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검색을 사용해 보세요
검색창 이전화면 이전화면
최근 검색어
인기 검색어

소득공제
야생의 순례자 시튼
시튼 저 / 작은 우주 역
달팽이출판 2005.06.29.
가격
12,000원
10 10,800
YES포인트?
600원 (5%)
5만원 이상 구매 시 2천원 추가 적립
결제혜택
카드/간편결제 혜택을 확인하세요

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해외배송 가능?
  •  문화비소득공제 가능

책소개

목차

차례
옮긴이의 말
1부 어린시절, 끝없는 모험의 시작
용감한 전사의 후예
캐나다 이민
개척자 수업
벽난로가의 추억
테리 영감의 지혜
무법자 듀크
야생의 질서
개척자들의 가정생활

2부 소년시절, 자연의 질서를 배우다
어린 싸움꾼
타고난 구두쇠
전학을 가다
도시에서 만난 야생동물들
습지의 사냥꾼들
어린 탐험가
시련과 희망
침입자 살쾡이
그림을 시작하다

3부 청년시절, 야생의 땅으로
운명의 부름
다시 집으로
서부로 가는 험난한 길
땅 사냥꾼들
초원의 봄
초원에서 쓰는 일기
흔적 읽기

4부 찬란했던 시절
새를 찾아서
인디언과의 만남
뉴욕에서 겪은 배고픔
자유와 기쁨
무스 사냥

5부 대평원에서 파리까지
다시 런던으로
예술의 도시 파리
변해버린 야생의 세계

6부 늑대와 함께
늑대 사냥꾼
커럼포의 늑대왕 로보

7부 자연은 참 좋은 것이다
결혼 그리고 이혼
동물기 작가로 명성을 얻다
검은 야샹마의 최후
우드크래프트 인디언 연맹

맺는 말
부록

저자 소개

역자 : 작은우주
작은우주는 자연과 어린이들을 사랑하는 번역자들의 모임으로 아름다운 우리말로 원문을 생생하게 되살리려는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번역한 책으로는『키티와 친구들』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품목정보

발행일
2005년 06월 29일
쪽수, 무게, 크기
485쪽 | 586g | 148*215*30mm
ISBN13
9788990706126

책 속으로

"나는 런던에서 내 인생을 걸 경우를 거듭거듭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벌써 아메리카들소의 울음소리가 내 귓가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서부로 오라는 운명의 부름이었다."

--- p.269

"나는 일기에 연필이든 잉크든 또는 그림물감이든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기록했다. 때로는 알고자 하는 욕망에 희생된 제물의 피로 더럽혀지기도 했고, 때로는 모닥불 불똥이 튀어 그을리기도 했으며, 더러운 손으로 서둘러 그리느라 기름때가 묻기도 했다."

--- p.303

"애들을 감옥에 넣으라고? 기껏해야 장난에 불과한 일 갖고 범죄자의 낙인을 찍으란 말이야? 그 나이 땐 나도 그런 일을 했을 텐데 그것 때문에 애들을 새장에 가두라니 말도 안 돼!"

--- p.607

"독수리가 자유를 잃고, 사자가 힘을 잃고, 비둘기가 제 짝을 잃으면 죽는다고 한다. 마음이 아파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 가지를 송두리째 잃은 로보에게 어떻게 그 슬픔을 모두 견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 p.578

