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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적 사유와 존재 사유
시와 교량술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 詩와 時 詩의 視 : 보론 2.모더니즘의 체험 점묘화와 백색 존재론 시인과 책의 죽음 시인과 모국어 모더니즘과 한국적 광기 3.사유의 금욕주의 장마 풍경 역경주의 풍경의 미학 시의 속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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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구 flypaper@yes24.com
철학과 문학의 적극적인 상호 커뮤니케이션, 사유의 원천으로서의 철학과 그 결과물인 문학의 진단 등 철학과 문학의 관계를 재단하는 문장은 흔하디 흔하다. 하지만 다소 조악한 이론에 굳이 기대지 않더라도 문학이 철학에 의지하고, 철학이 문학에 힘입은 바는 그다지 새삼스러움도 아닐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철학자가 읽는 문학, 철학과 문학비평의 코드에서 이 책을 주목하는 이유는 철학연구자가 문학과 철학의 생산적인 대화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용기에 그 첫째 이유가 근거하고, 그 대화방식이 막연히 문학과 철학 사이를 넘나듦에 대한 추상적인 열변이 아니라는 점에 둘째 이유가 자리한다. 파리 제4대학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고 현재 서울대 교수로 재직중인 저자는 유학 시절의 데카르트 정독 훈련의 과정에서 김수영에 대한 열정의 단초를 발견한다. '데카르트가 남긴 문헌은 프랑스인들에게 자국의 사상사적 전통의 초석을 이루는 문화재, 말하자면 국보급 유물이다. 만일 내가 프랑스인이었다면, 쉼표 하나 허투루 보지 않는 그 정독 훈련에서 실낱같은 회의의 안개를 만나지 않았을 것이다. 보고 또 보고, 그러다가 이전의 연구자가 보지 못한 것을 겨우 하나 보고 하는 일, 그 과도한 고증과 검증을 누구 좋으라고 하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의문이 들 때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인생에서 한번은 데카르트를 읽었을 때만큼의 열정과 수고를 우리나라의 고전에 바치리라. 나는 막연히 김수영의 작품이 그런 노력을 바칠 만하다는 느낌을 받았고, 그의 글을 읽을수록 그런 느낌은 확신으로 굳어져갔다.' 문학 소년이었던 이력도 있거니와 고단한 유학생활의 피 말리는 과정에서 당시 20대였던 유학생의 젊은 상상력은 무미건조한 실증주의에 닫혀 있기에는 너무도 왕성한 것이었다. 그는 자국의 고전, 그 중에서도 그에게 발견의 기쁨이자 모험의 기쁨을 안겨 주는 김수영의 시에서 그 해방구를 찾는다. 사유의 한계점까지의 고달픈 여정을 마다 않고, 굳건하게 걸어가야 할 철학적 사변의 여정을 올올하게 예감한다. 본업이 철학에 관한 청탁은 거절해도 시에 대한 글은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시와, 시인 김수영에 대한 남다른 애정의 결과물이 이 책이다. 시를 씀으로서 시대에 존재했던 시인 김수영의 존재론적 사유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제1부에서는 김수영 시의 초월론적 성찰과 경험에 대한 계승을 얘기한다. 시의 본질로부터 낙후된 현실 하에서 낙후성의 극복을 위해 작시의 교량을 건너는 김수영 시의 위대성을 언급한다. 그 명제는 작시에 대한 사유를 형이상학적 차원의 역사론까지 끌고 간다. 자신이 발디딘 곳에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한 걸음에 내달릴 수 있는 튼튼한 다리로서의 작시를 원했던 김수영, 작시의 본질이 위치한 곳, 미와 예술이 자신의 본성과 일치하는 곳에서 역사와 현실을 건네는 교량으로서의 김수영 시의 본질을 파악한다. 2부는 모더니즘의 체험 세대로서 김수영의 시를 진단한다. 후진국의 시인에게 활자로, 시로, 문학으로 어찌하기 힘든 현실이 존재한다는 것, 그 가능성의 부재에서 김수영 시의 진실은 놓여 있다. 적어도 식민지 시대를 경험했고 역사의 후진성을 일상으로 살아온 세대에게, 서구적인 것, 한국인에게는 도무지 가보지 못하는 세계에 대한 상징과 동경을 모더니즘의 테두리 안에서 역설하는 김수영을 노래한다. 진창을 걷는 김수영, 그 진창 속에서 매번 침착한 발걸음을 딛을 수만은 없었던 아픈 현실, 그 속에서 드러나는 행보의 광기. 진흙 속의 현실과 유토피아적인 이상 사이의 간극 사이에서 가슴에 퍼런 멍을 안고 살았던 광기의 시인, 모더니즘의 세파를 눈부신 충격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던, 그리하여 개화기이래 한국 지식인의 고유한 광기의 단초를 제공했던 시인 김수영의 삶을 파노라마적으로 이 책은 조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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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
김수영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 p.34--내용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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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창을 걷는 김수영, 그러나 그의 발걸음이 침착하지만은 않다. 그 행보는 광기를 견디고 있다. 진창의 현실과 피안의 이상 사이의 모순이 클수록, 그 모순의 수용은 가슴에 멍을 만든다. 모더니즘은 그것에 접하는 후진국의 예술가에게 눈부신 충격이었다.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수 없는 그 광채는 마음에 담을수록 견딜 수 없는 분열을 일으켰다. 여기서 개화기 이래 한국 지식인에 고유한 광기가 자라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김수영이 헬리콥터의 모가지를 끌어안고 <너는 서러운 동물이구나>하고 눈물을 펑펑 쏟는 장면부터가 범상하지 않다. 그런 광적인 모습은 두 가지 마음가짐 사이의 모순에서부터 오는 것 같이 보인다. 즉 시인은 모더니티를 추구하되 낭만적으로 추구하고 있다. 모더니티는 낭만주의적 동경의 대상이 되고, 따라서 시적 감수성은 모더니티의 외면에 머물러 있다. '헬리콥터'가 노래하는 것은 모더니티라는 서구적 문명의 높이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이다. 이 그리움 속에서 모더니티는 낭만적 충동을 불러 일으키는 어떤 초월자, 피안의 존재자가 된다. 모더니티를 갈구하면 할수록 후진국의 모더니스트는 낭만주의자로 전락한다. 모더니티로부터 더욱 멀어지고, 따라서 모더니스트로서 자신이 추구하던 정체성이 파괴된다. 분열을 겪는 것이다. ---pp.243~2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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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의 시와 산문을 읽는 철학자
서양의 철학자들은 자신들의 글을 전개시켜 나가는데서 자주 문학 작품에 의지한다. 들뢰즈(카프카, 푸르스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그렇고 데리다(퐁주, 말라르메)가 그렇다. 새 장이 시작하는 여백에 적는 제사(題詞)에도 어김없이 시 구절을 싣는다. 그러나 우리나라 철학자들에게는 그런 경우가 드물다. 주로 외국의 다른 철학자들의 글에 의지한다. 그러나 저자 김상환은 자주 한국 시에 대한 글을 썼고, 자신의 책에서도 곳곳에서 시를 언급하고 김수영을 언급했다.
