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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1. 시간의 강
(바람과 지는 꽃, 그리고 다시 피어날 봄을 기다리며) 꽃은 지고 11월 바람은 때로 절망도 데려간다 가을 소풍 가을 폐막식 갈대 끝 여름 겨울 별 낙엽 주단 길 봄 콘서트 봄 쇼핑 봄기운 끝 겨울바람 삼한사온 새벽바람 바람길 바람꽃 까치 태양이 비켜 준 저녁 강가에 기대어 하루 Part 2. 싱아를 찾아 (돌아온 자리엔 여전히 그리운 사람들, 기억들이 있습니다) 냉이 한 줌 어린이날에 파란 대문 집 유월, 소이산에서 한탄강 은하수교 위에서 게시대 아래서 망태할아버지 모래시계 무당 거울 동상 산다는 게 엄마의 봄날 아버지의 나라 아버지의 집 너의 뒷모습 강물의 흔적 지나가는 길입니다 처마 끝 기와 물결 제비꽃 Part 3. 가시꽃향기 (때로는 가시밭에서 흔들리고 쓰러지면서도 꽃은 피고 집니다) 사포질 취기 감기와 이별 그때의 나에게 그런 날 그리움은 글풀이 기억 헛간 기적 나는 다람쥐 나 태어난 날 나의 20대에게 기타배우기 넋두리 달과 함께 달맞이꽃 되새김질 마지막 강의 겁보 산후 우울증 서툰 노래 선인장 가시 안갯속에서 꿈꾸는가 어제 이별 의식 이별 후에 언젠가 지우개 진정 그리운 것은 헝클어진 시간 괜찮은 걸까 겨울밤 돌멩이 하나 나는 대체 어떤 강을 건너 왔는가 구름의 무게 Part 4. 겨울 허수아비 (차가운 겨울 들판 묵묵히 봄날을 꿈꾸는 허수아비처럼, 여전히 뜨겁게 꿈을 꿉니다) 겨울 허수아비 아버지의 편지 잔설 가지 함박눈 눈발처럼 겨울의 미련 겨울, 작별의 때 겨울 안개 바람은 돌아오지 않는다 겨울 입구 귀향 겨울나무 겨울나무의 꿈 해설: 유영숙 시인의 『겨울 허수아비』를 읽고-정춘근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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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농익었다
강건너 산에서 작은 짐승들의 사그락사그락 낙엽 밟고 떠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름내 도토리가 영글기를 기다리고 기다리던 다람쥐들은 겨울잠 자기 위해 마련한 동굴 옆 음식 저장고에 들락날락 분주한 모습이 그려진다 가느다란 한 줄기 바람에도 버텨보지 못하고 툭툭 떨어지는 나뭇잎들은 가을의 축제가 끝났음을 알려주는 폐막식 종이꽃가루 같다 --- 「가을 폐막식」 중에서 외로움이 밀려오면 그대 태양이 비켜준 저녁 강가에 기대어보라 강물이 그대의 한숨 소리를 안고 흐르니 맘껏 한숨도 쉬어보아라 한숨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태양이 비켜준 강가에 기대어 외로움에 차오르는 울음을 참지 마라 태양이 비켜준 자리 노을이 그대의 눈물을 품어 준다 태양 앞에서 목 놓아 울던 새도 태양이 비켜주면 울음을 내려놓고 조용히 그대를 위로해준다 견디기 어려운 외로움이 밀려오면 태양이 비켜준 강가에 기대어 외로움을 띄워 보내라 --- 「태양이 비켜준 저녁 강가에 기대어」 중에서 아버지가 파란 페인트로 칠한 동네에서 가장 멋진 대문 그 대문 안으로 들어가니 낯선 사람들이 나를 쳐다본다 모든 것이 정겨운데 분명 우리 집이 아니다 마루도 광도 낯설고 나를 대하는 눈빛들도 낯설다 혼비백산하여 밖으로 뛰쳐 나와 주변을 보니 우리 동네가 아니다 여기가 어디인가 몸도 정신도 혼미해진다 그리고 정신을 차린다 땀으로 흠뻑 젖는다 다행히도 꿈이었다 자주 비슷한 꿈을 꾼다 길을 잃고 해매인다 꿈속에서 단 한 번도 제대로 집을 찾아 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칠해준 