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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머리말ㆍ『홀연히 깨어나는 신심명』 시작에 앞서신심명 강설1. 깨달음은 코 만지는 것보다 쉽다2. 내가 무너지면 허공이 열린다3. 비워놓음이 클수록 깨달음도 크다4. 진리는 고통을 손님으로 보낸다5. 마음은 지조 없이 변한다6. 현묘한 뜻은 잘 숨겨져 있다7. 허공은 모두를 품는다8. 시행착오는 나와 삶을 성숙하게 한다9. 완전히 비워지면 온전히 채워진다10. 차별을 떠나면 그대로 중도11. 온몸을 던지며 법문하는 벌12. 곧장 나로 향해라13. 통에서 빠져나와야 비로소 통을 굴린다14. 진리도 빠지면 병이 된다15·16. 고수에겐 놀이터, 하수에겐 생지옥17. 천 개의 달을 단번에 얻는다18. 근원으로 돌아가면 일체를 비춰 낸다19. 흙덩이를 쫓지 말고 사람을 물어라20. 삶은 처음부터 완벽했다21. 무분별의 마음이 진정한 사랑이다22. 봄은 이미 매화 가지에 걸려 있네23. 지킬 수 있다면, 진리가 아니다24. 백 척 장대 끝에서 뛰어내려라25. 중생이 사라지면 부처 또한 사라진다26·27. 진리는 나를 통해 흐른다28. 실체가 없으면 모두를 살린다29. 텅 빌 적에 충만해진다30. 경전의 위대한 비밀, 여시아문31. 고통은 분리에서 시작된다32. 쓸모없는 나무는 없다33·34. 나를 놓으면, 인연으로 흐른다35. 나로부터 벗어나면 번뇌도 지혜로 부린다36. 나조차도 하나의 이야기다37. 너무 멀지도 않고 너무 가깝지도 않게38. 보고 듣고 맛봄에는 죄가 없다39. 온몸 그대로가 법당이다40. 그 누구도 빈 배와 싸우지 않는다41. 법당의 주장자와 식탁의 숟가락42. 내 마음 같지 않아 고통스럽다43. 같이 어울리나 물들지 않는다44. 허공에 그림을 그려도 붓은 바래지 않는다45. 그거 다 환상이잖아요?46. 환영처럼 볼 수 있는 안목47. 깨달음의 끝, ‘중생놀이’48. 정토와 에덴동산을 떠난 적이 없다49. 나를 비우면 천하가 선물이다50. 나의 일이 끝나면, 진여의 일이 시작된다51. 간장 맛이 짠 줄 아는 것에 이유는 없다52. 평등과 차별을 동시에 보고 쓴다53. 거리낌 없이 두루 통하다54. 새로 태어나려는 자, 세계를 부숴라55. 마음에 걸림 없다면 사람의 호시절이라56. 구름이 걷히면 태양은 자연스럽게 빛난다57. 다만 두 다리 쭉 펴고 낮잠을 잔다58. 등불을 끄면 달빛을 얻는다59. 다만 나를 둘러싼 관념만 거두어낼 뿐60. 법에는 차별이 없지만, 사람에게는 차이가 있다61. 졸리면 하품하고 피곤하면 누워 쉰다62. 창문을 열면 곧장 청산이다63. 다만 불이(不二)라고 말할 뿐64. 과거 현재 미래가 모두 한바탕 꿈65. 불법은 눈앞에 있다66·67. 수미산을 겨자씨에 집어넣는다68. 있는 그대로 허용하고 드러내다69. 머무는 바 없이 흐르는 무아와 연기70. 안목이 있어야 진리를 본다71. 단지 시절인연을 기다릴 뿐72. 신심의 시작과 끝은 깨달음이다73. 영원으로 회귀하다ㆍ맺는말부록ㆍ『신심명』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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圓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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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순간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친구의 장난·칼수좌·법당에 오줌 눈 스님… 수좌 원제 스님의 생생한 경험에서 찾은 세상을 놀이터로 만드는 고수가 되는 방법『신심명』은 146구 584자라는 짧은 글이지만, 팔만대장경과 1,700 공안을 압축했다고 평가받는 문헌이다. 선문(禪門)에서는 반드시 읽어야 하는 선어록(禪語錄)으로 깨달음을 노래한 오도송(悟道頌)의 표준이자 선의 나침반이라 여겨진다. 이 불멸의 고전은 “집착하는 마음만 조심하면 깨달음은 쉽다”는 첫 문장으로 독자를 단번에 뒤흔든다. 불교에서 ‘깨달음’이란 수없이 도달하려 했으나 좀처럼 가깝게 느껴지지 않는 세계다. 그런데 쉽다고 한다. 다만 ‘좋고 싫음을 따지는 마음’만 내려놓는다면. 수좌 원제 스님은 이 도발적인 가르침을 생생한 경험으로 풀이한다. 『홀연히 깨어나는 신심명』은 스님이 선방에서 직접 겪은 수많은 수행의 좌절, 감정의 파고(波高), 삶 속에서의 번민과 깨달음의 순간을 『신심명』의 문장 하나하나에 녹여낸 책이다. 