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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를 읽었다
이명지의 나를 사로잡은 문장
이명지
연암서가 202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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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작가의 말 / 그리고 나를 읽었다

1부 비뚤어져도 괜찮은 나이

육십은 비뚤어져도 괜찮은 나이
나이 들면 왜 색(色)이 좋을까
내가 가장 나다울 때
그 지켜야 할 것들이 나를 지키더라
감정에도 속도가 있다
남자 바꾸는 것만큼 용기 내는 일
잠깐 멈추고 돌아보는 건 내 생에 대한 예의
잘 헤어져야 사랑이 익는다
늙은 매화 등걸 같은 사내와 매화꽃 같은 아내
실연마저 사치인 나이, 가슴이 잃어버린 것

2부 아름다움의 크기

그 알싸하고 달콤하던 엄마의 손매 맛
엄마의 연애에 간섭할 생각은 마라
내 어린 시절의 키다리 아저씨 윤택이 아재
엄마 안에 엄마, 그 안에 또 엄마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곳 리스본
“얘야, 거기서 나오너라!”
울음이 이토록 달다는 사실
막 태어난 산이 연두 옷을 짓고
“너도 그래? 나도 그래!”
당신의 툇마루에 슬쩍 놓아주고 싶은 책

3부 일상의 소중함, 별것 아닌 별것

가장 듣고 싶은 말, 밥 먹어라!
내 인생에 난 호젓한 오솔길에 판석 깔고 꽃도 심어야지
장마당 같은 내 삶 속에 심는 꽃
우리 마을에는 우렁각시들이 산다
일상의 성스러움
아름다움에도 크기가 있다
백 년간 시름 잊을 딴스홀을 허(許)하라
세상의 비위를 맞추려 애쓰지 말아야지
무게를 감당하는 일은 그만한 힘이 있어야 한다
함께 걸으며 딴짓하기 좋은 곳

4부 사랑과 관능, 양날의 검

늙은 어머니의 정욕은 죄악인가
가끔 어디선가 돌이 날아오는 관능
내 그리운 사연까지 왜 데려와서는
‘참을 수 없는’ 질투를 느끼게 하는
누구에게 부재를 안기고 당신은 떠났나
내 삶에 등불을 들어준 문학
그 기억 하나로 일생을 견딜 것 같은 저릿한 사랑
돌아와서야 알게 된 후회의 쓸모
쓸쓸함조차 낭만적 허용인 가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는 내 모습을 사랑하고 싶은 걸까

5부 외로움과 고독, 그리고

외로움은 타자만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쓸쓸함일까
한없이 자유롭고 싶어 한없이 외로웠다
나보다 더 외로운 강이 우는 소리
살아있음의 먹먹한 외침, 인식의 자유로움
생을 가다듬을 그 우아한 시간을 누가 허락해 준단 말인가
혼자라는 결핍을 어루만져 줄 보약
류시화도 내 글을 읽는지 모르겠다
어린 왕자가 사는 행성에선 모두가 관대하다
그렇다고 어찌 바람을 탓하랴
초경 하는 딸 같은 삼월

6부 이토록 단 울음

직면한다는 것은 해소하는 일
시련이 키운 나의 문학
그러니 단풍나무야 잘 자!
못 가본 아득한 그 길
그녀가 마지막으로 듣고 싶은 말
너의 삶은 어땠니?
하느님이 네 이마를 짚어주시려고 오지
텍스트에서 극으로 살아난 수필극 『낮술』
지향하는 한 방황하는 인간
몽클라르, 당신을 잊지 않겠습니다

