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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왜 지금 제노사이드인가
제1부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1. 제노사이드 개념의 발명 : 라파엘 렘킨 2. 제노사이드의 정치학 : 제노사이드 협약의 성립 과정 3. 제노사이드 협약에 대한 비판과 대안 4.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제2부 전쟁 범죄, 반인도 범죄, 제노사이드 범죄 1. 뉘른베르크 국제군사법정 헌장 2. 전쟁 범죄 3. 반인도 범죄 4. 제노사이드 범죄 제3부 세계사의 제노사이드 1. 프런티어 제노사이드 2. 문명의 한복판에서 : 나치 독일의 제노사이드 3. 민족과 종교의 학살 이중주 : 남동부 유럽 4. 혁명의 이름으로 일어난 제노사이드 5. 식민화와 탈식민화 과정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 제4부 한국 현대사와 제노사이드 1. 우리에게도 제노사이드가 있었는가 2. 제주 4·3 3. 보도연맹원 학살 나오는 말 : 제노사이드의 예방을 위하여 찾아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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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집단이 이 정도였다면, 과연 이 가운데 목숨을 잃은 사람은 얼마나 됐을까? 독일의 역사가 뮐러는 법정에 기소된 5만여 명의 동성애 혐의자들 중 유죄 판결을 받고 강제 수용소에 수감된 사람은 1만 명 내지 1만 5,000명이었다고 주장했다. 그의 결론에 따르면, 이 가운데 나치스의 가혹한 처우 때문에 실제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수백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다수의 학자들은 강제 수용소에서 희생된 동성애자가 적어도 5,000명은 넘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학자에 따라서는 1만 5,000명 정도가 희생되었다고 추산하기도 한다.
최근에 와서 어둠 속에 묻혀 있던 사건의 진상이 속속 밝혀지고 있기는 하지만, 아직도 이들의 죽음을 제노사이드로 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왜냐하면 동성애자는 유대인이나 집시와는 달리 자신이 성적 정체성만 드러내지 않으면 얼마든지 위험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스의 위협에서 벗어나 끝까지 살아나은 동성애자들이 죽은 동성애자들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한다. --- p.1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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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야만의 세기를 넘어서기 위해 기억되어야 할 역사, 제노사이드
제노사이드Genocide는 특정 집단을 멸절시킬 목적으로 그 집단의 구성원을 대량 학살하는 행위를 말한다. 제노사이드는 고대부터 있어왔는데, 그리스와 트로이의 전쟁, 로마에 의한 카르타고의 멸망, 십자군 전쟁 등이 제노사이드의 범주에 들어간다. 이렇듯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제노사이드는 20세기 들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집단 학살 방지를 위해 1999년에 설립된 시민단체인 ‘제노사이드 감시Genocide Watch’는 지난 100년 동안의 제노사이드 희생자를 모두 1억 7,500만 명으로 파악하고 있는데, 같은 시기에 전쟁에서 사망한 사람의 수가 4,000만 명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는 엄청나게매우 놀라운 수치다. 그러나 그동안 우리는 제노사이드를 우리와는 직접 상관없는, 뉴스에서나 볼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해왔다. 홀로코스트를 비롯한 대규모 집단 학살에 관한 연구를 진행해온 저자는, 제노사이드를 본격적으로 다룬 국내 최초의 저작《제노사이드―학살과 은폐의 역사》에서 제노사이드가 더 이상 남의 일이 아님을, 우리에게도 일어났으며, 언제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근대 이후 전 세계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에 대한 연구를 통해 이 땅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의 성격을 규명하고, 과거에 대한 진정한 성찰을 요구하는 이 책의 작업은 최근 우리 사회에 일고 있는 과거사 진상 규명 논쟁에도 많은 점을 시사한다. 2. 제노사이드란 무엇인가 ‘제노사이드Genocide’는 폴란드 출신의 유대인 법학자 라파엘 렘킨Raphael Lemkin(1900~ 1959)이 처음 만든 용어로, 인종이나 종족을 뜻하는 고대 그리스어 genos에 살인을 의미하는 라틴어 cide를 결합한 복합어다. 1944년 출간된 자신의 책《점령된 유럽에서의 추축국 통치Axis Rule in Occupied Europe》(Carnegie Endowment for International Peace, 1944)에서 엄청난 규모의 인종 학살에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을 부여한 렘킨은 나치 독일이 저지른 것과 같은 만행을 예방하기 위해 제노사이드를 국제법상의 범죄로 규정하고 제노사이드를 명령한 사람과 그 명령을 집행한 사람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의 노력의 결과로 1946년 유엔 총회에서 제노사이드가 국제법상의 범죄로 공인되었고, 2년 후인 1948년 유엔 총회에서 제노사이드에 관한 협약이 체결됨으로써, 제노사이드에 해당하는 범죄 행위와 처벌받아야 할 대상이 정의되었다. 