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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정 평전
제국의 트랙을 딛고 민족을 넘다
김성서재길
알렙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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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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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서장 제국 일본과 조선 민족의 '영웅'

제1장 마라톤에서의 약진: 1909-1932년

압록강 변에서: 스케이트화에 대한 동경
명문 양정고보에: ‘반도의 올림픽’에서의 활약

제2장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 1932-1936년

내선융화와 스포츠: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조선인 선수
일본 대표 선발: 라이벌과 민족의 우수성
금메달 획득: 올림픽 기록으로 우승

제3장 일장기 말소 사건의 충격: 1936년 8월

상이한 열광: 일본과 조선, 칭찬의 차이
지워진 ‘히노마루’: 조선 지식인들의 저항
경계 대상 인물로: ‘초대받지 못한 자’가 되다

제4장 제국 일본에 휘둘리다: 1936-1945년

일본 유학: ‘마라톤 포기’의 조건
조선반도로의 귀환: 은행 취업, 〈민족의 제전〉
전쟁의 격화와 대일 협력: 학도지원병 권유

제5장 해방 후의 세계에서: 과거의 영광과 굴레

1947년, 보스턴 마라톤 출전?
남북분단 시대로: 한국전쟁부터 국적 회복 사건까지
서울 올림픽 유치와 성화: 스포츠계의 숙명

종장 민족을 짊어진 ‘영웅’

후기
옮긴이의 말
참고문헌
손기정 연보

저자 소개2

KIN Makoto,金誠

1974년 일본 효고현 출신. 고베 대학 국제협력연구과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삿포로 대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스포츠사와 조선 근대사 전공이다. 『근대 일본ㆍ조선과 스포츠―지배와 저항, 그리고 협력』(공저, 2017), 『스포츠의 세계사』(공저, 2018), 『손기정―제국 일본의 조선인 메달리스트』(2020), 『제국 일본과 월경하는 선수들』(공편, 2020) 등의 저서를 출간했다.
울산 출신. 서울대 국어국문학과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국민대학교 한국어문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식민지 시기 미디어와 대중문화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만주, 경계에서 읽는 한국문학』(공저), 『조선 사람의 세계 여행』(편저) 등의 저서와 『전쟁과 성폭력의 비교사』, 『사할린 잔류자들』 등의 번역서를 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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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08월 25일
쪽수, 무게, 크기
256쪽 | 392g | 140*205*15mm
ISBN13
9791199403307

책 속으로

영웅으로서 손기정의 삶은 제국 일본 지배하의 조선 민족의 금메달리스트였다는 사실과 일장기 말소 사건이 늘 교차하면서 빛과 그림자를 드리운다. 손기정은 지금 국립대전현충원에 영면해 있다. 금메달리스트라고는 하지만 그는 어떤 이유로 국가를 위해 순국한 이들과 함께 국립묘지에 잠들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손기정의 생애사(life-history)를 통해 제국 일본에서 스포츠 영웅의 의미를 묻고, 이를 통해서 일본과 조선반도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근현대사를 그리려 한다.
--- 「들어가며」 중에서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젊은 시절 손기정의 삶을 옥죄었던 스포츠의 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는 손기정이 한국전쟁 직전에 열린 보스턴 마라톤에 다녀와서 내뱉은 “선수들을 정치 도구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
--- 「옮긴이의 말」 중에서

올림픽 경기장의 시상대에 선 손기정. 게양대에 일본 국기가 가장 높이 올라가고 ‘기미가요’가 흘러나온다. 그때 손기정의 뺨을 타고 흐르던 눈물의 의미는 오직 그 자신만이 알고 있었으리라. 감격의 눈물인지, 고충의 눈물인지, 아니면 미움과 울분에 사로잡힌 눈물인지. 큰 환성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마라톤 우승자를 맞이하는 경기장 관중들에게 그 모습은 어떻게 비쳤던 것일까. 히틀러는 손기정의 우승을 축하했다. 그는 위대한 운동선수이자 당시 세계에서 가장 빛나는 한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축하를 받은 손기정의 히틀러에 대한 인상 역시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 「서장 제국 일본과 조선 민족의 영웅」 중에서