관련 자료

1860년 영국 북부의 항구 도시 사우스실즈에서 열네 명의 자녀중 열두 번째로 태어나다.
1866년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온가족이 캐나다 온테리오 주로 이민을 가다.
1870년 토론토로 이사해 그곳에서 초등교육을 받았다.
1874년 토론토 대학 부속고등학교에 입학하다.
1876년 본격적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다.
1879년 화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런던으로 떠나다.
1880년 영국 왕립 아카데미에 장학생으로 입학하다.
1881년 건강 악화로 캐나다로 귀국. 두 형이 살고 있는 서부 매니토바의 카베리로 가서 많은 자연 체험을 하다. 이 시기에 아메리카 원주민과의 교류를 시작하다.
1883년 미국 뉴욕으로 가서 많은 자연주위자, 조류학자, 작가들을 만나다.
1884년 파리로 가서 미술 공부를 하다.
1885년 『센추리 백과사전』에 들어갈 삽화 천여 점을 그리다.
1890년 작가 마크 트웨인을 처음 만나다.
1891년 파리 살롱전 <잠자는 늑대>를 출품하다.
1893년 파리에서 돌아와 뉴멕시코 지역으로 가 피츠 랜돌프와 늑대 사냥을 나감. 이때의 경험으로 <늑대왕 로보 이야기>를 쓰게 된다.
1896년 뉴욕 출신의 그레이스 갤러틴과 결혼을 하다.
1898년 야생동물 이야기를 다룬 첫 번째 책인 『내가 아는 야생동물들』을 발표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다. 그 뒤 30여 권의 책을 출판하다.
1901년 『쫓기는 동물들의 생애』를 출판하다.
1902년 우드크래프트 인디언 연맹을 창설하다.
1904년 딸 앤 시튼이 태어나다.(~1990년) 그녀는 아냐 시튼이라는 필명으로 역사소설를 써 유명해 졌다.
1905년 『동물 영웅들』출판하다.
1906년 보이스카웃 운동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다.
1907년 캐나다 북부 지역 2,000마일을 카누로 여행하다.
1910년 미국 보이스카웃 의장으로 선출되다(~1915년) 첫 보이스카웃 핸드북을 쓰다.
1913년 『길들인 야생동물들』을 출판하다.
1927년 수 인디언, 푸에블로 인디언과 함께 생활하다.
1930년 미국 뉴멕시코 주 산타페로 이주하여 시튼 빌리지를 세우다.
1934년 갤러틴과 이혼하고, 줄리어 모지즈 버트리와 결혼하다.
1940년 자서전을 발표하다.
1946년 10월 23일 미국 뉴멕시코 자택에서 생을 마치다. 향년 86세였다.

출판사 리뷰

어니스트 톰슨 시튼(Ernest Thompson Seton1860~1946)의 동물기는 전세계적으로 어린이에서 청소년, 그리고 성인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지금도 감동과 전율을 전해주고 있다. 이 책『야생의 순레자 시튼』(원제:Trail of an Artist Naturalist 1940년 출간)은 그런『동물기』가 씌어지기까지 시튼이 겪었던 고난과 극복의 드라마를 담고 있다. 태어나서 노년에 이르기까지의 긴 여정을 통해 자연에 대한 지칠줄 모르는 시튼의 열정이 그려진다. 문체 또한 호쾌하고 흥미진진하다.

우리가 아는 시튼은 동물기의 작가다. 그러나 그는 동물학자로 북아메리카 야생동물의 권위자였다. 또한 화가였고 박물학자이기도 했다. 그가 쓴 방대한 양의 동물기에는 자신이 직접 그린 삽화를 넣었다. 또 하나, 그는 인디언 문화의 열렬한 지지자였으며 멸종 위기에 처한 야생동물 보호를 위해 노력했던 환경운동가였다. 그러나 시튼에 대한 이런 수식어는 무엇보다도 평생 자연을 거스르지 않은 삶을 살다간 진정한 자연이었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그의 동물 이야기들에 못지 않게 시튼이라는 사람 자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다. 그의 모험 가득한 삶은 언제나 곤고했지만 힘차다.

시튼은 영국 북부의 항구 도시 사우스실즈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엄격한 스코틀랜드인으로 그는 열네 명의 아이 중 열두 번째였다. 여섯 살 때 온 가족이 캐나다로 이민을 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개척자들의 거친 삶과 야생세계를 경험했다.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야 했고, 어린 나이에도 농장 일과 거친 동물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터득해 나갔다. 직접 장난감을 만들어 썼고, 온갖 목공구를 다룰 줄 알게 되어 간단한 통나무 오두막도 직접 지을 수 있었다. 그러면서도 자연의 아름다움에 눈을 떠 이때부터 자연에 대한 동경과 호기심은 평생 동안 그를 지배하게 된다.
캐나다 미개척 삼림지에서 자연과 함께 한 어린 시절을 보낸 시튼은 토론토에서 십대를 보냈다. 병약한 몸이었지만 남한테 지기 싫어하는 성격 때문에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그 뒤 어린 싸움꾼으로 모험심 가득한 소년 시튼은 화가가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고등학교 졸업을 끝으로 대학을 포기한 채 런던으로 떠난다. 그곳에서 시튼은 한 달에 25달러라는 생활비로 혹독한 생활고를 겪었다. 미술공부는 프랑스 파리까지 이어지지만 결국은 캐나다 야생세계의 운명적인 부름에 이끌려 화가의 길을 접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킨 동물기의 작가로 명성을 얻기까지 온갖 험난한 과정을 겪어야 했다. 그때까지 그가 의지하고 따랐던 유일한 스승은 자연과 자신의 열정뿐이었다

"나는 런던에서 내 인생을 걸 경우를 거듭거듭 생각해 보았다. 하지만 역시 아니었다. 벌써 아메리카들소의 울음소리가 내 귓가를 맴돌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서부로 오라는 운명의 부름이었다."(P.269)

<동물기 작가에서 환경운동가로>
야생의 생활은 시튼을 동물 관찰과 연구에 빠져들게 했다. 그의 관찰력은 새의 깃털을 하나하나 다 셀 정도로 치밀했다. 동물을 직접 해부하여 관찰하고, 그림으로 그리고, 수백 킬로미터나 되는 거리를 동물의 발자국을 쫓아다니기도 했다. 당시 기록 가운데 몇몇 동물은 뒷날 유명한 동물기에 등장하게 된다.