제노사이드 협약에 따르면 제노사이드는 “국민·인종·민족·종교 집단 전체 또는 부분을 파괴할 의도를 가지고 실행된 행위”로 집단 구성원을 살해하는 것, 집단 구성원에 대해 육체적·정신적 위해를 가하는 것, 육체적 파괴를 초래할 목적으로 의도된 생활조건을 집단에게 고의로 부과하는 것, 집단 내의 출생을 방지하기 위해 의도된 조치를 부과하는 것, 집단의 아동을 강제적으로 타 집단에 이동시키는 것이 포함된다. 3. 언제, 어디서, 누가, 누구를, 왜, 어떻게, 얼마만큼 죽였는가 《제노사이드―학살과 은폐의 역사》는 세계사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제노사이드 가운데 대표적인 13건의 사례를 선택해 다섯 개의 유형으로 나눠 보여준다. 즉 백인에 의한 북아메리카 인디언과 태즈메이니아 원주민 학살을 다룬 프런티어 제노사이드, 나치 독일에 의한 유대인·집시·장애인·동성애자 학살을 다룬 나치 독일의 제노사이드, 터키의 아르메니아인 살육과 보스니아·코소보의 인종 청소를 다룬 민족과 종교에 의한 제노사이드, 스탈린 치하의 정치적 반대자 숙청과 캄보디아 크메르루주의 동족 학살을 다룬 혁명의 이름으로 일어난 제노사이드, 프랑스의 알제리인 학살, 르완다의 종족 분쟁, 인도네시아의 동티모르인 학살을 다룬 식민화와 탈식민화 과정에서 일어난 제노사이드로의 다섯 개 유형으로 나누고 각 사례의 발생 시기와 지역, 국내외 정치 상황과 조건, 희생자 집단의 특성을 설명한다.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저자의 명쾌한 기술, 풍부한 사진 자료들은 인간의 잔혹함과 추악함을 어떤 드라마보다 더 생생하게 전하며, 이러한 비극에 눈감았던 우리를 부끄럽고 당혹스럽게 만든다. 4. 우리에게도 제노사이드가 있었는가 그렇다면 과연 한반도는 어떠한가?《제노사이드―학살과 은폐의 역사》에 의하면, 한국전쟁이라는 동족상잔의 비극을 겪었던 우리에게 제노사이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보도연맹원 학살과 제주 4·3 등 한국전쟁 전후에 전국 각지에서 일어난 집단 학살의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식민지 해방과 혼란, 외세의 개입과 왜곡된 방식의 정치 엘리트 충원, 이로 인한 좌·우익의 대립과 테러, 그 결과로 일어난 대규모 학살은 캄보디아, 동 티모르뿐만 아니라 한반도에서도 일어났다. 내전이나 국가간의 전면전 중에 일어난 사건이 아니었음에도 제주 4·3으로 인한 희생자는 당시 제주도 전체 인구의 10분의 1 이상에 달했으며, 한국전쟁 전후에 학살된 보도연맹원의 수는 학자마다 다르기는 하나 1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게다가 보복 학살 같은 연쇄 살인까지 감안한다면 희생자는 더 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럼에도 그동안 우리가 제노사이드를 해외 토픽이나 강 건너 불처럼 여겨왔다면, 그것은 우리의 비극과 불행이 작았기 때문이 아니라, 제도적 억압과 지식인들의 직무 유기 때문이다. 유가족들과 일부 학자, 언론인들의 뒤늦은 노력으로 진상의 일부가 밝혀지긴 했지만 이 땅에서 불과 반세기 전에 일어났던 수많은 집단 학살 사건의 대다수는 아직도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상태에 있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가 겪었던 비극의 상흔을 치유하고 우리 세대에까지 세습된 사회적 균열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이런 비극을 우리나라 밖에서 일어난 비슷한 사건들과 비교함으로써 우리 경험의 크기와 의미를 파악하는 작업이 필요하며, 이 책은 이를 위한 단초를 제공할 것이다. 5. 제노사이드, 예방 가능한가 우리가 지금 살아가고 있는 21세기에도 이라크와 아프리카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는 유혈 사태가 진행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제노사이드 없는 세기는 불가능한가? 저자는 제노사이드를 예방하는 방법 혹은 예방까지는 아니라도 그 가능성을 현저하게 줄이는 방법을 국제적인 대책과 국내의 대책으로 나누어 제시한다. 먼저 국제적으로는 제노사이드가 일어날지를 예측하고 적절한 대책을 수립할 수 있는 강력하고 독립적인 조기 경보 시스템을 유엔 내에 설치하고, 제노사이드가 일어났을 때 즉시 개입할 수 있는 항시적인 신속대응군을 창설해야 한다. 국내에서는 제노사이드 관련자들을 고발하고 국제형사재판소에 기소하는 데 필요한 이행 입법이 조속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나라는 이미 1950년에 국제 제노사이드 협약에 가입했지만, 협약이 요구하는 이행 입법은 아직 제정되지 않았다. 따라서 제노사이드 협약의 정신을 그대로 살릴 수 있는 법안 입법이 시급하다. 그러나 이 책이 무엇보다도 강조하는 것은 제도나 장치가 아니라, 제노사이드를 막으려는 의지, 즉 시민적 양심이다. 나도 어쩌면 학살의 가해자나 피해자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르완다와 코소보에서 벌어진 일들을 쉽게 남의 일로 단정하지 않는다. 전쟁에 대한 교육을 통해 역설적인 방식으로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우듯, 저자는 제노사이드에 대한 교육을 통해 악몽 같은 집단 학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고 역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