8월 25일 자 〈동아일보〉 석간에 실린 손기정의 사진은 가슴팍에 달린 국기가 가공, 수정됨으로써 히노마루가 보이지 않도록 지워져 있었다. 운동부 기자 이길용을 중심으로 한 여러 명(8명이 구속되었다)의 〈동아일보〉 관계자들에 의해 이루어졌는데, 이는 영웅 손기정의 우승을 제국 일본으로부터 조선 민족에게 되돌리려 한 것이었다. 이 행위는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을 표현함으로써 제국 일본의 ‘영웅’을 조선 민족의 ‘영웅’으로 되찾아 나가려는 것이었다. 이 사건은 당시 손기정에게 힘든 상황을 가져왔다. 그 결과 손기정은 제국 일본 내에서 조선총독부를 중심으로 하는 식민 권력의 경계 대상이 되어, 특고(特高) 경찰에 의해 늘 감시당하는 대상이 되었기 때문이다.
--- 「서장 제국 일본과 조선 민족의 영웅」 중에서

손기정은 결승선을 통과한 후 20미터 정도를 그대로의 기세로 달려가 담요에 싸인 채로 엉덩방아를 찧듯이 넘어졌다. 곧바로 일어나 가볍게 달리기 시작하자 손기정보다 2분 정도 뒤처져서 달리고 있던 영국의 하퍼가 도착했고, 그 70-80미터 뒤에는 남승룡이 보였다. 남승룡은 후반부에 차례로 순위를 끌어올리며 경기장에서 마지막 스퍼트를 내고 있었다. 남승룡은 2위와는 19초 차이로 3위로 골인했다. 손기정은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우승했다. 제국 일본의 올림픽 마라톤 우승은 가나쿠리 시소가 처음으로 마라톤에 도전한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이후 일본 육상계의 염원이었다. 24년의 세월이 흐른 뒤 조선 출신의 한 청년이 그 꿈을 실현한 것이다. 손기정이 결승 테이프를 끊었을 때 그것은 손기정은 물론, 제국 일본에게도, 또 조선 민족에게도 영광스러운 순간이었음이 틀림없다.
--- 「제2장 베를린 올림픽의 영광: 1932-1936년」 중에서

손기정이 베를린 올림픽에서 우승한 1936년 8월 9일부터 보름 정도 지난 25일, 〈동아일보〉 석간에는 시상대에 선 손기정의 사진이 실린다. 그런데 가슴에 있어야 할 일장기의 히노마루가 흐릿해 일장기임을 알아볼 수 없도록 게재되었다. 사진에 찍힌 일장기가 지워져 있었던 것이다. 같은 날 조간에도 손기정, 남승룡, 하퍼 세 사람이 나란히 서 있는 사진이 실렸는데, 거기에는 손기정과 남승룡의 가슴에 일장기의 히노마루가 선명하게 드러났었다. 석간의 사진에서 일장기가 지워진 것은 의도적인 것임이 분명했다. 이 일장기 말소를 주도한 사람은 이길용으로, 당시 동아일보의 스포츠 기자였다.
--- 「제3장 일장기 말소 사건의 충격: 1936년 8월」 중에서

해외에서 생활하는 동포들의 모습, 그들이 소중히 여기는 태극기, 이러한 것들과의 만남과 경험은 손기정에게 영향을 끼쳤다.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해외에서 인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던 손기정도 마라톤 우승 후 각종 환영회 등에서 사인을 요청받으면 거기에 한글로 ‘손기정’이라고 쓰고 출신 국명은 영어로 ‘KOREA’라고 적었다.
--- 「제3장 일장기 말소 사건의 충격: 1936년 8월」 중에서

