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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차 문화 천년 세트
전7권, 양장
돌베개 2015.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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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1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시
2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산문
3 삼국시대·고려의 차 문화
4 조선 초기의 차 문화
5 조선 중기의 차 문화
6 근현대의 차 문화
7 승려의 차 문화

저자 소개

역자 : 송재소
송재소宋載?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조창록曺蒼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이규필李奎泌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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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09일
판형
양장 ?
쪽수, 무게, 크기
쪽수확인중 | 160*230*50mm
ISBN13
9788971993408

출판사 리뷰

≪1권·2권≫ 조선 후기의 차 문화
“차는 술, 시와 함께 조선 후기 사대부가의 문화 코드였다”
조선 시대 사대부가에서는 우정의 선물로 술과 함께 차를 선물하곤 했다. 남겨진 시와 산문 기록을 통해 차를 주고받는 다양한 모습들을 확인할 수 있다. 자하 신위는 자신의 생일날 손수 만든 정갈한 솔잎차와 향기로운 계로주를 보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시를 지었고, 추사 김정희의 아우 김명희는 초의 선사에게 차를 받고 사례하는 시를 지었다.

늙은 사내 평소에 차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하늘이 그 어리석음 미워해 학질에 걸리게 했도다.
더워 죽는 것은 걱정 없으나 목말라 죽는 것은 근심이라
급히 풍로에 찻잎을 끓여 마셨노라.
북경에서 들여온 차는 가짜가 많은데
향편이니 주란이니 하며 비단으로 쌌도다.
내가 듣기로는 좋은 차는 예쁜 여인과 같다는데
하녀와 같은 차 추하기 더욱더 심하구나.
초의가 홀연 우전차를 보내왔기에
대껍질로 싼 새매 발톱 같은 좋은 차 손수 개봉했네.
울울함과 번뇌 씻어주는 공효 더할 나위 없고
그 효과 빠르고 산뜻하기 어찌 이리 크리오.
노스님은 차 가리기를 마치 부처님 고르듯 하였으니
일창일기(一槍一旗)만을 엄격히 지켜 땄네.
더욱이나 찻잎 덖기를 정성들여 원통(圓通)함을 얻으니
향기와 맛 따라 바라밀 경지에 들게 하였다.
─김명희, 「초의에게 차를 받고 사례한 시」 중에서

초의 선사가 보내준 차를 마시고 학질에 효험을 본 듯하다. 초의 선사의 우전차가 중국에서 들여온 여러 화려한 차보다도 훨씬 낫다는 것, 그리고 차가 울울함과 번뇌를 씻어주는 효과가 있다는 것 등 이 한 작품에서 차에 관한 그리고 조선 후기 차 문화에 관한 다양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또 차의 산업화와 관련하여, 이덕리의 「기다」, 정약용의 「차의 생산과 판매」, 「차의 전매 제도」 등을 보면 차를 단순한 문화적 기호품이 아니라, 국가적 산업 자원으로 생각했음을 알 수 있다. 『음청사』(陰晴史)에서 김윤식이 이홍장, 유함방과 나눈 대화를 보면, 차 재배를 국가적 산업으로 인식하고 이에 대한 정책 제안으로까지 나아갔음을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이규경의 「도다변증설」(?茶辨證說)에서는 차의 어원과 용례, 관련 문헌에 대한 학문적 고찰을 시도했음을 볼 수 있다.

