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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사 / 저자의 말
프롤로그_광장을 만든 여성들의 ‘레이어’ 여성들은 늘 광장에 있었다 / ‘정치력’을 고루 갖춘 10명의 인터뷰이를 만나다 / 광장에 나온 여성들은 누구인가 / 광장이 닫혀도 행진은 멈추지 않는다 계엄 날,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_00년생 김다인 ‘붕괴’ 상태였던 그 밤 / 군인을 빤히 볼 수밖에 없었어요 / 계엄의 무게를 아는데, 어떻게 안 가요? / 가장 급한 불은 ‘페미니즘’ / 청년 여성, 문화의 주도권을 쥐다 / “이번 광장은 제 바운더리였어요” 광장을 조직하는 여자_94년생 이재정 ‘계엄’이라는 말에 ‘즉각적으로’ 반응했다 / ‘안녕들하십니까’부터 ‘미투’를 거쳐 / 39도 고열에도 버티던 ‘한강진의 밤’ / 조직에서 선전까지, 낙관의 에너지로 만드는 정치적 광장 / 광장 정치, 제도권 정치가 될 수 있을까 록페의 깃발이 투쟁의 깃발로_94년생 ‘내향인’ 기수 야근 중 들었던 그 밤의 헬기 소리 / 여성 기수들이 바꾸는 집회와 ‘록페’ / 세월호와 ‘불편한 용기’, 이태원 참사를 지나 / 연대가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 달려갈 것 그 많은 응원봉은 어디서 왔을까_97년생 김지연 ‘가짜 뉴스 지라시’인 줄 알았던 비상계엄 / “내가 직접 여성들을 초대하자” / ‘휀걸’들에게 정치는 이미 익숙하다 / “아이돌 홈마 계정을 운영하는 감각으로 했어요” / 아름다운 이별을 꿈꾼다 ‘말벌 동지’가 된 동덕여대 졸업생_97년생 김강리 그날 나는 가족도 설득하지 못했다 / 내가 다시 광장에 서는 이유 / 탄핵 이전에 여대 시위가 있었다? / 동덕여대 학생들이 ‘말벌 동지’가 된 까닭 / 나의 참여로 그 공간이 안전하기를 / 관점으로서의 ‘여성’과 ‘논바이너리’ / 정치를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 ‘87년 체제’를 뒤엎는 개헌 도모해야 남태령의 축제 주최자_88년생 김후주 발포가 있을까 두려웠던 밤 / 국가폭력에 처음 맞서는 이들의 ‘순도 100%의 화’ / 외로운 이들이 느낀 생경한 감각, ‘연대’ / 스피노자를 연구한 10년 차 농민의 정치 45년 만의 ‘시민은 도청으로’_00년생 나수하 전일빌딩의 탄흔이 생각나던 밤 / 시험 마치자마자 달려간 광장, 거기서 만난 타이거즈 / 광주에서, 야구가 정치가 된 이유 / 금남로에 나타난 극우 세력에 맞서다 / 깃발의 기수로, 노조원으로 /약자들이 지켜낸 곳으로서의 ‘광장’ ‘혐중’에 대항해 마이크를 들다_06년생 최서연 종강 날 느닷없이 날아든 ‘계엄’ / ‘남성주의자’의 계엄으로 시작된 광장 생활 / 중국 혐오에 대항해 마이크를 들었습니다 / 쏟아지는 악플들, 실은 괜찮지 않았다 / ‘혐중’이라는 이름의 혐오와 미세 공격 / 일상적인 디아스포라’의 경험 / 혐오는 늘 교차적이다 / 혐오를 향한 대책과 방책 TK의 딸은 늘 광장에 있었다_93년생 햐 나도 모르는 사이 ‘계엄 세대’가 됐다 / TK도 여성도 놓을 수가 없어요 / TK의 딸들은 ‘개념녀’가 아니다 / 말벌 동지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 ‘TK=보수의 심장’은 이제 그만 광장에서 배운 앨라이 되기_96년생 솔 ‘삼청교육대’를 떠올리게 하는 실체적 공포 / 출퇴근하듯 드나든 광장,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 광장에서 배운 앨라이 되기 / 광장에서 그들은 ‘아는 사람’이 됐다 / 남성이라는 성별과 불화하다 / ‘사람을 사람으로’ 대하는 정치를 꿈꾼다 / 온정과 상호 부조를 조소하는 청년 남성들 집담회_우리의 광장은 끝이 아니야 에필로그_우리, 무한히 정치적인 존재들 여러 갈래의 광장 정치 / 또 다른 싸움을 앞두고 / 광장과 일상의 낙차 너머를 꿈꾸는 사람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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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난 10명의 인터뷰이들은 이들 기동력·기획력·전달력·실행력을 고루 갖춘 이들이었다. 