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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임소연, 그녀
2. 왕위에 오르다 3. 내게 소중한 건 오직 하나, 백성들뿐 4. 영창대군 5. 무너지는 개혁 6. 오직 전하를 위해 7. 혜안을 가진 군주 8. 명을 주무르다 9. 그대들은 명나라의 신하들인가, 조선의 신하들인가 10. 오, 그대마저 11. 그 날을 위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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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해군은 조금씩 지쳐가고 있었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후금과의 화친을 반대하는 상소, 상소들...... 임해군과 영창대군의 귀양, 그리고 죽음으로 이어졌던 역모의 피바람 속에서도 어려운 때 자신을 지지해준 이들에 대해 지키려 했던 믿음들은 여지없이 깨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명의 출병의 와중에서 광해군은 결국 인목대비의 폐모까지 윤허했다. 명과 후금과의 일에 대신들이 반대를 하면 할수록 광해군은 왕권의 강화의 필요성을 절실이 통감했던 셈이다. 그들이 든 10가지 죄목 모두를 인정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광해군은 결국 인목대비의 폐모를 허락했다. 아니 선택했다. 아무리 어머니라 하나 왕에게 아버지를 독살했다 저주를 퍼붓는 방자한 대비를 용서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 자신의 왕권에 대한 도전이자, 능멸이었다. 영창대군이 죽고 5년 동안 인목대비를 위해 최선을 다한 광해군을 조금이라도 이해하려 했다면 인목대비는 그러지 않았어야 했다. 아니, 권력의 비정함을 조금만이라도 알았더라면 적어도 숨죽여 지낼 줄 아는 인내심만은 가졌어야 했다. 그랬다. 그래서였다. 5년이란 긴 시간을 신하들의 주청을 거부하려 버텨오다 마침내 허락한 것은. 아니다. 그것이 전부가 아닐지도 모른다. 자신들의 모든 관직을 사직하며 도박을 해오는 유희분과 이이첨, 박승종과...... 그랬다. 그들 때문이기도 했다. 죽을힘을 다해 명나라와 후금 사이에서 조선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치는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거부의 상소를 올려대는 악머구리같은 그들 때문에.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그들은 더욱더 광해군을 향해 명의 은혜도 모르는 배은망덕한 군주라 비난하고 있는 것이다. 강홍립의 가족을 죽이라 끊임없이 주청하고 있는 것이다. 광해군은 지쳐가고 있었다. 지쳐간다는 것...... 그것은 가끔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은 충동 속에서도 그러나 끝내 놓아버릴 수 없는 것, 그것은 조선의 운명이었다. 광해군은 신하들의 모질고 모진 반대 상소들이 이어질 때마다 생각했다. 왕 하나의 선택이, 왕 하나의 명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의 목숨을 빼앗는지를, 아버지 선조대왕이 왜국의 침략 의도를 보고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방치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7년이라는 길고 긴 전란을 겪으며 죽고, 피흘리고, 자식과 부모를 잃었으며, 지아비를 잃었으며, 지어미의 몸을 더럽혔는지를. 이 땅은 신음하고, 이 땅이 저주스런 한탄으로 메아리쳤는지를. 지쳐 술이 취한 날이면 광해군은 부모 잃은 아이들의 울음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것을 느꼈다. 잊을 수 없는 소리, 죽을 때까지 잊어서는 아니 될 소리......
--- pp.258-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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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된다. 이제 폐주가 된 광해군의 참모습을 복원한다
역사는 승리한 자들의 기록이다. 패배한 이들을 상찬하고 기념하는 역사는 존재하지 않는다. 광해군을 우리 역사는 폐주로 기록하고 있으며 그의 기록을 '실록'이라 하지 않고 '일기'라 부른다. 그를 가리켜 역사는 패륜적인 혼군이며 무능하고 부덕한 폐주라고 가르치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본질적으로 반정세력이 자신들의 명분을 구하기 위해 왜곡하고 폄하한 부분도 많았음을 우리는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설은 광해군의 폐위를, 인격의 패륜이나 부덕의 소치가 아닌 서인과 북인 사이에 확대된 붕당정치의 희생으로 바라보고 있다. 광해군이 과단성 있게 추진했던 개혁적인 정사, 혜안에서 비롯된 후금과의 실리 외교는 필연적으로 대의명분을 중시하는 사람의 거센 반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개혁적인 정사로 인해 자신들의 입지와 안위를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결국, 반정이라는 이름으로, 예지와 기개를 가지고 있던 한 젊은 왕을 옥좌에서 끌어내렸다.참으로 불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반정으로 임금의 자리에 오른 인조는 병자호란이라는 미증유의 전란을 자초하였고 삼전도에서 후금의 황제에게 무릎을 꿇고 신하의 예를 갖추는 치욕을 당해야 했으니, 광해군의 폐위는 두고두고 생각을 요하는 역사의 교훈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정황으로 광해군에 대한 평가는 같은 반정에 의해서 물러난 연산군과는 성격을 달리해야 할 것이다. 곧바로 사사된 연산군과는 달리 광해군이 15년 간 위리안치의 유배생활을 이어가다가 자연사한 사실은 광해군을 폐위한 반정의 명분이 그만큼 미약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