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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글 | 해방자, 라틴아메리카의 자유를 향해
1장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 2장 볼리바르의 초기 생애 1783-1810 3장 베네수엘라 제1공화국의 수립과 실패 1811-1812 4장 카르타헤나 선언과 해방전쟁의 시작 1812-1813 5장 베네수엘라의 해방자와 첫 번째 승리 1813 6장 범아메리카 협력의 이상 1813-1814 7장 베네수엘라 제2공화국의 붕괴 1814 8장 잿더미 위에서 쓴 자메이카 서한 1814-1815 9장 볼리바르의 귀환 1815-1817 10장 혁명군의 연합전선 1817-1818 11장 앙고스투라 회의와 볼리바르의 연설 1819 12장 그란콜롬비아의 탄생 1819 13장 산타아나 평화회담 1820 14장 아메리카 연합의 꿈 1821 15장 과야킬을 둘러싼 정치적 대립 1822 16장 수크레, 페루의 해방자 1822-1824 17장 볼리비아의 탄생 1825 - 1827 18장 분리주의자들의 음모 1828 19장 무너지는 볼리바르의 이상 1829-1830 20장 볼리바르 최후의 포고문 1830 맺음말 | 라틴아메리카 자유의 상징, 시몬 볼리바르 부록 1 시몬 볼리바르의 생애 부록 2 볼리바르 인물 사전 색인 |
Guillermo Antonio Sher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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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본질적으로 한 시대를 이끈 영웅의 위대한 사상과 업적을 기록하는 과정이었으며, 앞으로도 변함없이 그러할 것이다.
--- p.6 그는 모세와 같은 인물이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수많은 민중을 이끌었고, 평범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해 보이는 기적 같은 일을 이뤄냈다. 그러나 마지막 승리의 순간에 그 땅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자유’라는 유산을 남긴 채 조용히 역사 속으로 퇴장했다. --- p.9 스페인의 식민 통치는 엄격한 규제와 폐쇄적인 통제를 바탕으로 이루어졌다.… 외국과의 통신이나 무역은 철저히 금지되었으며, 국왕의 허가 없이 아메리카 수역을 항해하는 모든 선박은 적으로 간주되었다. --- p.14 “아메리카인은 아무런 준비나 사전 지식도 없이 갑작스럽게 입법자, 행정가, 재무관, 외교관, 장군 그리고 정부 구성의 모든 권한을 맡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남미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완전한 대의제 정부는 현재 우리의 국민성과 교육 수준, 그리고 사회적 조건들에 부합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 북아메리카의 미국 형제들처럼 정치적 도덕성과 통치 역량을 갖추지 못한다면 이러한 제도는 도움이 되기보다 오히려 파멸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 p.101 ”콜롬비아인들이여, 그대들은 내가 자유를 위해 폭정이 지배하는 이 땅에서 싸운 노력을 직접 보았습니다. 나는 사리사욕 없이 일했으며, 내 재산과 안위를 모두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그대들이 나의 결백을 더 이상 믿지 않는다고 느꼈을 때, 나는 사심 없이 지휘권을 내려놓았습니다. …나의 마지막 소망은 조국의 행복입니다. 만약 나의 죽음이 분열을 종식하고 통합을 강화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줄 수 있다면, 나는 편안히 무덤으로 향할 것입니다.” --- p.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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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지금 ‘볼리바르’인가?
오늘날 남미를 방문하는 여행자에게 ‘볼리바르’라는 이름은 꽤 익숙하다. 수많은 거리나 지명에는 그의 이름이 있고 유서 깊은 광장 곳곳에는 그의 동상이 서 있다. 심지어 베네수엘라의 통화 ‘볼리바르’나 볼리비아의 국명 또한 그를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시몬 볼리바르(1783~1830)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다섯 나라의 독립을 이끈 인물로, 남미의 민중들은 그를 스페인 제국의 압제에서 해방하고 공화국의 기틀을 세운 혁명가이자 인도의 마하트마 간디와 같은 국부로 추앙한다. 그러나 남미 밖 세계에서 볼리바르라는 이름은 그리 널리 알려지지 않았다. 그는 독립이라는 토대를 세웠지만, 끝없는 내부 분열과 권력 다툼, 민중과 지도자 사이의 괴리 속에서 고통스러운 좌절을 겪으며 결국 그가 꿈꾸던 숭고한 이상 즉 ‘남아메리카 연합국’이라는 해피엔딩을 엮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볼리바르는 성공의 문턱에서 그가 사랑하는 동료와 민중에게 독재자라는 온갖 배신과 멸시 속에 쓸쓸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렸다. ■ 분열과 대립의 시대에 다시 던지는 질문 오늘날 한국은 물론 세계는 극심한 분열과 정치적 갈등 속에서 거세게 충돌하고 있다. 한국은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민주주의의 기반은 여전히 단단해 보이지만, 그 속을 지탱하는 신뢰와 통합의 에너지는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이러한 혼돈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트럼프 등장이 흔들리는 미국 민주주의의, 세계 곳곳에서 나타나는 극단주의의 대두 등 오늘날 우리 문명이 처한 위기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바로 이 지점에서 19세기 남미의 ‘해방자(El Libertador)’ 시몬 볼리바르가 오늘의 우리에게 다시 조명되고 있는 이유다. 볼리바르는 극단적인 분열과 대립의 상황에서도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는 하나의 국민이다’라는 신념을 잃지 않았다. 그가 끝내 이루지 못한 ‘통합된 아메리카’라는 이상은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직면한 분열과 대립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한다. 마치 돈키호테처럼 이상을 좇다 쓰러진 그의 삶의 궤적을 따라가다 보면 이상과 현실이 충돌할 때 인간과 사회가 어떤 길을 선택해야 하느냐는 물음을 던진다. ■ 분열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 기예르모 A. 셔웰의 『시몬 볼리바르: 남미의 해방자, 다섯 국가의 아버지, 비운의 혁명가』는 볼리바르의 생애와 사상을 인문학적 깊이로 풀어낸 고전이다. 남미 독립사의 생소하고 복잡한 맥락을 독자가 따라가기 쉽도록 다양한 지도, 삽화, 연표 그리고 인명록을 담아 마치 생생한 역사의 현장처럼 자연스럽게 되살렸다. 이 책은 단순한 영웅담이 아니다. 혼돈 시대 속에서 지도자는 어떻게 탄생하고,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며, 어떤 시대적 책임과 비극을 짊어지게 되는지를 깊이 탐구한 정치적·철학적 성찰의 기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