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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관에 관한 책이 나왔다. 독보적인 환관 연구자로 잘 알려진 일본의 미타무라 다이스케三田村泰助(1909~1989) 전 리쓰메이칸 대학立命館大學 명예교수의 《환관-측근 정치의 구조宦官-側近政治の構造》를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만들어진 제3의 性, 환관. 여자도 남자도 아닌 비인간적인 존재가 무엇인지, 환관과 맺어진 여러 요소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환관이 뚜렷하게 활동한 한漢, 당唐, 명明나라를 대상으로 그 배경과 특색을 살펴보고자 했다. 동서를 망라한 존재, 환관 환관은 동양, 특히 중국에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시리아의 현비 세미라미스 대부터 시작되었다고 하는데, 고대 오리엔트에서 전제군주제와 함께 탄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대략 기원전 8세기이다.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환관 사용은 페르시아인의 풍습이었다. 그리스인들이 환관 매매에 나서면서 수요가 급증해 소아시아의 에페소스(성경에 나오는 에베소)나 사르디스에서는 고가에 판매되었다. 기원전 6세기경이다. 오스만제국에서도 후궁인 하렘에서 환관들이 복무했는데, 백인환관보다 흑인환관이 더 중용되었다. 야만인일수록 충성심이 강하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중국에서는 춘추시대에 환관을 사용한 기록이 있다. 제 환공이 병석에 누운 관중에게 자신의 후계자로 수조竪?라는 인물이 어떤지 물었다. 관중은 수조처럼 임금 곁에 있기 위해 자궁自宮하는 것은 인정을 저버리는 일이므로 마땅치 않다고 대답한다. 환관의 기원 중국인들은 환관성宦官星이 4개 있는데 제좌帝座의 서쪽에 위치해 있다고 한다. 시초부터 천계天界에서는 환관이 황제에게 봉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천계의 질서가 인간계人間界에도 적용되어 황제 측근자로서의 숙명, 천명을 부여 받은 자로 여겨 왔다. 《주례周禮》에 환관제도 내용이 나와 있으나 책의 신빙성이 낮아 별반 호응을 얻지 못했다. 그러다 은허殷墟에서 [○●羌]이라는 갑골 조각이 발견되면서 반전되었다. ○은 양근陽根을, ●은 단절을 나타내는데, 은 무정왕 때 강인/강족을 환관으로 하려는 것을 신에게 품의하는 내용이다. 기원전 1300년대이다. 따라서 환관은 기원전 14세기 이전에 존재했다고 보게 되었다. [20쪽 그림글자] 정복 과시를 위해 이종족 포로의 성기를 제거한 결과 환관이 태어났다. 잔학성과 신성한 행위가 뒤섞인 산물이다. 반면, 자기 혈족은 절대로 거세하지 않는다는 철칙이 있었다. 거세된 이종족異種族을 왜 궁정에서 사용했을까? 불구의 몸으로 고국에 돌아갈 수도 없고, 언어 관습이 전혀 다르며, 남성 실격자라는 이유로 이민족의 사회에도 편입될 수 없는 고독한 존재. 모든 인간관계가 떨어져 나간 무적자無籍者. 신체의 변화와 함께 인간 사회에 무연無緣한 가축적 인간. 지하 말고는 안주할 곳이 없는 특수한 종족……. 그러나 이 특성은 궁정의 주인인 군주에게는 반드시 필요한 것들이었다. 신과 인간은 지배-피지배 관계다. 신의 대리자인 군주와 인간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군주는 신의 대리자일 뿐 신 그 자체는 아니다. 인간의 삶을 영위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인민은 문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 신비가 있어야 외경이 있고, 더욱이 궁중에는 신의 이름으로 모아놓은 온갖 보물들로 가득하다. 