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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갯벌의 만종_자은도 1 여인송의 슬픔_자은도 2 비구니와 비구의 사랑이 놓은 징검다리_박지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_ 안좌도 산 사람은 날 가고 달 가면 살아지는데 _ 팔금도 2부 중국의 닭 우는 소리 들리는 섬 _ 가거도 외딴섬에 숨어 사는 사내처럼 _ 만재도 60개 국을 떠돌다 정착한 고향 섬 _ 하태도 흑산도 사람들은 삭힌 홍어 잘 안 먹어 _ 흑산도 순간인 줄 알면서 영원처럼 _ 홍도 3부 먹을 수 있는 유일한 돌 _ 도초도 1 할머니 울지 마 내가 영감 하나 사주께 _ 도초도2 내가 김일성이 아들이요 _ 비금도 1 길에서 만난 현자들 _ 비금도 2 우이도 처녀, 모래 서 말 먹고 시집가다 _ 우이도 섬마을 총각 선생님 _ 동서 소우이도 4부 공주와 대통령 _ 하의도 1 대중이는 고향에 암것도 안 해줬어 _ 하의도 2 장어가 뱀하고 똑같아! _ 장산도 1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된다 _ 장산도 2 소금 섬 가는 길 _ 신의도 1 할머니 뱃사공 _ 신의도 2 5부 1만 마리 갈매기가 우는 집 _ 임자도 1 죽음으로 일제에 저항했던 타리 기생들 _ 임자도 2 술집 색시와 사랑에 빠졌던 선원의 순정 ㅍ 재원도 우리는 모두 아득히 먼 곳을 떠도는 외로운 사람들 _ 증도 1 보물섬 _ 증도 2 갯벌의 기도 _ 병풍도, 대기점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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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물의 시간이면 조류를 따라 들어온 물고기들이 저 그물에 꽂혀 사과처럼 주렁주렁 매달리게 될 것이다. 사내는 다시 물이 빠지면
갯벌에 나가 사과를 따듯 그물에 걸린 물고기들을 따다가 내다 팔고 곡식을 사 올 것이다. 바다는 그렇게 오랜 세월 어부인 저 사내 와 사내의 가족을 먹이고 입히고 키워 왔을 것이다. 사내의 개막이 그물 뒤로 늘어선 재래식 김양식장인 마장발의 수천, 수만 개 말 뚝도 사내 같은 어부들이 하나하나 손으로 꽂아 나간 것들이다. 자신은 깨닫지 못하지만 풍경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 풍경과 분리되지 않고 풍경 속에 녹아들어 풍경의 일부가 되어 버린 사람들. 한운리 갯벌의 풍경은 마침내 스스로 풍경이 된 저 어부로 인해 완성된다. 과거에 흔했던 갯벌 풍경은 이제 전설이 되어 가고 있다. 매립과 간척으로 갯벌이 사라져 가는 시대. 갯벌이 사라지면서 그물을 치는 어부들도 사라져 버렸다. 갯벌의 저 어부는 끝내 알지 못하리라. 그 자신이 갯벌 어업의 마지막 페이지를 장식하는 역사의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그래서 저 풍경은 장 프랑수아 밀레의 그 림‘만종’같다. 저것은 필시 갯벌의‘만종’이다. P 24-25 자은도 논농사를 지을 때는 사람들이 해마다 둑을 보수하고 관리했다. 마을 사람들이 모두 갯벌에 나가 일렬로 서서 뻘 흙을 퍼서 전달해 주 면 그것으로 터진 곳을‘땜빵’했다. 둑의 안쪽에는 원안이라는 것도 있었다. 제방과 논둑 사이에 고랑을 파서 물을 채운 것이 원안인 데, 원안은 논에 바닷물이 스며드는 것을 방지하는 완충지대 역할을 했다. 그래서 그런 논들은 원안의 논이라고도 했다. 