특히 수행자로서의 실전 경험과 일상 속 ‘마음 작용’을 엮어 ‘실시간의 감각’으로 깨달음의 순간을 풀어낸다. 공병(空病)에 빠져 법당에서 오줌을 눈 스님, 친구의 장난에 상처받았던 기억, 나와 너의 경계를 칼을 들고 나누던 수좌…. 때로는 무겁고 때로는 웃음을 자아내는 경험들은 깨달음의 길을 되짚는 친절한 안내가 된다. 백미는 밤 산행 중 홀연히 깨어난 경험이다. “밤 산행을 하며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수행이란 어찌 보면 내가 가지고 있는 등불을 차츰차츰 끄는 행위입니다. 등불을 가지고 있다면, 등불 주변은 밝아지게 됩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습니다. 내 등불이 밝히는 좁은 영역을 제외하고 나머지 영역은 상대적으로 어두워지게 된다는 점입니다. 내가 가진 등불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나의 틀이며 관점입니다. 내가 특정한 틀을 지니게 된다면, 우리는 고작 코앞에 있는 조그만 영역만 밝힐 뿐입니다. 하지만 나의 등불을 스스로 끌 수만 있다면, 우리는 달빛이라는 거대한 등불을 얻게 됩니다.” 『홀연히 깨어나는 신심명』은 교리 해설이 아니다. 깨달음의 순간이 어떻게 일상에서 드러나는지 생생하게 보여주는 책이다. 자신의 마음에 휘둘리면서 현재를 생지옥으로 만드는 하수가 아니라, 마음을 고요하게 바라보는 고수가 되어 세상을 놀이터로 만드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 그렇게 이 책은 우리 모두를 ‘지금 이 순간 깨어 있는 나’로 이끈다.깨달음이 낯설어도 읽기 편안한 강설마음 중심을 잡는 단단한 문장들의 향연무엇보다 이 책은 ‘깨달음’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거나 수행이 낯선 사람들에게도 부담 없이 다가간다. 『신심명』의 가르침을 두고 원제 스님은 “세수하다가 코를 만지는 것보다 쉽다”고 비유한다. 복잡한 설명 없이, 일상의 감각을 되찾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분별을 멈추고 고요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말처럼 이 책은 어렵지 않게, 단순하지만 정곡을 찌르는 방식으로 마음의 작용을 알려준다. 책을 읽다 보면 ‘좋다/싫다’, ‘맞다/틀리다’로 갈라지는 자기 안의 분별심이 얼마나 강한지를 알게 되고, 그것을 알아차리는 순간이 바로 ‘깨어남’임을 깨닫게 된다. 사찰의 풍경 소리는 좋지만 자동차 경적은 싫고, 칭찬은 듣기 좋지만 비판은 싫다고 여기는 이분법적 분별심의 뿌리 깊은 습관을 꿰뚫는 말들이 우리의 마음을 가만히 흔든다.그리고 이 모든 말들이 우리의 현실에서 실용적으로 작용한다. 하루를 시작하며 자신에게 던지는 한 문장의 질문, 일상에서 분별이 일어날 때마다 떠올리는 ‘간택하지 않는 마음’의 연습, 자기 자신과 싸우는 날 그 마음을 조용히 바라보는 시간…. 이 책은 더 이상 참선과 선어록 강설만이 수행이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이 순간, 숨 쉬며 살아가는 지금의 삶 전체가 수행의 도량이라는 점을 분명하게 알려준다.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불교 수행이 결코 먼 이야기가 아님을 증명한다. ‘내 마음이 왜 흔들리는지’, ‘어떻게 나를 다잡을 수 있는지’ 궁금한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책을 읽고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아침에 한 구절 읽으며 하루의 마음을 정비하거나, 잠들기 전 필사를 통해 마음을 정돈하는 루틴으로 활용해도 좋다. 자동차 사이드미러에는 “사물이 거울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이라는 문장이 적혀 있다. 『홀연히 깨어나는 신심명』도 생각과 감정이 휘몰아치는 세상 속에서 흔들림 없이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단단한 한 줄의 문장을 건넨다. “깨달음의 순간은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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