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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reat archive series

디스크

CD 1

  • 01 Falla : Danza Espanola No.1 - La Vida Breve
  • 02 Albeniz : Sevilla (Sevillanas) - Suite Espanola
  • 03 Villa-Lobos : Impresoes Seresteinas - Ciclo Brasileiro

아티스트 소개 4

작곡Manuel de Fal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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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엘 데 파야

스페인의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이사크 알베니스, 엔리케 그라나도스와 함께 20세기의 위대한 스페인 작곡가중 하나로 평가된다. 카디스에서 태어나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워 마드리드 음악원에 다녔고 한편으로 국민음악파의 지도자 페드렐의 가르침을 받았다. 28세 때 오페라 〈허무한 인생〉을 작곡하여 인정받았고 31세 때 파리에 유학하여 드뷔시, 뒤카, 라벨, 알베니스 등과 친교를 맺어 7년에 걸친 면학으로 그의 음악사상을 현저하게 높임과 동시에 페드렐의 가르침을 받고부터 계속 지니고 있던 스페인 음악의 올바른 존재의식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역경
스페인의 낭만주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이다. 이사크 알베니스, 엔리케 그라나도스와 함께 20세기의 위대한 스페인 작곡가중 하나로 평가된다.

카디스에서 태어나 어릴 때 어머니로부터 피아노를 배워 마드리드 음악원에 다녔고 한편으로 국민음악파의 지도자 페드렐의 가르침을 받았다. 28세 때 오페라 〈허무한 인생〉을 작곡하여 인정받았고 31세 때 파리에 유학하여 드뷔시, 뒤카, 라벨, 알베니스 등과 친교를 맺어 7년에 걸친 면학으로 그의 음악사상을 현저하게 높임과 동시에 페드렐의 가르침을 받고부터 계속 지니고 있던 스페인 음악의 올바른 존재의식을 더욱 굳히게 되었다. 또한 그는 역경에 처해 있는 디아길레프 무용단을 위하여 〈삼각모자〉를 작곡하여 파산상태에 있던 친구 막스 에시그에게 전작품의 출판을 맡기는 등 인정미가 두터운 사람이기도 하였다. 제2차 대전 발발과 동시에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여 거기서 별세하였다. 그의 유해는 스페인 군함에 의하여 출생지 카디스로 옮겨져 성당에 안장되었다.

파야는 스페인 민족의 생기와 정열이 넘쳐흐르는 고도의 예술음악을 만들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발레음악 〈사랑은 마술사〉, 〈삼각모자〉, 관현악곡 〈스페인 정원의 밤〉, 협주곡 〈하프시코드 협주곡〉, 오페라 〈페드로의 인형극〉, 〈이네스의 사랑〉, 가곡 〈7개의 스페인 민요〉, 〈프시케〉, 〈3개의 노래〉, 피아노곡 〈안달루시아 세레나데〉, 〈4개의 스페인 소품〉등의 불멸의 작품을 남겼다. 그 작품수는 대작가로서는 결코 많은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모두가 걸작이다. 그의 작품은 연찬을 거듭한 것이어서 악보는 음 하나도 부족함이 없고 지나침도 없다. 그 기법은 대체로 단순화되어 있지만 그것은 외면의 허식을 버린 내면의 풍부한 높은 예술을 희구하는 그의 작곡이념인 것이다. 그는 작곡의 소재로 고향 안달루시아 지방에 예로부터 전해오는 민족음악의 요소를 취하였다. 즉 그 민족의 피와 정신이 파야의 높은 음악사상에 의하여 예술적으로 표현된 걸작이라고 하겠다.

Manuel de Falla의 다른 상품

작곡Isaac Albeni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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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알베니즈,Isaac Manuel Francisco Albeniz y Pascual

에스파냐의 근대 피아노 음악의 대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다. 동북부의 카탈루냐에서 태어났으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에 매혹되어 그 풍물을 묘사하다가 서(西)피레네의 피서지 칸보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4세 때 바르셀로나의 로메아 극장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7세 때 작곡한 파소도블레를 시(市)의 군악대가 연주했다는 천재이다. 알베니스는 어릴 때는 물론 청년시절에 심한 파란을 겪었고 만년은 영예에 빛나는 호사한 일생이었다. 6세 때 파리에서 마르몽텔에게 배우고 8세 때 마드리드로 옮겨 음악원에서 멘디사발에게 배웠다. 이때 쥘 베른 과학소설을 탐독하고
에스파냐의 근대 피아노 음악의 대작곡가이며 피아니스트이다. 동북부의 카탈루냐에서 태어났으나 남부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에 매혹되어 그 풍물을 묘사하다가 서(西)피레네의 피서지 칸보에서 별세하였다.

그는 누나에게 피아노를 배웠고 4세 때 바르셀로나의 로메아 극장에서 독주회를 가졌고 7세 때 작곡한 파소도블레를 시(市)의 군악대가 연주했다는 천재이다. 알베니스는 어릴 때는 물론 청년시절에 심한 파란을 겪었고 만년은 영예에 빛나는 호사한 일생이었다.