손기정은 어딜 가든지 경찰 등으로부터 감시를 받고 있었다. 나가사키부터 시작해서 고베에서 기차를 타고 이동한 도쿄에 이르기까지 올림픽에서 승리하고 돌아온 선수들을 환영하는 사람들로 넘쳐났지만, 손기정의 기분은 우울했다. 이때의 일을 손기정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어떻게든 빨리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고 말한다. 손기정은 이러한 감시의 스트레스에 극도로 지쳐 있었다. 올림픽 선수단은 도쿄에 체류하게 되었다. 손기정이 도쿄의 마루노우치 호텔에 머무는 동안 양정고보의 담임 황욱이 마중을 나와 주었다. 마침 남승룡의 은인이기도 한 스즈키 다케시가 축하 인사를 전하기 위해 손기정을 만나러 와 있었다. 손기정의 심정을 들은 스즈키는 주변에 있던 경찰을 꾸짖고서는 쫓아냈다고 한다.
--- 「제4장 제국 일본에 휘둘리다: 1936~1945년」 중에서

손기정은 정말 달리기를 그만둔 것일까? 메이지 대학에 진학한 뒤 일단 달리기를 그만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5월에 발행된 〈조광〉에는 「다음 세계 올림픽 제패를 기(期)하는 마라톤왕 손기정 군의 심경」이라는 인터뷰 기사가 실려 있다. 그 기사에서 손기정은 “한동안 운동을 안 하고 보니 도리어 인간적으로 점점 보잘것이 없는 것 같아서 다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라면서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또한 “소화 15년에 동경서 열리는 제12회 세계 올림픽 대회에 다시 출장하시겠습니까?”라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마음에 별 변화가 없는 한 출장하렵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손기정은 다음 올림픽도 겨낭하고 있었던 것이다. 다만 불안도 있었다. 손기정은 메이지 대학에 진학한 후 다시 학비와 생활비 문제로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것이 도쿄 올림픽을 준비하는 데 족쇄가 되었다. 이 무렵 손기정은 경성 적선동에 있는 성재육영회로부터 매달 45원의 장학금을 받았지만, 그 금액으로는 대학 수업료만 가까스로 납부할 수 있을 정도여서 생활은 궁핍했다고 한다.
--- 「제4장 제국 일본에 휘둘리다: 1936~1945년」 중에서

이제 손기정은 조선의 스포츠계 전체를 바라보게 된 것이다. 권태하, 정상희 등의 선배들을 이어 조선 스포츠계를 이끄는 입장에서 경기에 관한 코멘트를 요구받았던 것이다. 경기를 떠난 지 오래되면서 그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손기정은 유복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도시화된 경성의 은행에서 근무하며 많은 지식인 및 저명인사와 친분을 맺고 조선 스포츠계에서 지도적 입지를 다지고 있었다.
--- 「제4장 제국 일본에 휘둘리다: 1936~1945년」 중에서

또한 김구는 두 선수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나는 오늘까지 세계를 제패한 손기정 때문에 세 번 울었다. 10년 전 베를린에서 망국민의 한 청년으로서 세계 열강의 젊은이들과 사투를 벌여 우승했으나, 조선 사람이면서도 조선 사람 행세를 못해 신문지상에서 그대들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보면서 나는 울었고, 태평양전쟁이 일어났을 때 중국의 중경에서는 조선 청년 손기정이 일본군에 자원, 필리핀에서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불쌍해서 울었다. 그리고 오늘 죽었다던 손 군을 광복한 조국 땅에서 다시 보니 감격해서 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김구의 이 기념사는 ‘세 번의 눈물’로 불리며 손기정에게 보낸 말로 잘 알려져 있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두 번째 눈물은 민족의 영웅이 제국 일본의 병사로 지원해 전사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다른 데에서는 들을 수 없으므로 충칭(重慶)에서 퍼진 소문이 아닐까 짐작된다.
--- 「제5장 해방 후의 세계에서: 과거의 영광과 굴욕」 중에서

