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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락이 돌아오는 시간
안창섭
작가마을 2025.0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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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풋사과처럼 덜 익은 시간

상상도 못 하는 죄
멍게
홍옥
몽당연필의 봄바람
꿈결이었어, 깨어날 수 없는 꿈결이었어
달집
물끄럼말끄럼
바람의 전개도
살구꽃 당신
저도
그땐 그랬지
기차는 달리고 싶다
하쿠나마타나
발꿈치를 잘라 먹던 시절

제2부 그리움이 편집하는 시간

방문 전 전화 주세요
샛별이 떨어진 안방
할매 콩국수
퇴비장
바람이 불어오는 곳
아라홍련
통일벼의 꿈
이별이 지고 작별이 뜬다 1
이별이 지고 작별이 뜬다 2
능소화
연꽃처럼
상사화
유전무죄
금강역사

제3부 무명시인의 시간

42.195
뭐시 중헌디 1
뭐시 중헌디 2
감정 초본
소나기
절박
잃어버린 얼굴을 찾아서
전자레인지
신의 저울은 한쪽으로 기운다
Who am I
내게도 복날이
내 통장이 영원이 되는 동안
월중 계획표
뼁뺑이
본능적으로 삐딱하게

제4부 한 박자 쉬고 세 박자 울고 가는 시간

발칸의 장비
동전 인생
메주
꿈에 보았던 꿈들
씁쓸
도시락 1
도시락 2
도시락 3
악연
하튼소리 명태가
잠들지 않는 섬
네팔상회
우리들의 천국
눈물 왕국

제5부 심장에 문신을 새기는 시간

점심 생략
4월의 火印
부모님 전 상서
A 특공대
와락
도요새
불조심하시렵니까
폭탄 돌리기
卜 자의 발견
은행잎 누나
벅수에게
주민자치회
자물쇠

비상시대
Mayday Mayday Mayday

해설 - 사물 고유의 맛과 시의 당도-김정수

저자 소개 1

2015년 《월간문학》 시조로 등단하였으며 2019년 계간 《창작21》 시, 2021년에는 계간 《소설미학》 에 소설가로도 등단하여 문학 전반의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다. 성호문학 본상(2021)과 아르코 발표지원을 수혜(2022) 받았다. 시집 『내일처럼 비가 내리면』과 시조집 『유모차를 타고 가는 아이나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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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15일
쪽수, 무게, 크기
136쪽 | 135*210*20mm
ISBN13
9791156062875

책 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죄가 된다지

생각만으로 지은 죄, 너무 많아서

생각하기 싫은 죄, 더 많아서

생각의 깊이만큼 죄는 깊어지고

생각이 없는 만큼 죄는 곁에 있네

전생에 지은 죄는 죽어도 모르는 죄

상상으로 또, 무슨 죄를 짓고 있나?
--- 「상상도 못 하는 죄」 중에서

바람의 시작은 외인들과 비밀번호를 나누어 갖죠. 내 것도 네 것도 아닌 비밀을 공유하기엔 그만이죠.
외인은 비밀번호를 누르며 자신의 미래를 알리죠. 반전은 짧은 과거에 있고 바람을 연결하기 위해 여러 개의 알리바이가 필요합니다. 거리마다 네온사인의 발목이 삐딱거리고 멀리서도 알아볼 수 있는 낯 뜨거운 한낮의 아우성이 불야성을 이룹니다.
비보호좌회전의 여유로 낮거리로 풀어놓은 바람, 결재와 결제를 구분 없이 비밀금고에 넣은 시기와 질투는 비밀번호가 달라도, 자유로운 영혼이 우선멈춤을 무시하고 지나가는 나무에게 거짓말을 할 수가 없었죠.
낯짝을 가리는 사람들은 그래도 시작에 불과하죠. 바람의 등살을 할퀴고 가는 바람들은 대부분 알리바이가 성립되는 세상, 이해 못 할 일이 하나쯤은 숙제로 남아있죠, 바람의 피를 말려 보세요. 피 맛을 아는 당신이 거머리처럼 종아리 피를 빠는 동안 하나도 아프지 않은 것은 거머리도 따뜻한 피를 바람에 말리기 때문이죠.
바람의 간격과 속도에 따라 합법으로 매매되는 이중 나사구조로 물고 늘어질 때, 바람은 더 이상의 바람의 성질을 잊어버리고 때로는 깊은 웅덩이를 만들어 우물 속으로 빠트린 동전이 되어, 전파가 잡히지 않은 라디오처럼 잡음이 수시로 귓가를 맴돌다 가죠.
바람을 열고 봉투를 꺼냅니다. 바람을 뒤집으면 소문들이 소나기처럼 떨어집니다. 외인들은 많고 봉투는 단 한 장에 불과해서 수취인 불명의 소포를 느린 우체국에 저당 잡히고 말았죠.
찬바람을 접어 나비로 만드는 사람들, 사소한 바람의 마음은 모래알처럼 흩어졌다 서로의 목을 조르는 다정한 사이, 바스락거리는 심장을 서로 봉인한 채,

