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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품왕
보라보라 스포츠센터 버몬트 씨 옷 벗기기 애드밸리 빵을 던져라 작품 해설 작가의 말 |
고은규의 다른 상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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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스물세 살, 전 재산 9,820원. 어제 현금 인출기 앞에서 180원 때문에 절망했다. --- p.102
달마다 체중이 늘었다. 1킬로씩, 때론 2킬로씩. 44 사이즈의 날씬한 몸을 가졌던 나였는데. 이제는 라지 사이즈도 터질 것같이 꽉 끼었다. 호두가구가 망하고 집안이 어려워질수록 체지방이 쌓였다. 경제적 어려움과 체지방의 증가는 분명히 비례 관계가 있다. 뿐만 아니라 경제적 어려움과 고독감도 비례 관계가 있다. 빌어먹을 비례식이다. 나는 자주 허기졌다. 그 때문이다. 언젠가부터 폭식하는 습관이 생겼다. 폭식 후에는 더 큰 고독감이 밀려왔지만 당장의 고독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 p.145 그랬던 엄마가 마트에 나가면서부터 달라졌다. 일이 끝나 집에 돌아오면 소파에 길게 몸을 늘어뜨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바퀴벌레가 떼 지어 거실에서 리셉션을 벌여도 멍한 얼굴로 바라만 보겠지. 그러다 기운 없는 목소리로 바퀴벌레한테 물을 것이다. 바퀴벌레야,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니? --- p.64 스포츠센터의 자동문을 통과하자 녹음된 인사말이 들린다.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천국에 오신 것처럼 편안하게 모시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리는 자동문을 통과할 때마다 비꼬듯 말한다. “우린 오늘도 천국 같은 데 온 거네.” “우린 고객이 아니잖아.” “맞다. 이제부터 지옥의 일을 시작하자.”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지옥이야.”--- p.71 “엄마, 뭐 해. 날려버려!” 카트를 밀던 사람들과 엄마에게 핀잔을 주던 손님들이 동작을 멈추고 내 쪽으로 고개를 비튼다. 그런데 엄마만 나를 돌아보지 않는다. 화가 나면 폭풍우를 몰고 올 수도 있는 사람이 우리 엄마다. 당신은 이제 죽었어. 그런데 엄마는 왜 저러나. “고객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일이 익숙지 않아서요. 오래 기다리게 해서 정말정말 죄송합니다…….” “똑바로 하세요.” 여자가 몇 마디 더 투덜대고는 총총히 사라진다. 나는 화가 나서 음료수 병을 계산대 위에 탁 소리가 나게 내려놓는다. “엄마, 왜 참았어? 진짜 실망이야.” “어서 오십시오, 고객님.” “엄마…….” 엄마는 사라지고 마트의 친절 마크가 방긋거린다. 누굴까. 엄마의 표정을 가져가 버린 사람은. --- p.94~95 그녀의 체인 목걸이에 눈이 끌린다. C 브랜드의 신상품이다. 모조품이 아니란 생각이 들자 갑자기 심통이 터진다. 화려하게 빛나던 나 로라만 밀걸레 같은 처지가 된 것인가. 나는 밀걸레를 움켜쥐고 거울을 흘끔 본다. 리뷰왕을 할 때보다 살이 붙었다. 54,900칼로리를 소비하면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무언가 많이 어긋나버린 것 같다. 나는 상상한다. 내가 쥐고 있는 이 밀걸레가 요술 할멈의 빗자루라면 얼마나 좋을까. 시급 따위 잊고 싶다. 당장이라도 이걸 타고 보라보라를 탈출하고 싶어진다. 왜 이곳은 누군가에게는 낙원이면서 누군가에게는 지옥이 되어야 하는 거지? 그것보다 누가 감히 낙원과 지옥을 만들어놓은 걸까? --- p.83~84 “또.