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롤로그 어쨌거나 고양이를 부탁해
1 함께 사는 고양이 처음이라 그랬어, 미안, 그렇게 성장해나가는 거지, 그냥 사랑하게 놔두면 안 될까, 겸손함을 아는 고양이라니, 매력적이야, 늘 그렇듯 의도대로 되는 일은 별로 없다, 싱크대의 배신, 짚신 장수와 우산 장수의 딜레마, 이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듯 똑같은 고양이도 없다, 눈을 맞추고 네 마음을 읽어보겠어, 내가 똑똑하다는 걸 알리지 마라 2 위로하는 고양이 자상한 도움과 성가신 간섭 사이, 고양이는 참지 않는다, 한 발 다가오길 바란다면 한 발 물러서길 , 복종하지 않아, 다만 타협할 뿐 , 권태로움의 향유, 위로해주는 고양이, 네 이야기를 들어줄게, 수다스러운 인간을 부탁해, 바위나 오래된 나무처럼 그저 그렇게 옆에 있는 3 내일도 고양이 최선을 기대하되 최악도 대비해두어야 한다, 왜 가장 편안할 때 더 불안한 걸까, 고양이의 메모, 잡힐 듯 말 듯, 보일 듯 말 듯, 캣그라스를 포기할 수 없는 이유, 때로는 순한 때로는 사나운, 얼룩고양이의 털은 얼룩인가, 네가 날 때렸다, 이거지, 한 번 안 된다고 한 건 끝까지 안 되는 거다, 고양이의 가족들, 당신이 먹는 것이 당신을 만든다 , 똘똘아 만수무강하여라, 순수함은 결핍이다 에필로그 모든 게 고양이 덕분이다 |
장근영의 다른 상품
|
그렇다. 우리는 모두 다르다. 같다고 생각한다면 그게 착각이다. 하지만 우리를 안전하게 싸주던 허위합의 효과의 허상에서 벗어나 진짜 나와 다른 상대를 직면하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은 그래서 계속 허위합의를 믿고 산다.
하지만 고양이는 이 환상을 대놓고 깨버리는 돌직구의 명수다. 고양이와 함께 살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 좋아할 거라 믿고 사온 온갖 장난감들은 무시하고 오히려 그 장난감을 포장했던 상자를 환영한다거나, 안아주고 싶어할 때는 외면하다가 피곤해서 잠 좀 자려고 하면 부비적거리거나, 일을 하려 하면 반드시 방해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식으로 말이다. 개와는 전혀 다르다. 대개의 개들은 주인과 자신을 동일시한다. 주인이 좋아하는 것은 무조건 좋아하고 주인이 싫어하면 즉시 싫어한다. 그러니까 개는 허위합의 환상의 화신 같은 존재다. 하지만 고양이는 다르다. 고양이 앞에서는 허위합의 효과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불안해진다. 고양이가 사람을 응시하는 눈빛 속에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이질감이 존재한다. 개가 주인의 명령을 기다리는 눈빛이라면 고양이는 “나는 너와 달라. 그래서 뭐, 그러면 안 돼”라고 말하는 듯하다. 요컨대, 고양이는 같이 사는 이에게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다(혹은 뻔뻔하다). ---pp.12-13 참지 않는 고양이들이 먹을 것 앞에서 참을성을 발휘할 때가 있다. 그건 바로 동거인이 외출을 했을 때다. 이런 상황에서 고양이는 최악에 대비한다. 혹자에 따르면 동거인이 외출할 때 고양이들은 그들이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 여기기도 한다고 한다. 어떤 학자는 같이 지내던 사람이 한동안 눈에 보이지 않으면 고양이들은 일단 그가 죽었다고 간주한다고까지 말한다. 그렇게 보면 내가 며칠간 출장이나 여행을 다녀왔을 때 녀석들의 반응이 이해가 되긴 한다. 그때 모두들 나를 마치 무덤에서기어 나온 좀비인 양 바라보며 경계 반 호기심 반의 태세로 접근해왔었다. 어쨌든 실제로 나 혹은 우리 부부의 외출 기간은 한 시간이 될 수도, 하루나 이틀이 될 수도 있다. 물론 우리가 얼마나 부산하게 외출 준비를 하느냐, 밥그릇에 얼마나 많은 사료를 미리 쌓아두느냐를 보면, 고양이들도 대충 우리의 외출 시간을 예측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 일이 반드시 예측대로 되지는 않는다. 따라서 고양이들은 가능한 한 오랫동안 주어진 음식을 아껴 먹으며 내핍생활을 해야 한다. 실제로 우리가 외출에서 돌아오면 고양이들이 하는 첫 번째 일은 우리를 반기는 것이 아니라 아껴두었던 밥을 먹는 것이다. 이런 녀석들을 보고 있노라면 없던 책임감도 생긴다. 