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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05
봄비 내리는 날 13 기억 속의 가시 37 깊고 붉은 사랑 61 림옥의 다른 세상 91 붉은 길 115 초승달 뜨는 밤 143 그해 겨울의 두만강 169 할미꽃 피는 집 195 리 씨의 하루하루 225 해설 | ‘탈북난민’들의 삶의 지속(가능)성 | 전상기 2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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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내 손을 놓지 마오.”
하 씨가 명화와 지현의 손을 꽉 쥐었다. 어느 순간 그가 두만강 속으로 뛰어들었다. 몇 걸음 움직이자 벌써 강물이 가슴까지 올라왔다. 강 중심부에 이르렀을 때 발이 땅에 닿지 않았다. 명화는 허우적거리다가 하 씨 손을 놓쳤다. 헤엄을 친다고 양팔을 휘저었지만 거센 물살에 휩쓸려갔다. 두만강이 그녀의 작고 가녀린 몸을 집어 삼켰다. 정신을 잃고 속절없이 떠내려가다가 모래톱에 걸렸다. “체네 동무, 정신채리라!” --- p.88 「깊고 붉은 사랑」 중에서 연길공항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고 화룡시로 갔다. 여관에 숙소를 정하고 나서 소개받은 브로커에게 연락했다. 바로 브로커를 만났는데 협의가 잘 되어서 3일 후에 어머니를 데려오기로 했다. 그날 밤늦게 누군가가 여관 문을 두드렸다. 문을 열자 건장한 남자 2명이 다짜고짜 밀고 들어왔다. “이 반역자 간나새꺄!” 낮에 만났던 브로커가 철판을 긁는 것처럼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그는 브로커로 위장한 보위부 첩자였다. --- p.111 「림옥의 다른 세상」 중에서 점차 줄어들던 식량 배급은 수령님의 심장이 멎은 지 얼마 안 되어서 딱 끊어졌다. 삶이 정지되었다고나 할까. 탄광이 문을 닫은 지 오래되었다. 광부들은 식량을 구하러 이리저리 흩어졌다. 눈물샘이 바싹 메마르고 가슴은 모래밭처럼 삭막해졌다. 너나 할 것 없이 굶주림에 시달렸다. 북풍 설한의 찬바람을 맞고 있는 나무처럼 무표정한 모습으로 그저 하루하루를 버티어 나가고 있었다. --- p.144 「초승달 뜨는 밤」 중에서 가을의 투명한 햇빛 속에서 천이 펄럭이는 광경에 눈이 부셨다. 세영 씨가 철책 너머 개풍군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그녀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어떤 미묘한 감정이 밀려들었고 가슴이 시려왔다. 집 뒤 산기슭에 묻힌 망자들의 넋을 위로하는 듯이 새파란 무명천이 드높은 하늘을 향해 너울너울 춤을 추었다. --- p.221 「할미꽃 피는 집」 중에서 “야야, 내가 하나원 나온 지 얼마나 됐다고 그러니.” 리 씨는 그를 걱정해 주는 동생들이 고마웠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데려오고 싶은데 브로커 살 돈이 없었다. 들리는 얘기로는 두만강에 철조망이 더 많이 쳐지고 경비가 강화돼서 도강비가 비싸졌다고 한다. 한 사람당 7백만이라는 설도 있고 1천만이라는 사람도 있었다. 탈북민들에게 적지 않은 돈이었다. 리 씨는 한때 자기가 농사리에 들어가서 가족을 데려올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무모한 계획이었다. 일가족이 남조선으로 가다가 붙잡혀서 북송되면 반역자로 몰려 몰살당할 것이 뻔했다. --- p.245 「리 씨의 하루하루」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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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연변조선족자치주 두만강의 여러 지역으로 수차례 여행을 갔었다. 그곳에서는 북한 마을이 잘 보였다. 지붕이 낮은 집 굴뚝에서 아침저녁으로 연기가 피어올랐고, 다락 밭이 되어버린 헐벗은 산이 많았다. 강을 따라 이어진 도로로 소달구지가 느릿느릿 굴러갔고, 적재함에 사람을 가득 실은 화물차가 검은 연기를 뿜어내며 지나가기도 했다.
