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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해상 왕국 십제와 백제
2. 대륙을 누빈 형제 대왕 3. 마동 부여장 4. 장왕의 신하들 5. 귀국하는 부여씨들 6. 요동에 이는 전운 7. 아깝구나, 단귀유 8. 가잠성은 함락되고 9. 용화향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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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구의 반란이 평정된 뒤에도 백제의 왕업은 순탄치 못하였다. 난을 평정한 이듬해, 삼근왕이 재위3년만에 까닭 모를 병을 얻어 시름시름 앓다가 끝내 해를 넘기지 못하고 붕어하니 이 때 왕의 보령 겨우 열 다섯이었다. 삼근왕의 장사를 지내는 동안 웅진의 백제 중신들 사이에선 당연히 후왕에 대한 논의가 있었는데, 선뜻 왕으로 세울 적임자가 없어 사람마다 의견이 분분하였다.
장자로 내려오던 부여씨의 적통은 삼근왕에 이르러 맥이 끊기니 부득불 거론된 이가 해구의 손에 죽은 곤지의 아들들이었다. 그러나 곤지의 식솔들은 모두 잔국인 왜열도에 살고 있는데다, 아들들이 하나가 아니라 여럿이니 그 가운데 과연 누가 왕의 재목인지 알 도리가 없었다. 이에 백제의 중신들은 여러 날 공론 끝에 잔국으로 사신을 보내어 웅략천황에게 본국의 사정을 설명하고 백제의 왕위를 승계할 마땅한 인물을 지정해 달라고 요청하기에 이르렀다. 웅략천황은 크게 기뼈하며 곧 나라백제의 중신들과 상의하여 곤지의 다섯 아들 가운데 적임자를 물색하였는데, 마지막까지 거론된 이가 장자인 사마와 차자인 모대였다. 잔국 왕실에서는 차제에 백제왕을 그들의 족친인 진씨로 책봉하자는 의견도 없지 아니했으나, 지금의 백제가 실은 십제의 후신인 데다 만일 진씨로 왕을 삼으면 웅진에서 백제를 재건한 주도 세력들이 이를 용인하지 않을 거라는 반대에 부딪혀 하는수 없이 부여씨 중에서 왕을 고르게 되었다. --- p.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