옹!” 수영장을 이용 중이던 사람들은 귀를 틀어막고 여교수가 가리키는 방향을 향해 합창을 하듯 다함께 소리를 질렀다. “또.오.옹!” 절묘하고 강력한 화음이었다. 수영장 천장의 불투명 유리에 번개 모양의 금이 간 것도 그 소리 때문이라고 했다. 교수는 어찌나 비명을 질렀는지 목이 쉬어버렸다. 그녀는 물기가 마르지 않은 목소리로 사장에게 따졌다. “수영장 관리를 이렇게 해도 되나요?” 그러나 사장은 여교수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쉑켱징 켁헉욱 쑝쁘링 니수 씼나헉?” 그는 저녁 약속이 있어 여교수를 향해 한 번 환하게 웃어준 후 스포츠센터를 빠져나갔다. 여교수는 스포츠센터 홈페이지에 접속해 분노를 표출했다. --- p.73~74 로라는 더 마른 몸을 갖고 싶다며 닭의 가슴살만 먹었고, 그것들을 냉장고에 꽉꽉 채워두었다. 냉장고 문을 열면 팩으로 포장된 가슴살들이 바닥으로 우르르 떨어질 때도 있었다. 도대체 몇 마리의 가슴살을 도려낸 것일까. 가슴살을 인간에게 주고 슬피 울었을, 아니 슬픔을 느끼기도 전에 하직했을 닭들에게 묵념을 하고 싶을 지경이었다. --- p.15 “판매천지 지랄천지 그쪽에서 먼저 우리 물건을 팔아보겠다고 해서 밤새 공장 돌려 가격 맞춰 납품했더니, 경쟁 방송에서 원 플러스 원 행사를 했다는구나.” 아저씨는 잔뜩 독이 오른 얼굴이다. 우유나 과자를 하나 더 주는 행사는 봤어도 책장을 하나 더 주는 행사는 처음이다. 그런 날이 올까. 자동차를 한 대 사면 자동차를 한 대 더 주고, 집을 한 채 사면 집을 한 채 더 주고, 친구를 하나 사면 친구를 하나 더 주고, 애인을 하나 사면 애인을 하나 더 주는……. --- p.30~31 엄마가 마트에서 6개월 동안 일해 번 돈을 한 푼도 쓰지 않아야 그레이스 케이의 블라우스 한 장을 살 수 있다고 했다. 나한테 R 컬렉션은 비상식적인 곳이었다. 하지만 로라에게는 달랐다. R 컬렉션에서 일하는 걸 즐거워했다. 아니, 즐거워하는 정도가 아니라 몸 어딘가에 애드벌룬이라도 달아놨는지 늘 붕 떠 있었다. “오빠, 그레이스 케이의 가방을 보잖아. 그럼 그 가방의 아우라에 몸이 마구 떨리는 거 있지.” 로라는 그딴 말을 하고 또다시 전기뱀장어처럼 꿈틀거렸다. --- p.110 눈을 감고 중얼거린다. 밤낮없이 일을 하다보면 우리 가족은 결국 부자가 되고 말 거야. 정말 엄청난 부자 말이야. 밥을 굶지 않고 관리비 같은 건 밀리지도 않는 부자 말이야. 열심히 일하다보면 희망찬 새날을 맞이할 수 있을 거야. --- p.160~1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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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수많은 ‘알바’들에게!대한민국의 시간제 근로자는 2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취업이 안 돼 수년 동안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갑작스런 은퇴와 취약한 복지로 아르바이트 전선에 뛰어드는 노인 인구수도 늘고 있다. 이렇듯 대부분의 가족 구성원이 아르바이트로 연명하는 삶이란 결코 과장이라 할 수 없는 우리 시대의 혹독한 현실이다. 아르바이트는 더 이상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청춘들의 낭만 서린 경험이 아니고, 가족의 생계를 위해 온 가족이 감내해야 하는 불안과 고통이 되어버렸다.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단순한 피해자가 아니다.“알바가 갑이다”라는 광고 카피에 반발하는 자영업자들이나, 최근 논란이 된 수많은 ‘갑질’에 분노하지만, 정작 소비자의 지위를 가지게 되면 당당히 ‘갑질’을 저지르는 게 또한 우리의 모습이지 않은가. 상품과 서비스의 소비자가 되기 위해 인간성이 소비되어야만 하는 악순환, 갑에서 을로 을에서 갑으로 수시로 둔갑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비극은 우리가 일상에서 겪고 있는 문제들이다. 