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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펴내며 ㆍ 4
제1부 가을꽃이 목이 긴 이유 구부러진 길 ㆍ 16 | 가을꽃이 목이 긴 이유 ㆍ 21 에스테이트 세일 ㆍ 26 | 쉼표 ㆍ 33 빨래 ㆍ 38 | 빈 봉투 ㆍ 44 울프문 ㆍ 49 | 저녁 다섯 시 ㆍ 54 제2부 어두워진 다음에 보이는 것들 따스했던 것들 ㆍ 62 | 어두워진 다음에 보이는 것들 ㆍ 67 진달래 연서 ㆍ 72 | 채송화 연가 ㆍ 77 하룻밤 자고 나면 ㆍ 82 | 개밥바라기별 ㆍ 87 괜찮아 괜찮아 톡톡 ㆍ 93 | 그 산에 내리던 눈 ㆍ 100 제3부 소원을 말해 봐 똥강아지가 보낸 편지 ㆍ 108 | 소원을 말해 봐 ㆍ 115 마지막 드라이브 ㆍ 120 | 아침밥을 지으며 ㆍ 126 집 ㆍ 132 | 지우산 ㆍ 137 하지감자 ㆍ 142 | 냇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ㆍ 149 제4부 석양은 다시 지는데 접시꽃이 피었다 지면 ㆍ 156 | 풍금 소리 ㆍ 162 석양은 다시 지는데 ㆍ 167 | 박태기나무 ㆍ 173 감나무 ㆍ 178 | 할아버지의 노래 ㆍ 184 작은 대문 ㆍ 190 | 보따리 ㆍ 195 제5부 저 달이 그 달일까 저 달이 그 달일까 ㆍ 202 | 여름 산, 그 너머 ㆍ 208 가을 운동회 ㆍ 214 | 팔월 열나흗날 밤ㆍ 220 십일월 ㆍ 225 | 십이월 소묘 ㆍ 230 그해 겨울, 첫 번째 이야기 ㆍ 235 그해 겨울, 두 번째 이야기 ㆍ 241 그해 겨울, 세 번째 이야기 ㆍ 247 제6부 봄볕은 가루분처럼 내리고 밥, 첫 번째 이야기 ㆍ 254 밥, 두 번째 이야기 ㆍ 259 장마 ㆍ 264 | 봄볕은 가루분처럼 내리고 ㆍ 269 목단꽃 솜이불 ㆍ 274 | 커피를 마시며 ㆍ 280 반달접시 ㆍ 285 | 오래된 편지 ㆍ 290 아직 끝나지 않은 이별 ㆍ 296 해설 김우종 ㆍ 3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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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는 모국어의 맛은 차지다. 햅쌀에 자박자박 된 물을 잡아 솔가리 한 줌을 던져 넣어 잦혀낸 쌀밥 같다. 내 모국어의 자궁은 호박꽃 같은 등불 아래 그 쌀밥을 호호 불어 먹던 동네였다. “눈 다친다 눈 다쳐 감아라 눈 감아라” 뜨거운 물 한 바가지를 버리면서 땅속 벌레에게도 말 걸던 사람들, 두둑에 심은 콩 넝쿨에게도, 여물 구새의 구순한 돼지에게도 다정하던 사람들이 살던 동네였다. 나는 할머니의 무명 치마에 묻어 밤마실 가는 걸 좋아했다. 할머니들한테선 쉰밥 냄새가 났다. 비 젖은 짚북데기 냄새 같은 것도 났다. 그 할머니들 사이에서 곶감 하나나 굳은 떡 조각 하나를 쥐고 까무룩 잠이 들면 그 잠 속으로도 자분자분, 할머니들의 이야기 소리는 계속되었다. 할머니의 등에 선잠을 묻고 돌아오는 길에도 우렁우렁, 할머니의 혼잣소리는 계속되었다. 할머니의 등으로 쏟아지던 하얀 달빛, 논둑을 무너트릴 듯이 울어대던 개구리 울음소리, 멀찌감치서도 눈치채고 일어서던 누렁이의 기척, 그 아늑했던 모든 것이 내 모국어의 자궁 속에 있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가끔 달이 덜 차서 나온 아이처럼 그 자궁 속을 그리워하며 살아가고 있다.
햇귀가 미처 떠오르기도 전, 잠든 동네를 빠져나와 자작나무 숲을 돌아 내 삶의 터전인 세탁소로 간다. 대부분의 가게는 어두운 창문을 내린 채 아직 남은 새벽잠에 빠져 있다. 아침을 파는 베이커리의 창문만이 환하다. 베이커리를 빠져나온 빵 굽는 냄새와 커피 냄새가 안개처럼 새벽 공기 속을 떠돈다. 튤, 리셋, 마리아, 카르맨, 가르시아, 후안, 파티마 그네들도 나도 이민자로서의 삶은 고달프기만 하다. 줄줄이 다려 놓은 옷에서 풀풀 김이 난다. 몽골, 과테말라, 엘살바도르, 페루, 멕시코, 온두라스 생김새는 비슷한데 낳아준 모국은 각기 다르다. 저마다의 귀에는 이어폰이 끼어 있다. 무슨 노래일까, 무한 반복되는 경쾌한 리듬도 있고, 라 쿠카라차! 굶주림의 삶을 노래한 바퀴벌레의 노래도 있다. 리오그란데강을 몰래 넘으며 끊임없이 도망 다녀야 했던 이민의 설움을 기억하는 노래도 흘러나온다. 노래가 된 저들의 모국어, 저마다의 삶이 뜨겁듯이 저마다의 모국어도 뜨거운 것이리라. --- 본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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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미 작가의 산문은 한국의 중서부 지방에 위치한 마을처럼 정겹고 아늑하다. 이처럼 훈기가 도는 글을 요 근래 나는 참으로 오랜만에 접한다. 온갖 인스턴트, 퓨전 음식 범벅의 언어가 넘쳐나는 시대에 그의 글은 천연의 재료로 만든 음식의 맛을 고스란히 드러낸, 담백하면서 신선한 언어의 향기를 발하고 있다.
먼 이국에서 모국에 대한 그리움을 언어예술로 승화시킨 그녀의 글들은 처서 백로 거쳐 추분에 들어선 산국처럼 은은하고 청초하다. 애써 꾸미지 않으나 품격이 배인 글 속에는 인간과 세계에 대한 깊은 이해와 성찰이 들어 있다. 사물에 대한 꼼꼼한 관찰과 응시 다음에 오는 섬세한 정서적 숨결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또한 우주 안에 편재하는 작고 여린 것들에 대한 알뜰한 관심과 사랑이 차원 높게 서술된 점도 마땅히 상찬하여야 하리라. 특히 온정이 서린 두꺼운 추억의 가족 서사는 읽는 내내 마음을 는개비처럼 적시기에 충분하였다. 김용미 작가의 산문은 말의 온전한 의미 그대로 매우 탁발하고 출중하다. 적정한 표현 속에 깊이를 갖춘, 보기 드문 명문이다. 그의 문장이 종소리가 되어 세상 속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번지어 가길 기대해 본다. - 이재무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