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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방님을 잠시라도 뵈오니 이제 죽어 한이 없나이다. 내일 본관 사또 생신 잔치 끝에 나를 올려 죽인다니, 서방님은 먼 제 가지 말고 옥문 밖에 서겼다가, 날 올리라 영(令)이 내리거든 칼머리나 들어 주오. 나를 죽여 내어 놓거든 다른 사람 손대기 전에, 싹군인 체 달려들어 나를 업고 물러나와, 우리 둘이 인연 맺던 부용당(芙蓉堂)에 나를 누이고 서방님 속옷 벗어 입혀 주고 나를 묻어 주되, 신산(新山) 구산(舊山) 다 버리고 서울로 올라가서, 선대감(先大監) 제절 하(除節下)에 은근히 묻어 주고, 정조 한식(正朝寒食) 단오 추석 선대가 시제(時祭) 잡순 후, 주과포혜(酒果脯醯) 따로 차려 놓고 술 한 잔 부어 들고, 나의 무덤 우에 올라서서 발 툭툭 세 번 구르고, '춘향아' 부르시고, '청조(靑草)는 우거진디 앉었느냐 누었느냐?
내가 와 주는 술이니 퇴(退)치말고 많이 먹어라.' 그 말씀만 하여 주오. 그 말밖에 할 말이 없오.'어싸또 목이 메어 눈밀이 듣거니 맺거니, '오냐, 춘향아, 우지 마라, 우지 마라, 우지를 말어라. 이애 춘향아, 우지 마라, 성여(喪輿)탈지 가마를 탈지 그것이야 누가 알겠느냐마는, 천붕우출(天崩牛出)이라 하였느니 솟아날 굼기가 있느니라. 오늘 밤만 죽지를 말고 내일날로 상봉하자. --- p.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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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장이나 태장을 때리는 데는 사령이 옆에 서서, <하나!> <둘!> 하고 센다. 하지만, 형장은 법률에 의한 벌이어서 그렇지가 않다. 형장은 형리와 통인이 양쪽에 마주 엎드려서 한 대치면 하나 긋고, 둘을 치면 둘을 긋는다. 마치 무식하고 돈 없는 놈이 술집 벽에 술 값을 그어 놓듯이 긋게 마련이다. 우선 한 일 자를 긋는다. 춘향이는 모든 것을 단념했음인지 저절로 나오는 말처럼 매를 맞으면서도 대꾸를 한다.
"일편단심 굳은 마음, 일부종사 이외에 또 있으리까. 한 개 형벌을 친들, 이제 임과 헤어진 지 1년도 못 되었는데 일 각인들 내 마음이 변하리까!" 이때 춘향이 사또에게 매를 맞는단 말을 듣고, 온 남원 고을 안의 모든 한량들과 그밖의 구경꾼들이 남녀노소 없이 몰려와서 이 꼴을 보다가 수군거리면서 한마디씩 한다. "모질구나. 참 모질구나. 우리 고을 원님이야말로 모질구나. 저런 형벌이 어디 있단 말이냐. 저런 매질이 더구나 있을 수 있느냐. 저 집장사령 눈익혀 두어라. 삼문 밖에 나오기만 하면 급살시킬 테다." 참으로 모진 형벌이다. 보고 있던 사람들은 눈물 흘리지 않는 이가 없다. 두 대를 맞았다. "두 남편 바꾸지 않는 절개를 아옵는데 불경이부할 내 마음이 이 매를 맞고 영영 죽는대도 이도령은 잊지 못할 것이오!" 세 번째 딱 때린다. "삼종의 예는 지극히 소중한 법이오. 삼강오룬을 알았으니 세 번 형벌을 당해 귀양을 가는 한이 있어도 삼청동에 사는 우리 낭군 이도령은 잊을 수 없소!" 네 번째 때린다. "사대부댁 사또님은 사민(四民)에 대한 공사는 닦지 않고 위력으로 공사를 힘쓰니 44방 남원 고을에 사는 백성들이 원망하는 것을 모르시오? 이 사지를 갈아 없어진대도 사생 동거하자고 맹세한 우리 낭군은 사생간에 잊지 못하겠소." ---pp.138-14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