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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사람은 다시 마포대교를 건너 길을 되짚어오기 시작했다. 점퍼 옷깃을 여미며 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걷는 진솔 옆에서, 건은 가볍게 스트레칭하며 두 팔을 허공에 뻗었다 내리거나 휘두르고 있었다. 그러고는 농담처럼 말했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요즘 진솔 씨는, 나한테 일기장 같은 사람이에요.” “…일기장?” “표현이 좀 그런가? 아무튼 어제도 이화동 우리 집까지 강제로 데리고 갔었지, 오늘도 당신이랑 마무리가 안 되니 뭔가 허전했지. 수첩에 몇 줄 적는 것처럼 꼭 진솔 씨한테 하루를 정리하게 되잖아요. 요즘 계속 그랬으니까.” - 나는 새삼 파꽃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민들레 홀씨보다 크고 둥근, 얼핏 솜털처럼 부드러운 표정이지만, 빽빽한 가시처럼 퍼진 꽃차례가 소박한 위엄이 엿보였지요. 갓 태어난 꽃 같기도 하고, 이미 늙어버린 꽃 같기도 했습니다. 그제야 파꽃이 참으로 아름답다는 걸 알았어요. 할아버지가 마당에 한참을 서서 내려다보셨던 까닭도 이해할 것 같았습니다. 화구를 꺼내 캔버스에다 파 꼭대기에 올라앉은 둥근 총화를 그리던 순간 난 깨달았어요. 내가 계속 이 꽃을 그리게 될 거라는 사실을요. 운명처럼, 나는 파꽃을 기다렸고 파꽃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 “당신 말이 맞아. 나,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고… 내가 한 여자의 쓸쓸함을 모조리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아. 내가 옆에 있어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는 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진솔은 눈물이 그렁한 채 건의 품에 얼굴을 묻고 듣고 있었다. “그날 빈소에서, 나 나쁜 놈이었어요. 내내 당신만 생각났어. 할아버지 앞에서 공진솔 보고 싶단 생각만 했어요. 뛰쳐나와서 당신 보러 가고 싶었는데… 정신 차려라, 꾹 참고 있었는데….” 그의 속삭이는 뜨거운 입술이 그녀의 머리와 이마에 닿아 스쳐갔다.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진솔은 차라리 젖은 눈을 감아버렸다. - 나 사랑하는 게 정말 힘들면… 사랑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한테 아무 위로도 못 됐다는 거 아니까. 하지만 도망가지만 말아요, 내 인생에서. - 댁은 이제 어떤지 모르겠지만… 난 갈수록 공진솔 더 사랑하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아릿해 왔지만 진솔은 짐짓 밉게 대꾸했다. “말도 안 돼. 좋은 시절, 열정 다 쏟아 붓고 껍데기만 남아서는, 뭘 사랑한대.” 건은 조금 괴롭게 웃더니 한동안 망설이며 고민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난 껍데기가 진짜예요.” - 작은 한숨이 아지랑이처럼 새어 나왔다. 사랑도, 사람 마음도 이렇게 낱낱이 뒤적여가며 볼 수 있다면 좋겠지. 볕을 모아 불씨를 만드는 돋보기처럼, 좋아하는 이의 마음에 누구나 쉽게 불을 지필 수 있다면 좋겠지. 사랑 때문에 괴로운 일 없겠지. 해가 저물 때까지 건의 전화는 걸려오지 않았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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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일상이 되어버린 지금, 다시 마음속에 봄바람을 불러일으키는 책
-eyesmong님 사랑을 하는 사람에게도, 사랑을 기다리는 사람에게도, 사랑에 지친 사람에게도 위안이 되는 책 -lukim님 언젠가 사랑을 하게 될 날 위해, 그리고 지금 사랑을 하고 있는 모든 연인들을 생각하며 간절히 바랐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xhswnsgur님 “언제 세월이 이렇게 흘렀나 모르겠습니다. 제 마음은 그리 변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문득 돌아보면 세상도 사람도 알게 모르게 달라졌구나 싶습니다. 사서함이 처음 출간된 때가 2004년이었으니 올해로 꼭 10년째입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이고 빠르게 휩쓸려가는 시대인데, 작은 책 한 권이 꾸준히 사랑받으며 잊혀지지 않았다는 사실이 제겐 놀랍고 감사합니다. 