1981년 9월 바덴바덴에서의 감동은 지금도 누를 길 없다. 내 평생에 그렇게 즐거운 날은 없었던 것 같다.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 손기정 자서전』)
손기정은 한국의 위상을 건 올림픽 유치 활동에 참여했고, 유치가 결정되는 순간을 지켜보았다. 올림픽 개최 결정의 환희, 그리고 모국에서 처음으로 열리는 올림픽에 대한 기대와 희망으로 손기정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 「제5장 해방 후의 세계에서: 과거의 영광과 굴욕」 중에서

1988년 9월 17일, 한국을 상징하는 서울 올림픽이 개막했다.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올림픽이었다. 개회식에서 올림픽 성화가 잠실 올림픽 경기장 성화대로 옮겨졌다. 팡파르와 함께 성화를 든 주자가 경기장으로 들어왔다. 모습을 드러낸 사람은 바로 손기정이라는 노년의 주자였다. 베를린 올림픽의 영웅은 기쁨에 찬 모습을 온몸으로 표현하며 트랙을 달렸다. 10초 남짓의 달리기였다. 세계인 앞에서 제국 일본·조선 민족의 영웅은 시간이 흘러 열린 서울 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나서 한국의 차세대 젊은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성화를 이어주었다.

--- 「제5장 해방 후의 세계에서: 과거의 영광과 굴욕」 중에서

출판사 리뷰

1936년 8월 9일 마라톤 금메달의 영광
1936년 8월 25일 일장기 말소 사건의 고통


『손기정 평전』은 ‘영웅’의 두 얼굴을 그린다. 손기정은 제국 일본의 ‘대표 선수’와 식민지 조선의 ‘민족적 자부심’ 사이에서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 갈등은 8월 25일에 일어난 ‘동아일보 일장기 말소 사건’으로 극대화된다. 〈동아일보〉의 이길용 기자가 사진을 조작했고, 그 파장은 〈동아일보〉가 정간되는 사태로 이어졌다. 당시 손기정은 베를린에서 일본으로 오는 배에 승선하고 있었다. 일본에 도착한 후 손기정은 정치적 감시와 고난을 겪어야 했다. 단적으로, 손기정은 베를린 올림픽 이후 마라톤(운동)을 포기하는 사태에 이르렀다. 와세다 대학에 입학하는 조건이, 다시는 마라톤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마라톤을 제패한 스포츠 영웅이었지만, ‘일본 제국의 조선인 금메달리스트’라는 시대적 모순에서 온 내적 갈등으로 인해, 단 한 번의 영광과 이후 이어지는 고난의 나날을 겪어야 했다.

해방 이후 손기정은 민족의 ‘영웅’으로서의 삶을 보내며, 보스턴 마라톤 등에 코치로 참가하는 등 한국 체육계를 이끄는 인물로 활약했다. 이후로도 친일 발언, 국적 회복 사건,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활동 등을 통해, 스포츠의 정치화의 현장 한복판에 선다. 이 책을 관통하는 것은 젊은 시절 손기정의 삶을 옥죄었던 스포츠의 정치화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다. 이는 손기정이 한국전쟁 직전에 열린 보스톤 마라톤에 다녀와서 내뱉은 “선수들을 정치 도구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는 말에서 단적으로 확인된다.(옮긴이의 말)

