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섭의 시가 변했다. 길이가 짧아지고 행갈이도 빈도가 높아졌다. 길게 이어지던 산문시는 숨이 가쁠 지경이었다. 그는 마라토너이다(100회 이상의 완주 기록을 갖고 있다고 한다). 마라톤을 한 번도 완주해본 적이 없는 나는 그의 호흡을 쫓아갈 수 없었고, 중도에 포기하곤 했다. 그의 시는 여전하다. 여전히 앞말의 꼬리를 물고 뒷말이 이어지고 뒷말은 그 뒷말에게 바통을 넘겨주었다. 언어유희 혹은 말놀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젊은 시인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기법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살구요」, 「도시락」, 「뭐시 중한디」 등에서 드러나는 말놀이는 언어유희를 넘어 사회풍자적 장치로 기능하는 것 같다. 그래서일까, 그의 시는 위험하다. 언어유희의 과잉은 시의 정서적 밀도나 중심 메시지를 희석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그의 많은 시에서 발견되는 기발한 표현들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다. 그의 시를 믿는다. 「몽당연필의 봄바람」, 「점심 생략」, 「4월의 화인」 등의 시편들은 시간과 인간, 사랑과 이별, 삶과 죽임이라는 고전적인 시적 주제들을 다양한 형식과 은유로 녹여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