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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용의 〈uni form: Broken Twill〉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하선규)
1. [단상들] 낯선 병치, 중첩, 대비, 그 반미학적 효과 (하선규) 질서의 농도 심연을 향한 은밀한 항해: 12개의 이야기 2. [단상들] 유니폼의 불확실한 인상학 (하선규) 분절된 시선의 떨림: 굴절된 능직의 시학 굴절된 능직의 시학 3. [단상들] 캔버스 공간의 다층적-파격적 구축 (하선규) 스케치들 작가의 글 리서치들 4. [단상들] 헤겔의 유동하는 개념과 대도시 군중 (하선규) 프로세스 인터뷰 5. [단상들] 분산된 개체성과 역사적 서사의 해체 (하선규) 유니콘 기억의 파편이 새기는 푸른 상흔 6. [단상들] 유니폼과 신체현상학 전시 공간 모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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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성에 대한 집착, 신화적 자연의 가상, 역사적 원천에 대한 성찰의 배제 ― 유니폼에 대한 의미 있는 탐색을 시작하려면, 반드시 이 세 가지 악마적 폐쇄성의 지점을 상기해야 한다. 이들은 우리가 유니폼에 대해 가지고 있는 선이해의 ‘맹점들(blind points)’이다. 이들은 생산적 탐색의 시선을 가로막고, 비판적 사유의 폭과 깊이를 제한한다. 하지만 이들 맹점을 상기하는 것으로 만족해선 안 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는데, 여기서 다시금 벤야민의 예술철학이 유용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
--- 「하선규, 최철용의 〈uni form: Broken Twill〉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중에서 19세기 중반 이후 현대적 주체는 근본적으로 ‘선험적 고향 상실성’ 상태의 주체이다. 상대주의와 주관(심리)주의가 지배하는 세계에 직면하여, 현대적 주체는 삶의 방향과 이상을 홀로 모색할 수밖에 없다. 이런 의미에서 현대적 주체는 보헤미안 주체다. 현대적 주체에게 사회화의 욕망은 경제적 생존을 위한 필수적인 조건이라 할 수 있다. 반면, 차별화의 욕망은, 현대적 주체가 유일무이한 개별자로서, 자신만의 독특한 삶의 스타일 또는 삶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욕망이다. --- 「하선규, 최철용의 〈uni form: Broken Twill〉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중에서 유니폼은 기본적으로 통합의 상징이지만, 그 안에는 언제든 터져 나올 수 있는 균열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유니폼이 성공적으로 응집력을 산출하는 순간은 어떤 불연속성과 균열이 시작되는 순간이 될 수 있다. 통일된 외관이 무너지면서 충돌, 불연속, 저항이 분출하는 파열의 순간이 실현될 수 있다. 그 때문에 유니폼을 연속과 불연속, 결정과 비결정이 공존하고 교차하는 언어로 형상화할 수 있다. 최철용의 작업은 파편화되고 변형된 선, 형태, 패턴을 반복하여 차용하고 콜라주한다. 또한 시각적으로 파격적이며 강렬한 방식으로 구조화된 질감과 색감을 대비시킨다. 이러한 조형적 특징은 유니폼에 내재한 잠재적인 균열과 붕괴 가능성을 암시하는 기법으로 해석할 수 있다. --- 「하선규, 최철용의 〈uni form: Broken Twill〉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중에서 브로큰 트윌은 열린 파격과 변주의 직조 기법이다. 그것은 새로운 중단과 변형을 긍정하는 조형적 문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최철용의 작업에서 브로큰 트윌은 유니폼에 내재한 구조적 양가성의 징표이자 유물론적 매개의 기술적-감각적 고리 역할을 한다. 브로큰 트윌의 개입과 배치를 음미함으로써 감상자는 예술적 형식의 능동적인 힘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다. 그것은 기만 없는 화해의 가능성과 미적 자유의 몸짓을 현시하는 예술 고유의 잠재성과 그 실현에 다름 아니다. --- 「하선규, 최철용의 〈uni form: Broken Twill〉 물질, 기술, 직조, 패턴을 가로지르는 파격과 자유의 가능성」 중에서 유니폼은 나와 내가 짜여진 직물이 서로를 끌어당기는 접면이다. 반복·안정·질서가 우리를 한 방향으로 세우는 동안, 사소한 얼룩 하나가 그 표면을 미세하게 틀어지게 한다. 나는 그 틈을 집요하게 추적한다. 얼룩은 오염이 아니라 생성?흰색과 탈색이 공존하는 작은 균열이며, 규율과 개인이 부딪혀 다른 목소리를 내는 지점이다. 흐릿해지는 이미지는 기억의 방식이고, 선명해지는 텍스트는 현재의 주장을 형성한다. 목적 없이 흘러내리는 우유, 말 패턴에 덧그린 뿔로 탄생한 유니콘처럼, 기호는 일상 속에서 방향을 비틀며 새로운 신화를 만든다. “너는 나인가? 나는 우리인가?”라는 질문은 결국 ‘사회적 몸’으로서의 유니폼, 그리고 그 표면에 남는 감각의 잔상에 관한 물음이다. --- 「최철용, 작가의 글」 중에서 균질하게 보이던 표면이 어떻게 다성(多聲)의 장으로 변하는지 묻는다. 얼룩은 균열의 은유가 아니라 제작의 방법이다. 패턴은 복종의 도구가 아니라 변형의 가능성이다. 유니폼을 통해 우리는 ‘우리’라는 집합의 윤곽을 만지며, 동시에 그 안에서 흔들리는 ‘나’의 경계를 듣는다. 관객이 이 작업들 앞에서 각자의 거리와 호흡을 찾을 때, 질문은 다시 시작된다. 너는 나인가?나는 우리인가. 그리고 그 사이, 질서의 농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 「최철용, 작가의 글」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