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부 ‘있음’2부 ‘없음’발문 - 연여름작은 신이었던 아이작가의 말
|
허진희의 다른 상품
|
마음이 닿을 때까지 마음을 다하는 것 말고는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나와, 그런 나의 ‘작은 신’에게엄마가 “핏덩이”였던 자신을 덜컥 맡기고 사라진 뒤 외할머니 손에서 자란 ‘구니’. 장지문 달린 단칸방에 살며 여름이면 침수 피해로 흙탕물을 퍼내야 했던 “더럽고 냄새나는 작은 들짐승 같은 여자아이”인 아홉 살 구니가 본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은 다름 아닌 물을 퍼내고 있던 어느 날 자신의 집을 찾아온, 반짝이는 큐빅이 박힌 “빨간 에나멜 구두”를 신은 동갑내기 ‘보하’였다. 동시에 이 아이와는 “절대 친해질 수 없을 거”라는 예언과도 같은 확신이 구니를 스친다. 그러나 삶이란 늘 기대를 배반하듯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단짝 친구가 되지만 고등학교 입학을 앞둔 열여섯 살 겨울, 보하의 아빠가 회사 돈을 횡령한 죄로 감옥에 가게 되면서 두 소녀는 이별하게 되며 완전히 다른 방향의 길을 걷게 된다.물론 떨어져 있는 시간이 둘의 우정을 흐려놓지는 않는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세상에 연고자 한 명 없게 된 구니에게 보하는 세상에 믿고 의지할 “작은 신”과 같은 존재이며, 아빠의 수감 이후 큰 가난에 시달리게 된 보하에게 구니는 힘든 순간마다 어깨를 기대고 싶은 단 하나의 존재이다. 그렇지만 오히려 소중하기에 둘은 자신의 “초라함”을 들키고 싶지 않아 상대의 “불안과 두려움을 때때로 감지하면서도 굳이 캐묻지 않고”, 들킬 것 같은 순간마다 서로가 서로의 앞에서 “종적을 감춰”버리고 만다. 소중한 관계를 지키고 싶기에 결핍과 불안을 털어놓기보다 도리어 감추는, 미숙한 전략을 택한다. 이 모습은 감정에 서툴렀던 날, 둘 사이의 거리를 재지 못해 지나치게 다가가 친구의 마음을 할퀴고는, 또 지나치게 멀어져 서로 애를 태우던 시절로 독자를 데려간다. 돌아가고 싶다고 해도 돌아갈 수 없는, 반짝였던 그 시절.「발문」에서 “흐르는 시간은 끊임없이 반복되는” ‘일루미네이션’의 “점멸”과도 같다고 짚듯이, 꺼졌다가 켜지기를 반복하는 불빛처럼 어쩌면 우리가 “사는 내내 겪어야 하는 것은” 곁의 사람, 동물, 물건 등이 “있다가도 없어지는” 일일지 모른다. 『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은 두 소녀의 우정 끝에 찬란했던 시간도 끝이 나는 때가 온다는 당연한 상황을 제시하면서, 그것이 그리 비극적인 일만은 아니라는 여지를 둔다. “샴페인이 터진 뒤 잠잠해져도, 일루미네이션이 빛을 뿌린 뒤 어두워져도, 그것은 있었던 순간으로 남”(김화진)기 때문이다. 흘러가 사라진 순간들이 정말로 사라진 것은 아님을, 모습을 감추어도 남아 있는 것이 있음을, 그렇게 기포와 빛 방울 사이를 오가는 일이 그 이후를 살아나가는 일일지도 모른다는, “달콤”하고도 “쌉싸름”(연여름)한 감상의 여운을 오래도록 남긴다. 작가의 말그즈음 여기저기 흩뿌려놓았던 상념을 들추어보았더니 이런 문장이 있었다. “이 슬픔이 우리를 어딘가 데려다줄 거라 믿는다. 너무 어둡지 않은 곳으로.”어떻게 해야 슬픔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불운에 휘둘리는 미숙한 이들에게, 언제고 나 자신이 될 수 있는 작은 영혼들에게 연민을 품는 것 말고는 여전히 다른 방법을 모르겠다._「작가의 말」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