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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구자명 _ 카페 샌프란시스코, 애틀랜타 | 지상의 집 한 칸 | 포물선이거나 원이거나 혹은 구준회 _ 어떻게 살았을까 | 어머니의 비 | 추억의 아이스크림 김민효 _ 감당할 수 없는 웃음 | 시인의 비명을 빌렸다 | 남자를 보았다 김은경 _ 여덟 살 무렵 | 수돗가 | 엄마에게는 김의규 _ 내가 죽인 사람들 | 씨 쏘우 씬 | 피노키오 김정란 _ 초대장 | 꿈꾸는 밥상 | 낮이 가장 긴 날 김정묘 _ 뼈의 내력 | 미로여행 | 새의 길 김채옥 _ 내 유년의 뜰 김 혁 _ 영혼의 성장통 1 - 덫 | 영혼의 성장통 2 - 매기의 추억 | 영혼의 성장통 3 - 희생양 남명희 _ 초콜릿 한 개 | 할미바위 | 지피에스 노순자 _ 불안은 없다 | 풍경 | 마침내 자유인 박명호 _ 돈돈 1 | 돈돈 2 - 역학 | 돈돈 3 - 주눅 배명희 _ 첫사랑 | 불 꺼진 무대 | 정든 유곽 백경훈 _ 그림자 심아진 _ 감자와 나 | 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 | 사이렌 안영실 _ 늑대가 운다 | 앵두 | 고추장과 나비 유경숙 _ 그 가을의 전설 | 독한 년 | 일진 사나운 날 윤신숙 _ 윤기 있고 신선한 숙녀의 옷 보따리 풀기 1 | 윤기 있고 신선한 숙녀의 옷 보따리 풀기 2 | 윤기 있고 신선한 숙녀의 옷 보따리 풀기 3 이성우 _ 소심한 반항 | 어떤 하루의 좌절 이진훈 _ 언제든 돌아갈 자신이 있다 | 하루 세 끼가 꿀맛입니다 | 아들을 위한 청탁 이하언 _ 우리 집에 왜 왔니 | 황혼의 골목길 | 몽골, 그 끝없는 평원 임나라 _ 끈은 눈물로 흐르고 | 강가의 하얀 호텔 체류기 | 시어머니, 그녀 임상태 _ 우럭 | Qyd | 내일의 정원 정인명 _ 어떤 시선 | 잃어버린 6학년 | 고독한 자유 정혜영 _ 참 좋은 친구 | 넋두리 | 낡은 사진을 보다 최서윤 _ 나비와 바다 | 나는 커서다 | 토끼, 팬더 그리고 거북이 추천의 글 다양한 이론, 다양한 작품세계 _ 임헌영 미니픽션, 신의 묘수의 말 _ 황충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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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아침, 요 며칠 졸졸 새던 세면대의 수도 파이프가 드디어 터지면서 욕실 바닥이 물바다가 되자, J는 세수하다 말고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아파트 단지 내 설비공사 점포에 갔겠거니 하고 기다렸으나 그녀는 여지껏 돌아오지 않고 있다. - 19쪽
아뿔싸, 뺏기면 안 되는데. 그 생각도 순식간, 그 애는 아이스케 키를 입으로 가져가는 게 아니라 얼굴에 대고 마구 문지르기 시작 했어. 땟국물과 황토 흙먼지와 땀이 뒤범벅돼 얼룩덜룩한 그 얼굴에, 콧물이 누우렇게 흐르는 코에, 땀이 꼬질꼬질한 이마에. 이렇게 잽싸게 온 얼굴에 아이스케키를 문지른 그 애는 “자, 먹어.” 그러면서 내게 아이스케키를 디미는 거야. - 42쪽 훈련소로 오는 이른 새벽 핸드폰은 시인의 죽음을 수신하느라 요동을 쳤다. 기섭이 소식, 들었어요? 충주 건대병원 영안실…… 주희. 연락 주세요. 언니야, 기섭이가 죽었다. 빨리 온나. 미희. 누나, 기섭이 사망. 즉시 연락 바람. 승우. 기섭이가 죽었대. 가야지? 등등.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는 동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글자들이 모두 살아나서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구물구물…… 꾸물꾸물…… - 53쪽 어느 늦은 봄날, 한여름처럼 날씨가 더워졌다. 마당에서 놀고 있는 아들이 궁금해서 읽던 책을 덮어 두고 현관문을 열었다. 수도를 틀었다 잠갔다 하면서 노는 아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였다. 마당에서 빨래를 널던 주인 여자가 갑자기 우리 아들 등짝을 내리치며 하얗게 눈을 흘겼다. “아니, 얘가! 물값이 얼마나 나가는데 물장난을 하는 거야!” - 68-69쪽 ‘사필이’, 성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니 처음부터 몰랐다. 나보다 너덧 살 위지만 친구다. ‘사필이’는 정상적으로 앞으로 걷질 않는다. 늘 게처럼 옆으로 걷거나 뛴다. 뛸 때는 마치 긴팔원숭이가 뛰는 것 같다. 그것이 재미있어 보여 나도 따라 같이 뛰다가 친구가 됐다. 매일 보고 매일 같이 동네를 몇 바퀴씩 뛰는데 언제부터 인가 보이질 않는다. 무심코 “죽었나?” 했다. 며칠 뒤 그가 죽었다고 했다. ‘사필이’는 간질병 환자였다. ‘살아 있나?’ 했더라면 좋았을 일이다. - 75쪽 여자의 엄마는 그날 처음으로 아버지의 숟가락을 놓지 않았다. 여자는 엄마가 젓가락을 움직일 때마다 반찬 접시 안의 꽃들이 뚝, 뚝 떨어지는 것 같았다. 여자는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았다. -92쪽 그러나 기적은 일어나는 순간 바로 낭떠러지라는 것을 아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다들 이런 경험이 있지 않은가. 더 긴 설명은 필요치 않을 것이다. 