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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재즈의 선사 시대 009
2. 뉴올리언스 재즈 055 3. 재즈 시대 101 4. 할렘 169 5. 스윙 시대 241 6. 모던 재즈 349 7. 재즈 스타일의 파편화 481 8. 자유와 융합 593 9. 전통주의자와 포스트모더니스트 661 10. 경계 없는 재즈 705 11. 재즈 부활 749 미주 775 참고문헌 786 추천 음악 790 색인 802 감사의 말 839 옮긴이의 말 841 |
Ted Gio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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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회에서 결정적인 창조적 흐름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하층민으로부터 나왔다. 이것이 과연 놀랄 만한 일일까? 음악가를 비롯한 공연 예술가들이 사회적으로 용인될 수 있는 한계점에 있는 예능인으로서, 아웃사이더나 추방자라고 평가받는 것은 고대로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다. 최근까지도 많은 문화권에서는, 신자가 음악가와 같은 식탁에 앉는 것을 “부정 不淨”하다며 금지하는 종교적 금기가 존재했다. 음악이 대중의 소비재이자 오락의 한 형태가 되기 훨씬 전, 음악의 세계는 신비주의자, 마술사, 사회에서 배제되고 소외된 이들의 영역이었다. 재즈가 사회의 변두리에서 출발하여 중심부로 이동하는 이야기는 이러한 끊임없이 반복되는 서사의 또 하나의 장章일 뿐이다.
전통적인 아프리카 공동체에서는 일상생활의 거의 모든 사물이 리듬의 원천이자 타악기의 역할을 하고, 춤의 영감을 주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 아프리카인이 종종 적대적인 자연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했던 도구와 기구들이야말로, 어쩌면 이 지구상에서 최초의 기악의 출발점이었을지 모른다. 여기서, 우리는 ‘instrument’라는 단어가 지닌 이중적 의미에 담긴 숨은 진실을 깨닫게 된다. 즉, 이 단어는 자연 세계를 변화시키는 기계장치이면서 동시에 소리를 만들어내는 장치를 의미한다. 우리는 조개껍데기, 부싯돌, 동물 가죽, 뼈, 나무, 돌, 나뭇가지와 같은 주어진 것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무기, 도구, 바퀴, 건축 장비와 같은 일상에서 쓰이는 기구들과, 북, 딸랑이, 긁개, 징, 딱딱이, 마찰 악기, 타악 판 등과 같은 음악적 기구들에 이르는 눈부시게 다양한 종류의 악기들에 도달하게 된다. 노동요가 리듬을 규율의 원천으로 반영한 것이라면, 블루스는 아프리카 리듬의 또 다른 측면, 즉 해방을 제공하는 디오니소스적 측면을 대표한다. 초기 아프리카계 미국인 음악 중에서도, 블루스는 연주자에게 고통, 억압, 가난, 갈망, 욕망을 개인적으로 표출할 수 있는 길을 가장 잘 열어준 형식이었다. 블루스는 이러한 감정을 표현하면서도, 자기연민이나 비난의 감정에 빠지지 않았다. 대신, 블루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했고, 개인의 고난을 이상화했으며, 어찌 보면 이상하게도, 그 노래들에서 묘사된 참담한 상황을 오히려 극복한 듯한 고양된 감각을 안겨주었다. 이러한 점에서, 블루스는 고전 비극이 제기했던 것만큼이나 심오한 심리적 수수께끼를 우리에게 제공한다. 예술이 억압적이고 비극적인 것에 천착하면서도, 어떻게 예술가와 관객 모두에게 충족감을 주는지에 대한 문제는, 적어도 아리스토텔레스 시대부터 계속해서 논의되어 온 주제다. 이러한 논의들 대부분에서, ‘비극’이라는 단어를 ‘블루스’로 바꿔 놓기만 해도, 우리는 본질적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작곡가 가운데에서도, 스콧 조플린은 단연 최고의 인물로 돋보인다. 사실, 1970년대에 시작된 래그타임의 부흥은 조플린의 음악이 지닌, 시대를 초월한 매력이 아니었다면, 상상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다른 작곡가들이 기술적으로 더 난이도 높은 래그를 쓰거나, 보다 극적인 음악적 효과를 뽐낸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조플린의 주요 작품이 보여준 구조적 우아함, 멜로디의 창의성, 표현의 폭에는 누구도 필적할 수 없었다. 또한 다른 어떤 래그 작곡가도 조플린처럼 음악에 대한 큰 포부를 품지는 못했다. 그는 그러한 포부를 바탕으로, 두 편의 오페라, 발레곡, 그 외 여러 작품을 작곡하며, 당대 래그타임이 저급한 대중음악이라는 평판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비록, 그의 이러한 과감한 시도들이 생전에는 조플린이 갈망했던 만큼의 인정을 받지 못했지만, 그의 작품 전체는 그가 추구했던 높은 예술적 기준과, 래그타임을 진지한 음악 형태로 믿었던 확고한 신념 덕분에 오늘날 더욱 빛나고 있다. 