여행 중에 만난 탈북자들의 이야기는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에게 탈북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삶의 마지막 선택이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살아남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이 또 있을까. 어떠한 사상이 이론상 아무리 뛰어나다고 하더라도 삶을 안전하게 영위하는 것보다 우선일 수 없다. 죽으면 모든 게 끝이니까 말이다. (중략) 사람들은 풀을 뜯고 나무껍질을 벗겨 먹다가 벼 뿌리까지 캐서 갈아먹는 등 초근목피로 연명했다. 극심한 영양실조로 쓰러지는 사람이 늘어났고 어느 시점에 이르러서 아사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발생했다. 어떤 통계에서는 수백만 명이 아사했다고도 한다. 사람들은 좀비 같은 몰골로 식량을 구하러 무작정 강을 건너갔다. 탈북자들은‘깡냉이밥이나마 먹을 수’있었다면 고향 땅을 떠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 필자는 어느 해인가 설날 즈음에 연변의 도문시를 방문했다. 폭설이 내려 두만강 개활지에 많은 눈이 쌓여 있었다. 두만강 건너편은 함경북도 온양군이었다. 사진을 더 잘 찍으려고 개활지로 내려갔는데 눈밭 위에 자리를 깔고 두부, 월병, 돼지고기, 과일, 술 등을 푸짐하게 차려놓은 것이 보였다. 정성스레 차례상을 마련한 사람이 두만강 건너편 북한 땅을 향해 절을 한 흔적이 눈밭에 고스란히 드러나 있었다. 한달음에 건널 수 있는 두만강을 앞에 두고도 고향에 가지 못하는 그 누군가의 애절함이 느껴졌다. 필자는 무엇인가가 폐부를 깊숙이 찔러오는 먹먹함 때문에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이 소설집의 주인공은 모두 탈북민이다. 필자의 짧은 식견과 미미한 필력으로 그들의 삶을 온전히 담아냈는지 돌아보게 된다. 1. 유영갑 작가의 문학적 이력 1958년 인천 강화에서 태어나 1991년 『월간문학』소설부문 신인상으로 등단한 유영갑 작가는 올해로 등단 35년차에 이른 중진작가이다. 등단 이후 그는 장편소설『푸른 옷소매』,『그 숲으로 간 사람들』, 『시대의 불꽃 성완희』, 『달의 꽃』등과 창작집 『싸락눈』등을 간행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1991년에 펴낸 첫 장편 『푸른 옷소매』를 통해 한국군 남자와 베트콩 여자 간의 국경과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사랑의 문제를 형상화하여 베트남전쟁과 관련한 새로운 소재와 주제로 주목을 받았다. 이후 장편 『그 숲으로 간 사람들』을 통해 독립군 후손과 친일파 경찰과의 역사청산 문제를 제기하여 리얼리스트 작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문학평론가 이재복(한양대 국문과) 교수는 유영갑 작가에 대해 “그의 소설 속에 서술된 대상들은 부분이라든가 하나의 현상이 아닌, 전체와 본질이 함께 존재하는 양상을 보여주고 있다.”라고 평가했다. 1997년에 펴낸 유영갑의 두 번째 장편소설 『그 숲으로 간 사람들』에 대해 문학평론가 고영직은“한 가족사에 음각된 민족사의 복원을 이룩하였다.”고 평가했다. 독립투사 집안의 기구한 운명의 가족사의 내력을 보노라면, 식민지 잔재의 청산과 민족사의 정립이라는 과제가 여전히 우리에게 실감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유영갑 소설을 통해 자각할 수 있다. 1998년에 펴낸 첫 창작집 『싸락눈』은 영등포를 터전으로 하여 살아가는 서민들의 삶의 양태를 리얼하게 그려냈다. 작가의 자전적 삶이 묻어 있는 이 창작집에 대해 문학평론가 방민호(서울대 국문과) 교수는 “영등포 지역의 삶의 세태와 풍물을 예리하게 형상화함은 물론 뿌리 뽑힌 인간 군상들의 생활의 흔적들을 묘파한 작가의 통찰력은 사회적 현실과 그 현상 속에 감추어진 역사문제를 제기한다. 주변의 삶에서 분명히 있을 법하지만, 묘사하기는 힘든 인간형을 잘 포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유영갑 작가는 2002년에 탄광노동자의 투쟁과 삶을 그린 실명소설 『시대의 불꽃 성완희』(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간)를 출간했다. 