"나는 일기에 연필이든 잉크든 또는 그림물감이든 상관없이 닥치는 대로 기록했다. 때로는 알고자 하는 욕망에 희생된 제물의 피로 더럽혀지기도 했고, 때로는 모닥불 불똥이 튀어 그을리기도 했으며, 더러운 손으로 서둘러 그리느라 기름때가 묻기도 했다."(P.303)

시튼은 당시 사람들보다 앞서가는 이상적 자연주의자였다. 자연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었다. 기독교집안에서 자랐지만 그에게 진정한 종교는 자연이었다. 이러한 신념은 시튼을 행동하는 환경운동가이며 사회운동가로 활동하게 했다. 그가 인디언 문화에 관심을 쏟았던 것도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존중하는 인디언의 삶이야말로 시튼이 추구하던 이상이었기 때문이었다. 1902년 우드크래프트 인디언 연맹을 창설한 것도 그의 신념의 결과였다. 이 단체는 인디언 문화를 옹호하고 보존하며, 많은 청소년들에게 야생 체험을 하게 하여 용기와 자연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워주었다. 이런 활동이 뒤에 미국 보이스카웃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 사실 시튼은 청소년들의 기질을 잘 알고 있었다. 시튼 자신이 평생 소년의 마음을 가슴에 담고 살았기에 더욱 그랬다. 그는 문제아를 나무라거나 경찰에 신고하지 않았다. 그는 모든 문제를 자연의 질서 속에서 풀어가길 바랐다.

"애들을 감옥에 넣으라고? 기껏해야 장난에 불과한 일 갖고 범죄자의 낙인을 찍으란 말이야? 그 나이 땐 나도 그런 일을 했을 텐데 그것 때문에 애들을 새장에 가두라니 말도 안 돼!"(P.607)


<자연과 인간의 공생을 위하여>
시튼은 언제나 우리가 하찮게 여기는 동물들도 슬픔과 고통을 느낀다고 했다. 그래서 그들도 우리와 같이 자유롭게 살아갈 권리가 있다고 했다. 바로 인간과 자연의 공생을 얘기한 것이다. 동물사냥을 위해 수백 킬로미터를 걷거나 심리전을 펼치며 온갖 고생 끝에 사냥에 성공하지만 시튼은 언제나 허탈감을 느꼈다. 바로 동물들과 시튼 사이에 흐르던 미묘한 감정이 시튼으로 하여금 동물에 대한 애틋한 애정으로 바뀌곤 했던 것이다.

"독수리가 자유를 잃고, 사자가 힘을 잃고, 비둘기가 제 짝을 잃으면 죽는다고 한다. 마음이 아파서 죽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세 가지를 송두리째 잃은 로보에게 어떻게 그 슬픔을 모두 견디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P.578)

이 책을 읽다보면 우리는 동물기 작가 시튼보다는 평생 야생의 세계 속에서 살다간 철저한 자연주의자 시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자연을 음유하지만은 않았다. 그는 은둔자가 아니었다. 젊어서는 야생동물을 관찰하며 그들도 우리와 같음을 글로써 남겼다. 작가로 성공한 뒤로는 자연을 파괴하는 문명에 맞서 환경친화적인 단체를 조직했다. 자연은 좋은 것이라는 단순하지만 일관된 신념으로 그는 인생의 정점에 이르렀다. 그리고 그는 만족했다.
지금은 자연과 생태에 관한 관심과 새로운 시각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이다. 개발과 정치적 논리에휘둘리며 파괴되는 환경은 위험 수위를 넘어서고 있다. 자연에 대한 시튼의 열정적인 사랑이야말로 요즘 우리들에게 절실한 메시지가 아닐 수 없다.
리뷰 총점 8.6

첫번째 한줄평을 남겨주세요.

사락 별점0

혜택 및 유의사항

첫번째 별점을 남겨주세요.

첫번째 밑줄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