바람을 부칩니다.
--- 「바람의 전개도」 중에서

동구 밖에서 읍내 전파사 오토바이를 기다렸지
양철 지붕에서 영화필름 같은 안테나선으로
김일 박치기와 유재두 펀치에 화투짝이 살짝 돌아누웠지

주름살 문 넘어 금발미녀를 총잡이를 좋아했던 아버지는
엄마가 고용한 서부의 총잡이와 OK목장에서 결투를 하다
눈총에 맞아 KO다리 건너 전설의 고향으로
떠나는 이무기들의 하소연을 들었지

청실홍실 구멍 난 양말 사이 방안이 점점 좁아지자
연속극에 빠진 여배우를 수사반장이 찾아갔고
수상하면 신고하라는 마을방송은 수사본부가 대신했지
오렌지 껌을 씹는 누나들은 원더우먼을 꿈꾸며
600만불의 사나이와 펜팔을 하는 방법을 물었지

마루치 아라치들은 화면조정 시간부터 애국가를 불렀고
로봇 태권V 와 마징가Z로 정의의 주먹을 불사르며
휴일이면 전투와 전우를 통해 새마을 운동에 실패한
독수리 오 형제를 모아 그랜다이저를 몰고 떠났지

코끼리를 타고 치타와 맛동산에서 놀다가
말괄량이 삐삐가 나누어 준 달고나를 은하철도 999에 싣고
화면조정 시간에 맞추어 정글북 소리에 잠들었지

TV문학관으로 시집간 누나들이 보내온 편지에는
타잔이 장가를 가고 프란다스의 개가 손자를 보았다네
가족 오락관으로 들어간 서부의 총잡이는
쌍권총을 잃어버리고 버스 기사가 되었다지

늙수그레한 샛별이 독도로 본적지를 옮기고
주름살 펴고 무궁화 활짝 피었다지
--- 「샛별이 떨어진 안방」 중에서

방앗간 멀어지고 헛간에 들어앉은 한반도 통일 정미기 녹슨 거미줄에 걸렸습니다. 늦가을 햇귀가 시렁에 걸린 무청 시래기 타고 하늘하늘 시멘트 벽돌에 밑그림을 그립니다.
천수답 나락이 논두렁을 밟고 나락으로 떨어 진지 70년, 올해도 골짝 메뚜기 쌀 한 섬이면 노총각 장가 밑천 탈탈 털고도 남을 씨나락 종자를 매상으로 넘기고 말았습니다.
자급자족의 틈 사이, 밀양 21, 23호 노래를 불렀던 빈농들이 동진, 일미, 영호진미, 새누리로 갈아타고 햅쌀의 짜릿한 찰기로 거북이 등가죽 지도로 여러 해 동안 밥맛 돋우는 햇살은 없었습니다.
발로 밟아 돌리던 탈곡기 새롱새롱 힘들지만 다정하게 볏단을 주고받던 발 박자를 잃어버리고 엇박자로 돌아선 지금, 메뚜기 쌀, 어쩌다 한번 도리깨로 두드린 서리태 반쪽들이 마당귀를 잡고 마당을 쓸어봤자, 소나기가 마당을 훔치고 가는 이상기후에 물고랑만 깊게 파이고 말았습니다.
한반도는 멀리 있고 이밥에 고깃국 먹자던 별똥별은 자꾸만 떨어지는데, 통일벼 심었던 40년 세월의 허기를 외면하고 보릿고개들은 비만의 뱃살을 두드리며 밥맛을 잃은 숟가락을 어느 세월에 다시 만나볼까요?
한반도 통일 정미기에서 달달 떨어지는 희고 고운 쌀알들이 등겨를 뒤로하고 고봉으로 쌓입니다. 쌀 한 바가지로 한 가족이 한솥밥을 먹는 일이, 이렇게 힘들어서 어디 쌀농사를 짓겠습니까? 백두야 천지야 눈 비비고 나오너라. 이 밥이 싹이 나기 전에, 밥 한번 먹자.
--- 「통일벼의 꿈」 중에서