에필로그 / 문장이 삶과 만날 때 단물이 배더라

저자 소개 1

테레사

경북 영천 출생으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문학석사)했으며, 1993년 봄 [창작수필]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클럽, 문학의집·서울, 동국문학인회, 창작수필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년간 [국민일보] 여의도 에세이, [디지틀조선일보] 힐링에세이 연재로 독자층을 넓혀왔다. 일상을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글로 창작수필 동인문학상(2002년), 동국문학상(2019)을 수상했으며 다년간 국민일보 ‘여의도 에세이’, 디지틀조선일보 ‘힐링에세이’ 연재로 독자층을 넓혀왔다. 신문기자를 시작으로 편집국장, 발행인, 방송진행
경북 영천 출생으로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문학석사)했으며, 1993년 봄 [창작수필]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한국문인협회, 국제PEN클럽, 문학의집·서울, 동국문학인회, 창작수필문인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다년간 [국민일보] 여의도 에세이, [디지틀조선일보] 힐링에세이 연재로 독자층을 넓혀왔다. 일상을 깊이 있고 따뜻한 시선으로 관조하는 글로 창작수필 동인문학상(2002년), 동국문학상(2019)을 수상했으며 다년간 국민일보 ‘여의도 에세이’, 디지틀조선일보 ‘힐링에세이’ 연재로 독자층을 넓혀왔다. 신문기자를 시작으로 편집국장, 발행인, 방송진행자 등을 거친 언론생활 20년, 대학 강단에서 10년 이력을 끝으로 집필에 전념하고 있다. 산문집: 『헤이, 하고 네가 나를 부를 때』, 『중년으로 살아내기』 논문집: 『전혜린 수필연구』, 『피천득 수필연구』 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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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0월 30일
쪽수, 무게, 크기
239쪽 | 128*188*20mm
ISBN13
9791160871494

책 속으로

열심히 산 것도, 열심히 살지 않는 것도 어느 게 옳고 그르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인생에 정답이 어디 있을까. 달려왔든, 걸어왔든 모두 지금의 자리에 다다랐다. 그 자리가 지금까지 살아온 절대 결과치는 아니다. 인생은 상대 평가다. 그 대상에 따라 자신의 행, 불행을 스스로 매길 뿐. 누구는 좀 더 행운이 따랐고 누구는 그렇지 못했을 수는 있지만, 여기까지 온 그 자체만으로도 성공한 인생이 아닐까. 어떤 인생도 의미 없는 생은 없다.

후회는 앞으로 가야 할 길을 알려준다. 내가 가는 길이 맞느냐 틀리냐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겠다 보다 행복한가 아닌가를 가늠하는 방향타가 되어준다. 후회의 쓸모다.
--- p.11

색(色)이란 다른 면에서 섹슈얼리티를 연상한다. 정염에 불타는 여인을 색스럽다고 한다. 나이가 들면 빠지는 것이 컬러만이 아니다. 생기와 활력, 정염도 줄어든다. 생명을 향한 본능, 그것이 색이다. 그 색이 빠지면 니 맛도 내 맛도 없어지는 걸까? 하지만 색이 빠졌다고 다 안 좋은 것은 아니다. “늙으니 좋다. 두고 갈 것만 남아서 좋다”고 한 박경리 선생의 말씀이 아니라도 적당히 물이 빠지고 편안해진 지금이 나도 좋다.
--- p.15

살다 보면 바구니에 담긴 채 강물에 떠내려오는 아기 바구니를 받아 안을 때가 있다. 문학은 내게 비껴갈 수 없는 숙명 같은 아기 바구니다. 육아는 고통도 따르지만 조금 전에 무엇으로 힘들었는지 금세 잊을 만큼 해사한 아기 웃음소리도 있다. 수상의 소식은 그 웃음소리 같다. 글이, 일용할 밥도 술도 되지 않을 때가 더 많지만, 마침표를 찍을 때의 그 짜릿함으로 기꺼이 고뇌의 숲을 걷고 헤매고 몸부림친다.

“우리는 올리브 열매와 흡사해서, 짓눌리고 쥐어짜인 뒤에야 최상의 자신을 내어놓는다”는 탈무드 구절이 있다. 작가의 삶이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운 좋게도 운전하다가, 산책하다가 얻어걸리는 영감이 있다. 그러나 이게 어찌 공짜로 얻어진 것이랴. 온종일 쉼 없이 가동되고 있는 올리브 공장의 결과가 아니겠는가.
--- p.21