그 보물들은 인민이 취할 수 없는 것들이다. 인간은 선악의 양면성을 가지고 있다. 그 유별난 성격, 즉 대선인과 대악인이 공존하고 있는 부분에 군주의 성격이 있다. 일단 군주가 되면 주변 사람들을 의심하고 육친들을 살해, 추방한다. 군주가 되기 위해선 비정함과 고독은 필수다.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 비인간이다. 이들과 죽이 맞는 자는 역시 비인간적인 환관밖에 없다. 아무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없다. 환관은 군주가 지상생활을 할 때 신의 이름으로 만들어놓은 비장의 제도였다. 환관의 공급과 공인 환관의 공급은 먼저 이민족에게서 취했다. 비밀보호와 음모의 손길이 닿지 않기 위해서였다. 다만 시간이 흐르면서 피정복자를 거세하는 일이 드물게 되었는데, 평화주의를 내거는 것이 시대적인 대세였고, 이민족과의 마찰을 피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다음, 궁형宮刑이라는 형벌을 통해서였다. 궁형은 한 문제 때 폐지되었다고는 하나 공식적으로 폐기된 시기는 수나라이다. 당 왕조 때 환관의 공급 형태가 바뀌는데, 거세된 자를 공물(황제에게 현물로 바치는 물품)로 바치게 했다. 징모徵募는 강제였으나 형벌은 아니었다. 환관의 특산지는 영남지역으로, 준식민지였다. 내지와는 다르게 인신매매가 성행했는데 토민들을 붙잡아 매매한 풍습에서 비롯되었다. 내지의 양민들까지 가세함으로써 이곳이 노비의 공급지로 부각되었다. 남해무역의 중심지 광동에는 아라비아 상인들이 몰려들어 흑인 및 황인 환관들을 부렸다. 거세된 자를 뜻하는 힌두어의 호자hoza를 화자火者라고 불릴 만큼 비중국계 환관이 많았다. 당나라가 끝날 무렵 광동에 남한南漢이 세워졌다. 그 군주들은 환관을 신뢰한 나머지 유능한 가신이나 시험에 우수하게 합격한 자들은 미리 거세한 후 채용했다. 이 소국에 한때 환관의 수가 2만에 달했다고 하니 과연 환관왕국이라 불릴 만했다. 한, 당에서 활기를 띤데 비해 송 때에는 활동이 수그러들었다. 송 태조가 환관이 하는 짓에 넌더리를 내 50명으로 제한했고 후대의 황제들도 태조의 뜻을 잘 따랐기 때문이다. 생산력의 발달로 신유교가 꽃을 피워 재상정치가 펼쳐진 것도 한 이유였다. 그런데 비수기인 10세기에 자궁自宮 공인이 이루어졌다. 역설적인 스토리다. 자궁은 스스로 거세하는 것을 말한다. 독재군주제와 환관경찰, 환관정치 정복왕조 원을 몰아내고 명을 세운 주원장은 유교국수주의에 입각해 자궁금지령을 내렸다. 신체를 잘 보존하는 것이 유교의 근본인 효의 시작이므로 자궁을 한 자는 효의 근원을 제거한 것이라 해서 사형에 처했다. 그 일족, 촌장, 알고서 숨겨준 자까지 모조리 처벌했다. 모든 관청과 환관 관청 간에 문서 교류를 금지시켰고, 환관의 수도 수백 명으로 줄였다. 이것이 명 말기에 최고 10만 명까지 늘어나게 된다. 왜, 이 독재군주제 국가에서 억제되던 환관이 발호하게 되었을까? 주원장이 행한 모순 때문이었다. 모순이란, 아들 연왕(훗날 영락제)과 유교국수주의였다. __222쪽, 환관억제책 참조. 영락제와 환관 영락제는 현대의 중국에 큰 선물을 남겼다. 화이질서華夷秩序의 완성을 꿈꾼 그는 아버지 의 정책을 폐기하고 해외로 눈을 돌렸다. 5차례 몽골 친정에 나섰으며, 환관 정화에게 7차례 남방을 원정케 했다. 또 환관 이시하를 시켜 만주를 탐사케 했는데, 이것이 훗날 중일 간 영토분쟁이 벌어졌을 때 기묘한 힘을 발휘하게 된다. 이시하는 병사 12,000명, 50척의 병선을 끌고서 흑룡강 하구에 절을 세우고 4개 문자로 쓰인 석비를 세웠다. 훗날 일본인 학자가 이 석비를 연구하고 1900년에 논문을 썼다. 1931년, 중일 간 영토분쟁이 벌어지자 중국 측에서는 이 일본인 학자의 논문을 증거로 내밀었다. 중국에서는 아무도 이 석비를 연구한 학자가 없었다. 환관의 파트너들 -- 외척·여화·관료 환관과 전제군주는 비인간성과 비밀을 공유한다. 