독자님들의 메일이나 리뷰를 읽을 때면, 한번 세상 밖으로 나간 책은 더 이상 작가의 소유물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사서함을 읽으신 많은 분들이 개인 홈피나 블로그에 올려주셨던 글귀가 있습니다.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세상의 모든 사랑이 무사하기를. 건의 시집 앞에, 진솔의 노트북 화면에 적힌 그 구절은 지난 10년 동안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헤드카피나 마찬가지였고, 그건 작가나 편집팀이 아닌 독자님들이 뽑아낸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제 저 글귀가 오래 전 제가 쓴 문장이라는 느낌도 희미하답니다. 어디선가 지금 아픈 사랑을, 행복한 사랑을, 말하지 못한 사랑을 하고 있는 이들이 자신의 수첩과 일기장에 써놓은 글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실은 더 애틋하고 고맙습니다.“ - 개정판 작가의 말 중에서 사랑하는 일에 능숙하지도 그렇다고 소홀하지도 않은 그녀들에게 바치는 소설 서른한 살 공진솔. 사소한 일 하나하나 지켜가며, 나름 자신의 일에 애착을 갖고 살아가는 라디오 구성작가. 새로이 개편을 맞아 자신이 쓰고 있는 프로그램 [노래 실은 꽃마차]를 새 담당 PD가 맡게 된다는 소식을 듣는다. 이건 PD, 시집까지 낸 시인이란다. 글 깨나 쓴다고 사사건건 작가들 힘들게 하는 PD에게 시달려 본 경험이 있는 진솔은 일단 이건 PD에게 경계심과 마음의 방패를 펴고 그를 접하게 된다. 하지만 이 남자는 진솔이 생각했던 것과 비슷한 것 같으면서도 많이 다른 사람이었다. 사랑이 지나간지 시간이 많이 흘러 새삼 사랑이란 것에 의미를 두고 싶지 않았던 진솔이지만, 이건 PD는 어느새 함께 일하는 사람 이상의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기 시작한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를 가슴에 담게 된 진솔, 이제야 이건의 복잡한 마음이 보이기 시작하지만 이미 그녀의 마음은 그에게로 스며들기 시작한 후였는데. “네 사랑이 무사하기를, 내 사랑도 무사하니까.” 독자들이 선택한 문장, 입소문 만으로 독자들의 선택을 받은 소설 2004년 처음 선을 보인 이 사랑 이야기는 독자들의 조용한 지지와 입소문 속에서 롱 스테디셀러로 자리를 잡았다. 지금까지 독자들이 웹상에 기록한 블로그 감상평과 리뷰 포스팅은 수천 건에 달한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같은 책을 추천해 달라”는 질문은 쉽게 볼 수 있지만 명쾌한 답변은 기대하기 어렵다. 누군가는 독보적인 로맨스 소설이라고 했다. 그 동안 두 번 표지가 바뀌었고, 잠깐 ‘구하기 힘든 걸작’ 취급을 받은 적도 있었지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로맨틱하고도 현실적인 캐릭터’ ‘잔잔하지만 확 와 닿는’ 문장으로 읽는 이들을 사로잡았고, ‘읽고 나면 곁에 있는 사람이 사랑스러워지는 소설’이라는 호평 속에 꾸준히 독자들의 곁을 지켜왔다. 2013년 올해 출간 10주년을 맞아 전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다. 책 속의 부록 단편소설《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 수록 작가는 그간의 사랑에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이번 개정판 뒷부분에 또 하나의 작은 이야기- 단편 소설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를 실었다. 사서함을 읽고 나면 바로 알아볼 이 제목에 대해 작가는 이렇게 말한다. ∥ … 소박한 부록처럼 단편 [비 오는 날은 입구가 열린다]를 실었습니다. 사서함 독자님들은 이 제목을 알아보셨을 거예요. 저는 누군가와 누군가 사이- 그들 사이에서 슬쩍 통하는 유머나 코드가 좋습니다. 건과 진솔이 ‘양떼같이’를 말할 때 둘이서 웃는 것처럼요. - 개정판 작가의 말 중에서 ∥ 이도우 저자 특유의 쓸쓸하면서도 따스한 분위기로 어느 비오는 밤, 인사동 골동품 가게를 찾은 여인의 사랑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사랑의 유효기간을, 어느 책의 유효기간을, 우리는 쉽게 알 수 없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 속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그들의 인생에 공감하고 따뜻한 시선으로 지켜봐준다면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 책은 독자들 곁을 지키는 스테디셀러일 것임을 믿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