파란 대문 집 그 집이 과연 내가 찾고 있는 집인가 --- 「파란 대문 집」 중에서 봄이 오면 늘 엄마는 새벽부터 집에 없었다 해질녘에 돌아와 소쿠리 안의 것들을 마당에 풀어놓았다 소쿠리 안에 온갖 푸른 나물들 사이에는 우리 다섯 남매가 목 놓아 기다리던 싱아가 있었다 살아온 기억들을 놓치기 시작하면서도 봄이 되면 엄마는 저 산에 고사리 취나물이 많다고 간다고 했다 소쿠리 안에 가득 들어있던 나물들은 엄마의 소소한 행복이었다 기억과 몸이 쇠잔해지는 마지막까지 봄날의 기억을 붙들고 있을 것 같다 --- 「엄마의 봄날」 중에서 아버지 부르면 목이 메여 이름조차 자주 부르지 못했습니다 늘그막에 돌아온 고향은 아버지와의 시간들을 더 자주 가져다 줍니다 등짐 지고 휘청휘청 걷던 아버지의 뒷모습에 처음으로 쿵 가슴이 내려앉던 날은, 아마도 나는 철이 들기 시작하고 당신은 늙어가기 시작한 접점이었나 봅니다 아버지, 당신이 있는 하늘나라와 까치발로 올려다보는 내가 사는 나라 그 사이가 너무 멀어서 오늘 유난히 그립습니다 --- 「아버지의 나라」 중에서 어느 먼 옛날 강원도 작은 마을로 부임을 받은 고을 현감이 오성산 마루에 올랐다네 먼발치 아래 푸른 산들 사이로 잔잔한 파도 물결이 웅장하게 보였다네 바다도 아닌 곳에 잔잔하게 일렁이는 파도 그것은 햇빛에 반사되어 아름답게 출렁이는 기와 물결이었다네 기와 물결 넘실대던 내 고향 그곳이 내 고향 와수(瓦水)라네 드넓은 김화 평야와 한탄강 줄기를 기반으로 풍요로운 고장, 와수 웃고 울고 부대끼며 살아온 고향에서 옛날 그 명성을 되새겨보면 내 마음에도 물결이 일렁이네 --- 「기와 물결(瓦水)」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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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말
고향 어귀 겨울 들판 한가운데 허수아비 하나가 서 있었습니다. 빈 벌판을 등지고, 바람에 몸을 맡기고, 가을을 지나온 그 모습은 어쩐지 제 아버지를 닮아 있었습니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자리에서 묵묵히 한 자리를 지키는 존재. 울지도, 웃지도 못하고 폭설과 바람에 풍화되어가는 허수아비를 보며 저는 오래된 삶의 흔적들을 돌이켜보았습니다. 이 시집은 그런 허수아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 기록입니다. 한 사람의 기억이자, 모든 아버지에게 바치는 시이기도 합니다. 사는 동안 절망의 겨울 들판을 걷다가 문득 저마다의 허수아비를 만날 수 있을 독자들께 따뜻한 체온처럼 전해지길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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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숙 시인이 살았던 김화(철원)의 겨울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추운 곳이다. 겨울 일기예보가 나오면 철원(김화)은 영하 몇 도나 될까 하는 것이 전 국민 관심사가 될 정도로 겨울 왕국의 대명사이다. 어린 시절 그런 경험을 하고 성장한 유영숙 작가에게 겨울이 고향이고 겨울이 아버지로 상징되는 것은 파격이 아니라 당연한 순리이다. 그런 이미지를 정제해서 빛나는 시로 만든 것이 시집 제목이 된 『겨울 허수아비』라는 판단이다. - 정춘근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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