이들은 각종 집회에 참여해 시민 발언에 나섰고, 광장의 기수가 되었다. 시민을 향해 달려오는 군용차를 온몸으로 막아섰으며, 성난 민의를 무시하는 국회 앞을 사흘 밤낮으로 지켰다. 농민들의 트랙터 행진을 막는 경찰 차벽에 대항해 남태령에 모여줄 것을 시민들에게 호소했다. 광장의 행진을 주도하는 사회자가 되었고, 윤석열 정권에 맞선 청년 모임을 조직했으며, 대학원생의 노동자성을 인정할 것을 촉구하며 노동조합을 꾸렸다. 무엇보다 이들은 ‘정치’라는 말에 위화감을 느끼지 않는다는 점에서 뚜렷한 특색을 지닌다. 일상 속 투쟁이, 광장에서의 외침이 곧 정치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정치 혐오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왔다.
--- 「프롤로그」 중에서 다인이 호명한 ‘할아버지’는 이해학(80) 성남주민교회 원로 목사다. 이 목사는 경기 성남에서 민주화 투쟁과 빈민 운동을 이끌며 1973년 한국기독교장로회 주민교회를 개척했다. 1974년 1월 8일 박정희 유신 정권이 긴급조치 1호를 선포할 당시 반대 투쟁의 주역으로 징역 15년에 처했다가 39년 만의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다인은 할아버지의 감옥살이로 인해 남겨졌던 가족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다. “이번에 그 차를 막은 걸 보고 할아버지가 ‘내 손녀 맞다. 너는 외가의 딸이 맞다’ 이러시고, 할머니도 너무 좋아하시는 거예요.” 아마 다인에게 인생 첫 집회였을 경험도 할아버지와 함께였다. 2001년, 이 목사가 서울시의 박정희 기념관 부지 제공에 반발해 집회를 이어갈 때 피켓을 든 할아버지 앞 유모차에 앉은 아기가 다인이었다. 어릴 적부터 5·18 광주 묘역도 자주 찾았다. 주민교회 신도로서 1980년 6월 9일 서울 이화여대 앞에서 5·18의 진실을 알리며 분신한 고 김종태 열사를 추모하는 자리였다. --- 「계엄 날, 군인과 눈이 마주쳤다」 중에서 학생운동과 시민운동, 국회와 정당, 대학원을 거친 지난 11년은 재정에게 어떤 시간이었을까. “학생운동을 하면서는 세상에는 곁을 내어줄 다정한 이웃이, 절실한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게 됐고요. 시민운동을 통해서는 연대의 확장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어요. 국회와 정당 활동을 하며 대중의 요구를 읽어내고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갖추게 되었고요. 짧은 시간 동안 압축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으면서 지금까지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갖추게 된 것도 큰 성과였어요. 대학원에서는 하나의 문제를 설명하기 위한 다양한 이론과 언어, 분석 방법을 배웠고, 깊이 있는 사유를 나눌 좋은 동료들도 만났어요. 이 모든 과정을 통해 조직력, 대응력, 정책적 감각, 인적 네트워크 등 여러 영역에서 꼭 필요한 역량을 두루 익힐 수 있었습니다.” --- 「광장을 조직하는 여자」 중에서 ‘내향인’ 깃발은 MBTI 검사 결과 I(내향형)가 93%인 기수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담긴 결과물이다. 그는 ‘I’의 특성을 십분 살려 ‘내향인’이라는 단어를 괄호 안에 넣었고, “반말은 좀 아닌 것 같아서” 우측 하단에 조그맣게 ‘입니다’를 덧붙였다. 