기차가 떠나기 직전 좌석표를 들고 내가 앉은 자리로 몰이꾼처럼 다가오는 신사와 숙녀. 나는 자리에서 쫓겨나면서도 교양 있는 웃음으로 초라한 나를 포장한다. -104쪽 나는 그의 덫에서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내 힘으로는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거나 호소할 수도 없었다. 집에서는 날마다 늦게 온다고 야단을 맞았다. 탈출구는 어디에도 없었고, 희망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어린 마음에도 ‘이제 세상이 끝났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124쪽 그 후, 나는 그녀의 꿈을 꾸면 꿈속에서도 쿵쾅쿵쾅 심장이 뛰었다. 2만 원을 돌려주지 못한 죄책감은 두고두고 나를 괴롭히는 가슴앓이가 되었다. 10원짜리 동전이 떨어진 것만 보아도 나는 깜짝 놀랐다. ‘지금 당신은 지피에스로 추적을 받고 있습니다.’ 그 팻말은 정말이었다. 나는 늘 지피에스의 추적 반경 안에 있었다. ---pp.150-1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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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치료의 가능성 보여준
미니픽션 작가 26인의 한뼘자전소설 미니픽션, 이른바 한뼘소설이 우리나라에서 태동한 지도 10년이 넘었다. 한국미니픽션작가회를 중심으로 뿌리를 뻗어가고 있는 미니픽션은 인터넷과 스마트폰으로 대변되는 현대의 속도와 영상문화에 적합한, 새로운 문학 형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문학평론가 임헌영은 “미니픽션은 인쇄매체보다는 오히려 핸드폰이나 소셜네트워크에 더 적합한 문학 장르로 개발한다면 선풍적 인기를 끌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에는 A4 한두 장 분량의 짧은 자서전 쓰기를 통해 문학치료 가능성까지도 보여주고 있다. 이번에 미니픽션 작가 26명이 참여한 한뼘자전소설집《나를 안다고 하지 마세요》는 바로 그 결실로, 총 73편의 자전소설이 실려 있다. 지난 2월 펴낸 《내 이야기 어떻게 쓸까》가 한뼘자전소설 작법이라면 이번에 나온 책은 미니픽션 작가들의 한뼘자전소설 모음집이다. 한뼘자전소설은 자신의 생애를 있는 그대로 쓰는 자서전과 달리 특정 사건이나 국면, 특히 잊히지 않는 일이나 아픈 상처들을 끄집어내 소설 기법으로 쓰는 문학 장르를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집에 실린 소설들에는 작가들의 지나온 삶의 체취가 흠씬 묻어난다. 어떻게 보면 가슴속에 묻어두고 싶었을지도 모를 아픈 상처와 기억들도 솔직하고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비롯해 청소년기의 방황과 영혼의 성장통, 첫사랑, 아픈 가족사, 병으로 인한 고통 등 살면서 겪어야 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소설로 형상화했다. 미니픽션작가회는 ‘책을 펴내며’에서 “우리는 과잉고백의 세상에 살고 있다. SNS 등 다양한 매체는 우리에게 끝없이 고백하기를 강요하고 있고, 이러한 매체를 통해 유사한 형태의 자기고백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너(타자 혹은 대중)의 반응 역시 실시간으로 이루어진다. 이러한 빈번한 교류에도 불구하고 인간관계는 더욱 빈곤해지고 개인의 심리 상태는 단절과 고립 그리고 불안이란 병증의 늪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러한 현상의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의 하나가 문학치료”라면서 “특히 자전소설 쓰기는 자기를 대상화하여 냉철하게 분석하고 응시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무한경쟁과 무한질주의 도정에서 잠시 벗어나 온전히 자신에게로 돌아감으로써 자신 혹은 또 다른 자신과 만날 수 있고 화해할 수”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보편적 동질성을 확보함으로써 독자에게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들의 상처를 내보임으로써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치유의 길을 열어 준다는 것. 이처럼 한뼘자전소설 쓰기가 갖는 의미는 상상 외로 크다. 이에 서울시 은평병원은 미니픽션작가회와 지난 2월 업무협약을 맺고 현재 좋은 호응을 받으며 문학치료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이 작품집에 참여한 작가들의 면면도 소설가·시인·수필가·화가?임상심리 전문가 등 다양하다. 한뼘자전소설의 확장성이 그만큼 넓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우리들도 한뼘자전소설을 읽고 또 쓰면서 각자 가슴속에 묻어둔 뜨거운 불을 다스리고, 나아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면 좋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