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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
불호사 입술 아수라 짐 그 겨울의 사보텐 해설 / 장영우(문학평론가) 전쟁의 기억과 슬픔의 치유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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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뒤집으니 허망한 몸뚱이가 마음대로 구르며 찬바람을 일으킵니다. 취해도 얻지 못하고 버려도 얻지 못하니 이것이 무엇인가요. 뜨거운 불 속에서 한 줌의 황금 뼈를 이제 쇳소리가 나도록 청그렁 하며 부수어 청산녹수에 뿌리노니, 불생불멸의 심성만이 천지를 덮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그가 자신도 모르게 입속말로 쇄골편을 읊조리자, 분골이 하얗게 흩어져 날리는 광경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는 그 속을 걸어서 거처로 가고 있었다.
--- p.16 「손님」 중에서 “허어! 이 독덩어리 같은 머리통이라니…. 여름에 안거 끝났을 때 내가 헌 말 못 들었단가? 만행을 나설 때도, 부드러운 빗자루로 발 딛을 곳을 쓴 뒤에 걸음을 내딛으라 했제? 중이 첫째로 지켜 줘야 헐 것이 뭣인가? …생명이란께! 그래서 이 시상에 절이 있는 것이고…. 전쟁 치름시로 그것을 모르겄어? 사람 목숨이 하루살이 목숨 같은 것을 봄시로도…? 생명을 지킬라면 당당해사 써. 용감해사 쓴다고. 오해는 당당허지 못헌 디서 생기는 것이란께. …앞길로 들어온 뒤에, 내일 혹간 누가 묻거든 말해 줘 부러. 지난밤에 주지실 앞에 강보에 쌓인 업둥이가 울고 있었다고…. 책임은 내가 질 것인께로. 알겄는가?” --- p.86 「불호사」 중에서 별채로 돌아온 그녀의 몸에 이상한 현상이 일어나곤 했다. 날마다 해 질 녘부터 마드라의 입술이 닿았던 자리에서 열기가 살아나는 것이었다. 열기는 작은 거품들이 수없이 솟아 터지는 간지러움을 불렀다. 그러던 것이 거기에 다시 열기가 더해지고 그 기운이 명치께로 아니, 앙가슴께로 번져 몸 전체로 박하 향처럼 은은하게 퍼졌다. 도대체 이 일을 어쩌면 좋은가. 의사를 찾아 보일 수도 없는 일이었다. --- p.119 「입술」 중에서 앞에서 상일을 마주하고 있는 화구는 모두 10개였다. 화구 속마다 미리 레일에 올려 화장로 속으로 밀어 넣은 전사자의 시신이 한 구씩 판 위에 누워 있을 것이다. 항구의 미군 부두에서 염 과정을 대신해서, 적의 공격으로 목숨을 잃기까지 찢어지고 끊어진 시신을 깨끗이 씻겨 꿰매거나 묶어서 원래의 모습에 가까이 만들어 놓는 일인 수시(收屍) 과정을 거친 뒤에, 광목으로 싸고 냉동 처리를 한 시신들을 어제 밤중에 운구해 왔다는 27구 가운데 1차분일 것이다. 상일은 문이 닫힌 화구들에 차례로 눈길을 보낸 뒤에 2미터쯤의 앞쪽을 살폈다. 붉은색 좌복에 무릎 꿇고 앉아 있는 영현중대장 김수림 대위의 뒷모습이었다. --- p.137 「아수라」 중에서 등단작 「탄흔」에서 이미 한국전쟁과 월남전쟁의 상동성을 날카롭게 간파한 작가는 전쟁의 상처가 반세기 넘는 세월이 지나면서 더 큰 화농으로 번진 상황을 예사롭게 넘기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는 중생 제도를 서원하고 성불마저 미룬 보살의 자비심에서 전쟁의 비극을 종식시킬 단초를 찾는다. 서구에서 발원한 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이데올로기의 극단적 대립과 증오를 불교의 방생과 자비 정신으로 치유하겠다는 작가의 상상력은 한계에 봉착한 듯한 남북 분단문학을 또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킬 탁발한 계책이라 보인다. --- p.277 「해설」 중에서 요즘 사람들 대부분은 얼마든지 좋아하는 것들만 보고, 듣고 살게 됐다. 골라 보는 수고로움조차 소용없는 세상이 됐다. 따라서 갈수록 시야는 좁아지고 마음은 외곬으로 흐를 수밖에 없을 터이다. 그래서 한 발은 행복 속에 남은 한 발은 불행 속에 담그고 사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참으로 딱한 일이다. 나는 이 소설로써 기꺼이 그들의 방해물이 되고 싶다. 시야를 열어 마음을 열고 산다면 얼마든지 행복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 p.299 「작가의 말-나는 기꺼이 그들의 삶에 방해물이 되고 싶다」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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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수라의 지옥고(地獄苦)를 넘어 생명 존중의 가피(加披)로