단순한 전기나 영웅 찬양을 넘어서, 생애사를 통한 서사 구조의 심화

재일 한국인인 저자 김성 교수는 손기정의 삶을 통해 식민지기의 복잡한 역사적 배경과 스포츠가 개인과 민족에게 미치는 영향을 탐구하며, 그가 해방 후 한국 스포츠계에 기여한 공로와 국가적 영웅으로서의 위상을 조명한다. 김성 교수는 스포츠사와 조선 근대사를 연구했고, 『근대 일본?조선과 스포츠』, 『제국 일본과 월경하는 선수들』 등 다수의 저서를 집필했다. 저자는 학자로서의 엄정한 태도와 한일 간 역사 인식 차이에 대한 민감한 감수성, 그리고 광범위한 자료 조사와 해석에 노력을 기울였다. 먼저 일본어 1차 자료를 발굴 및 해석한 점은 기존의 “손기정” 평전이나 전기, 자서전을 충분히 보완하거나 새로운 손기정의 얼굴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학문적 가치가 크다. 김성은 일본 현지 학자로서, 일본 내에 남아 있는 1차 사료와 당시 언론, 자서전, 공문서 등을 폭넓게 섭렵했다. 특히 손기정과 관련된 일본 측의 기록들, 예컨대 올림픽 관련 보도, 교육 기관 문서, 경찰 기록 등은 한국 학계에서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어려운 자료이다. 일본 제국주의의 입장에서 손기정을 어떻게 소비하고 활용했는지를 사료를 통해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또 저자는 손기정의 경력 전반에 걸쳐 스포츠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된 맥락을 분석하는데, 이를 통해 ‘스포츠의 정치화’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한다. 특히 일장기 말소 사건, 전시 체제에서의 협력 압박, 해방 후 민족 영웅으로의 재구성 등을 비판적 시각에서 조망한다. 이는 손기정을 단순히 ‘민족의 영웅’으로만 추앙하는 기존 서사에서 벗어나게 하며, 영웅화의 이면을 사유하게 만든다. 스포츠사와 제국주의 연구, 대중 기억 연구 사이의 학제적 성과로 볼 수 있다. 이렇듯, 저자는 평전을 단순 연대기로 구성하지 않고, 역사적 맥락과 손기정 개인의 선택과 고뇌를 교차 서술한다. 손기정이 무엇을 느꼈고, 왜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탐색한다. 이는 인물에 대한 감정 이입을 유도하면서도 역사적 균형 감각을 잃지 않는 서술 방식으로, 독자로 하여금 ‘영웅’과 ‘개인’ 사이의 간극을 자연스럽게 인식하게 한다. 이러한 생애사(life-history)를 통한 서사 구조의 심화는 학문적으로는 일본 내 자료 접근성과 식민지 스포츠사의 새로운 해석을 제공했고, 대중적으로는 손기정이라는 인물을 통해 독자가 제국주의, 민족주의, 영웅주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손기정의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빛과 그림자

1912년생인 손기정은 1936년 히틀러 치하 독일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에서 2시간 29분 19초 2의 올림픽 신기록으로 금메달을 획득하며 시대의 총아가 되었다. 남승룡 선수 또한 3위를 차지하여 시상대에 함께 섰다. 그들은 일본 대표 선수로 출전했고, 이는 1912년 스톡홀름 올림픽 이래 일본의 숙원이었던 올림픽 마라톤 제패를 달성한 것으로, 제국 일본의 영광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이들의 승리는 1910년 이후 일본의 식민지가 된 조선 민족에게 “굴욕적인 나날에 한 줄기 빛”(8쪽)을 비추었다.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은 그의 승리를 조선 민족의 영광으로 해석했으며, 많은 조선인이 손기정의 우승을 통해 “민족의 자존심을 되찾았다”(27쪽)고 느꼈다.

“이제 독일인이 우리 일본인을 바라보는 눈빛이 달라진 것 같다.”(21쪽, 소노야마 가메조)고 말한 것은, 손기정의 우승이 일본의 위상을 높였다는 일본 측의 인식을 보여준다. “손 군의 우승은 20억의 승리.”(27쪽, 윤치호)라는 말은 조선 민족의 자존심 회복을 강조하는 조선 측의 인식이다. “조선의 아들인 손, 남 양군은 물론 세계에 자랑할 만한 철각(鐵脚)도 가졌거니와, 세계에 제패할 더욱 굳은 의지를 가진 것이라, 양군의 우승은 곧 조선의 우승이요 양군의 제패는 곧 조선의 제패다.”(117쪽, 〈동아일보〉)라는 말처럼 조선의 지식인들은 조선 민족의 우수성을 대내외에 천명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민족적 고양감은 ‘일장기 말소 사건’이라는 파국으로 이어진다. 1936년 8월 25일 〈동아일보〉 석간은 시상대에 선 손기정 유니폼의 일장기(히노마루)를 지운 사진을 게재했다. 이는 “식민 지배에 대한 저항”이자 “제국 일본의 ‘영웅’을 조선 민족의 ‘영웅’으로 되찾아 나가려는”(27쪽) 시도였다. 이 사건으로 〈동아일보〉는 무기한 정간되었고, 손기정은 “식민 권력의 경계 대상”(28쪽)이 되어 늘 감시를 받게 된다.