≪3권≫ 삼국시대·고려의 차 문화
“천년의 차 문화를 연 삼국시대”
우리나라 차 문화의 시초는 삼국시대라고 추정된다. 삼국시대는 전하는 문헌이 매우 적지만, 당시에 기록된 문헌과 후대인이 삼국시대에 관해 기록한 문헌들 하나하나가 매우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중 『조선불교통사』는 한말의 학자 이능화가 편찬한 것인데, 이 책에는 고구려 소수림왕 때 순도(順道)의 입국으로부터 시작하여 1917년까지의 한국 불교 역사가 정리되어 있다. 이 책에 따르면, 김해의 백월산에는 죽로차(竹露茶)가 있는데, 수로왕의 왕비인 허황옥(許黃玉)이 인도에서 가져온 차씨로 재배한 것이라는 기록이 있다. 일본인 학자 아오키 마사루(1887~1964)는 그의 책에서 고구려 옛무덤에서 나온 작고 얇은 떡차를 표본으로 간직하고 있다고 기록한 바 있다. 떡차에 관해서도 자세히 적었는데, 지름이 4센티 남짓의 엽전 모양이고, 무게는 5푼 가량이 된다고 한다. 전남의 청태전과 유사한 것이었다고 짐작된다.
『삼국사기』에 신라 흥덕왕 3년(828), 김대렴이 중국 당나라에서 차의 씨앗을 가져다 지리산 인근에서 재배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에 따르면 차 문화의 시작은 선덕여왕 때부터라고 한다. 그리고 흥덕왕 대에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관찬사료에서 전하는 가장 확실한 기록은 아마도 이것일 텐데, 당시 견당유학생이었던 최치원 또한 오랜 기간 당나라에서 지냈으므로, 귀국 무렵 수준 높은 당나라의 차 문화를 신라로 들여왔으리라 짐작된다. 최치원의 글에는 차를 선물하거나, 새 차를 보내준 데 대해 감사한다는 등의 글이 자주 보인다. 차를 마시는 문화가 이미 생활 속에 깊이 자리했음을 보여주는 기록들이다.

≪4권≫ 조선 초기의 차 문화
“개인의 기호품으로 정착한 차(茶), 차 문화”
삼국시대와 고려의 차 문화가 왕실과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차 문화의 전성기라고 한다면, 조선 초기는 차 문화가 개인화되고 기호품화되는 시기라고 말할 수 있다.
삼국시대의 차 관련 글에서는 차 문화의 전래와 발전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록들이 많았다. 그리고 고려의 차 문화가 농익은 불교문화와 함께 전성기를 구가했음은 기간된 책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에 비해 조선 초기는 흔히 한국의 차 문화가 쇠퇴기에 들어섰다고 인식되어 왔다. 이전 시기, 특히 고려에 비해 남겨진 글이나 서적이 소박하기 때문인데, 이는 바꿔 말하면 국가 중심이 아닌 개인 중심의 차 문화 발달로 이해할 수 있겠다. 이 시기는 차 문화가 개인의 생활 깊숙이 자리 잡았고, 한적하고 담백한 취미를 가진 관료와 문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차가 애호되었다.
이 책은 변중량(卞仲良, 1345~1398)에서부터 심언광(沈彦光, 1487~1540)에 이르기까지 모두 46명 189편의 시문을 수록하였다. 그중에는 김종직(金宗直), 김시습(金時習), 이목(李穆) 등 기왕에 다인(茶人)으로 이름이 알려졌던 인물들도 있으나, 이원(李原), 변계량(卞季良), 유방선(柳方善), 성현(成俔), 남효온(南孝溫) 등 새롭게 다인의 대열에 등장한 인물들이 많다. 이들은 대개 서너 편 내외의 시를 남기고 있다.