표제작 「아수라」는 반세기 전 해외 파병 전쟁(남로국)의 군수지원사령부 소속으로, 사망한 군인들의 시신을 화장하여 본국으로 보내는 영현(英顯)중대의 군법사가 머물던 불광사를 배경으로 한다. 전쟁터의 화장장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회색 연기와 참혹한 시신들의 모습은 그 자체로 ‘아수라도(阿修羅道)’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작가는 이 지옥 같은 공간을 통해 전쟁의 무의미함과 파괴성을 고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서 스러져 간 영혼들을 달래는 군법사 ‘상일 스님’의 고뇌를 통해 생사의 경계를 넘어서는 구원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2. 억겁의 인연과 연기(緣起)의 미학 작가는 이번 소설집 전반에 걸쳐 불교의 핵심 사상인 ‘연기법’을 서사 구조의 근간으로 삼았다. 수록작 「손님」에서는 수십 년 전의 인연이 예기치 못한 순간 ‘손님’으로 찾아오는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가 결코 우연이 아님을 역설한다. 또한 「불호사(佛護寺)」는 ‘부처님이 보호하는 절’이자 ‘모든 생명을 보호하는 절’이라는 의미를 담아, 전쟁의 포화 속에서도 생명을 보듬어 키워낸 보살 같은 인물들의 삶을 아름답게 그려낸다. 역사적인 비극을 불교적 통찰로 감싸 안아 형상화하여 깊은 울림과 성찰의 시간을 선사하는 솜씨가 돋보인다. 3. 전쟁의 기억과 슬픔의 치유 이상문 작가는 한국 현대사의 가장 큰 비극인 한국전쟁, 월남전 등을 다룬 「짐」 「그 겨울의 사보텐」 등을 통해, 이념의 대립보다 상위에 있는 ‘인간적 유대’와 ‘보은(報恩)’의 가치를 조명한다. 전쟁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도 서로를 위로하고 감싸는 이상문 특유의 온기 가득한 서사는 독자로 하여금 과거의 아픔을 외면하는 것이 아니라 직면하고 끌어안아 치유하게 하는 힘을 발휘한다. 4. 불교적 지혜로 길어 올린 생명의 존엄과 위의 해설을 집필한 문학평론가 장영우(동국대 명예교수)는 “이상문 소설의 미덕은 사건을 과장하지 않으면서도, 한 인간이 짊어진 기억의 무게를 끝내 독자의 내면까지 끌어들이는 데 있다. 전쟁 이후의 가난, 이념의 폭력, 생존을 위한 죄책감 같은 무거운 주제들이 절제된 문장과 단단한 서사 구조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울림을 만든다. 전쟁터의 화장장 굴뚝 연기와 법당의 향연(香煙)이 뒤섞인 이 숭고한 소설집은 상처 입은 현대사를 위로하는 장엄한 천도재(薦度齋)”라고 평했다. [이 책을 먼저 읽은 이들의 감상평] ▣ 전쟁의 포화 속에서 피어난 연꽃 같은 이야기 베트남전의 정글에서 한국전쟁의 비극까지, 작가 이상문이 톺아본 인간의 길. 아수라 같은 세상에서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마지막 희망은 무엇인가? ▣ 불교적 통찰로 빚어낸 치유의 문학 나와 남이 다르지 않다는 불이(不二)의 정신, 모든 고통이 인연으로 얽혀 있다는 연기의 지혜. 소설가 이상문이 건네는 따뜻한 가피가 당신의 상처 입은 영혼을 어루만진다. ▣ 작가가 평생을 바쳐 기록한 ‘인간 존엄’의 보고서 “소설은 단순히 쓰는 것이 아니라, 기억하고 보듬는 것입니다.” 작가가 십수 년을 가슴에 품어온 갈색 티슈 위의 메모들이 이제 한 권의 소설집이 되어 불교적 심성으로 다가온다. ▣ 전쟁의 참화에서 길어 올린 뜨거운 휴머니즘과 자비의 서사 전쟁의 상처를 불교적 통찰로 감싸 안은 한국 불교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