『알바 패밀리』는 이러한 소비자본주의 사회의 메마른 풍경 속에서 살아가는 작은 개인들의 아픔을 게임하듯 발랄하고 경쾌한 언어로 풀어낸다. 시대의 비극과 그것을 견뎌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가족애를 보여주며 서늘한 감동을 선사한다. 그저 따뜻한 저녁상과 관리비를 밀리지 않는 게 꿈인 한 가족의 왁자지껄한 알바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자.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유머, 세속사회를 꿰뚫는 날카로운 시선마성의 고은규 표 가족 드라마매일 밤 집을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트렁커’들의 내밀한 상처를 따뜻한 시선과 재기발랄한 유머로 그려낸 첫 번째 장편소설 [트렁커]로 2010년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을 수상했고, 죽음을 관리해주는 회사인 ‘데스케어’를 배경으로 고독사와 죽음 후에 남겨지는 것들에 대하여 들추어낸 두 번째 장편소설 [데스케어 주식회사](2012)로 문학계에 입지를 굳힌 막강한 이야기꾼 고은규 작가가 또다시 못 말리는 신작 장편소설을 들고 나타났다. [알바 패밀리]는 인간이 상품처럼 소비되는 자본주의 시대에 몰락해가는 한 시간제 아르바이트 가족의 이야기로, 좀처럼 나아질 희망도 없는 삶을 보전하기 위해 온 가족이 시간제 일자리를 전전해야 하는 무참한 우리 시대의 초상을 고은규 특유의 통렬한 풍자로 그려냈다. 「반품왕?, ?보라보라 스포츠센터?, ?버몬트 씨 옷 벗기기?, ?애드밸리?, ?빵을 던져라? 등을 제목으로 가족 구성원 각자의 이야기가 펼쳐지며, 각 이야기들은 독립적인 완결성을 가지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한 편의 가족사를 완성한다. 세상의 비극을 그려내는 고은규의 화법은 놀라울 정도로 웃기고 경쾌하다. 우리는 비판적 인식과 표현 사이의 아이러니 속에서 개인의 상처가 더욱 분명하게 드러나고, 사소한 유머가 무게감 있는 조롱으로 승화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스타카토처럼 몰아치는 문장, 배꼽 잡는 유머, 울 수도 웃을 수도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들에서 샘솟는 이야기들, 우리가 고은규의 세 번째 작품을 기대해도 좋은 이유이다.“바퀴벌레야, 내 인생은 왜 이런 거니?”집에 돌아오면 바퀴벌레한테까지 신세한탄하기에 여념이 없는 엄마, 명품 가방을 보면 그 아우라에 몸서리를 치는 로라, 9,820원이 전 재산이라는 스물세 살의 로민, 거대 자본이 영세 상인들의 밥줄을 앗아가는 상황에서 순진무구한 경영 철학이나 늘어놓는 아버지, 지지리 궁상맞고 적당히 속물적인 비정규직 가족의 애면글면한 시간제 인생사가 펼쳐진다.「반품왕」 로라는 패션 리뷰 사이트 ‘세일즈 프로모션’의 리뷰왕으로 리뷰만 쓰고 상품은 도로 돌려보내는 상습 반품자다. 당당하게 소비자의 권리를 주장하고 소비자보호법을 사랑하던 로라는 어느 날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던 소비자보호법의 역습을 당하고 마는데……. 한편 가구공장을 운영하는 아버지는 물밀듯이 반품돼 들어오는 물건들을 처리하지 못해 쩔쩔맨다.「보라보라 스포츠센터」 로라는 보라보라 스포츠센터의 수영장에서 수질 관리 요원으로 일하며 사장과 고객들의 서비스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한다. 수질 관리 요원이란 스포츠센터의 회원을 끌어들이기 위해 수영하는 척하면서 소위 ‘물’을 관리하는 젊은 남녀 아르바이트생들을 말한다. 사이즈가 맞지 않는 브래지어를 교환하러 대형 마트에 간 로라는 그곳에서 계산원으로 일하는 엄마가 난처한 상황에 휘말린 모습을 발견하는데…….