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소장하고 있다면 판매해 보세요.
|
1. 양반 동네 소동기
양반 동네 소동기 또하나의 양반 소동기 소동기 여담 2. 현대양반고 양반이란 무엇인가 양반과 족보 양반 콤플렉스 양반과 공산주의 3. 역사에 얼룩진 한국 묘지시비 나라가 망해도 우리 조상 |
|
'평상시에는 확실히 현대를 살고 있는 자그마한 동족 마을이지만, 소상이라는 특별한 행사가 있으면 갑자기 300년 전의 가치관을 높이 치켜들고 한 발치도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중략)…상주는 조선시대보다도 훨씬 유구한 옛날, 북동 아시아의 저 춥고 추운 삼림 속의 생활을 방불케하는 상복을 입고 곡을 하고 있었다…(중략)…양반의 위엄에 눌려 그만 주눅이 들어 슬금슬금 뒷전으로 물러서서 결정될 대로 된 전통의식을 숨을 죽이고 바라볼 뿐이다.
--- p.529-530 |
|
앞에서 나는 한국 여성의 제사에 대한 마음가짐, 그 집념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여기서는 제사 그 자체에 대해서 약간 언급하려고 한다.
구태여 말할 필요도 없지만 나는 朱子家禮에 대해서나 禮論(유교의 예법에 대한 이론)에 대해서는 그다지 아는 바가 없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내 집에서 지내는 제사는 까다로운 격식을 무시하는 것을 신조로 하고 있다. 제수를 차리는 방법도 격식에 구애되지 않는다. 서가에 꽂혀 있는 그 방면의 서적을 들춰 보면 금방 알 수도 있지만, 구태여 그렇게는 하지는 않는다. 제례의 절차에 대해서도 어릴 때부터 몸에 밴 것이니 지금도 잊지 않고 있으나, 애써 그대로 하지는 않는다. 가령 우리 집안에서는 원칙적으로 딸은 제사에 참여하지 않지만, 나는 전원 참여시킨다. 또 우리 집안은 單獻制이지만, 三獻이 아니라 가족 전부가 잔을 올리니 四獻이다. 왜 주자가례에 따르지 않느냐에 대해서는 내 나름대로 생각이 있지만, 여기서는 말하지 않겠다. 나는 우연히 어떤 집안의 제사에 참례해서 대단히 큰 감명을 받은 적이 있다. 오사카(大阪) 에 살고 있는 김원식 씨 집 제사였다. 김원식 씨는 내가 존경하는 대선배로 여든이 넘은 노인이며 故人이 된 지 오랜 분이다. 근엄한 인품인데다 온화한 분이어서 마주 앉으면 어쩐지 저절로 마음이 느긋해지는 분위기를 지닌 그런 사람이었다. 한국의 남단 제주도 태생으로, 조선조 말기에 조부가 고을 원님을 지낸 일이 있으니 양반 중에도 '甲族 양반'이다. 그 조부의 忌日이 정월 보름이었다. 십여 년 전에도 參祀한 바가 있고, 또 몇 년 전에도 볼일이 있어서 오사카에 간 김에 인사차 들렸더니, 공교롭게도 그 날이 그분 조부의 기일이었다. 그럼 김씨 댁의 제사부터 보기로 하자. 2층 거실에 조그마한 상이 놓여 있고, 그 위에 자그마한 초상만이 달랑 놓여 있다. 그리고 그 초상 양편에 조촐한 생화가 한 쌍 노형 있으며, 상에는 술인지 냉수인지 유리컵에 투명한 액체가 한잔 놓여 있을 뿐, 제수는 눈을 닦고 봐도 없다. 다만 제상 앞에 향로가 놓여 있다. ---pp.221-2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