독살이 아니라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듣고도 나는 실망하지 않았다. 이건 독살보다 더 중요한 발견이 아닌가. 독살은 어업 유산이 지만, 원안의 논은 섬의 농업 유산이고 갯벌 문화다. 참으로 흥미롭고 소중한 유물이다. 사람이 갯벌을 빼앗아 논을 만들자 바다는 갯벌을 되찾으려고 끊임없이 싸움을 걸었다. 그러다 방조제에 구멍을 내서 마침내 갯벌을 되찾아 간 것이다. 사람에 대한 바다의 승 리. 갯벌이 논이 되고 논이 다시 갯벌이 되는 생태 순환의 산 증거물이 아닌가. 반드시 보존해야만 할 자연 유산이고 농업 유산이다. P 40-41 박지도 점심상이 차려졌다. 막 한 따뜻한 밥에 열기구이와 우럭매운탕, 전복장조림까지 진수성찬이다. 배고픈 나그네는 염치불구하고 밥그 릇과 반찬들을 싹싹 비운다. 작고 외딴섬들에는 대부분 식당이 없다. 하지만 나그네는 그런 섬에서 단 한 번도 밥을 굶은 적이 없다. 어느 큰 섬의 식당에서보다 맛나고 풍성한 식탁으로 배를 채웠다. 개발이 덜 되고 사람이 귀한 섬일수록 인심이 후하다. 그래서 그런 섬들을 다니며 가장 많이 듣는 말 또한“밥 먹고 가시오”다. 평생 다시 볼 일 없을 나그네에게 생선 굽고 국 끓이고 밥상 차려 주는 마 음이란 대체 어떤 마음일까. 죽임이 난무하는 시대에 진정 살림의 밥상이 아닐까. 그 마음은 또한 보살의 마음이 아닐까. P 106-107 하태도 골짜기의 끝에 서니 드넓은 모래 해변이 펼쳐진다. 저 아름다운 백사장의 끝에는 거대한 모래언덕이 있다. 어느 해 돈목마을 총각과 성촌마을 처녀가 사랑에 빠졌다. 둘은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산태(모래언덕) 그늘 아래에서 사랑을 나누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총 각이 나오지 않았다. 고기잡이배를 타고 나간 총각이 큰 파도에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처녀는 슬픔을 못 이기고 바다에 뛰어들었다. 그 후 산태에는 애절한 이야기가 깃들었다. 죽은 총각은 바람이 되고, 처녀는 모래가 되어 매일 산태에서 만나고 있다는 것이다. P 192-193 우이도 타리 파시에는 갖가지 슬픈 사연들이 전해진다. 그중에서도 타리 기생 이야기는 가슴을 저미게 한다. 하우리 노인들은 그때 일을 생 생하게 들려준다. 어느 해 여름 일본 어부에게 조선 기생 한 사람이 맞아 죽었다. 기생들은 주재소로 몰려가 항의했지만, 살인자는 처벌받지 않았다. 식민지 백성의 비애였다. 파시촌에 있던 타리 기생 30여 명은 동료의 억울한 원한을 풀 길이 없자 다 함께 양잿물 을 마시고 자결했다. 주민들은 이들의 시신을 하우리 모래밭에 묻어 주었다. 하지만 이들의 억울한 죽음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 고 구전으로만 전해져 안타까울 뿐이다. p 281 임자도 대기점도 북촌(북천)마을, 할머니 한 분이 바닷가에 나와 물 빠진 갯벌을 보고 앉아 해바라기를 하신다. “기경 많이 하시오.” 할머니는 나그네가 하나라도 더 구경하고 가라고 이런 저런 설명을 해 주신다. 대기점도에는 본래 이 북촌마을 하나뿐이었는데 젊은 사람들이 결혼을 하면서 집 짓고 살림 차릴 곳이 없자 제저금(딴 살림) 내주면서 남촌(남천)마을이 한 곳 더 생겼다. 다 오래전 이야 기다. 이제는 북촌이고 남촌이고 빈집투성이다. “여가 앉져 놀면 좋소.” 할머니는 늘 나와서 보는 바다와 갯벌이지만 볼 때마다 좋기만 하다. 할머니는 사탕 하나를 꺼내 건네주신다. 할머니는 갯벌 노둣길 사이로 바닷물이 통하도록 해수 유통 공사를 하는 청년에게도 사탕을 나눠 주고 싶었는데 청년이 거절하자 마음이 좀 상하셨다. “누가 이뻐서 준 줄 알고. 