재즈가 스토리빌의 저속한 사창가 없이도 뉴올리언스에서 발전했을 가능성은 상상할 수 있겠지만, 이 음악의 탄생은 뉴올리언스 시민들이 브라스 밴드에 보여준 엄청난 열정 없이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열정은 이 도시가 음악 예술과 맺고 있는 관계의 핵심에 자리하고 있었다. 물론, 브라스 밴드 현상이 뉴올리언스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남북전쟁 이후 수년간 미국의 많은 도시와 마을에서 유사한 앙상블이 조직되었고, 일부 지역에서는 전문적인 밴드 마스터를 고용해, 밴드를 조직하고 연습시키기도 했다. 특히 흑인 밴드의 경우, 우애 단체, 사교 클럽, 또는 연주자들 스스로가 후원자가 되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이러한 밴드들이 수행한 역할은 뉴올리언스에서 특히 더 중요했다 많은 흑인 크리올들은 남부에서 노예제가 폐지되기 훨씬 이전부터 이미 자유인이었다. 1724년에 제정된 유명한 흑인 관련 법령 ‘코드 누아르 Code Noir’ 혹은 ‘블랙 코드 Black Code’는 노예와 주인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는 동시에, 주인의 동의가 있는 경우에 노예를 해방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특히, 혼혈 자녀들에 대한 부성애와 같은 여러 동기에서, 주인들이 해방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남북전쟁 이후에도, 이러한 유색 크리올은 흑인 사회와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유럽 본토 출신 정착민들의 생활 방식을 모방했고, 흔히 프랑스계 방언을 사용했으며, 전반적으로 자신들의 중간적 사회적 지위에서 오는 특권에 집요하게 매달렸다. 그러나 19세기 말에 가까워지면서, 이처럼 분리된 정체성은 더 이상 유지되기 어려워졌다. 이날은 풍요로운 음악 창작의 시기를 여는 출발점이 되었고, 이 시기의 녹음을 통해 암스트롱은 자신의 세대는 물론, 아마도 재즈 역사 전체에서 가장 뛰어난 기악 연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이날은 암스트롱이 음악적으로 가장 풍요로운 시기를 시작한 날로, 이날의 녹음을 통해 그는 자신의 세대, 아니 어쩌면 역대 최고의 재즈 연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재즈라는 음악 양식 안에서 이 녹음들만큼 널리 사랑과 찬사를 받은 작품은 거의 없으며, 그가 남긴 이 불후의 세션들, 즉 핫 파이브 Hot Fives와 핫 세븐 Hot Sevens은 재즈사에서 전설로 남았다. 역사적 중요성과 순수한 예술적 비전의 장대함으로 볼 때, 그에 견줄 만한 녹음은 1940년대 초 듀크 엘링턴 밴드의 작품들, 찰리 파커의 사보이Savoy와 다이얼Dial 세션들, 1950년대 후반 마일스 데이비스의 녹음들 정도뿐이다. 이제 음악은 하나의 신화적 이미지로 가득 차게 되었고, 이는 재즈의 삶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그 대표적인 연주자들을 반항적인 젊은 예술가들로 이상화하였다. 이들은 음악에서뿐만 아니라 삶의 방식에서도 자신만의 길을 가려는 결연한 태도를 보였다. 몇 년 후, 할리우드 영화는 이러한 반 反영웅 캐릭터를 더욱 미화하며 대중화했다. 이러한 캐릭터의 초기 모습은 클라크 게이블과 험프리 보가트의 영화에서 엿볼 수 있다. 1950년대에 이르러, 말론 브란도와 제임스 딘을 통해, 반항적인 개성과 반영웅적 이미지를 가진 인물의 이상형이 완성되었다. 이러한 캐릭터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 문화 속에서 지속적인 전형으로 남아 있다. 만약 음악 장르들이 교차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면, 이러한 구분이 그다지 문제 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좋든 싫든, 현대 음악은 서로 다른 스타일이 융합하고 상호 영향을 주고받는 경향을 띠고 있다. 음악에서 순수성이라는 개념은 신화에 불과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신화이다. 현대 음악의 강력한 창조적 흐름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하는 음악사가라면, 이러한 복합적인 예술 형식을 그 자체의 관점에서 다룰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아예 다루지 않는 편이 나을 것이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음악 지형도에는 고속도로란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수많은 길들이 서로 교차하고 갈라지는 복잡한 네트워크만이 존재할 뿐이다. 1920년대 후반의 할렘은 두 극단 사이에서 위태롭게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사회였다. 