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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
인터스텔라를 넘나든 지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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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목차

프롤로그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 아인슈타인, 킵 손을 만나다

1. 제게 특별한 재능은 없습니다
- 아인슈타인 자신과 주위 사람들에 대한 별 같은 말들
2. 사람은 버팔로 무리 속에서 태어납니다
- 인생에 대한 별 같은 말들
3. 우리가 체험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비입니다
- 과학 연구에 대한 별 같은 말들
4. 순수한 사람이 순수함을 보는 곳에서 돼지는 더러움을 봅니다
- 도덕과 종교에 대한 별 같은 말들
5. 사람은 모두 자기 신발 사이즈로 사물을 판단합니다
- 철학과 인성에 대한 별 같은 말들
6. 자기 눈으로 사물을 보고 자기 마음으로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적습니까
- 가르침과 배움에 대한 별 같은 말들
7. 평화로 가는 길은 오직 평화로만 열립니다
- 평화에 대한 별 같은 말들
8. 저는 ‘고독한 여행자’입니다
- 다시 아인슈타인 자신에 대한 별 같은 말들

저자 소개 2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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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bert Einstein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뮌헨에 전기공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학업을 시작했으나 19세기 독일의 엄격하고 현학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가족들이 밀라노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 1879~1955. 1879년 3월 14일, 독일 울름에서 아버지 헤르만 아인슈타인과 어머니 파울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뮌헨에 전기공장을 세우고 일을 시작하자 그곳으로 이주해 학업을 시작했으나 19세기 독일의 엄격하고 현학적인 교육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성적 부진으로 김나지움을 졸업하지 못했다. 아버지의 사업 부진으로 가족들이 밀라노로 이주한 지 얼마 안 된 시기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위스에서 독학으로 다시 공부를 시작해 취리히 연방공과대학에 응시했으나 낙방했다. 하지만 그의 탁월한 수학 성적에 주목한 학장의 배려로 아라우에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의 고등학교에서 1년간 공부한 후 마침내 연방공과대학에 입학하게 된다.

1900년 봄, 대학을 졸업한 그는 스위스 시민이 되었고, 2개월간 수학 가정교사로 일하다 베른에 있는 특허사무소 심사관으로 채용되었다. 5년간 특허사무소에 일하던 아인슈타인은 1905년 독일의 『물리학연보Annalen der Physik』에 5개의 중요한 논문을 발표했다. 그 가운데 「분자 차원의 새로운 결정」이라는 논문으로 연방공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고, 다른 논문들에서는 유명한 광전효과, 브라운운동이론, 특수상대성이론을 제시했다. 특히 특수상대성이론에서는 ‘모든 좌표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하고 모든 자연 법칙이 똑같다면, 시간과 물체의 운동은 관찰자에 따라 상대적’이라는 이론을 제기하면서 그때까지 인간이 가지고 있던 우주관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또한 그는 질량과 에너지의 등가원리를 확립했는데, 이에 따르면 ‘물질이 갖는 에너지는 그 물질의 질량에 빛의 속도의 제곱을 곱한 값과 같다’고 한다. 이것이 유명한 공식 E=mc2이다.

특수상대성이론으로 명성을 얻은 그는 1914년 독일 프로이센과학아카데미에 자리를 얻어 그곳에서 연구하면서 때때로 베를린대학교에서도 강의를 하였다. 그리고 1916년 마침내 『물리학연보』에 「일반상대성이론의 기초」를 발표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중력은 뉴턴이 말한 힘이 아니라 ‘시공연속체 속에 있는 존재에 의해 생긴 굽어진 장(場)’이다. 그의 이론으로 시공간에 대한 개념은 완전히 바뀌었으며, 그때까지 알 수 없었던 수많은 우주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1919년 런던 왕립학회가 프린시페 섬에서 행한 과학탐사에서 일반상대성이론으로 예측한 계산값을 증명하는 일식현상을 관찰함으로써, 아인슈타인은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1921년, 아인슈타인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상대성이론이 아니라 1905년에 발표한 ‘광전효과’에 대한 공로 때문이었다. 이 이론을 설명하는 광양자 가설은 훗날 양자역학을 낳는 시금석이 되었다. 하지만 그는 양자역학의 성공을 인정하지 않고 거리를 두며 말년에는 주로 통일장이론을 연구하는 데 몰두했다.