둘 사이는 표리를 이루며 4천 년을 함께해 왔다. 환관은 오늘날 소멸되고 없지만 각 시기마다 환관과 그 파트너는 때론 협력하고 때론 반목하며 동거해 왔다. 한에서는 외척이, 당에서는 여화女禍가, 명에서는 관료가 그 파트너가 되었다. 한나라 이전까지는 전통적 지배계급 간 권력투쟁이었다. 그러나 전통도 없는 개방적인 초楚의 서민계층이 집권을 한 것이 한나라인데, 그들은 고대 유제遺制를 궁 안으로 끌어들였다. 모계제도 그중 하나다. 여기서 외척정치의 씨앗이 뿌려지고 이들은 후한 말까지 환관과 대립을 반복한다. 여화는 황녀 또는 왕비가 자신의 능력으로 권력을 장악한 사실을 말한다. 청나라 학자 조익에 따르면 당에서의 여화는 인과응보라고 한다. 집안내력이 그렇다는 것이다. 이연(고조)이 그렇고 이세민(태종)이 그랬으며, 이치(고종)는 아버지의 여인을 취하고, 이융기(현종)는 아들의 비를 맞아들였다. 북방 민족의 피가 흐른 탓이라고 했다. 태종 이세민은 큰형을 죽이고 황위에 올랐는데 이는 후임자들에게 본보기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꼭두각시 스타일 황제들이 황위에 오르게 된다. 그 첫 번째가 고종이었다. 그의 부인 측천무후 대에 전무후무한 여인의 독재를 맞이하는데 그것이 여화의 시작이다. 명나라에서 환관은 영락제 치세와 더불어 부활했다. 내전에서 환관들이 상대의 정보를 빼주어 승기를 잡았던 영락제는 유자들이 자신에게 반발하자 강경한 경찰정치를 펴게 되고, 그런 중에 환관을 활용했다. 동창이 그것이다. 정식 내각에 비추어 그림자 내각이라는 환관들 비선이 만들어지고, 환관학교가 세워지면서 엘리트 환관이 육성되었다. 사대부에 맞먹는 지식인층이 형성되고 황제와 지근거리에 있으니 정보는 모조리 그들의 손에 좌우되었다. 물이 고이면 썩는 법. 국정의 난맥이 고스란히 드러나고 환관의 폭정으로 여론이 들끓었다. 서원이 중심이 되어 동림당이 결성되자 환관들도 환관당을 만들어 대응해 나갔다. 환관 위충현은 생신(살아 있는 신)으로 받들어졌지만 얼마 안 돼 황제 숭정제는 목을 매 죽고 명나라는 문을 닫게 된다. 현대의 환관적 존재 -- 저자의 에필로그 축약 “오늘날, 이미 소멸한 존재인 환관처럼 비인간화 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 개개인은 남성의 형태는 간직하고 있으되, 조직 속의 인간이 됨으로써 점차 비인간화가 진행되는 것 같다. 환관을 탄생시킨 것이 권력기구인데, 그 형태는 과거와는 다르다고 할지라도 세계 어느 국가나 사회에도 권력기구는 여전히 존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대의 권력은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대하다. 강대한 권력은 비밀을 낳고 비밀은 권력을 한층 강대하게 해준다. 비밀이라는 말을 현대적 용어인 ‘정보의 독점’으로 바꿔놓고 보면 좀더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곳에는 반드시 권력에 직속해 비밀을 보호하기 위해 정보를 독점하고 있는 비서그룹이 존재하게 되어 있다. 또한 권력자에 밀착해 정보를 쥐고 활개를 치는 패거리들이 나타나게 된다. 그들이야말로 환관적 존재가 아닐까? 기업이든 국가든 권력에 직속한 채 권력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할 능력이 없는 측근 때문에 발생하는 피해가 얼마나 큰지는 두말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이유에서 정보를 독점하는 측근 그룹에 내포된 환관적 존재는 현대와도 무관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 * * 요즘 우리 사회가 십상시니 뭐니 하면서 측근들 문제로 시끄럽다. 숨 좀 고르고 차분해지기를 소망하며 이 책이 그런 일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