나다니면서 머 좀 달라면 좋제.” 할머니는 뭐든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객지를 떠돌면서 신세도 좀 지고 그래야지 너무 예의만 차리고 그러면 정이 없다는 말씀이겠지. 정이 살아 있는 섬마을의 인정이 정겹다. p 331-332 병풍도, 대기점도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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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섬이 없다
강제윤 시인, 「섬 택리지」로 우리나라 택리지의 공백을 메우다 뭍과 섬 사이에 오솔길을 내는 사람이 있다. 섬과 섬 사이에 노둣돌을 놓는 사람이 있다. 우리에게 섬 여행자로 잘 알려진 강제윤 시인이다. 우리나라의 숱한 섬을 돌아다니며 섬 문화를 기록해 온 그가 이번에는 남도의 소중한 ‘보물섬’ 스물한 곳을 공들여 기록하였다. 그곳에서 시인은 섬 문화와 해양 유산, 역사와 지리, 인물 등 유형과 무형의 숨어 있는 보물을 톺아보고 써내려갔다. 그러고 그 원고묶음 끝에 ‘섬 택리지’라는 화룡정점 같은 이름을 찍어 세상에 내놓았다. 이 책 「섬 택리지」는, 조선시대 영조 때 이중환이 지은 우리나라 지리서 「택리지」에서 따온 제목이다. 이중환의 책처럼 본격적인 지리서는 아니다. 다만, 「택리지」가 뭍과 사람 사이에서의 인문학적인 관계를 살폈다면, 「섬 택리지」는 바다와 섬이라는 자연환경과 인간 생활을 인문학적인 시각에서 살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두 책은 닮은꼴이지만, 정작 책에서 다룬 지역은 단 한 곳도 겹치지 않는다. (이중환이 덕적도와 선유도를 비롯해 몇몇 섬에 대해 언급한 바 있으나, 직접 둘러본 것은 아니고 누구한테서 들은 것을 부분적으로 기록했을 뿐이다.) 이중환이 기록한 것이 ‘뭍의 택리지’인 반면 강제윤이 쓴 것은 ‘바다의 택리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전국의 바닷길을 떠돌며 쓴 강제윤의 「섬 택리지」는 이중환의 ‘택리지’에는 쏙 빠져 있는 우리나라 섬들을 다루고 있다. 그 덕분에 독자들은 「섬 택리지」를 통해 옛 ‘택리지’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되었다. 「섬 택리지」는 우리나라 택리지가 지난 수백 년에 가까운 세월 동안 놓치고 또 잃어버린(조선시대부터 공도 정책 따위로 배제해온, 그래서 몇 백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가 습관적으로 놓치고 있는) 천금 같은 조각을 찾아 맞추어 온전한 우리나라 택리지를 완성하는 데 힘을 보탠다는 점에서 남다른 의미가 있는 책이다. 이 책은 강제윤이 섬을 떠돌며 기록해 온 ‘섬 택리지’를 완성해 가는 일곱 번째 책이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국의 많은 섬이 보물섬” 바람과 물결을 벗 삼은 섬길, 시인의 그물에 올라온 보물 같은 이야기들 “사람에게만 피가 흐르랴. 섬들도 모두 크고 작은 핏줄로 이어진 혈육지간이다.” 시인이 고향 보길도를 떠나, 이 섬에서 저 섬으로 이어진 섬줄기를 따라 걸은 지도 벌써 십여 년 세월이 훌쩍 넘는다. 누가 알아주든 몰라주든 뚜벅뚜벅 걸어 답사한 유인도가 물경 삼백 곳에 이르니, 이제 강제윤에게는 웬만한 섬들이 손바닥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 섬 여행자로서는 거의 독보적인 이력을 쌓아온 세월에 섬을 헤아리는 그 안목은 깊고 밝다. 