가독성을 위해 흰 바탕에 검은색으로 글씨를 넣었는데, 서체는 내향인이 사는 지역에서 개발한 고유 폰트였다. “저는 어떤 상황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으려는 편인데요, 그 순간 떠오른 게 바로 깃발이었어요. ‘내향인들도 화가 나면 집에만 있지 않는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깃발을 들고 광장에 나갔어요. 처음엔 개인적인 표현이었지만, 지금은 저와 비슷한 사람들이 서로 알아보고 위로를 주고받는 매개체가 된 것 같습니다.” 주말마다 부지런히 광장에 나오는 내향인에게 시민들의 환대가 쏟아졌다. “웃으면서 재밌어하셨어요. ‘내향인이 깃발까지 만들어서 나 왔다고?’ 하시면서요.” --- 「록페의 깃발이 투쟁의 깃발로」 중에서 지연은 엔터사와 팬덤 간의 관계가 여성혐오적 정치가 구조화된 국가와 여성의 관계랑 고스란히 닮아 있다고 봤다. “저는 엔터사와 케이팝 팬 사이의 묘한 관계가, 국가가 여성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저희는 그들이 내놓는 아티스트를 동경하며 따라다니는 팬이자, 어떻게 보면 소비자이면서 고객이잖아요. 근데 저희는 자주 갑질을 당해요. 경호원에 폭행·성추행을 당하거나, 팬미팅에서 성추행에 가까운 속옷 검사를 당하기도 하고요. 그런 걸 당하고 싶지 않아서 늘 함께 항의하고 싸워요.” 실제로 K팝 팬들이 ‘과잉 경호’ 피해를 입는 사례가 속출했다. 2023년 2월, 인천국제공항에서는 NCT드림의 경호원이 30대 여성 팬을 밀쳐 전치 5주의 부상을 입힌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고, 2024년 7월에도 크래비티의 경호원이 10대 여성팬을 밀쳐 뇌진탕 진단을 받게 만든 사건이 드러났다. 실제로 팬사인회장에서 녹음이나 촬영을 방지한다는 이유로 팬들의 몸을 수색하고 속옷 검사를 벌이는 등 성추행을 당했다는 폭로도 자주 불거져 나온다. --- 「그 많은 응원봉은 어디서 왔을까」 중에서 “또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까 ‘페미 스피커’라 구분 지어지는 사람들이 ‘여자들아, 그 자리에 가지 마라. 화력을 분산시키지 마라’고 하면서 계속 글을 쓰더라고요. 사실 그날 밤이 제게는 기억 투쟁을 하는 순간들이었기 때문에…. 이 순간들을 어떻게 남겨야 할 것인가를 계속 생각하고 있었기에 되게 ‘치열했다’고 느껴요. 이 공간에 일종의 배제가 있었다는 걸 남겨야 된다, 이 자리에 누가 가야 한다고 했으며 또 다른 누군가는 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을 남겨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기억 투쟁’을 벌이느라 치열했던 그 밤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와서야 그는 밤을 버티게 해준, 끝도 없이 나오는 돌봄의 흔적들을 확인했다. “주머니에서 핫팩이 계속 나오고…. 당시 저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명숙 님과 그 자리에 함께 있었는데요. 명숙 님이 덮어주신 담요에…. 제가 휴대폰 배터리가 없다고 그러니까 보조 배터리 본인 것을 쥐여주셨어요. 씻으러 들어가려고 옷을 주섬주섬 벗고 있는데 양말 위에는 핫팩들이 붙어 있었고요. 등에서도 핫팩이 그냥 뚝 떨어지고 막 이러니까, ‘그랬지. 그 시간들이 따뜻했구나’ 하는 걸 사실 집에 와서 절감했어요.” --- 「‘말벌 동지’가 된 동덕여대 졸업생」 중에서 “저는 남태령을 계엄 이후에 벌어진 첫 비상 상황이라고 보거든요. 공권력과 시민들의 직접 충돌이 있었던 현장이자 우발적이고 기획되지 않은 현장이었어요. 그 부분에서 충격을 받은 청년들의 정동이 무척이나 강렬했어요.” 1988년생인 후주와 나는 20대를 ‘이명박근혜’ 정권 아래서 보내며, 집회 행진을 겹겹이 막아선 ‘명박산성’이나 고 백남기 농민이 사망한 물대포 사태와 캡사이신 발포를 경험한 강렬한 기억이 있다. 