일이 지금 우선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할아비가 스스로 힘쓰지 않으면서 어찌 그 손자가 스스로 힘쓰기를 바라며, 할아비가 스스로 가다듬지 않으면서 어찌 그 손자가 스스로 가다듬기를 권하고 격려하겠는가? 이것이 나의 고심이고, 고심이다. 아, 「대훈」이라는 하나의 글이 세상을 다스리는 도리에 보탬이 없고, 「상훈」이라는 하나의 글이 격려하는 데 효험이 없으니, 이제 그 2가지 일이 또한 이와 같지 않을 줄 어찌 알았겠는가? 비록 그렇더라도 나에게 있는 도를 닦아야 할 뿐이다. 어느 겨를에 효험을 바라겠는가? 이에 스스로 힘쓰고 스스로 가다듬음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한데 묶어 나라의 근본을 영원토록 굳건하게 할 것이다. 세손을 가르치고 이끌려는 생각도 또한 그 가운데 있다. --- p.222 나라의 일을 생각하다가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 지 오래되었다. 어린 세손이 노론을 알겠는가? 소론을 알겠는가? 남인을 알겠는가? 소북을 알겠는가? 나라의 일을 알겠는가? 조정의 일을 알겠는가? 병조판서를 누가 할 만한지 알겠으며, 이조판서를 누가 할 만한지 알겠는가? 이와 같은데 종사(宗社)를 어디에 두겠는가? 나는 어린 세손이 그것을 하도록 만들고 싶고, 나는 그것을 보고 싶다. --- p.2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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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생생한 어록!
조선시대 중흥기를 이끈 제21대 왕 영조, 그는 붕당으로 얼룩진 정치상황을 탕평으로 이끌고 수많은 개혁정책과 민생정책을 펼치면서 조선을 부흥시켰다. 이러한 수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영조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은 무수리 어머니를 둔 비천한 출신이라는 점과 친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잔인하게 죽인 비정한 아버지라는 점이다. 그래서일까? 개인사적인 콤플렉스를 가진 왕이라는 이유에서 영조를 소재로 한 소설과 드라마도 많이 나와 있다. 이 책은 영조가 직접 했던 ‘말’을 살펴본다는 점에서 다른 책들과의 차별성이 있다. 과연 영조는 어떤 왕이었는지, 나아가 영조의 인간적 면모는 어떠했는지를 객관적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여러 사료를 참고해서 백성과 관리, 가족, 자기관리, 정책 등에 대해 영조가 남긴 말들을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리더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애민(愛民)과 위민(爲民)의 기본 정신을 절절히 일깨우는 생생한 어록이다. 영조는 1724년부터 1776년까지 재위한 왕으로, 조선 역대 왕 중 재위기간이 가장 길다. 그 오랜 재위 기간 동안 그는 어떤 생각과 행동을 했을까?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사료는 영조 재위 51년 9개월간의 역사를 기록한 『영조실록』이다. 긴 재위기간만큼 엄청난 양을 자랑하는 실록의 글들 중 각별히 의미 있게 다가오는 내용을 발췌해 소개했다. 그리고 『영조실록』뿐만 아니라 나라의 공적인 일을 기록한 『승정원일기』와 『비변사등록』, 그리고 『정조실록』과 정조의 시문집 『홍재전서』에서도 영조의 말이 담긴 부분을 발췌했다. 또 주목할 만한 사료는 ‘어제’다. 어제는 임금이 지은 글을 말하는데, 영조 때부터 활자본으로 간행되었다. 조선시대 왕 중에서 어제 편찬의 양이 가장 압도적으로 많았던 영조는 80종이 넘는 어제를 통해 백성에 대한 사랑, 치열한 자기수양, 과거에 대한 회고와 개탄 등을 드러냈다. 애민을 몸소 실천한 위민의 군주, 영조 이 책은 모두 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에는 영조의 위민에 대한 말을 모았다. 농사를 권장하기 위해 밭에 나가 직접 농사를 짓거나, 개천을 넓히는 공사를 시작하기 전 직접 창경궁 정문인 홍화문에 나가 백성의 의견을 묻는 등 백성의 입장에서 늘 생각하는 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2장에는 개혁군주로서의 모습을 담았다. 재정관리를 위해 사치를 금하거나 새로운 회계법을 도입하고, 균역법을 실시해 백성들의 세 부담을 크게 줄였다. 그뿐만 아니라 신문고제도를 부활시키고 서얼의 관리 진출을 허용하는 서얼통청법을 제정하는 등 민생정책도 펼쳤다. 3장에는 탕평책과 관련한 말들을 모았다. 영조는 즉위 초부터 극심한 붕당 갈등을 겪었기에 붕당의 악습을 척결하는 데 온 힘을 다 했다. 4장에는 욕망을 경계하며 자기관리에 철저했던 영조의 모습을 담았다. 공과 사의 구분을 엄격하게 하고 사사로움을 항상 경계하는 것, 반성하고 살피며 자신을 이기는 것이 영조가 지향하고 실천했던 삶의 자세였다. 5장에는 영조와 사도세자의 비극을 담았다. 영조는 세자가 자신과 달리 안락함 속에서 태어난 자랐기에 늘 훈계하고 가르쳤다. 그러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세자에 대한 실망감과 복잡한 정치적 상황, 그리고 세자의 잇단 악행 등 때문에 결국 ‘만고에 없던 일’을 일어나게 했다. 마지막 6장에는 영조가 세손인 정조에게 각별히 당부한 말들을 담았다. 영조에게 세손은 아들 대신 왕위를 계승해 왕조의 오점을 씻어낼 성군이어야 했기에, 세손교육이 엄격하고 각별할 수밖에 없었다. 영조는 오직 백성을 위하는 어진 정치에 힘쓰라고 당부하고 또 당부한다. 이 책에 나오는 말들 가운데 당시의 역사적 배경과 상황을 모르면 언뜻 그 맥락이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의 출처와 함께 영조의 발언 배경에 대한 설명을 달았다. 이 책은 익히 잘 알고 있는 영조라는 왕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그 이름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알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