성완희 열사는 〈강원탄광〉의 노동자로 일하면서 광부들에 대한 회사 측의 부당해고 문제와 인권문제를 제기하면서 1988년 7월 8일, 분신 산화했다. 유영갑 작가는 19성완희 열사의 삶을 추적하였고, 정부는 성완희 열사에게 2022년 6월항쟁 기념식에서 민주화운동에 앞장선 공로로 〈국민훈장〉을 수여하였다. 2005년 유영갑 작가는 세 번째 장편소설『달의 꽃』을 펴내어‘문화나눔 우수도서’로 선정되었다. 군부독재정권의 그릇된 개발정책으로 서울 창신동 일대의 서민들이‘도시개발’이라는 미명하에 국가폭력(백골단)에 의해 구타당하고 일가족은 어쩔수없이 귀향(강화도)한다. 폭력의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다가 자살하는 주인공 아버지의 스산한 삶을 통해 근대화정책이 한 가족을 어떻게 해체시켰는지 추적한다. 민초들의 한과 망자의 넋을 달래는 한판 씻김굿과 함께 서울 혜화동, 젊음의 유랑지에서 펼쳐지는 사랑의 풍속도를 통해 한 인간이 고독과 절망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어떻게 성찰의 세계로 건너갔는지 이야기한다. 2. 탈북 난민 문제를 최초로 문학화한 유영갑 작가 ‘탈북난민’들의 삶의 지속(가능)성을 묻는 묵직한 물음 ― 전상기(문학평론가) 2005년 장편소설『달의 꽃』출간 이후 유영갑 작가는 새로운 문학적 소재에 천착했다. 유영갑 작가는 10년 가까이 탈북 난민들을 다각도로 취재하였고, ‘탈북민’들의 고난에 가득 찬 북한 탈출기 관련 5편의 중단편을 묶어 2014년,소설집 『강을 타는 사람들』(북인 간)을 출간했다. 탈북 난민 문제를 다룬 첫 번째 소설집 『강을 타는 사람들』은 1990년 중반 이후 이른바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북녘주민들이 생존을 위해 북한을 탈출, 남한에 와서 정착하는 과정을 세밀하게 묘사했다. 북한에서는 도저히 살 수 없기 때문에 이념이나 체제, 사회 구성의 경직성과 교조적 운영, 대외적 폐쇄성 여부와는 상관없이 남한 행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바, ‘(두만)강을 타는 사람들’이 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문학화한 것이다. 유영갑 작가는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버리고, 알 수 없는 미래의 불안하고 위태로운 삶을 선택하는, 모험을 감행하고 있는 탈북 난민들의 삶에 문학적 열정을 쏟아 부었다. 말하자면 유영갑 작가는 한국문단에서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은 탈북민의 문제를 ‘분단문학’의 새로운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통일부 발표에 따르자면 남한에 들어온 ‘탈북난민’의 누적 입국 인원은 2025년 8월말 현재, 3만4천4백10명에 이른다. 그러니까 ‘탈북난민’의 문제는 현재 북한의 체제운영, 남북한의 분단, 한반도를 둘러싼 4강 내지 6강대국의 이해관계, 국제정치경제학적 난맥상 등이 복합적이고 입체적으로 얽혀 있는 중차대한 현재적 사안이라는 점이다. 『강을 타는 사람들』 이후 11년 만에 유영갑 작가는 탈북난민 문제를 좀더 심도 있게 다룬 두 번째 소설집 『깊고 붉은 사랑』을 들꽃출판사에서 펴냈다. 유영갑 작가의 이 소설집에는 「봄비 내리는 날」, 「깊고 붉은 사랑」, 「림옥의 다른 세상」, 「초승달 뜨는 밤」, 「그해 겨울의 두만강」, 「리씨의 하루하루」 등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탈북난민’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자 여전히 풀어야 할 남북한 모두의 중요한 핵심 쟁점이라는 것이 소설가 유영갑의 문제의식이자 현실인식이다. 유영갑 작가는 마치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이라도 되는 양 탈북 관련자들을 만나고 북중 접경지대를 직접 답사하고, ‘고난의 행군’ 시기가 지난 다음의 현재 북한 인민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으며, 어떤 루트로 국경을 넘어 제3국을 거쳐 남한에 입국하는지, 남한에 입국한 다음에는 통일부 산하 ‘하나원’에서 교육을 받고 소정의 지원을 통해 남한 생활에 어떻게 적응해 나가는지 그 전과정을 꼼꼼하게 살핀 다음에 소설화했다. 