그러나 국가폭력에 대한 구체적인 기억이 없는 20대 초중반, 10대 청소년들에게는 아마 남태령이 ‘처음 본 경찰의 폭력적인 모습’일 거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경찰이) 어르신들을 때리고, 트랙터를 부숴서 잡아 끌어내리는 그 스펙터클이 영상에 잡혔잖아요. 거기에서 사람들이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아요.” 후주는 그날 남태령에 모인 청년들이 경찰에 맞서는 장면을 생생히 기억한다. 이들은 경찰이 사람을 연행해 가는 데 쓰는 일명 ‘닭장차’의 이름도 용도도 몰랐지만, 순도 100%의 분노로 무장한 채 공권력에 맞섰다. --- 「남태령의 축제 주최자」 중에서 수하가 내란 국면의 5·18민주광장에 처음 달려간 것은 12월 14일이다. 그날은 국회에서 두 번의 시도 끝에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날이었다. 수하의 영양사 국가고시 시험일이기도 했다. 시험 준비를 위해 줄곧 도서관에 있었던 수하도 이날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그간의 죄책감과 부채감을 털어내고자 광장으로 향했다. 광장에는 기아 타이거즈의 응원 도구인 ‘호통이’를 들고 팀 점퍼를 걸친 2030 여성들이 많았다. 그들은 함께 ‘타이거즈~ 소크라테스’로 시작하는 타이거즈의 외국인 타자 소크라테스의 응원가를 ‘우리 모두~ 촛불을 들자’로 개사해 불렀다. “전에는 민주노총 같은 단체나 정당 깃발이 많았고, 분위기도 조금 엄숙했다고 들었는데, 그날은 개인 깃발 기수분들도 많았어요. 서울에서 오신 분들도 있었고요. 광주라는 지역 특성상 아무래도 5·18을 직접 겪은 세대, 유가족분들이 많았고, 응원봉을 든 여성들도 정말 많았어요. 금남로 일대를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분이 모여서 전광판 화면을 보는데, 가결되던 순간 환호와 함성이 터져 나왔어요. ‘광주는 조금 다른 곳이다. 좀 더 민주주의에 예민하고 더 많이 마음을 쏟는 곳이다’라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 「45년 만의 ‘시민은 도청으로’」 중에서 “안녕하세요. 저는 어젯밤 실시간 뉴스를 보면서 함께 밤을 새우다가 인천에서 출발하는 1호선 첫차를 타고 달려 나온 어쩌면 평범하지만은 않은 대한민국 대구광역시의 한 산부인과에서 태어나 대한민국에서 자란 중국인입니다. 비록 제 뿌리는 이 땅에 있지 않으나 여러분과 같은 주민등록증이 있으며 지문이 등록된 대한민국의 국민입니다. 제가 중국인인 사실을 말하면 되게…. 그분들이 좋아할 소재라고 생각해서 약간 쫄렸는데요. 좀 더 생각해보니 굳이 쫄릴 게 없더라구요? 중국은 만16세가 되면 신분증을 갱신해야 합니다. 저는 기말고사를 봐야 한다는 이유로 갱신하지 않았고, 결국 중국인인 저를 ‘말소’시켰습니다. 저는 눈 내리는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고, 갓 지은 흰 쌀밥과 김치와 김만 있으면 평생 만족하며 먹고살 자신이 있는 저를 살게 해준 이 땅을 사랑합니다. 하늘과 산과 바다가 아름다운 이 반도를 사랑합니다. 1980년대 천안문에서 국가를 향해 저항하던 제 외가 친척들이 있었다면, 이 땅에는 저보다 더 한국인 같지 않은 매국노를 쫓아내고자 하는 제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에서 차별받고 혐오의 눈길을 받으며 존재를 부정당하고 있는 모든 이가, 자기 모습 그대로 당당하게 살아가기 위해! 완벽히 선하지는 못할지라도 그만큼 이해와 배려가 넘치는 민주주의를 위해! 마지막으로 한마디하겠습니다! 내란 동조자들은 당장 물러나라!” --- 「‘혐중’에 대항해 마이크를 들다」 중에서 그렇기에 햐는 윤석열 퇴진 광장에서 지역 내 정치적 분투와 더불어 대외적인 지역혐오, 그리고 여성혐오에도 동시에 맞서야 했다. 