〈동아일보〉 이길용 기자는 다음과 같은 진술을 남겼다. “나는 동아일보가 조선 민중을 대상으로 창간하여 오늘에 이르렀으므로 조선 민족의 의사에 반하는 기사 편집은 지양해야 할 사명이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일장기를 해당 사진에 표출하는 것은 조선 민중인 독자들이 이를 환영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우리 회사 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가 있는 것을 감지하고, 이 같은 행동에 나서게 된 것이다.”(124쪽, 이길용의 진술, 「동아일보 발행정지에 관한 건」, 『경찰정보』)라고 하여 민족적 저항 의식을 표출했다.

일장기 말소 사건이 있었던 날(8월 9일), 손기정은 올림픽을 마치고 일본으로 돌아가는 배에 있었다. 마침내 10월 6일 나가사키에 도착했지만, 이후 어디를 가든지 경찰 등으로부터 감시를 받았다. 손기정은 올림픽 우승 당시 기미가요가 흘러나오고 일장기가 게양되는 시상대 위에서 “감격의 눈물인지, 고충의 눈물인지, 아니면 미움과 울분에 사로잡힌 눈물인지”(19쪽) 알 수 없는 복합적인 감정을 느꼈다. 하지만 그는 이후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무서워졌다. 어떻게든 빨리 도망가고 싶을 뿐이었다”(146쪽)고 회고하며 ‘제국 일본의 조선인 금메달리스트’로서 느끼는 ‘감시와 압박 속의 고뇌’를 드러냈다.

손기정의 이중적 정체성: 제국인 vs. 조선인
식민지 시대 스포츠 영웅의 딜레마


손기정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 식민지 시기에 태어나고 자랐으며, 일본 대표 선수로 올림픽에 출전했다. 그는 조선인으로서 세계적인 스포츠 무대에 섰지만, 그의 활약은 당시 일본의 ‘내선융화’ 정책의 상징으로 이용되기도 했다. 일본은 그의 승리를 “반도의 신인 선수에 의해 ‘일본’의 머리 위에 씌워졌다”(111쪽)고 평가하며 식민지 지배의 정당성을 부여하려 했다. 반면, 조선의 지식인들은 스포츠를 통해 “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다. 손기정의 우승은 “조선 민족이 전 세계 20억 인류를 이겼다는 것”(27쪽)으로 해석되었으며, 식민 지배하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민족적 자존심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해석은 우생학적 관점과도 연결되어 조선 민족 개량의 근거로도 활용되었다. 베를린 올림픽 우승 후, 손기정은 베를린에서 안봉근(안중근의 사촌동생)을 만나 처음으로 태극기를 보게 된다. 그는 “잃었던 조국, 죽었던 조국의 얼굴을 대하는 듯한 기분”(135쪽)을 느끼며 민족적 정체성을 확고히 했다. 이후 그는 사인 요청에 한글로 ‘손기정’이라 쓰고 출신 국명은 ‘KOREA’라고 적었다. 이는 식민지 상황에서 그의 내면적 저항을 보여주는 중요한 행동이다.