『풍자와 해탈 혹은 사랑과 죽음』은 우리나라 철학자에 의해 책으로 씌어진 최초의 단일 시인론이다. 김상환이 10년동안 읽고 쓴 김수영에 관한 글들을 엮은 것이다. 저자는 자신의 분야인 철학에 관한 글도 많이 발표하고 이를 모아 책으로 엮어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는 철학에 관해 글을 쓸때보다도 시에 관해 글을 쓸 때 보다 충만한 기쁨을 느꼈다고 한다. 발견의 기쁨이자 모험의 기쁨. <마치 내가 세상에 뭔가 보탬이 되어주고 있는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말한다. 그는 김수영 외에도 이상, 전진규, 이성복, 천상병 등의 시에 대해서도 글을 발표해 왔었는데, 다른 청탁은 거절해도 시에 관한 글 청탁은 마다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철학자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사유의 실험이 김수영론을 쓰는 과정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김수영의 글들은 단순하지만 몇 겹으로 중첩된 존재론적 운동을 그 여백에 감추고 있기 때문이다. 김수영에서 우리는 위태롭게 유지되는 사유의 일관성, 몇 번이고 쓰러졌다 일어서는 안타까운 일관성을 읽으며 낙후한 현실에서 낙후하지 않게 사는 길을 찾고, 현명한 관념론의 길을 모색할 수 있다. 이 책의 1부에는 시를 존재론으로 읽은 고밀도의 철학적 사유가 담겨있다. 이 만만치 않은 읽기를 통해 우리는 시가 이루어지기 위한 조건에 대해 먼저 시를 써야했던 김수영을 만난다. 김수영은 문학이 입법적 권위를 떠맡아야했던 시대의 향수를 간직하고 있었다. 그러나 당대의 한국, 그 단절과 부조화의 과도기적 시대에 그는 현실의 낙후성을 견디고 썩어빠진 전통 속에서 나뒹굴 수 있는 인내를 가져야 했다. 또한 그 속에서 초월론적 성찰로 이행하는 길을 모색해야 했다. 김수영에게 있어 시 만들기는 지금의 낙후성을 건너 현대 미학으로 가는 다리 놓기이자 사랑을 설계하는 기술이었다. 2부는 모더니즘과 관련된 다양한 분야에서 김수영의 사유를 조망하고 있다. 누구나 필연적으로 거칠수밖에 없는 정신적 미성숙의 시기를 위한 번거로운 교육의 단계, 김수영은 이러한 방법의 길을 걷고 있었다. 이는 김수영이 구현하고 있는 근대적 시민의식이 주요 계기로 삼고 있는 지식욕의 체험과 시쓰기를 위한 오랜 습작이라는 두 상황을 설명한다.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공자의 말처럼 지식욕이 충족되는 그 제로 지대에서 시는 완성될 것이다. 외래 시조의 홍수, 기호의 범람하는 물결에 탐닉하는 쾌락주의자들 중 하나가 김수영이었다(동인 시집『새로운 도시와 시민들의 합창』). 그러나 자기를 주장하는 사물의 얼굴은 언젠가 닥칠 자연의 범람 속에서 떠내려가야 하게 마련이다. 김수영이 모더니스트를 초과하는 부분은 도시 자체에 대한 반발 심리에서였다. 이러한 심적 태도는 금욕주의라는 분명한 자기 의식의 형태에 도달하며 첨단의 노래와 정지의 미 사이의 대립을 보여준다. 모순의 해소와 규정성 뛰어넘기는 분산과 깨뜨림의 시학,『폭포』를 통해서 가능했다. 관념과 현실 사이가 서로 배리되지 않는 무차별한 정직성으로부터 이런 대립들이 사실은 아주 하찮은 차이라는 것을 지각한다. 그러면서 압도적 이미지의 범람 앞에서 자신의 상상력을 자제하고, 연상의 강물에 탐닉하지 않는 금욕주의를 보여주는 것이다. 금욕주의는 오히려 역동적 내면성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