이 시기의 흑인 문화와 지적 삶의 폭넓은 개화를 의미하는 할렘 르네상스 Harlem Renaissance는 미래지향적인 낙관주의와 깊은 공동체적 자부심을 반영하며, 이러한 첫 번째의 가능성을 구체화했다. 이러한 할렘의 비전을 설명하는 데 있어 성경적 비유를 사용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마치 구약성경에서 억압받던 민족이 해방되어 약속의 땅에 도달한 것처럼, 흑인들은 할렘에서 노예제도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스스로의 필요를 충족시키며, 자신들만의 시민 사회를 건설할 자유를 얻게 되었다. 따라서 1920년대의 할렘은 단순한 지역적 공간을 넘어, 미국 전역의 흑인들에게 성숙의 상징이 되었다. 북부, 남부, 동부, 서부 어디에 살든 상관없이, 많은 흑인들은 할렘에서 형성된 공동체를 통해 더 이상 타인의 관용이나 선의에 의존하는 소수 집단이 아니라, 독립적이고 자립적인 사회를 이루어나가는 경험을 간접적으로나마 공유할 수 있었다. 음악가 W. O. 스미스는 “할렘에서 태어나거나 오랫동안 살아온 흑인들은 남부 흑인을 깔봤다”고 강조한다. 최남동부 지역에서 새롭게 도착한 흑인들은 세련되어 보이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기 위해, 요리, 복장, 언어, 문화 등 남부 출신임이 역력히 드러나는 모든 요소를 빠르게 버리려 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델타 블루스, 뉴올리언스 재즈, 미주리 래그와 같은 남부에서 유입된 음악 역시 같은 부정적 시선으로 평가되었다. 할렘의 일상생활 전반에서, 북동부의 방식에 동화되려는 열망이 강력한 동기로 작용했다. 이러한 환경에서, 두 개의 할렘, 즉 문학적 열망을 추구하는 할렘과 재즈와 블루스의 할렘이 전쟁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불편한 휴전 상태에 휘말려 들어간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테이텀이 19세기 클래식 음악의 기교적 요소를 차용했다는 비판에 대해서도, 비슷한 반론이 가능하다. 물론, 피상적인 피아노 테크닉은 기존 스타일을 답습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만, 테이텀의 경이로운 패싱 코드 변형, 이중 조성의 암시와 유희적인 불협화음, 그리고 이를 초고속 정밀도로 연주하는 능력에 필적하는 19세기 음악의 사례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가? 또한, 그의 폭발적인 리듬감으로 양손이 쏟아내는 현란한 음들의 폭격 소리에 기본 박자가 가려지는 것은 과연 어떤 19세기 피아니스트가 선보였던가? 혹은, 그의 싱커페이션이 가미된 스트라이드 연주, 그가 메트로놈을 전례 없는 속도로 밀어붙이며 연주했던 엄청난 에너지 분출에 맞먹는 것이 있는가? 클래식 음악의 역사에서, 이에 필적하는 사례는 존재하지 않는다. 재즈에서 당혹스러우면서도 특이한 것 중 하나는 귀족 칭호나 정치적 직함에 대한 뚜렷한 집착이었다. 볼든, 케파드, 올리버는 모두 한때 “킹”이라는 별명을 가졌으며, 이후에는 선도적이었는지 그에 못 미쳤는지에 따라, 팬들과 동료들 사이에서 듀크, 카운트, 레이디, 서Sir, 프린스, 바론 같은 칭호를 얻게 된 인물들이 등장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 중심적인 이러한 명칭들은 점차 전 세계적인 감각으로 대체되었고, 그 결과, 대통령에서 파라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칭호들이 재즈 뮤지션들의 별명으로 사용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모던 재즈 피아노를 대중화한 인물들 대부분은 당대 평론가들로부터 어느 정도의 적대감을 느꼈다. 앞서 언급했듯, 이는 전후 재즈계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였다. 파커와 그의 동료들은 재즈를 대중문화와는 거리를 두는 반 反문화 운동으로 탈바꿈시켰고, 대중 시장의 찬사를 경계하며, 아웃사이더로서의 지위를 지키려 했다. 이제는 폭넓은 대중성을 얻는 것이 곧 “영합”의 증거로 여겨지게 되었다. 재즈계 전반에 걸쳐 만연하고 지속된 이러한 태도 이면의 동기는 복잡하며, 개인적인 차원에서 정치적인 차원에 이르기까지 분명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다. 그 전개 과정을 자세히 분석한다면 책 한 권 분량이 될 것이다. 다만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 스윙 시대에 절정을 이룬 재즈와 대중음악의 행복한 결합은, 이후 고통스럽고 때로는 신랄한 이혼으로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초반까지, 미국 공공 담론에서 “자유 freedom”라는 단어는 특히 정치적으로 강한 의미를 지닌 말로 부각되었다. 사실상, 그 시기의 격동 속에서 이보다 더 폭발적이고, 더 깊은 의미를 담고 있으며, 더 강렬한 감정으로 외쳐진 단어를 찾기란 어려웠다. 