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토마스 아퀴나스(1224/25~†1274.3.7)는 가톨릭의 가장 위대한 철학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천사의 박사Doctor Angelicus, 보편적 박사Doctor Communis, 인성의 박사Doctor Humanitatis로서 그리스도교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도미니코 수도회 수도사제이자 교수로 일생을 살았으며, 토마스주의와 신토마스주의를 태동시킨 중세 스콜라철학의 대표자로서 신앙과 이성, 신학과 철학을 종합하는 가운데 대학과 학문 체계의 창시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다.
성 토마스는 이탈리아 아퀴노 지방의 로카세카성에서 롬바르두스Lombardus가문의 막내로 태어났다. 그는 일찍이 몬테 카지노의 베네딕트수도원에서 유년기 교육을 받고, 14살부터 나폴리의 황립 대학에서 자유기예학에 따른 교양을 배우면서 아리스토텔레스의 자연철학을 연구했다. 1216년 대학 생활 중에 설립된 도미니코 수도회Ordo fratrum Praedicatorum를 접하고, 1244년에 입회하여 청빈과 설교, 학문 연구와 교수 활동에 치중하는 수도사제로서 대학의 삶vita universitatis을 시작했다.
1245년 토마스는 파리대학으로 가서 공부를 계속했으며, 1248년에서 1252년까지는 쾰른Koln대학에서 알베르뚜스 마뉴스Albertus Magnus를 스승으로 모시고 본격적 탐구 활동에 전념했다. 당시 알베르투스는 중세 대학의 가장 위대한 석학이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기초를 놓은 스콜라철학의 거두가 되었다. 1252년 도미니코 수도회는 알베르투스의 제안으로 토마스를 다시 파리대학으로 보냈으며, 그에게 도미니꼬회 수도원학교의 학사Baccalaureus 교사직을 맡겼다. 토마스는 1년 동안 성서와 신학 교과서로 통하던 페트루스 롬바르두스P.Lombardus의 『명제집』Sententiae을 강독하였다.
1257년 성 토마스는 교황의 칙령으로 파리대학 교수가 되었다. 1259년부터 그는 교황청과 여러 수도원학교가 있던 이탈리아에서 가르쳤다. 1268년 도미니코회는 토마스를 다시금 파리대학으로 보냈다. 무엇보다 파리에서는 세속적 학문을 둘러싼 논쟁적 상황이 위기로 치달았기 때문이었다. 1272년 토마스는 수도원대학의 교양학부Studium generale를 설립하고 가르치기 위해 다시 나폴리로 소환되었다. 1274년 3월 7일 토마스는 프랑스 리옹 공의회로 가던 중 포사노바의 씨토수도원에서 학문의 삶을 마감했다.
성 토마스는 중세 13세기 황금시대와 위기 시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를 살았고, 스스로 이 소용돌이의 부분적 원인이 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그는 수도자로서, 학자로서, 학문과 대학의 설립자로서의 단순하고도 중단 없는 동일성을 유지하면서 그의 내적 삶의 방식에 따라 교수 활동과 병행하는 방대한 작품을 남겼다.
첫째 청년기에 저술한 『존재와 본질에 대하여』De ente et essentia이다. 이 책은 매우 작지만 토마스의 20대 중반에 쓰여진 만큼 그의 50평생을 계산하면 나머지 반생의 철학적 기획을 압축한 책이다. 여기서 토마스는 자신의 고유한 존재철학을 위한 기초를 놓았다. 또한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을 주해한 『명제집 주해서』Scriptorum super libros sententiarum 강의록을 남겼다.
둘째 신학과 철학, 신앙과 이성을 조직적으로 종합한 대작은 『신학대전』Summa theologica과 『대이교도대전』Summa contra gentiles이다. 그야말로 오페라opera에 속하는 두 대작은 당시까지 알려진 모든 문제와 지식을 총망라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신학대전』은 신학뿐만 아니라 대학에 입학하는 새내기를 위한 학문의 요약summa이다. 또한 일명 『철학대전』Summa philosophica이라고도 명명되는 『대이교도대전』은 13세기에 신세계로 떠나던 선교사들이 인간의 공통적 근거인 이성에 호소하여 이교도들과 토론할 수 있도록 고안된 교재였으므로, 당시 논의되던 철학적 문제를 총망라한다.
셋째 『정규토론집』Quaestiones disputate과 『임의토론집』Quaestiones quodlibetales이다. 『정규토론집』은 대학에서 정규수업으로 개최되던 공개 토론수업의 기록이다. 『진리론』, 『권능론』, 『악론』, 『영혼론』 등이 여기에 속한다. 『임의토론집』은 특강에 해당하는 토론수업이다. 토론수업의 핵심은 과거와 현재의 다양한 사고를 경청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특히 시대를 움직이는 뜨거운 문제들이 거론되었다. 즉 우주의 구조, 잘못된 양심의 책임감, 공적 비판의 권리, 심지어 술과 왕, 여성 안에 가장 강한 것 등에 대해서도 토론했다.
넷째 철학과 신학의 원전 연구 업적으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의 전 작품에 대한 주해서와 성서 및 보에시우스의 작품에 대한 주해서를 들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거의 모든 작품을 주해했으며, 『형이상학 주해서』, 『윤리학 주해서』, 『명제론 주해서』, 『자연학 주해서』,『영혼론 주해서』 등이 있다. 보에티우스 저술에 대한 해석으로는 『데 헵도마디부스』De hebdomadibus, 『삼위일체론 주해서』In de trinitate가 있으며, 후자는 학문론의 시효를 이루는 걸작이다.
다섯째, 『주님의 기도 해설』, 『통치 원리론』 등과 같은 다양한 단편opuscula들과 추천서, 편지, 문학적 단편, 설교집, 기도문 등이 있다.
성 토마스는 1273년 12월 6일부터 절필하였다. 그는 동료 수도자 레지날드Reginald에게 자신이 저술한 모든 것은 지푸라기에 지나지 않는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는 여전히 신비로 남아 있으며, 따라서 작품 대부분도 미완성으로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