시인이 던지는 인문학적 사유의 그물이 유형과 무형의 보물을 가리지 않고, 또 시공과 경계에 걸림이 없이 펼쳐진다. 시인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 보물들을 「섬 택리지」에서 생생한 글로 만날 수 있다. “도초도의 고란리는 이 나라에서 돌담들이 가장 완벽히 보존된 마을 중 하나지만 나그네에게 발견되기 전까지는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장산도와 신의도의 백제시대 고분들과 흑산도에 삼국시대 존재했던 국제 해양도시의 유물들을 비롯해,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어업 유물인 생선을 절이는 데 사용한 간독들이 섬의 풀숲에 파묻혀 있다.” 이처럼 시인이 발견한 돌담이나 간독 같은 유형의 보물이 적지 않다. 그밖에도 삼백 년 된 국보급 옛 선창이나 독살, ‘원안의 논’ 같은 해양문화 유적과 어업 유물이 시인의 그물에 걸려 올라온다. 섬에는 유형의 보물만이 있는 것이 아니다. 무형의 보물들이 더 많다. 뭍을 그리워하는 섬사람들의 애환을 담은 가거도 할머니의 민요, 제주도 ‘이어도 사나’의 흑산도 버전이랄 수 있는 흑산도 해녀 할머니가 불러주는 ‘진리 뱃노래’, 어떤 지역의 군수가 “강부자 씨, 목청을 떼놓고 가씨오” 할 만큼 구성진 들노래 등이 그 무형의 보물들이다. 또 시인이 전해 주는 흑산도 진리 당집의 피리 부는 소년과 처녀귀신의 사랑 이야기, 비구니와 비구의 사랑이 놓은 애틋한 노둣돌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섬이야말로 이야기의 보고라는 시인의 말에 절로 고개 끄덕이게 된다. 물결과 바람결이 억겁 세월 동안 스치듯 조각한 자연 절경이고, 더불어 그곳에서 자연을 극복하고 또 때로는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가는 사람들의 높고 외롭고 애틋한 삶은 그 자체로도 보물인 셈이다. 밀레의 ‘만종’이 뭍의 풍경이라면 “망망한 갯벌 한가운데 그물을 들고 서 있는 어부의 모습”은 시인이 읽은 ‘갯벌의 만종’이라 할 것이다. 해서 시인은 “알려지지 않았을 뿐, 한국의 많은 섬이 보물섬”이라고 힘주어 얘기한다. 허나 안타까움도 있다. 섬 여기저기서 개발의 망령을 목도한 것이다. 방조제나 조력발전소가 들어서면서 파괴되는 갯벌과 문화유산에 대한 마음이 그러하다. 해안도로를 내기 위해 어부림魚付林(물고기를 모으기 위해 조성된 숲)을 파괴하고 천 년 된 당집이 허물어지고 그 자리에 체육공원이 들어서는 것을 보는 마음이 그러하다. 지난 해 세월호 참사 이후 얼어붙은 바닷길을 보는 마음이 또 그러하다. 뭍사람들이나 섬사람들 스스로 섬의 진정한 가치를 알지 못하는 현실에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시인은 “섬의 보물들이 아주 사라져 버리기 전에 서둘러 보존할 방법을 찾”자는 목소리도 잊지 않는다. 그렇다고 해서 목소리를 높이지는 않는다. 다만 섬에서 만난 풍경을 찍고 그 터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가감 없이 생생하게 기록해 전할 따름이다. 그렇게 서사와 서정이 잘 어울린 시인의 글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읽는 이의 가슴에 선한 그림이 그려지고 오솔길이 생겨난다. 바로 우리나라 섬들의 보물지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