해방된 조국에서 영웅이 되다: 1970년 ‘국적 회복 사건’의 역설

해방 후 손기정은 1945년 ‘자유해방경축종합경기대회’에서 태극기를 들고 기수로 나서며 “세계적으로 우리 조선 사람의 이름을 떨친” 민족의 영웅으로 환영받았다. 1946년 마라톤 제패 10주년 기념식에서는 이승만, 김구 등으로부터 찬사를 받으며 민족 통합의 상징으로 추앙받았다. 특히 김구는 손기정을 보며 “세 번 울었다”(190쪽)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다. 손기정은 1950년 제54회 보스턴 마라톤에서 감독 겸 코치로 한국 선수들을 인솔했다. 이 대회에서 함기용(1위), 송길윤(2위), 최윤칠(3위)이 시상대를 독차지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때 손기정은 “선수들에게 영웅심을 주지 말고 선수들을 상품화하지 말고 선수들을 정치 도구화 말기를 간절히 바란다”(204쪽)고 당부하며, 후배 선수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당하는 것에 대한 깊은 우려를 표했다.

한국전쟁으로 고향 신의주로 돌아갈 수 없게 된 손기정은 남북 분단이라는 냉혹한 현실에 직면한다.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는 일본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친일’ 발언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는데, 이는 한국 내 민족주의적 감수성과 일본의 시선 사이에서 ‘낀 존재’로서 겪는 고충을 보여준다. 1970년에 있었던 일이다. 박영록 국회의원이 베를린 올림픽 경기장 돌담에 새겨진 손기정의 국적 ‘JAPAN’을 ‘KOREA’로 고쳐 새긴 ‘국적 회복 사건’은 손기정을 둘러싼 민족적 정체성 논란이 해방 후에도 지속되었음을 보여준다. 손기정은 “나는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어디까지나 내 국적은 한국이고 일본일 수 없다”고 박영록의 행위를 옹호하면서도, “나라 없는 시대”의 상징으로서 ‘JAPAN’ 표기의 역설적인 의미를 언급하기도 했다.(212쪽)

스포츠와 정치: 1988년 서울 올림픽과 영웅의 숙명

손기정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유치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으며, 개최가 확정되자 “내 평생에 그렇게 즐거운 날은 없었던 것 같다”고 감격했다. 그는 개막식 성화 봉송의 최종 주자로 선정되며 “조국에서 올림픽이 열리고, 게다가 최종 주자로 선정되다니 꿈만 같다. 그때 금메달을 땄을 때보다 더한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이는 그가 평생을 스포츠와 민족, 국가의 관계 속에서 살아왔음을 보여준다.(2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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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0년대 한국의 민주화 운동 속에서 서울 올림픽은 ‘정부의 축제’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손기정은 스포츠계의 원로로서 정부의 민주화 노력에 발맞춰 스포츠 자율화를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범체육인 서울 올림픽 성공기원 대회’에 참여하여 학생 운동의 올림픽 공동 개최 논의를 비판하는 등 정부의 입장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는 스포츠 영웅이 정치적 파고 속에서 겪어야 하는 ‘숙명’을 보여준다. 2002년 90세의 나이로 영면에 든 손기정은 대전 현충원에 ‘국가사회공헌자’로 안장되었다. 그의 묘비에는 태극기가 함께 놓여 있으며, 언론은 그를 “마라톤의 영웅, 민족의 자존심”으로 추모했다. 그의 삶은 “모진 어려움 속에서도 끊임없이 달려 한계에 도전하는 불굴의 의지와 독립자강 민족사랑의 정신”(231쪽, 〈동아일보〉 2002년 11월 6일)으로 평가된다.

저자 김성은 손기정의 생애를 통해 “제국 일본에서 스포츠 영웅의 의미를 묻고, 이를 통해서 일본과 조선반도 사이에 복잡하게 얽혀 있는 근현대사를 그리려” 의도했다. 손기정은 가난한 식민지 조선 청년에서 세계적인 스포츠 영웅이 되었지만, 그의 영광은 개인의 성취를 넘어 시대의 흐름과 국가 및 민족의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었다. 이 책은 독자에게 “무엇이, 누구를 ‘영웅’으로 만들고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며, 손기정의 삶을 통해 “영웅은 고뇌와 더불어 존재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그의 삶은 스포츠가 단순한 경쟁을 넘어 민족, 국가, 정치, 사회적 상황과 어떻게 얽혀 복합적인 의미를 획득하는지를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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