그는 ‘TK의 딸’이 조명되는 흐름 자체는 긍정적이라 보면서도 여성들을 ‘개념녀’로 보는 프레임에는 반대했다. 페미위키에 따르면 ‘개념녀’란 처음엔 ‘개념 있는 여성’이라는 문자 그대로의 의미로 사용되다가 이후 ‘가부장적이고 전통적인 주류 남성 사회가 원하는 여성상에 맞는 언행을 하는 여성’으로 재정의됐다. 햐는 ‘TK의 딸’들을 ‘보수의 심장’ 한가운데서도, ‘윤석열 타도’를 외칠 줄 아는 개념 있는 여성으로 비추는 것은 여성혐오이자 지역혐오의 한 갈래라고 봤다. “‘개념녀’라는 게 사실 그렇잖아요. 여자들은 사치 좋아하고, 남자한테 ‘빨대’ 꽂으려 하는데 ‘너는 안 그래’ 하는 것처럼. TK사람들 만날 윤석열 지지하고 그렇지만 ‘TK의 딸은 또 안 그래’ 하면서 예외로 소비되는 느낌이에요. 그게 결국 저희를 타자화하는 거고요. ‘TK의 딸’에서 ‘TK’를 빼놓을 수 없는데, 그런 식의 개념녀 취급은 TK에 대한 지역혐오에서 하나도 벗어나지 못한다고 생각했었어요.” --- 「TK의 딸은 늘 광장에 있었다」 중에서 “계엄 당일 제가 느꼈던 것처럼, 사회에서 여성은 약자잖아요. 계엄은 결국 힘의 우위를 근거로 ‘방해되는 집단을 조직적으로 청소하겠다’는 선언과 같은 거고요. 그래서 만약 계엄이 일어난다면 정상적인 삶을 살 수 없게 될 거라는 생각을 가장 많이 했을 집단이 여성일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세대의 여성들은 학교나 가정에서 ‘평등하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걸 느꼈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기로 결심한 세대잖아요. 저는 계엄을 그 부조리한 현실의 연장선으로 보고, 거기에 순응하지 않고 저항하겠다는 태도가 이 세대에게 체화된 거라고 생각해요.” 성소수자들이 광장에 전면적으로 등장한 맥락 또한 이와 비슷하다. 퀴어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고 표현할 수 있었던 이유는 광장의 포용적인 분위기 덕분이었을 것이라고 솔은 짐작한다. “퀴어라는 집단은 계엄이 일어났을 때 칼끝이 향할 게 분명한 집단 중 하나잖아요. 그러니까 ‘저항을 하든가, 유린을 당하든가’ 둘 중 하나의 선택지 속에서 광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이 수적으로 적지 않았을 거예요. ‘알아두겠다’거나 ‘괜찮다, 문제없다’고 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이 자리는 나의 존재를 밝혀도 괜찮은 공간이구나’라는 감각을 가졌을 거고요. --- 「광장에서 배운 앨라이 되기」 중에서 대선 전부터 성별에 관계없이 “소수성이 일정 비율 이하가 되지 않도록 배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폈던 대통령은 꾸준히 ‘역차별’ 담론을 밀어 올렸다. 과거 “모든 인간이 동성애를 택했을 때 인류가 지속 가능하지 못하다”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의사를 밝혔던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단 한 차례의 관련 질의도 받지 않은 채, 국무총리가 됐다. 다시 돌아온 학교에서는 백래시가 시작됐다. 고려대의 소수자인권위원회와 여학생위원회는 외부 활동을 이유로 재인준이 부결되고, 양 기구가 통폐합되는 징계를 받았다. 성균관대 여성주의 교지편집위원회 정정헌은 중앙동아리 재등록이 부결됐다. 이화여대와 학내 독립예술영화관 아트하우스 모모는 한국퀴어영화제 대관을 거부했다. 그러나 광장을 거친 응원봉과 깃발들의 삶은 전과 같지 않다. ‘우우놀’의 인터뷰이들은 집담회에서 밝힌 그들 다짐대로 살고 있다. 다수가 광장에서 활약했던 자신의 깃발과 응원봉을 식민지역사박물관에 기증했고, 역사의 기록으로 남겼다. 계엄의 밤에 국회 출입문을 붙잡았던 재정은 비상계엄 사태 후 첫 제헌절 행사에 시민 대표로 참석했다. 