섣달그믐을 바라보며 따닥따닥 지팡이 만수할배 장수탕을 찾는다. 일주문을 들어서듯 허리 굽혀 내민 지폐, 허리춤 벗어나자 흘러내린 양손으로 잡아가는 계단참에 쉬어가는 지팡이도 참선에 들었는지 미미한 숨소리만 거미줄 타고 내려앉네
허물 벗어 사리탑을 쌓은 자리 해탈도 잠시 잠깐, 적멸보궁에서 쉬어갈까? 도솔천을 건너가서 미륵불을 만나 볼까? 칠순을 들어내고 욕탕에 내려앉은 팔순, 육신의 수증기 틀어 회심곡을 불러볼까? 세신사를 불렀다가 천수경을 외어 볼까? 등신불 물바가지 세례로 금강경에 빠져볼까? 아서라 등밀이 한판이면 180초 번뇌 끊고 둥글게 떨어지는 배꼽 때를 부르겠다.
돌고 도는 등밀이 염불 따라 등허리를 세우는 금강역사, 만수탕은 고요한 새벽을 이렇게 쓰고 있다.

도로 아미타불, 도로 아미타불
--- 「금강역사」 중에서

시방
꽃피는 소리 들었소
꽃이 피는 소리를 못 듣는 나는
아직도 세상을 모르오
그러기에 오늘도
꽃 같은 인생을 살기는 글렀소

시방
뻥튀기 터지는 소리 들었소
속이 뻥 터지는 소리 말이오
장날마다 터져도
남의 속 터지는 줄도 모르고
막걸리만 조지다가

씨불도 꺼진 줄도 모르고
씨불이기만 하다가
시 팔아
밥 묵기는 글렀소
--- 「뭐시 중헌디 1」 중에서

도 는 죽을 맛
레 시피 없는
미 완성 인생
파 란 매생이
솔 찬히 맛있어
라 떼는 라이브
시 원 습습히
도 로 묵 인가
입춘 지나 도
떡국 먹어 레
내 닮은 올빼 미
아픔 잊고 파
문학은 진 솔
뼈속까지 쓰 라
내 시는 삼류 시
그래도 읽어 도

도 대체 알 수 없는
레 퍼토리 없는
미 주알 인생
파 스텔 청춘이
솔 로 지옥에서
라 면이 울어도
시 한 수 울리고
도 사리는 내차지

그대가 미워 도
잊지는 않을 레
곰삭은 동치 미
한 사발 먹고 파
함께한 식 솔
이제는 떠나 라
사랑이 잠 시
머물다 죽어 도

--- 「도시락 2」 중에서

추천평

안창섭의 시가 변했다. 길이가 짧아지고 행갈이도 빈도가 높아졌다. 길게 이어지던 산문시는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그는 마라토너이다(100회 이상의 완주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라톤을 한 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의 호흡을 쫓아갈 수 없었고,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그의 시는 여전하다. 여전히 앞말의 꼬리를 물고 뒷말이 이어지고 뒷말은 그 뒷말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언어유희 혹은 말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기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살구요」, 「도시락」, 「뭐시 중한디」 등에서 드러나는 말놀이는 언어유희를 넘어 사회풍자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위험하다. 언어유희의 과잉은 시의 정서적 밀도나 중심 메시지를 희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많은 시에서 발견되는 기발한 표현들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그의 시를 믿는다. 「몽당연필의 봄바람」, 「점심 생략」, 「4월의 화인」 등의 시편들은 시간과 인간, 사랑과 이별, 삶과 죽임이라는 고전적인 시적 주제들을 다양한 형식과 은유로 녹여낸다. - 김승강 (시인)
안창섭 시인은 그늘 속에서도 그림자를 심안으로 품을 줄 알고 바람과 마주 앉아 술잔을 건넬 줄 아는 시인이다. 삶의 모서리와 비탈과 구석에서도 그는 시작의 삽날을 땅심 깊이 박을 줄 안다. 그의 시는 부정맥 심장의 바람 같아서 문장의 결을 자유자재로 변형시킴에 있어 그침이 없다. 또한 근육질이 팽팽한 일상을 통해 건장한 시간을 경영해 가며 응축된 문맥의 탄력성으로 시의 외연을 확장하는데 익숙한 시인이다. 그래서 그의 시는 숨은 그림도 없을뿐더러 뒤끝도 없어서 정직하고 담백하다. 투명한 눈물의 뼈를 발칸의 장미와 함께 포장해서 유배시킨 사랑 쪽으로 방목하고 돌아와 능청스럽게 술잔을 들이켤 줄 아는 시인은 많지 않다. 그러나 그의 술잔에 채워진 고독과 그리움은 정제되지 않은 25도의 눈물이다. 그 눈물 속에서 풍기는 비릿한 안창섭 시의 체취는 생산적이며 너무 인간적이어서 나는 좋다. - 김시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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