물론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 느끼는 책임감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내가 무사히 집으로 돌아와 세 마리가 눈앞에서 오물거리며 밥을 먹고 있는 장면을 보며 느끼는 책임감도 가볍지는 않다. ---pp.95-96 우리가 경청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입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대가 심각하다고 여기는 문제를 별것 아닌 것으로 생각할 뿐만 아니라 해답이 뻔히 보이는 문제라고 여긴다. 따라서 남의 하소연을 들어줄 때 이겨내야 하는 것이 바로 “이 멍청아! 그게 무슨 큰 문제야” 하고 외치고 싶어 근질거리는 입의 충동이다. 입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경청을 멈추고 힐난이나 비평이나 판정을 내려주게 된다. 모두 상담을 망치는 비결들(?)이다. 개나 고양이는 말을 하지 못한다. 대신 주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 물론 그 주인이 나에게 먹을 것을 주고 집안에서 가장 힘이 세고 가장 익숙한 존재이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이유가 어찌 되었든 중요하지 않다. 비록 그 이유가 저 인간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겠다는 경계심이거나 (대개 나를주시하는 똘똘이나 삼돌이, 소니가 이런 상태다) 언제 맛있는 걸 주려나 하는 과거 경험으로부터 유추한 기대에 불과할지라도, 외롭고 지친 현대인의 눈에는 그 태도가 바로 경청의 기본인 ‘나만 바라봐주는 모습’이다. 그저 바로 곁에 앉아 다른 것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주인의 두 눈을 주의 깊게 응시하며, 주인이 뭐라 지껄이는지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열심히 들어주는 것만으로 그들은 치유사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해낸다. 말을 못하기 때문에 소통이 안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말없이 들어주기만 하는 상대방 덕분에 마음을 열고 그동안 숨기거나 쌓아둔 것들을 끄집어낼 수 있는 것이다. “위대한 사람만이 경청을 할 수 있다”는 미국 대통령 캘빈 쿨리지Calvin Coolidge의 말을 빌리자면, 어떤 순간에는 우리 집 소니가 가장 위대한 셈이다. ---pp.122-123 다리가 부러진 소니가 병원 사람들에게 ‘아주 순하다’는 평가를 만장일치로 받아내는 것을 보면서 나는 위의 논쟁을 다시 생각해볼 수 있었다. 소니가 순하다니! 내 팔에 죽죽 그어진 발톱자국이 다 누구 거였는데. 나와 소니의 장난은 대체로 소니가 나를 할퀴거나 물어뜯고, 나는 그 녀석의 머리를 쥐고 흔들어대는 것으로 끝나곤 했는데……. 그런 녀석이 순하다니. 내가 아는 소니는 겁이 많기는 하지만, 결코 순한 고양이는 아니었다.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소니는 누구와 함께 있느냐에 따라서 성격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고양이다. 낯선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 낯선 이가 여자라면 대개 금방 기어 나와서 친근감을 보이며 등을 쓰다듬어달라고 애교를 부린다. 하지만 낯선 남자가 찾아오면 그가 떠날 때까지 숨어 있기도 한다. 고로 그 손님이 누구냐에 따라서 소니에 대한 인상은 전혀 다를 것이다. 그런데 사람인들 안 그렇겠는가. 잘 알려진 ‘필립 짐바르도Philip Zimbardo의 가상 감옥 실험’에서 멀쩡한 남부 신사 같던 대학생들이 가장 잔혹한 교도관으로 변신하던 이야기를 굳이 들지 않더라도, 우리 주변에는 누구와 어디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는 수많은 사람이 있지 않던가. 대개 학교나 직장에서 사고를 친 사람의 주변인을 인터뷰해보면 그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답변이 나오지 않던가. 이런 걸 보면, 에인스워스의 실험도 의심해볼 여지가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p.165-166 |
|
인간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고양이인 셈이다
