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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팠을 때 병을 알아내지 못했음을 탄식하며(嘆病不能執症)2. 약 쓴 것이 틀렸음을 탄식하며(嘆用藥見敗)3. 회포를 서술하며(述懷)4. 자식 없음을 한탄하며(恨無子)5. 그리워하며(相思)6. 집에 사람 없음을 탄식하며(嘆屋中無人)7. 감회를 읊으며(?懷)8. 또 읊으며(又)9. 또 읊으며(又)10. 스스로 마음을 달래며(自解)11. 회포를 읊으며(?懷)12. 또 읊으며(又)13. 또 읊으며(又)14. 또 읊으며(又)15. 함롱(函籠)16. 텃밭 채소(園蔬)17. 새 곡식(新穀)18. 목화꽃(木綿花)19. 안쪽 창고(?庫)20. 그릇(器皿)21. 남은 물건(遺物)22. 정원의 과일나무(園中果木)23. 새 집터(新基)24. 또 읊으며(又)25. 또 읊으며(又)26. 초당(草堂)27. 추석(秋夕)28. 가을바람(秋風)29. 또 읊으며(又)30. 집(家舍)31. 병으로 이웃집에 누워서 집을 생각하며(病臥隣家思家)32. 집을 바라보며(望家)33. 집에 이르러(到家)34. 죽음을 슬퍼하며(惜亡)35. 또 읊으며(又)36. 마음가짐(持心)37. 사는 곳(居處)38. 사람 대함(待人)39. 말하기(言語)40. 살림살이(營産)41. 신께 빌던 일을 생각하며(思禱神)42. 스스로를 애통해하며(自悼)43. 또 읊으며(又)44. 우연히 읊으며(偶吟)45. 또 읊으며(又)46. 가을 풍경(秋景)47.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感吟)48. 그리워하며(相思)49. 또 읊으며(又)50. 또 읊으며(又)51. 또 읊으며(又)52. 또 읊으며(又)53. 감회가 일어(感懷)54. 또 읊으며(又)55. 감회가 일어(感懷)56. 또 읊으며(又)57. 하늘을 원망하며(怨天)58. 산에 오르자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登山時感吟)59. 집에 돌아온 뒤에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還家後感吟)60.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感吟)61. 우연히 읊으며(偶吟)62. 또 읊으며(又)63. 달밤(月夜)64.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感吟)65. 또 읊으며(又)66. 또 읊으며(又)67. 또 읊으며(又)68. 추억하며(追思)69. 또 읊으며(又)70. 갓 열린 나무 열매를 따서 올리면서 곡하며(摘初結木果薦哭)71.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感吟)72.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感吟)73.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感吟)74. 또 읊으며(又)75. 또 읊으며(又)76. 또 읊으며(又)77. 또 읊으며(又)78. 또 읊으며(又)79. 살아 있음을 탄식하며(歎生)80. 또 읊으며(又)81. 또 읊으며(又)82. 죽음을 슬퍼하며(哀死)83. 또 읊으며(又)84. 공을 생각하며(思功)85. 또 읊으며(又)86. 우연히 읊으며(偶吟)87. 집안 상황을 탄식하며(歎家中形勢)88. 처음부터 끝까지 관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것을 탄식하며(追歎初終不能善治棺)89. 송촌에서 소식이 있어(松村有便)90. 또 읊으며(又)91. 내동을 불쌍히 여기며(哀乃東)92. 또 읊으며(又)93. 옛정을 떠올리며(感舊時情話)94. 산에 가던 날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入山日感吟)95. 청련암에서 읊으며(在靑蓮庵吟)96. 또 읊으며(又)97. 또 읊으며(又)98. 문득 지난날 내 병 고쳐 준 일을 떠올리며(忽感前日救病)99.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感吟)100. 제야에 내동과 함께 시골집에 앉아 감회를 읊으며(歲除夜與乃東坐村房感吟)101. 또 읊으며(又)102. 봄날 홀로 앉아 있으니 감회가 일어서 읊으며(春日獨坐感吟)해설지은이에 대해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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任再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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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금기된 슬픔, 102편의 절절한 눈물이 시가 되다아내를 잃은 남편이 쓴 시를 ‘도망시(悼亡詩)’라 한다. ‘도망(悼亡)’은 ‘망자(亡者)를 애도(哀悼)한다’라는 뜻이지만, 중국 문인 반악(潘岳, 247∼300)이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며 지은 시에 ‘도망(悼亡)’이라는 제목을 붙였고, 이 시가 《문선(文選)》에 수록되어 널리 알려지면서 도망시는 ‘망처가(亡妻歌)’의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유교적 가치관 아래 감정 표현을 절제해야 했던 조선 시대 선비들에게 아내를 향한 그리움과 사랑을 시로 남기는 것은 금기에 가까운 일이었다. 이 때문에 조선 중기 도망시의 대표작으로 회자되는 이서우(李瑞雨)의 〈도망기몽시(悼亡記夢詩)〉조차 정작 자신의 문집에는 싣지 못했으며, 현재까지 한국에서 확인된 도망시는 고작 400여 편에 불과하다.이 책 《임재당 도망시》는 이러한 억압된 시대의 한가운데서 터져 나온, 실로 경이로운 기록이다. 18세기 선비 임재당(任再堂)은 아내 풍산 홍씨를 잃고 무려 102수에 달하는 도망시를 남겼다. 이는 지금까지 알려진 한국 도망시 전체 수량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압도적인 규모다.더욱 놀라운 점은 이 시들이 문집이 아닌, 지극히 사적인 일기 《갑진일록》에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이 일기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시점(1724년)부터 임재당 자신이 죽기 두 달 전(1726년)까지의 기록이다. 그는 "슬픈 감정을 옮기기 위해" 시를 쓴다고 고백하며, 아내를 잃은 절절한 심정을 일기 속에 쏟아 냈다.그의 시에는 기교나 꾸밈이 없다. “당신 죽음 분명 나 때문이니”라며 약을 제대로 쓰지 못한 자신을 처절하게 책망하고, “아내 없고 자식 없는 한 불쌍한 나그네”라며 홀로 남은 비참함을 토로한다. 아내의 어질었던 생전 모습을 칭송하는 대목은 역설적으로 그 상실의 고통이 얼마나 깊었는지를 증명한다.임재당의 도망시는 문학 이전에 생존의 기록이자 자기 치유의 몸부림이었다. 아내를 잃은 지 2년이 채 못 되어 그 뒤를 따른 한 남편의 진실한 사랑과 애통함이 담긴 이 책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과 감동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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