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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꽃 필 때가 너에게 봄
만손초 꽃 필 때가 너에게 봄 고슴도치에게 손님 맛있는 벌 내게는 너무 큰 것 하늘 매점 운동회에서 엄마 별이 간절하게 빛나는 이유 가을 오후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세상의 중심 너의 이름은 사월의 비가 2부 세상 가득 넉넉한 그늘이 되어 핫초코 한 방울 김옥순전 이상한 어머니께 선물 김 선생이 아이에게 김밥을 먹으며 코로나19 속에서, 꽃이 지다 옥순이 딸 색동 보따리 물Lee 선생님 가시 보물 첫물 코로나19 속에서, 봄을 기다리며 꽃마리 3부 그래도 엄마가 좋다 엄마의 손 엄마의 틀니 마지막 이별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 수염을 자르며 너를 보면 엄마가 다시 그리워져 그래도 엄마가 좋다 엄마의 꽃동산 아침 풍경 포기 엄마의 땅 아름다운 치매 기린초 어느 재두루미의 사랑 떨어진 동백꽃처럼 4부 부칠 수 없어 별이 되는 편지 겨울 해 오월의 연가 바람 나의 노래 상사화 재미난 우연 헤이그, 이준 평화 기념관을 나오며 장미에게 편지 아침으로 가는 길 고향 친구 고비 고구마 삼월의 눈 풍경 시인의 자전적 산문 나는 정원사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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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버린 화분에서
어느 날 갑자기 꽃이 피었다 향긋하고 고운 난초꽃이 피었다 너무 미안해서 낯이 붉어졌다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 꽃을 피운 아이 목마를까 가끔 물만 주었는데 버려지지 않고 꿈을 키웠다 버리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다 --- 「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 중에서 무심코 던진 한마디 김 선생에게 돌아와 더 큰 가시가 되었다 아이에게 말했다 그런 뜻은 아니었지만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다고 마침내 아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귀신처럼 가시가 사라졌다 --- 「가시」 중에서 아부지만큼 나이 먹어 그때를 떠올린다 끝없는 농사일에 지쳐 돌아눕기도 힘드셨던 울 아부지 그때는 몰랐다 아부지 어깨보다 네 손이 약손이라는 칭찬에 신났지만 이불 속에서 꼼지락꼼지락 제 손가락 아픈 줄만 알았다 --- 「그때는 몰랐다」 중에서 열여덟 꽃다운 나이에 어여쁜 신부 되어 인생의 새 터 일구었네 올망졸망 오 남매 낳아 조용할 날 없이 살았지만 고단하다 생각하지 않고 열심히 가꾸어 튼튼하고 넉넉한 엄마의 성 이루었네 이제 몸져누운 일인용 병상 발 디딜 일도 발 디딜 곳도 없어 우리 엄마는 공중 부양 중 한 평도 안 되는 공간에 아픈 몸 뉘었네 세상에 다 내어놓고 돌아누울 곳 없는 그곳만이 오직 엄마의 땅 --- 「엄마의 땅」 중에서 초여름 햇살이 눈부셔 바위틈에 살짝 숨었는데 지나가던 바람이 살랑살랑 간지러워 터져 버린 샛노란 웃음 --- 「기린초」 중에서 하늘 꼭대기에서 몸을 던졌다 무한 공간 휘휘 날아 내려앉은 가장 낮은 자리 잠시 앉았다 찰나에 사라지는 삼월의 눈은 잊혀진 사랑처럼 허망하다 --- 「삼월의 눈」 중에서 그들은 지금 무엇을 생각하는가 죽도록 충성했건만 자신을 버린 주인을 그리는가 하늘보다 가혹한 인간의 법칙 앞에 모든 걸 맡긴 채 비는 쏟아지는데 번개 같은 네 발로도 달릴 수 없는 본능이 갇힌 곳에서 자유로운 한숨만이 철망을 빠져나와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 「풍경」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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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같은 산골 아이들과
함께했던 사십 년. 웃을 일도 많았지만 울 때도 있었다. 이제 돌아보며 생각해 보니 그 모두가 내겐 사랑이었다. 2025년 겨울 김옥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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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은 스스로 “정원사”라고 고백한다. 온갖 꽃들이 자라는 꽃밭, 그 꽃들을 어루만지며 다듬어 키우는 “정원사”는 ‘교사’의 다른 이름으로 걸맞다.
“아무것도 모르던 어린 날/햇살 소복소복 내리 쌓이던/시골집 토담에 기대앉아/친구에게”(「김옥순전傳」) “나는 커서 선생님이 될 거야”라고 속삭이듯, 그러나 다부지게 자신의 꿈을 이야기하던 시인은 그예 농촌 벽지의 교사로 평생을 살았다. 앳된 초임 교사가 어느덧 한 학교를 책임지는 교장을 거쳐 퇴임에 이르렀다. 그동안 시인은 숱한 꽃들을 가꾸어 세상 밖으로 떠나보냈다. 개중에는 “온몸의 가시를 수시로 세우”(「고슴도치에게」)던 꽃도 있었고 “늦게 피는 꽃”(「꽃 필 때가 너에게 봄」)도 있었다. 멀리 영양으로 홀씨가 되어 날아온 “서울 촌놈” “대구 촌놈”(「세상의 중심」)들이 있었고 “버려도 버려지지 않고/꽃을 피운 아이”(「버리지 않아서 다행이다」)들이 있었다. 시인은 온갖 꽃들이 피고 지는 교정에서 시심詩心을 잃지 않는 정원사로 꽃들의 길을 열어 주는 호미질을 하며 어쩌면 스스로 꽃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틈틈이 정원 일기처럼 써 온 시들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많은 순간 누군가를 위해 무엇을 한다고 생각하지만 그 ‘무엇’은 정작 자신을 위한 것이기가 십상이다. 시인의 웃는 모습을 본 사람이라면 내 말에 동의할 것이다. 꽃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그런 밝은 웃음을 피울 수 있단 말인가! - 피재현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