강리는 상호부조 원리에 입각한 연구 안전망인 연구자공제회 출범에 앞장서고 있다. 후주는 여성 농업인의 현실을 알리는 자리에 적극 참여하며 ‘여성들이 농사짓기 좋은 농촌’을 만드는 데 열심이다. 수하는 내란 국면의 광장에서 가입한 누구나노조지회 활동을 이어가고 있으며, 햐와 솔, 내향인 기수는 여전히 소수자들의 투쟁 현장에 발 벗고 따라가는 ‘말벌 동지’다. 다인과 지연, 서연도 내 삶과 직결되는 정치적 의제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놓지 않고 살아간다. --- 「에필로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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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지금 이 책을 읽어야 할까?
열기가 가신 뒤에야 보이는 장면이 있다. 이 책은 ‘MZ’ ‘기특함’ 같은 호명이 지워버린 주어를 여성으로 재배치하고, 남태령과 국회 앞의 밤에 작동했던 집결·안전·메시지 관리의 실제를 당사자의 이름과 결정으로 복원한다. 즉, 감동의 재탕이 아니라 다음 보도와 정책 논의의 기준점을 세우는 텍스트다. “누가 무엇을 어떻게” 공간을 정치의 장으로 바꾸었는지 드러나야 선거와 의제화 국면에서 여성 유권자와 청년 시민을 제대로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이 책은 응원봉·깃발·온라인 호출이 문화의 기호를 넘어 민주주의의 인프라로 전환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응원봉은 가시화와 안전의 약속이자 입장 표식이 되었고, 개인 깃발은 소속이 없어도 설 수 있게 문턱을 낮췄다. 현장에서 합의된 ‘평등한 집회를 위한 약속’ 같은 규범은 혐오와 백래시를 관리하는 운영의 기술로 축적됐다. 이 축적은 곧 현실 정치로의 번역이다. 광장에 쌓인 기술과 네트워크가 박물관 기증, 시민 대표 참여, 연구·노동·농업 현장으로 이어지며 제도와 일상으로 이전되는 경로를 책은 구체적으로 그려 보인다. 그래서 지금 읽어야 한다. 정책 공백과 역풍이 이어지는 현실에서, 이 책은 광장의 열기를 데이터·사례·언어로 재사용 가능한 설계도로 바꾸어준다. 나아가 언론 보도는 무엇을 묻고 어떻게 검증해야 하는지, 캠페인과 제도 논의는 어디에 닻을 내려야 하는지에 이르기까지 이 책은 그 지점을 정확히 가리킨다. 각계각층 조직적인 변화를 위해 일어선 모두를 위한 책 이 책은 우선 각 언론사의 기자들에게 유용하게 쓰일 저작이다. ‘MZ/기특함’이라는 관성적 호명을 걷어내고 주어를 여성으로 재배치하는 데 필요한 배경과 사례, 그리고 각기 다른 현장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서사 활용도가 높기 때문이다. 사회·정치·문화부 등 어디에서든 광장 이후의 현실 정치란 측면에서 후속 기획을 세울 수 있고, 그 변화의 스펙트럼을 사람·조직·도구를 축으로 촘촘히 추적할 수도 있다. 그뿐 아니다. 정치·행정·의회 실무자와 스태프에게 이 책은 현장성을 정책어로 번역해주는 도구가 되어준다. 응원봉·깃발·온라인 호출이 가시화·안전·메시지 관리의 인프라로 작동한 경험, 광장에서 합의된 평등 규범과 갈등 조정의 절차가 어떻게 우리 사회에서 공약을 설계할지, 공청회나 간담회를 개최할 때 유의미하게 다루어야 할 접근성·포용성의 기준은 무엇인지 안내해주는 수준 높은 참고서 역할을 하는 탓이다. 나아가 지자체·대학·문화기관·노동조직의 기획자/안전 담당에게는 실무 매뉴얼로 읽힐 것이다. 초대 문구의 설계, 문턱을 낮추는 가시화 장치(개인 깃발 등), 안전 동선·현장 안내·디브리핑의 기본, 온라인 호출을 오프라인 참여로 전환하는 정보 흐름 관리까지, 재현 가능한 체크포인트가 사례로 축적되어 있다. 대관·행사 운영에서 불거지는 백래시 대응과 혐오 방지 규범도 실전 맥락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덤이다. 