전상기(전 성균관대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문학평론가는 이 소설집 『깊고 붉은 사랑』에 실린 〈해설〉에서 “유영갑의 소설은 ‘탈북난민’에 관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애쓴 서사적 기록물이자 난민들의 고통과 좌절, 열망과 기대, 불안과 환희, 심리와 정서를 온전히 형상화하고자 한 소설적 재현물이다. 35년에 이르는 유영갑의 소설가 이력에서 절반이 넘는 세월을 ‘탈북난민’ 문제에 천착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코자 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어떤 소명의식은 실로 놀랍고도 경의에 값한다.”고 평가했다. 전상기 평론가는 유영갑 소설집 표제작 「깊고 붉은 사랑」의 두 주인공의 행적에 대해 아래의 언급은 의미심장하다. “유명철의 도명화를 향한 마음이다. 언제나 한결같고 끊이지 않는 사랑이 필요하다. 이 진득하고 맹목적인 사랑이야말로 남북한 인민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다. 유영갑이 ‘탈북난민’들의 이야기를 지속적이고 일관되게 소설화하면서 이룬 성취는 바로 이 점을 유남철과 김세영을 통해서 전달한다는 점이다. 반복적이고 크리셰적인 측면으로 느껴지는 ‘탈북난민’들의 서사가 왜, 이리도 절절한 현대성을 갖는 것인가는 독자인 우리들이 가져야 할 성찰적 자각인 셈이다. 그러므로 유영갑의 외롭고 진부하기까지 한 작업을 응원하면서 지켜봐야 하는 자세는 ‘너는 나다’는 격언인 것이다. 이는 유영갑이 우리에게 던지는 묵직한 물음이다. ‘탈북난민’들의 삶은 지속가능한가, 지속가능해야 하지 않은가, 우리의 삶 역시도 그러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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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절, 30년 이상을 문단의 동료이자 벗으로서 지켜본 바, 유영갑 작가는 올곧고 정직한 삶을 살아온 사람이다. 그는 북한 지역과 인접한 강화도에 태어나, 살면서 어느 날부터 북녘 주민의 탈북문제를 집중적으로 소설화하기 시작했다. 그가 때론 ‘반북주의자’라는 낙인을 각오하면서 지난 20년 동안 이 문제에 대해 깊은 문학적 관심을 기울인 까닭은 무엇일까. 수많은 탈북 난민들, 그 탈북민들의 문제가 인간으로서 자기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며,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될 인류 보편의 인권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민족으로서의 동포애를 뛰어넘어 동시대의 문제를 결코 외면치 않으려는 ‘진정한 작가정신’을 발견할 수 있다. - 이승철 (시인, 한국문학사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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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11년 전, 소설가 유영갑은 ‘탈북난민’들의 고난에 가득 찬 북한 탈출기 5편의 중·단편 소설을 묶어 단행본으로 출판했었다. 『강을 타는 사람들』이 바로 그것이다. 『강을 타는 사람들』이 5편의 중·단편 작품을 싣고 있는데 반해, 이번 소설집 『깊고 붉은 사랑』에서는 모두 9편의 단편소설이 수록되어 있다. 그만큼 ‘탈북난민’의 문제는 현재진행형이자 여전히 풀어야 할 남북한 모두의 중요한 핵심 쟁점이라는 것이 소설가 유영갑의 문제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 유영갑의 소설은 ‘탈북난민’에 관한 가능한 한 모든 것을 담아내고자 애쓴 서사적 기록물이자 난민들의 고통과 좌절, 열망과 기대, 불안과 환희, 심리와 정서를 온전히 형상화하고자 한 소설적 재현물이다. 35년에 이르는 그의 소설가 이력에서 절반이 넘는 세월을 ‘탈북난민’ 문제에 천착하고 이를 문학적으로 승화코자 한 집념과 열정, 그리고 어떤 소명의식은 실로 놀랍고도 경의에 값한다. - 전상기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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