시민 교육 시간에 흔히 접하는 상식적 진리이자, 미국의 건국 문서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 단어는 이제 새로운 힘을 얻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미국 사회의 뚜렷한 사회적?경제적 분열을 드러내는 기준점이 되었다. 당시의 민권 운동은 이것을 전투의 외침으로 내세우고, 달성해야 할 목표로 삼았으며, 모든 것을 지탱하는 제1원칙으로 선언했다. 이제 “자유”는 더 이상 공허한 문구로 잊혀질 수도, 이미 실현된 것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없는 것이 되었다. 그것은 분명히 살아갈 이유였고, 어떤 이들에게는 목숨을 걸 이유이기도 했다. 1970년대 말이 되면, 재즈의 시초인 버디 볼든의 유산은 전 세계를 정복한 셈이 되었다. 그러나 정작 이 뉴올리언스의 선구자는 그 자신이 낳은 후손들을 보았더라도, 그것이 자신의 음악이라고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다. 재즈는 이제 단지 하나의 음악 스타일을 넘어, 모든 소리를 포괄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이 되어 있었다. 500년 가까이, 예술은 진보적 진화라는 미학적 비전을 따랐고, 과학처럼 끊임없는 “돌파구”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체가 근본부터 흔들리고 있다. 비록 이념적으로 미완성된 측면이 많고, 제약도 분명하지만, 뉴에이지 음악, 미니멀리즘, 그리고 그외 다양한 스타일들은 (롤랑 바르트 Roland Barthes의 용어를 빌리자면) “0도 스타일”, 즉 기술적 진보나 시간의 흐름과 무관한 예술 형태의 가능성을 암시하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일부 미학자들은 예술사의 “종말”이 도래했다고 선언하기도 한다. 이러한 관점은 어떤 이들에게는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창조의 도래로 비추어지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익숙한 기준과 전제가 무너져버린 불안한 시대로 보이기도 한다. 재즈가 처음 등장한 뒤 약 반세기 동안, 이 음악은 문화계 주류 기관들의 거의 아무런 지원도 없이 번창했다. 재즈 연주자라면 누구나 프리랜서로 활동해야 했고, 밴드 리더나 대중의 변덕스러운 지지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정규직에 가까운 안정성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은 성공적인 순회 밴드에 자리 잡는 것이었지만, 그조차도 언제든 갑작스럽게 끝날 수 있는 일이었다. 실제로, 연주자들은 고향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발이 묶이거나, 심지어 여정 도중에 버스에서 쫓겨나는 일도 겪곤 했다. 만약 누군가가 그 시절 재즈 연주자들에게 소속 기관이 어디냐고 물었다면, 당황한 연주자들은 아마 감옥이나 어떤 구금 시설에 대한 질문으로 오해했을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미국의 재즈 애호가들은 다소 자기 만족적인 태도로 재즈를 “미국의 클래식 음악”이라고 자부해왔다. 그 말에는 그럴듯한 울림이 있지만, 재즈 세계를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현실이 보인다. 오늘날 재즈라는 예술 형식에서 가장 흥미로운 발전들은 오히려 미국 밖에서 일어나고 있으며, 이러한 경향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최소 1930년대부터 재즈 어법의 주도권을 쥐고 있던 까다롭고 냉소적인 뉴욕의 청중조차 음악 세계의 경쟁자들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접고, 만 마일 떨어진 곳에서 온 피아노 신동에게 마치 영웅의 귀환인 양 뜨겁게 환영을 보내는 지점에 우리는 도달했다 앞으로의 재즈 역사를 결정짓는 데 있어, 각 연주자들의 개별적인 혈통이나 출신보다는, 그들이 물려받은 범세계적 사운드의 뒤섞임이 훨씬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재즈가 처음 상업적 현상으로 등장했을 때, 그것은 뉴올리언스를 중심으로 특정한 지역적 스타일, 즉 악기를 다루는 특정한 방식과 음향적 질감을 조합하는 독특한 방법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재즈는 더 이상 고정된 연습법의 집합이라기보다는, 가능성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 이미 검증된 것에 맹목적으로 집착하지 않는 자세와 정신으로 자리 잡았다. 어느 한 도시, 국가, 지역도 재즈의 가리지 않는 탐식성의 욕구를 온전히 담아내기에는 부족하다. 재즈의 첫 번째 세기를 되돌아보면, 이 장르의 가장 뚜렷한 특징은 아마도 가만히 머무르기를 거부하는 성질, 다른 소리와 영향들을 흡수해야 한다는 명령, 그리고 끊임없는 변화와 융합의 운명일 것이다. 그렇기에 세상의 모든 곳이 재즈의 고향일 수 있지만, 그 어디도 재즈가 안주할 곳은 아닐 것이다.