어이없게도 그토록 찾아 헤맨 나는 내 안에 있었다. 내 안에 있는 나를 찾아 천지사방으로 헤매고 다녔다. 내 마음에 귀를 기울여야 했었다. 가슴의 소리를 들었어야 했다. 그랬다면 아, 나는 지금 지쳐 있구나, 마음이 아픈 거구나 하고 알아차렸을 텐데 그저 외부의 힘을 빌려 일거에 해결하려 허둥대고 다닌 거였다.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황야를 달리다가 가끔 멈춰서서 뒤를 돌아다 본다고 한다. 내 영혼이 잘 따라오고 있는지 살펴보느라고. 나는 그때 멈추지 않고 달렸다. 아니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추면 쓰러지는 팽이처럼 살고 있었으니….
--- p.32

언젠가부터 나는 오월에 떠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장례식장에 가득한 꽃 대신 온 천지에 흐드러지게 핀 꽃들이 내 생을 애도하고, 심장 모양을 한 라일락 잎사귀가 손을 흔들어주는 오월에….

오래되어도 퇴색되지 않은 그리움은 힘을 쓸 때 툭 불거지는 힘줄처럼 무시로 돋아난다. 내 등 뒤로 꽃이 진다거나 빗물에 둥둥 꽃잎들이 떠내려갈 때, 햇빛이 너무 찬란해서 마당에 내려설 엄두조차 안 날 때거나, 창 너머로 보이는 강 풍경이 너무 아름다울 때도 그렇다. 너무 아름다워 어떤 말로도 형용하기 어려울 때 울컥 가슴에서 무언가가 치민다.
창밖은 오월인데….
--- p.36

한때 나는 울지 못하는 병에 걸렸었다. 어떤 희로애락을 직면해도 울거나 눈물이 나지 않았다. 울지 못한다는 것은 배설하지 못하는 것만큼이나 고통스러웠고 감정의 정체는 몸도 마음도 망가뜨렸다. 세상과의 소통은 물론 글을 쓰는 일도 할 수 없었다. 안으로 안으로만 침잠하는 마음은 온통 웅크려 엎드린 채 자신만을 할퀴고 있었다. 운다는 것은 숨을 쉴 수 있을 때야 나오는 것, 울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축복인지 나는 그때 알았다.
--- p.72

하지만 다 벗었다고 모두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적당히 가린 모습이 훨씬 매혹적이듯, 어디까지 보여줄 것인지는 작가의 몫이다. 그래서 ‘수필 문학에서 상상력의 허구성을 수용해야 하느냐? 한다면 어디까지 해야 하느냐?’는 수필 문학의 화두다.

‘자신의 내면을 오랫동안 들여다보고 섬세하게 풀어낸 일기장’ 같은 작품은 작가 자신에게 가장 먼저 위로를 준다. 칼 융은 “사는 것이 버거운 이유는 자기 자신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치유란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다.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을 위로한 문학작품은 세상으로 나아가 독자들을 위로한다. “너도 그래? 나도 그래!” 서로 껴안고 토닥인다. 그것이 문학의 궁극적 역할이다.
--- p.81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될까? 내일이 온다는 보장은 누구에게도 없다. 매일 현재를 살아 지금에 이르렀고, 어제의 내일이었던 오늘을 살고 있다. 오늘을 산다는 것은 내게 잘해주는 일이다. 내가 편안하면 주위 사람들도 편안해진다. 나이 드니 더 그렇다. 나를 잘 돌보는 것이 자식들 걱정을 안 끼치는 일이란 걸 깨닫는다. 외롭다고 말하는 대신 나를 한 번 더 안아줘야겠다.

건축가 안도 다다오는 집을 짓고 정원에 길을 낼 때 미리 판석을 깔지 않는다고 한다. 처음 2년은 잔디만 심어놓고 그 집 사람들이 다닌 길에 자연스레 길이 날 때를 기다려 그 선에 판석을 깐다는 것이다.
--- p.93

말에도 때가 있다. 아름다움에도 크기가 있는 것처럼 말도 효용의 크기가 있다. 제때 하지 못한 고맙다는 말, 사랑한다는 말, 미안하다는 말들…. 때를 놓친 말들은 쪼그라들고 빛바래 영원히 기회를 놓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돌아보니 흘려버린 언어들이 불현듯 자갈돌이 되어 가슴에서 달가닥거린다. 제때 한 따뜻한 말은 어느 순간 내게로 돌아와 괜찮다 괜찮다며 등을 토닥인다. 속을 알 수 없는 나의 술병에 남은 술이 얼마일지 모르지만, 마지막 한 방울이 다할 때까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하고 싶다. 그들의 술잔에 한 방울 내 향기 보탤 수 있다면 무얼 더 바랄까.
--- p.107