고양이는 자기중심적이고 시크하며, 차가운 듯 따스하고, 독립적이다. 현대인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아 있다. 혼자 있는 것에 익숙해 누가 내 영역을 침범해오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외롭고 쓸쓸함을 호소하는 현대인들. 그들에게 고양이는 일방적으로 애정을 쏟아 부어야 하는 반려동물의 범주를 떠나, 함께 교감하면서도 독립적인 생활이 가능한 룸메이트로 인식되는 듯하다. 심리적 결핍을 충족하고, 오류를 수정하는 동반자적 대상으로서 고양이를 선택하는 사람들. 어쩌면 고양이를 통해 사람들의 마음 또한 알 수 있지 않을까? 저자는 심리학자이자 세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다. 소심한 심리학자는 스라소니 새끼처럼 생겼지만 전혀 사납지 않은 소니, 소니보다 똘똘하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똘똘이라는 자랑스러운 이름을 얻게 된 똘똘이, 세 번째로 들어온 우직한 고양이 삼돌이와 16년째 함께 살고 있다. 새벽 6시 세 고양이 녀석들의 이유 모를 울부짖음으로 집사로서 그의 하루는 시작된다. 이 아이들은 왜 울까? 배가 고픈가? 내 침대를 차지하고 싶은 걸까? 특별히 원하는 게 있나? 심리학자답게 고양이의 심리를 읽어보겠다고 녀석들과 눈 맞춤을 해보지만, 그의 기대에 부응하지 않는 무심한 고양이들은 ‘우는 데 이유가 필요해? 괜히 내 마음을 읽어보겠다고 애쓰지 마시지’ 하는 표정이다. 심리학자, 고양이의 마음을 읽어보려는 원대한 꿈을 꾸었으나 오히려 고양이에게 마음을 들키고 말았다 이 책은 심리학자가 세 고양이와 함께 살며 겪은 일상의 이야기들과, 고양이와 현대인의 다르고 또 같은 심리를 대조하며 유머와 감동, 위로를 전하는 ‘고양이와 인간에 대한 심리 에세이’다. 저자는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와 카툰을 직접 그리고 생동감 있는 사진을 찍어가며 고양이들과 동고동락한 일상을 이 책에 고스란히 담아냈다. 보통 인간이 반려동물을 길들인다고 생각하지만, 세 마리의 고양이와 주인이 서로 맞춰가고, 적응해가는 모습을 보면 서로에게 길들여지는 게 맞는 것 같다. 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 사이든, 인간과 동물 사이든 그렇게 서로 길들이고 서로 인정해주며 관계를 맺어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끼게 된다. 서로 달라도 친해지고, 이해 못 해도 공감하며, 동의하지 않고서도 잘 지낼 수 있는 ‘관계 맺기’를 배우다 16년차 고양이 집사인 소심한 심리학자가 생각하는 고양이란? 집도 지켜주지 않고 휴식에 도움을 주지도 않는 주제에 자기중심적이고 독립적이며 차갑고 무심하기까지 한 존재들이다. 집사들의 기대와 예측을 와장창 깨버리는 게 특기인 데다 그들에게 절대 동조하지 않으면서도 당당하고 뻔뻔하다. 인간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기로 비밀 동맹을 맺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로 사는 데 별다른 이득이 없고, 비용 대비 효과로는 최악의 선택인 녀석들이다. 그럼에도 16년째 그들과 함께 사는 이유는 무심하게 몸을 구부려 그루밍하는 것만으로,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며 따스하게 자리하는 것만으로,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어찌 보면 고양이를 좋아하는 감정이야말로 가장 순수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나는 결코 좋은 고양이 집사는 아니다. 애초에 집사라고 할 수도 없다. 나와 고양이들은 그저 사소한 인연으로 동거하는 사이일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이야기 속엔 고양이와 함께한 무수한 시행착오의 흔적이 역력하다. 이런 시행착오 속에 그가 배운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을 내세우라면 ‘관계에 대한 자신감’이라고 한다. 고양이는 서로 달라도 친해지고, 이해 못해도 공감하고, 동의하지 않고서도 잘 지낼 수 있음을 우리에게 가르쳐준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꿈꾸는 관계의 이상적인 모습이 아닐까. 당신이 고양이를 특별히 좋아할 이유를 찾지 못했더라도 그걸 굳이 숨기지 않을수록, 그럼으로써 주변의 불편한 반응을 경험했을수록, 역설적으로 당신은 고양이와 비슷한 존재이고, 따라서 고양이와 공감할 여지가 있는 셈이다. 고양이처럼 내가 남과 다름을 제대로 인정하고 싶다면, 고양이와 사귀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인간은 모두 서로가 서로에게 고양이인 셈이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