6세 때 파리에서 마르몽텔에게 배우고 8세 때 마드리드로 옮겨 음악원에서 멘디사발에게 배웠다. 이때 쥘 베른 과학소설을 탐독하고 모험에 흥미를 느낀 끝에 가출하여 단신으로 에스파냐 북부를 연주여행하였으나 사모라에서 그 당시의 명물인 산적을 만났고, 한편 누나의 사망으로 부득이 귀가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다시 집을 뛰쳐나와 남에스파냐를 여행하였으며 이때 본 풍물과 민족음악이 소년 알베니스를 매혹시켜 이것이 후년 많은 걸작을 낳게 하였다. 카디스의 시장으로부터 "부모에게 돌아가지 않으면 체포하겠다"는 통고를 받고 항구에서 배를 타고 남미로 건너가 각지로 연주여행하면서 쿠바로 갔을 때 우연히 아바나의 세관에 근무하는 아버지를 만났으나 알베니스는 이미 경제적으로 독립된 13세의 음악가였으므로 아버지의 허락을 받고 여행을 계속하였다. 뉴욕에 왔을 때는 가진 돈이 없어 항구의 화물 운반 인부로 또는 바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면서 끼니를 이었다. 이때 바에서 연주할 당시 그는 피아노를 뒤로 등지고 양손을 뒤집어 여러 가지 곡을 연주하였다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뒤 영국에서 독일로 건너와 야다스존과 라이네케에게 배우고, 귀국하여 국왕의 보조로 브뤼셀 음악원에서 배워 18세 때 우등으로 졸업하였으며 그 뒤에 리스트에게 배워 대피아니스트 안톤 루빈시타인과 함께 연주여행을 하여 20세로 세계 일류의 피아니스트가 되었으나 이것으로 그의 연주활동은 그쳤고 그 뒤로는 작곡에만 전념하였다.

23세 때 페드렐한테 배운 뒤 그의 작곡은 일변하여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세간에서 말하는 플라멩코라고 하는 향토민요 춤곡)의 형식과 정신을 바탕으로 한, 개성적인 불멸의 피아노 작품을 수없이 남겼다. 전기의 작품 <에스파냐의 노래>(5곡), <에스파냐 모음곡>(8곡), <여행의 추억>(6곡), <붉은 색의 탑>, <탱고> 등은 모두 세계적으로 보급되어 후세에 남은 명곡이나, 이 시기의 곡 중에서는 <에스파냐의 노래> 중의 한 곡 <코르도바>가 최고작이라 할 수 있다. 후기의 작품에는 보다 고도의 <카탈로니아>, <라 베가>, <아스레포스>, <이베리아 4권 12곡> 등이 있다. 특히 <이베리아>는 그가 만년에 파리에서 고국을 회상하며 각지의 인상을 묘사한 것으로, 안달루시아의 민족음악의 요소를 예술적 형성 속에 자유롭게 이상화시킨 걸작이다. 민족음악의 형식과 에스프리를 소재로 한 모음곡이 이와 같이 고도로 예술화된 것은 매우 드물며, '브람스 이후의 최고의 피아노 문학'이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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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곡Heitor Villa-Lob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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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토르 빌라 로보스

브라질의 작곡가. 1887년 3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스페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서관 사서이자 아마추어 작곡가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1899년 아버지가 죽은 뒤 카페와 영화관에서 첼로 연주를 했다. 1905년에 브라질 북동부를 여행하면서 민속 음악을 수집했다. 이 여행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어, 북동부에서 식인종을 만났을 때의 모험을 회고한 것은 믿기 어렵다. 그 후에 리우데자네이루의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했지만 빌라로부스의 작품은 너무 독창적이었다. 몇 년 후에 빌라로부스 자신이 한 말을 빌리자면 그의 음악은 “폭포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대학
브라질의 작곡가. 1887년 3월 5일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스페인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도서관 사서이자 아마추어 작곡가인 아버지에게 음악을 배웠다. 1899년 아버지가 죽은 뒤 카페와 영화관에서 첼로 연주를 했다.

1905년에 브라질 북동부를 여행하면서 민속 음악을 수집했다. 이 여행에 대해 알려진 것은 별로 없어, 북동부에서 식인종을 만났을 때의 모험을 회고한 것은 믿기 어렵다. 그 후에 리우데자네이루의 국립 음악원에서 공부했지만 빌라로부스의 작품은 너무 독창적이었다. 몇 년 후에 빌라로부스 자신이 한 말을 빌리자면 그의 음악은 “폭포처럼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대학은 거기에 한 발을 내미는 순간 최악으로 변하게 되는 것”이었다.

1912년 아마존 우림 지역에 갔다 온 것을 마지막으로 리우데자네이루로 돌아와서 정착했다. 1915년 11월 13일에 첫 작품 발표회를 가졌다. 그의 재능은 인정받아 1923년에 정부지원금을 받아 파리로 유학을 가게 되었다. 1930년에 돌아와서는 음악을 가르쳤다.

빌라로부스의 음악 교육 역시 훌륭한 업적이다. 당시 세대의 브라질 사람들을 위한 음악 교수법을 고안해 냈는데, 브라질의 음악문화와 그들의 애국심을 바탕으로 한다. 민족음악을 접목시켜서 학생들을 위한 대편성 합창곡을 썼다. 빌라로부스가 죽은 지 40년이 지났지만 그의 교수법은 삼바 음악과 MTV에 영향을 받는 브라질의 지금 세대에게도 공감을 받고 있다.

1944년부터는 미국 전역을 돌며 지휘 활동을 하고, 미국 오케스트라에서 위촉된 작품과 영화음악을 작곡했다. 1959년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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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Magda Tagliafer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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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corded : 1960,1951
Stereo/MONO ADD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매일
2005년 07월 15일
시간/무게/크기
크기확인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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