나로 산다는 것은 경계에 서는 일이다. 어느 것에도 갇히지 않고 끄달리지 않고 내 욕망의 주인으로 사는 일이다. 장자는 ‘천하를 따르지 않고 나의 즐거움을 따르겠다’하고, 노자는 ‘자신을 천하만큼 사랑하는 사람한테 천하를 맡기겠다’ 하였다.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어찌 천하를 사랑하겠는가. 그런데 어리석은 나는 남이 만든 기준이 내 것인 양 칭찬에 목마르고, 내 글을 쓰기보다 남의 글을 읽는데 더 많은 시간을 소비하고 있다. 박제된 지식을 곁눈질하느라 생생하게 살아 꿈틀대는 나의 하루를 허비하고 있다.
--- p.114

서구 문학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관능을 자연스럽게 다뤄왔다. D.H. 로렌스의 『채털리 부인의 연인』이나 헨리 밀러의 『북회귀선』, 아나이스 닌의 『비너스의 델타』까지 여성의 성적 주체성과 다양한 욕망을 탐구한 예술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 문학도 김동인의 『감자』에서부터 시작해서 최근의 여성 작가들까지 관능을 중요한 소재로 다뤄왔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는 관능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여전히 남아 있다. 나 역시 나이가 주는 자유로움 때문일까? 자주 사랑과 에로티시즘을 주제로 삼는다. 즐겁다. 그런데 가끔 어디선가 돌이 날아온다. 관능은 해로도, 달로도 뜬다. 그는 대체 무얼 상상했길래? 치명적 사랑을 못 해 본 열등감인가?
--- p.130

하지만 떠남과 머무름, 그 사이를 장자는 “무릇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잠시 머무는 것일 뿐”이라고 했다. 모든 존재는 필멸의 숙명을 안고 태어난다. 본질적으로 떠남을 전제로 하는 것. 우리는 이 세상에 잠깐 머물다 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그럼에도 떠남은 언제나 힘들다. 죽음이나 이별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부재가 주는 의미는 단순하지 않다. 때로 해방이기도 하고, 때로는 절망이기도 하다. 사랑하는 이의 부재는 그리움을 낳지만, 동시에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을 열어주기도 한다. 비어 있는 자리가 있어야 새로운 것이 들어올 수 있다.
--- p.140

수필이 신변잡기라는 말은 문학적 당위성이 없다는 질타다. 수필이 자신의 경험담으로 끝날 때 듣는 말이다. 수필이 문학이 될 수 있으려면 ‘그래서 뭐?’가 있어야 한다. 이 이야기를 왜 썼는지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수필을 ‘그래서 뭐?’의 문학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의미 부여이며 관조다.

수필을 쓰다 보니 인생의 관점도 그리됐다. 수필가의 삶이 되었다고나 할까. 매 순간 의미를 찾으려는 노력을 한다. 어떤 일이 내게 일어났을 때 이건 어떤 의미일까? 인생이 내게 무슨 말을 하려고 이 일이 일어난 걸까? 하고 생각하는 습관이랄까. 일상의 소소한 사건도 그냥 흘려보내지 않고 그 안에서 보편적 진리를 찾으려 한다.
--- p.143

여행은 풍경과 사람을 만나러 가지만 늘 좋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다. 더러는 상처로 남기도 한다. 내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부끄러운 모습을 마주하게 되면 후회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후회가 나를 겸손하게 만들고, 다시 사랑할 수 있게 한다. 인생은 거대한 호수다. 문학이 그런 것처럼. 다만 거기서 사랑을, 사람을 읽기 위해 나는 또 떠나게 될 것이다.

