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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에 말라 죽다
허영옥
푸른사상 2025.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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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제1부 내가 없는 하루

거미줄 / 보이지 않는 날개가 아프다 / 내가 없는 하루 / 감정 노동 / 유토피아 / 새가 사는 법 / 장마에 말라 죽다 / 누가 달을 베어 갔을까? 1 / 빗방울 랩소디 / 그냥 1 / 하루 / 소금 바람 / 가을이 까칠하고 쓸쓸한 이유 / 우분투 / 그냥 2

제2부 가을꽃 놀이

제일 아까운 것 / 겨울 수국 / 상중(喪中) / 기도 / 시집가던 날 / 울컥하는 양지 / 가을꽃 놀이 / 고요 앞에서 / 달팽이 / 빨간 초보 운전 / 엄마 손 1 / 엄마 손 2 / 내 봄 / 소 / 모두 네 탓이라고 한다

제3부 꽃무늬 달팽이

배가 고프다 / 좋은 시가 무섭다 / 날짜 지난 신문을 읽는 아침 / 농사 / 딱지 ― 긴 하루 / 앞발 / 거미 집 / 누가 달을 베어 갔을까? / 정낭걸 / 독(毒) 짓는 마음 / 말 못 할 사연 / 나를 보는 시간 / 장마 / 꽃무늬 달팽이 / 보일러를 켰다

제4부 말똥말똥한 질문

AI / 137일 / 2024년 12월 3일 새벽, 얼룩 / 전쟁100 / 어쩔티비 / 등신불 / 50년 전 그대에게 ― 전태일 / 태극기 부대와 엄마 부대 / 흔적 / 그날이 오면 / 진실은 늘 위기 / 늙은 미래 / 여름 끝에서 / 말똥말똥한 질문 / 바람의 전쟁

작품 해설 : 고독 속의 한 줄기 빛, 우애의 공동체로 확장 _ 권영옥

저자 소개 1

경남 의령에서 태어나 2003년 『경남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그늘의 일침』이 있으며, 제10회 경남작가상을 수상했다. 한국작가회의, 경남작가회의, 객토문학 동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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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25년 12월 19일
쪽수, 무게, 크기
140쪽 | 128*205*20mm
ISBN13
9791130823492

책 속으로

자꾸 깜빡이는 정신
백열등처럼 불안한 빛 흘리며
하루를 견딘다

장마 예보에
다육 화분 몇 개만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비에 맡겼다

보이는 화분에만
말을 걸고 손길 주며
안에 있는 다육 화분엔
물 줄 생각조차 잊었다

장마 지난 뒤
내가 건너뛴 눈길에
안에서 마른장마 겪은
화분 몇 비우며

내 익숙함의 무심함에
또 누군가를 말라가게 하지 않았나

덜컥, 두려움이 덮친다
--- 「장마에 말라 죽다」 중에서


해마다 올해는 유난히 덥고
유난히 장마가 길고
유난히 가을과 봄이 짧고
유난히 춥거나, 춥지 않다고
여러 이유를 붙이며
언론은 호들갑을 떨 것이다

봄을 맞는 꽃놀이
단풍을 즐기던 가을
꽃놀이와 단풍놀이의 여유와 감성은
텔레비전 앞에서나 어루만지며

날마다 최고를 갱신하는
저 유난한 것들이
인간의 욕심이 만든 것이란 걸 알면서
아무도 편리함을 내려놓지 않으려
모두 네 탓이라고 한다

자연을 대신하는 편리함을 씹으며
나는 오늘도 전자레인지 속에서
공장에서 뽑아낸 계절을 데운다
--- 「모두 네 탓이라고 한다」 중에서


한여름을 시원하게
한겨울을 따뜻하게 보낸 결과

137일
올해 북극곰이
먹이 활동을 하지 못한 날이라네요

얼음 위에 누워 있어야 할 북극곰은 지친 모습으로
차와 굴뚝이 물 위에 비치는 마른 풀밭에서
이리저리 인간들의 행동을 살피며
사람이 던져주는 큰 물고기를 받아먹고 있네요

이글루가 사라진 북극은
머지않아
집집마다 집채만 한 곰들이
개처럼 집을 지키겠네요

그렇게 서서히
길들어가는 곰의 멸종을
우린 지켜보고 있네요

--- 「137일」 중에서

출판사 리뷰

온 누리 출렁이는 시월의 끝자락

땀에 전 옷 벗어 걸고 왔던 길 되짚어봅니다

때로는 취하지 않고도 비틀거리며 버틴 시간들을

물들어가는 단풍 아래 쉼표로 걸어두고

가고 싶었으나 가지 못했던

나만의 길을 찾아 다시, 새벽길을 나서렵니다.