≪5권≫ 조선 중기의 차 문화
“차(茶) 문화의 대중화 시대”
삼국시대와 고려의 차 문화가 왕실과 불교 사찰을 중심으로 한 화려한 차 문화의 전성기이고, 이에 반해 조선 초기의 차 문화가 점점 개인화되고 기호품화되는 시기라고 한다면, 조선 중기의 차 문화는, 저변으로 확대되고 대중화되는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조선 중기 차 문화 관련 기록들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내용이 매우 평범한 생활 속에 즐기는 차 한 잔의 여유들이다. 즉, 차 문화가 더 이상 상류층의 고급한 문화가 아니라 대중화되고 일상화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 시기에 차는 선비들의 한적한 생활 취미가 되기도 하고, 경치 좋은 곳에서 운치를 돋우거나 여행길에서 휴식을 취하는 동반자가 되기도 했다. 또 홀로 수심에 젖어 있을 때 술 대신 마음을 달래는 재료가 되기도 했다.
이 책에는 서경덕徐敬德의 ?산거?山居에서부터 이만부李萬敷의 ?이생의 물음에 답하다?에 이르기까지 모두 138명의 시문詩文, 그리고 『조선왕조실록』의 차와 관련된 기사를 수록하였다.
이 책에 수록된 인물들의 면모를 보면, 이황, 이이, 이순신, 허난설헌, 허균과 같이 너무나 잘 알려진 이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다인茶人으로는 거론된 적이 없었던 인물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조선 후기처럼 많은 작품을 남긴 경우는 거의 없고, 대부분이 3편 이하의 차시茶詩를 남기고 있다. 즉 차 문화사에서 비중 있게 다루어지거나 특별히 주목받은 적이 없는 인물과 자료가 많은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이 책의 자료적 가치와 의미를 더해 주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6권≫ 근현대의 차 문화
“격동의 100년, 다양한 언어와 계층의 차 문화 기록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7세기 중반 신라 선덕여왕 때 이미 차를 마셨다. 흥덕왕 3년인 828년에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지리산에 심어 차나무를 재배한 기록이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수많은 문인재사(文人才士)들이 차와 관련한, 차와 함께한 시와 산문의 글을 남겼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학문적 관점에서 차나무의 재배법 등을 다룬 책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다른 독특한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이 시기는 역사적, 문화적 격변기답게 다양한 형식의 차 문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한문 기록 외에 국문과 국한문 혼용, 일문 등 언어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학술 연구서, 답사 보고서, 민요, 현대시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이 등장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전 시기가 고위층의 차 향유 문화를 다룬 글들이 주로 소개되었다면, 이 시기는 차나무를 재배하고 차를 만드는 서민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차가 처음 한반도에 들어온 7세기 중반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차 기록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한 가지 원칙은, 차 문화는 서민의 향유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이 책의 수록 시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차 문화는 대중화된 문화는 아니었다. 차 문화를 향유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글에는 차 농사를 짓는 서민들이 부른 민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인이 차 재배 농가를 찾아가 재배법을 인터뷰한 글에 서민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비록 일본인의 글이라도 당시의 한국 차 문화를 보여주는 기록들은 빠짐없이 훑었고 그중 중요한 자료를 골라 이 책에 수록했다.

≪7권≫ 승려의 차 문화
“구도(求道)의 한 방편, 차(茶)를 마시는 승려들”
승려의 시나 게송(偈頌), 일화를 보면 늘 차를 마시는 장면이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중국 당나라의 선승(禪僧) 조주(趙州)가 ‘끽다거’(喫茶去)라고 한 일화이다. 조주는 늘 가르침을 청하는 제자들에게 “차나 한잔 마시게”(喫茶去)라고 했다 한다. 승려들은 차를 마시는 행위를 선(禪)의 한 방편으로 인식했다. 그래서 많은 승려들의 시에 차를 마시는 이야기가 있고, 특히 조주의 이야기가 많이 등장한다. 대표적으로 고려의 승려인 무의자(無衣子) 혜심이 쓴 ?차샘?(茶泉)이라는 시를 보면,

묵은 이끼 속으로 솔뿌리 뻗고
돌구멍엔 시원한 샘물 솟누나.
호쾌한 방편을 얻기 어려워
조주(趙州)의 선(禪)을 몸소 잡아 보노라.

라고 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쉬운 방법으로 조주의 선 즉 ‘차’를 달여 마시노라고 하였다.
또 다른 고려의 승려 경한(景閑)의 시 ?가장 중요한 의리는?을 보면 조주 선사의 화두(話頭)를 시의 주요 소재로 삼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가장 중요한 의리는
이글거리는 화로에 눈꽃이 떨어지는 것과 같다.
이러한 가운데 차를 내오는 사람이 있다면
유나(維那)가 하필 한 방망이만 내리치겠는가?
그럼에도 차를 내오려는 사람이 있는가?
나오너라! 나오너라!

이처럼 구도(求道)의 한 방편으로서 차 문화는 불가에서 그 맥을 이어 왔으며, 현재도 여전히 차 문화가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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