돌아온 뜰에서 깨닫는다. 떠나지 않았다면 알 수 없었던 지질한 내 마음의 속살을, 다시 돌아와서야 알게 된 후회의 쓸모를.
--- p.153

정말 외로움은 타자만이 어루만져 줄 수 있는 쓸쓸함일까? 외로움은 사랑의 그림자다. 누군가를 사랑하지 않으면 외롭지도 않다.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열정은 이제 없지만 함께 있으면 편안해지고 바라보면 안정감이 드는 사랑, 그것도 사랑 아닌가. 그렇다고 외로움이 두려워 사랑하지 못하는 바보는 되지 말아야겠다. 사랑 없는 인생은 꽃 없는 정원과 같다. 외로움을 감수하고라도 사랑해야 하는 이유다. 그것이 살아있다는 증거이니까.

고독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다.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고독은 나약함이 아니라 힘이다. 사랑할 수 있는 힘. ‘외로움이 사는 곳’을 찾아낸 이상 더는 외로움이 아니다.
--- p.164

인간은 필멸의 존재다. 어떻게 살다가 어떻게 죽을 것인가의 문제만 있을 뿐이다. “삶과 싸워 이기고 떠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죽음”이라고 니체는 말했다. 그런데 옹이를 빼고 생을 가다듬을 그 우아한 시간을 누가 허락해 준단 말인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가 확연해지는 느낌이었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는가. 매 순간을 ‘생동’으로 채우고 있는가. “밀어도 열리고 당겨도 열리는 문”을 늘 반갑게 맞이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 p.178

나에게도 못 가본 길들이 있다. 첫사랑처럼 아린 그 길들. 문득 선생님이 못 가본 그 길이 내 길만 같아 아득해진다. 못 가본 길이 주는 아름다움은 그리움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희망이다. 비록 같은 길은 아닐지라도 또 다른 길이 있다는 믿음이다. 한쪽이 닫히면 다른 한쪽이 열리는 삶의 이치는 언제나 희망을 준다.

오늘도 나는 여전히 갈래길에 서 있다. 하나를 선택하고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 그러나 더는 두렵지 않다. 포기한 길도 내 안에서 또 다른 길을 낼 것이란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듯이, 앞으로 가지 않을 수많은 길들 또한 아름다울 것이라 믿으며 오늘 걷는 이 길을 끝까지 걸어가려 한다. 선생님처럼….
--- p.212

“너의 삶은 어땠니?”
어느 날 다정한 목소리가 이렇게 물어온다면 그냥 털어놓는 것이 좋을 수도 있겠다. 그건 정상 참작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는 물음이다. 우리는 모두 정상 참작이 필요한 존재들이다. 완벽하지 않고, 실수투성이고, 때로는 길을 잃는다. 하지만 그것이 바로 인간이다. 쇼펜하우어는 인간을 “의지의 노예”라고 했다. 우리는 욕망에 이끌려 살고, 그 욕망 때문에 고통받는다. 하지만 그 고통조차 우리를 인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 p.218

추천평

세상의 원심력에 나풀거리지 않는 단단한 철심 하나가 박혀버린 것 같다. 그를 사로잡은 문장들이 그의 안쪽을 서성이는 동안 존재의 심연을 예리하게 벼려놨는지 마중물 같은 문장들을 ‘나’라는 원물에 섞어 버무려내는 생의 진경(珍景)들이 깊고 따스하고 맛깔스럽다. 행간의 쉼표에 올라앉아 단물 스민 문장들을 떠올리다 보니 “I see you!” 하고 고백하고 싶어졌다. - 최민자 (수필가)
그의 매혹적인 문장에 갇혀 산 지 몇 년이다. 이미 도발적인 수필 『육십, 뜨거워도 괜찮아』, 『낮술』로 나를 당혹하게 했다. 그런 지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 『그리고 나를 읽었다』로 또 한 번 나를 당혹하게 한다. 그 사람의 문장을 읽었을 때 그 사람이 만져지는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이명지의 문장은 이명지의 일상과 사유와 고백과 자유가 만져지는 잘 익은 바디감 있는 문장이다. - 공광규 (시인)
「나를 사로잡은 문장」이란 제목을 지을 때부터 에필로그를 쓸 때까지 첫 번째 독자로 함께했다. 포르투갈의 카보다로카, 그리고 크로아티아의 보디체에서 그녀가 원고를 낭독했고 나는 의자에 기대어 듣다가 함께 목이 메어 몇 번이나 숨을 골라야 했다. 우리는 언어로 공감하는 오르가슴을 몇 번이고 즐겼다. - 박미경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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