1933년 나치가 집권하자 시민권을 포기하고 독일을 떠난 그는 이후 20여 년 동안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거의 변화 없는 생활을 유지했다. 1939년, 아인슈타인은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보내는 핵무기 연구에 관한 유명한 서한에 서명함으로써 ‘맨해튼 계획’ 수립에 영향을 끼쳤지만, 히로시마 원폭 투하에 충격을 받아 핵무기 폐기를 위한 운동에 동참했으며, 비무장 세계정부 수립을 위한 운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한편 1940년, 아인슈타인은 마침내 미국 시민권을 취득했다. 하지만 그는 언제나 자신을 유럽인으로 생각했다. 1952년 이스라엘의 2대 대통령을 제안받기도 했던 그는 이를 정중히 거절하고 연구에만 몰두했다. 그리고 1955년 대동맥류 파열로 프린스턴 병원에 입원한 뒤 그해 4월 18일 그곳에서 7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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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저이영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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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8년 정읍에서 이화백, 문순례 씨의 차남으로 태어나 1992년부터 2006년도까지 스토리 작가로 활동하며 만화 『검정고무신』을 연재, 애니메이션 『두치와 뿌꾸』, 『요리조리 맛술사』를 기획하고 시나리오 작업을 하였다. 소년챔프에 연재한 『검정고무신』은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으며, 단행본으로도 출간되어 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단편소설 『외갓집은 언제나 부자』가 중학교 국어교과서에 수록되기도 했다. 현재 동화와 소설을 집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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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 김광음(金光音)
영어를 수려한 우리말로 옮겨서 독자와 만나고 있는 번역가이자 평화옹호론자입니다. 서울대학교 영어영문학과 졸업. 다년간 출판사와 번역회사에서 근무했습니다. 평소에 가지고 있던 아인슈타인에 대한 관심으로 혼신의 힘을 다해 이 책을 번역했습니다. 미국 언론매체의 아인슈타인 관련 인터뷰 기사를 발췌하고 번역하면서 그는 위대한 과학자로서,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가진 아인슈타인의 매력에 푹 빠져 지냈다고 합니다.
《Second Curve》, 《Eight Inaugural Addresses of the Presidents of the United States》, 《Dianetics》 등을 번역했습니다.

관련 분류

품목정보

발행일
2015년 03월 23일
쪽수, 무게, 크기
276쪽 | 128*188*20mm
ISBN13
9791195149049

출판사 리뷰

“저는 천재가 아닙니다.
단지, 한 가지 일에 오랫동안 몰두할 뿐입니다.”
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을 SF로 재구성

1955년, 아인슈타인은 복부대동맥류로 입원했다가 수술을 거부하고 우리 곁을 떠났다. “할 만큼 했으니 이제 가야할 시간이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이 남긴 마지막 말이라고 한다. 이 책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아인슈타인은 과연 어디로 갔을까?

저 별 어딘가에 인류가 살 만한 환경이 있을 거야.

2055년, 그동안의 무분별한 환경 파괴와 전쟁으로 지구는 황폐화되어, 급기야 풀 한 포기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땅으로 변했다. 절체절명! 인류 멸망의 위기 상황이다. 이때 한 과학자 집단이 인터스텔라와 시공간을 넘나드는 무인 우주선 ‘오리온’을 만들고 있었다. 그들은 먼저 오리온 1호를 100년 전으로 보내 아인슈타인을 데리고 왔다. 광활한 우주공간에서 인류가 이주해 살 만한 환경을 찾기 위해서였다. 마침 그때 화성 근처에서 웜홀이 발견되었다. 연구진은 아인슈타인이 웜홀을 통과해 다른 우주공간으로 갈 수 있을 거라 믿었다. “제게 특별한 재능은 없어요. 그저 유별나게 호기심이 많을 뿐이죠.” 아인슈타인은 이 말을 남기고 우주로 날아가 인류가 이주할 별을 찾아 종횡무진하게 된다.

인류의 석학들과 함께 한 아인슈타인의 별 같은 말들.

그 동안 연구진은 오리온 2호에서 7호를 차례로 만들었다. 거기에 각각 버나드 쇼와 찰리 채플린, 퀴리 부인과 프로이트, 간디와 네루, 괴테와 슈바이처, 러셀과 아인슈타인의 장남 한스, 생텍쥐페리와 루스벨트 대통령을 실어 아인슈타인에게로 보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공간에서 만난 그들과 인생과 과학연구, 도덕과 종교, 철학과 인성, 가르침과 배움, 평화 등에 대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눈다. 아인슈타인과 함께 오리온 1호에 오른 뉴욕 타임스 기자가 이 말들을 기록했다.

“진리가 우리의 정신 속에 깃들어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그래서 종소리처럼 힘차고 자비롭게 공기 속에 울리기만 하면 충분합니다.” -괴테
“독일 속담이 생각납니다. ‘사람은 모두 자기 신발 사이즈로 사물을 판단한다.’” -아인슈타인
“가장 중요한 것은 내 안에서 빛이 꺼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일입니다. 안에 빛이 있으면 밖은 저절로 빛나게 됩니다.” - 슈바이처

그리고 아인슈타인은 인류를 x7 행성으로 이주시키는 일에 전념했다.
아인슈타인 일행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갔다. 그곳에서 아인슈타인 일행은 x7 행성을 보았다. x7 행성이 탄생하고 난 뒤 1억 수천만 년이 흘렀다. x7 행성에 육지와 바다가 만들어지고 푸른 하늘이 펼쳐졌다. 지구와 같은 환경이다. 아인슈타인 일행은 이 사실을 지구에 알린다. 지구에서는 대형 수송선 오리온 8호를 만들어 1차로 888,888명의 지구인을 x7행성으로 보낸다. 이후 이주 승객의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기적이란 없다고 믿고 사는 것과 어디에나 기적이 존재한다고 믿고 사는 것. 저는 후자의 삶을 선택하기로 했습니다.” - 아인슈타인

리뷰/한줄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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