가다 보면 내 걸어왔던 흔적들이

울긋불긋 되살아와 불 밝힐 것 같습니다.
- 「시인의 말」


유한성의 지배를 받는 인간은 어떤 한 시기에 이르러 특별한 감정을 경험할 때가 있다. 이러한 감정을 우리는 ‘고독’이라고 하고, 또는 ‘자기로의 복귀’라고도 한다. 고독이란 한 인간을 갇히게 하는 어둠이고, 외부와 차단된 채 자신을 익명성 속에 웅크리게 하는 감정이다. 왜 고독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일어날까? 인간의 감정에는 인격성과 비인격성이 혼재해 있다. 그 때문에 자아는 죽음과도 같은 어둠 속에서 자신을 외롭고 쓸쓸하게 한다. 레비나스에 의하면 고독은 물질에 대한 걱정이 홀로서기 자체에서 생기고, 또한 이 걱정은 인간으로서 속 깊은 불행에 대응하고자 하는 진지한 시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개인의 물질적 욕망 때문에 걱정이 일어나고, 그걸 알면서도 인간은 존재의 짐을 스스로 벗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고독 속에 오래 갇혀 있다 보면 빛이 필요하다. 그래서 홀로서기를 시도한다. 고독 속에서 홀로서기는 성찰이고 빛이다. 탈고독화로 자신을 정립한 인간은 사회성을 가진 자유인으로 살아간다.
허영옥 시인 역시 2017년에 첫 시집 『그늘의 일침』 이후 자아가 세계 속에서 철저하게 고립된 채 고독 속에 웅크리고 있다가 합리적 반성과 성찰을 통해 구체적인 외부성의 문제에 접근하게 된다. 시인에게서 구체적인 외부성이란 부모와의 소통의 관계나 존재의 본질을 자신의 바깥에서 찾아나가는 자아의 외적인 모습을 의미한다. 여기에 관한 시편들이 『장마에 말라 죽다』이다. (중략)

시인의 시편에는 일상의 쓸쓸한 내면을 넘어서 자신과 부모와의 관계, 고향 이웃이나 인류에 대한 속 깊은 윤리적 이해가 들어 있다. 이는 현실을 살아가는 시인의 마음이 헐거워지면 꾸준히 성찰하고, 그러면서 엄격함을 유지해간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인의 시가 지니고 있는 쓸쓸함과 긴장감이 주는 미 또한 전쟁 같은 인류의 거대한 주제에서 오는 게 아니다. 자신과 타자들의 고단한 일상에서 오는 고독과 당위적 현실을 개선하려는 의지가 용해되며 이루어내는 통합된 조화에서 나타나는 것이다. 무미건조한 일상과 그것을 넘어서는 세계로의 확장, 대극점이 공존하는 세계가 허영옥 시의 주조를 이루고 있다.
- 권영옥(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추천평

작고 야무지고 단단해서 가슴에 공명을 울리는 쇠종 하나가 들어 있는 듯한 시인의 노래가 있다. 그 속에는 종이 울릴 때마다 그토록 끈끈하고 애달프고 다정하게 걸어 나오는 이들이 있다. 어머니의 논밭과 삶터에 젖먹이 어린 딸로 영혼의 수유를 받는 막내딸의 살갑고 절절한 사랑이 눈물겹다. 영원한 애증의 그리움으로 남은 아버지의 흔적을 어루만지며 떠도는 막내딸의 눈물이 번져서 은은히 울리는 종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렇게 이어온 사랑을 아이들에게, 뜰 앞의 꽃들에게 쉼 없이 풀어놓으며 고백한다. 시인이 사랑한 세계들이 애닯게 또는 경쾌하게 불려 나와 때로는 경종의 종소리로 때로는 가락 넘치는 사랑 노래로 들려온다. 그녀가 시어들을 직조하며 울렸을 종소리가 시집 읽는 그대 마음에 뎅그렁뎅그렁 청아할 것이다. - 박덕선 (시인)
시인이 살아 있어야 그 사회가 살아 있다고 한다. 생물학적 삶을 말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시인의 가슴은 따뜻하고 머리는 냉철한지 모른다. 허영옥 시인의 시집을 펼치고 시인이 걷는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어느새 집 안과 집 밖 경계가 허물어지고, 그사이에 오손도손 애틋한 감정을 쏟아내며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단한 삶이 보인다. 무엇보다 삶의 질서를 깨트리는 인간들의 무자비한 살육이 있는가 하면, 눈앞에 재앙으로 닥칠 지구의 앞날이 보이기도 하지만, 일상의 삶이 주는 행복을 맛보게도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시집을 펼치는 순간 당신은 살아 있는 감정의 파노라마를 타고 울다가 웃다가 깜짝 놀라기도 하는 여행을 하게 될 것이다.
- 표성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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