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부 : 우리 문자(논문)
- 적봉지역 하가점 하층문화에서 발굴된 고문자 저와 용 고찰 - 고대화폐 첨수도에 나타난 '원시형태 한글'의 이해 - "한요부 타ㅅㆍㅁ오해"의 발견과 '고한글'에 대한 고찰 2부 : 우리 역사(논문) - 요서 홍산문화와 환웅 조이족의 귀속 관계 - 고대 정전제의 시원문제와 단군조선 - 문헌 비교로 본 최씨낙랑국의 실체 3부 : 우리 사회(비평) - 식민지 비판학 서설 - 한국 역사학계의 현 주소와 성찰 - 식민사학의 실제 상황 -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의 대립, 기문다라 유네스코 반대, 전라도천년사 투쟁, 춘천중도사태 집중조명 첨부1 : '역사문화권 정비 등에 관한 특별법'의 개요 첨부2 : '고조선 역사문화권' 법안 발의안 첨부3 : "배달족역사"(대한민국임시정부 교과서,1922) 첨부4 : 남북역사학자 공동 보도문(2002) |
LEE CHAN-GOO,李讚九
|
천부경과 주역을 공부하다가 철학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싶었다. 철학을 연구하며 한국사상사를 읽다가 단군사상이 허구적인 신화로 홀대받는 것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그래서 한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그 중에서도 고대사와 고대문자에 눈이 꽂혔다.
첫 과제가 첨수도와 명도전의 화폐문자 연구였다. ‘돈’자 모양의 첨수도가 지니고 있는 신비는 아직도 다 풀리지 않았다. 역사는 유적지 현장에서 배워야 한다는 말이 있다. 홍산문화 우하량유적지를 탐방하고 단군조선(고조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할 수 있었다. 이번에 발간하는 책은 이런 생각을 정리한 논문과 칼럼들을 모은 것이다. 1부는 우리 문자편이고, 2부는 우리 역사편이다. 3부는 우리 사회편이다. 1, 2부는 『역사와 융합』 등 학술지에 발표한 논문들이고, 3부는 기고한 칼럼들이다. 칼럼은 사건의 현장에서 쓴 기사들이다. 기문·다라 유네스코사태와 『전라도천년사』 사태를 맞아 시민운동의 현장에서 직접 목도하며 역사적 관점으로 고발한, 다소 거친 표현도 있으나 현장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쓴 글들이다. --- 「저자 머리말」 중에서 |
|
“이찬구 박사는 이 저서를 통해 매우 괄목할 만한 주장을 펴고 있다. 기원전 2000년을 전후한 시기에 갑골문의 원형이 될 만한 문자들이 적봉 일대에 존재하였으며 그 문자들이 고대 한국어이었을 수 있다고 주장함으로써 요하문명이 고조선문명임을 밝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하겠다. 단군조선 시대에 벌써 우리 조상들이 갑골문자의 전신이 되는 문자(조선글)을 만들어 사용했을 것이라고 밝힌 것은 앞으로 상나라 때 등장한 갑골문으로 표기된 문장들의 통사, 의미적 구조를 우리 시각에서 제대로 연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 정원수 교수 (충남대 사범대학 국어교육과 명예교수)
|
|
“이찬구 박사의 학문은 폭이 넓고 깊다. 철학에서 시작한 학문이 역사에 와서 꽃을 피웠다. 주역의 대가였던 대산 김석진 선생의 제자다운 한문 실력은 갑골문과 금문 등의 고문자를 해체해서 우리 역사를 복원하는 경지에 이르렀다. 현재로서는 이찬구 박사 홀로 도달한 봉오리라고 생각한다. 그 높은 봉오리에서 보니 아직까지도 일제 식민사학자들의 제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한국 역사학계가 얼마나 초라해보였는지를 이책 『우리 문자 우리 역사』는 말해준다. 민족에 대한 경건한 사랑과 역사의 진실을 찾기 위한 구도의 길에서 맺은 결실이 『우리 문자 우리 역사』일 것이다.” -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
|
|
“이번에 이찬구 박사에 의해 첨수도에 쓰여진 원시한글 형태의 두 글자의 발견은 역사적 의미가 큰 것으로 판단됩니다. 수천년 고조선 나라 역사에 고유문자가 발견되지 않아 아쉬움이 컸는데 이로써 가림토문자에 대한 용례가 발견되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를 계기로 가림토문자에 대한 연구가 박차를 가하게 되고 나아가 한글의 뿌리찾는 일에도 논의가 활발해지기를 기대합니다.” - 김주인 박사 (역사주권재단 이사장)
|
|
“이찬구 박사가 제시한 하가점하층문화 시기의 두패자(頭牌子) 유적의 명문을 ‘문자’로 볼 수 있는가는 여전히 논쟁적이다. 그러나 두패자 유적의 명문은 이후의 상대 갑골문이나 금문으로 바로 이어지고 있어서, ‘문자’의 초기 형태로 볼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이것이 요하문명의 초기 청동기 유적의 최대 밀집 지역이자, 고조선의 초기 중심지로 보이는 지역에서 발견되었다는 것은 고조선 문자에 대한 많은 가능성을 열어주는 계기가 될 것이다.” - 논문 「저와 용」에 대한 논평, 우실하 교수(항공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