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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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아의 『재즈의 역사』는 1997년 초판이 출간되자마자 즉시 명저의 반열에 올랐다. - 초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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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지금까지 나온 재즈 개론서 중 단연 최고일 것이다. - 뉴욕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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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재즈 입문서를 찾고 있다면 바로 이 책이다. 재즈를 잘 알고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이 책이 필휴의 지침서가 될 것이다...... 이 책은 백과사전적이고, 안목이 높으며, 도발적이고, 통찰력 있으며, 읽기 쉬운 결정판이다. 이 책의 출간으로, '재즈에 대한 글은 음악 자체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말은 더 이상 할 수 없게 되었다. - 워싱턴 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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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라운 책. 매니아를 만족시키면서 입문자에게도 훌륭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 재즈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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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아의 이 역사서는 일반 독자와 학계 모두에 표준적인 지침서가 될 가능성이 높다. - 더 빌리지 보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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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즈의 역사에 대해 가장 포괄적이고, 통찰력 있으며, 우아하게 쓰인 책. - 유에스에이 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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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재즈의 역사, 재즈 음악가, 그리고 재즈와 사회의 관계에 대한 최고의 개설서다. 저자는 한 음악 형태의 기원, 진화, 그리고 미래를 감탄할 만큼 명쾌하게 설명해준다. - 퍼블리셔스 위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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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나온 재즈 역사책 중 가장 균형 잡히고, 깊이 있고, 잘 쓰인 책. 재즈를 진정으로 이해하고 싶은 사람들의 필독서. - 재즈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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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결한 문체와 방대한 연구로 필독의 재즈 음악사가 되었다. - 이미지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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균형 잡히고 잘 쓴 대중적 역사서?읽기 쉽고 신뢰할 만하다. - 월스트리트 저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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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이아는 재즈 음악에 대한 깊은 지식과 함께, 이를 사회적, 역사적 맥락 속에 놓는 능력을 보여준다. 이 책은 재즈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과 오랜 팬 모두에게 가치가 있다. - 애틀랜틱 먼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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