마지막으로 연구자·교육자·활동가, 그리고 당사자 시민에게 이 책은 1차 구술 아카이브로 기능한다. 102030세대 여성 10인의 이름·역할·판단이 생애사 속에 배치돼 있어, 팬덤과 시민참여의 접속, 광장→일상으로의 정치력 이전을 교차분석하기 좋다. 수업과 스터디, 로컬 네트워크의 학습 교재로도 손에 잡힌다. 이 책의 핵심 주제어인 “광장은 닫혀도 정치력은 이전된다”는 문장을 내 자리에서 다시 실행해보려는 모든 이에게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를 권한다.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는 이렇게 구성되었다 이 책은 프롤로그-본편(10인 인터뷰)-집담회-에필로그의 흐름으로 “광장에서 멈추지 않고 현실로 이전된 정치력”을 한 호흡으로 보여준다. 프롤로그는 먼저 호명을 바로잡는다. ‘MZ’나 ‘기특함’ 같은 외부 시선을 걷어내고, 질문을 “왜 여자는 정치적인가”로 돌려세운다. 그 위에 저자는 여성들의 정치력을 기동력·기획력·전달력·실행력의 합으로 개념화하고, 남태령과 국회 앞의 밤에서 드러난 집결·안전·메시지·갈등 조정의 실제를 좌표로 찍는다. 독자는 이 첫 장에서 책을 읽는 기준점?개념, 용어, 장면?을 확보한다. 본편은 10인의 이름·역할·결정을 따라가는 생애사 인터뷰로 이루어진다. 온라인 호출이 오프라인의 빠른 집결로 번역되는 메커니즘, 응원봉과 개인 깃발이 가시화와 안전의 약속으로 작동해 참여 문턱을 낮추는 방식, 사회·기획·동선·안전·메시지 통일·갈등 조정이 현장에서 어떻게 수행됐는지가 역할 중심으로 복원된다. 여성·퀴어·지역·이주 등 교차 의제 앞에서 마이크 전략을 세우고 혐오에 대응하는 장면, 그리고 그 힘이 지역·학교·직장·노조·농업·문화로 옮겨붙는 경로까지 한 사람 한 사람의 언어로 드러난다. 감동을 반복하는 기록이 아니라, 다음 사이클에 재사용 가능한 노하우가 축적된다. 그다음, 집담회 〈우리의 광장은 끝이 아니야〉는 그 축적을 전환의 설계로 묶어낸다. 광장의 발언과 네트워크를 조직 전환과 의제 확장으로 이어가기 위해 무엇을 표준화하고 무엇을 버려야 하는지, 현장에서 합의된 평등 규범을 어떻게 운영 절차로 고정시키는지, 데이터 수집·정책 간담·연대 의제로 어떻게 연결하는지에 대한 로드맵이 공유된다. 열기가 식은 뒤에도 계속 작동하는 운영 언어와 실천 순서가 여기서 정리된다. 에필로그 〈우리, 무한히 정치적인 존재들〉은 이 모든 흐름을 현실 현장에서 마무리한다. 응원봉·깃발의 박물관 기증, 제헌절 시민 대표 참여, 연구자공제회 출범, 누구나노조지회 활동, 여성 농업인 의제의 확산 등으로 이어지는 사후 효과가 촘촘히 기록된다. 메시지는 단 하나로 수렴한다. 바로 “광장은 닫혀도 정치력은 이전된다”는 것. 그리고 그 이전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독자(기자·정책 실무·활동가)들은 이 마지막 장에서 우리 사회의 발전을 위한 다음 스텝의 출발점을 얻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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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윤석열이 탄핵되자마자 광장을 밝혔던 청년 여성을 비롯한 소수집단의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받았고, 대선 결과가 나오고 이재명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또다시 침묵을 강요받고 있는 지금. 불과 몇 달 전이었던 탄핵광장의 치열했던 정치의 시간을 되돌아보고, ‘다음’ 정치와 ‘다른’ 정치를 고민할 수 있게 해주는 『우리는 우리가 놀랍지 않다』가 세상에 나와서 반갑다. - 권수현 (경상국립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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