「버몬트 씨 옷 벗기기」 R 컬렉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로민은 소각시키려고 했던 외투를 추위에 떨던 노숙자 버몬트 씨에게 건네준다. R 컬렉션은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시킨다는 이유로 버몬트 씨의 외투를 다시 벗겨 오라고 한다. 그러나 버몬트 씨는 외투를 순순히 내놓지 않고 로민은 R 컬렉션에 손해배상을 해야 할 위기에 처한다.「애드밸리」 신도시의 중심 상가 애드밸리의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로라는 무섭게 밀려드는 광고 전단지들을 치우느라 애를 먹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긋지긋한 전단지를 뿌리는 아르바이트들 중엔 엄마와 오빠 로민이 끼어 있다. 황당해하는 로라. 하지만 여기서 끝이 아니다. 로라는 또 한 번 마주하고 싶지 않은 비밀을 알게 되는데…….「빵을 던져라」 가구공장이 망해 한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던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밤마다 수상한 외출을 한다. 엄마와 로민, 로라는 아파트 관리비를 내기 위해 시청에서 주관하는 지역 상인들과의 만남에 진행 보조 요원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그런데 그곳에 홀연히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낸다.“실체를 알 수 없는 프로그램에 의해 내 인생의 레벨이 정해진 것 같다. 빠르게 회전하도록 설계된 트레드밀 위에 뚱뚱한 고양이가 서 있다. 로라가 서 있다. 엄마가 서 있다. 내가 서 있다. 그리고 아버지가…….”아버지 같은 영세한 ‘생산자’와 로라 같은 영악한 ‘소비자’가 파국에 이르는 동안, 그사이에 사악한 대형 ‘유통업체들’은 탐욕스레 이익을 챙긴다. 가구공장이 문을 닫고 한동안 긴 침체에 빠져 집에도 들어오지 않았던 아버지는 이제 좀 정신을 차리는가 싶더니 빵집 사장들 틈에 끼어 작은 반란을 준비한다. 거대한 트레드밀 위 나약하기만 한 개인들이 허겁지겁 달리는 사이 아버지는 잠시 작은 저항을 꿈꾼다. 타인의 욕망을 내면화하고 신경증적인 다이어트에 집착하는 로라, 억척스럽게 가족을 이끌어가는 엄마, 노숙자에게 그레이스의 고급 외투를 건네주는 로민, 지렁이도 밟으면 꿈틀한다는 걸 보여주는 아버지. 모두 각박한 세상을 어떻게든 살아가려는 우리들 누군가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들이 척박한 삶을 견뎌나갈 수 있다면 그건 가족이라는 큰 울타리 안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며 살아가기 때문이 아닐까. 천신만고 끝에 똘똘 뭉친 이 가족에게 과연 밝은 미래는 올 것인가? “일가족이 모두 시간제 알바로 연명하는 삶이 좀 과장된 이야기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삶은 결코 지나치다고 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이기도 하다.”(전성욱) 일자리에서 내쫓기면 다시 시간제 일자리를 구하고, 소비하기 위해 소비되어야만 하는 끝없는 악순환, 갑에서 을로 을에서 갑으로 수시로 둔갑하며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비극은 우리가 일상에서 늘 몸으로 겪는 문제들이다. “영악하거나(로라) 순수하거나(로민) 억척스럽거나(엄마) 순진무구한(아버지) 이 가족에게 그 반복회귀의 삶이란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이 세상의 질곡이다.”(전성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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