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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권: 윌슨에서 케네디까지
머리말 책을 시작하며_ 아메리카 제국의 뿌리: “전쟁은 추잡한 장사다.” Chapter 1_ 1차 세계대전: 윌슨 vs 레닌 Chapter 2_ 뉴딜: “나는 그들의 증오를 환영합니다.” Chapter 3_ 2차 세계대전: 나치 독일을 무찌른 것은 과연 누구인가? Chapter 4_ 원자폭탄: 트루먼의 비극 Chapter 5_ 냉전: 누가 먼저 시작했나? Chapter 6_ 아이젠하워: 한국전쟁, 그리고 핵 군비경쟁 Chapter 7_ 케네디: “역사상 가장 위험했던 순간” 주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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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틀러가 퇴역한 지 한참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전쟁은 “추잡한 장사”다. 미국의 군대와 정보원들이 전 세계에 배치돼 미국 자본의 경제적·지정학적 이해관계를 지켜주고 있다. 그들은 때로 현지인들의 삶을 개선시키기도 한다. 그러나 앞으로 자세히 살펴보는 바와 같이 고통과 더러움을 남긴 경우가 훨씬 많았다. 아메리카 제국의 역사는 아름답지 않다. 그러나 정직하고 솔직하게 마주해야 할 역사다. 미국이 근본적인 구조적 개혁을 통해 인류의 진보를 저해하는 대신 촉진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다면 말이다.---p. 41
윌슨은 전·후임자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미국이라는 나라와 대통령직의 양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윌슨은 아버지와 외할아버지가 모두 장로교 목사인 집안 출신이어서 그런지 도덕주의적 성향이 매우 강했고, 대단히 고집이 세고 독선적이었다. 그런 완고함은 자신이 신이 의도한 계획을 수행하고 있다고 하는 위험한 신념 탓에 더 강해졌다. 그는 전임자들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세계를 위한 사명을 띠고 있다고 생각했다. 1907년 프린스턴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때 윌슨은 소신을 밝혔다. “닫혀 있는 나라들의 문을 때려 부숴야 한다.…… 외국에서 금융가들이 따낸 이권은 각료들이 안전하게 지켜줘야 한다. 그 과정에서 고분고분하지 않는 나라들의 주권이 침해돼도 할 수 없다.” 이런 정서를 말해주듯 윌슨은 고분고분하지 않은 나라들의 주권을 거듭거듭 침해하게 된다.---p. 42-43 “우리는 그동안 평화를 위협하는 오래된 적들과 싸워야 했습니다. 산업계와 금융계의 독점, 투기, 피도 눈물도 없는 은행가 집단, 분파주의, 전쟁을 통해 부당이득을 챙기는 행위 등등이 바로 그런 적입니다. 그들은 미국 정부를 자기들 사업의 단순한 부속물 정도로 우습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압니다. 돈으로 조직화된 집단이 좌지우지하는 정부는 조직화된 폭도가 좌지우지하는 정부만큼이나 위험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나를 증오하지요. 그런데, 나는 그들의 증오를 환영합니다.”(I권 132쪽, 루스벨트의 연설) 포츠담회담은 표면적으로는 우호적인 분위기였지만 장기적인 협력 관계에는 오히려 장애가 된다. 원자폭탄 폭발 실험 성공 소식을 들은 트루먼은 이제 미국은 소련의 비위를 맞추지 않고도 혼자 힘으로 잘해나갈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스탈린을 대하는 태도를 통해서도 그런 메시지를 전했다. 포츠담을 떠나 미 군함 오거스타호(號)를 타고 귀국하는 길에 트루먼은 일단의 장교들에게 소련이 고집을 부려도 신경 쓸 것 없다고 말했다. “이제 미국은 어마어마한 파괴력을 가진 전혀 새로운 무기를 개발했기 때문에 러시아의 도움은, 아니 그 어떤 나라의 도움도 필요 없다”는 애기였다.---p. 236 그러나 해리 트루먼은 속칭 “납작 눈깔(flat eyeballs)”이라고 해서, 가까이 있는 것이나 멀리 있는 것 모두 잘 안 보이는 희귀 눈병을 앓았다. 그래서 코카콜라 병 같은 두꺼운 안경을 써야 했고, 다른 남자아이들처럼 운동을 하거나 심하게 뛰놀 수 없었다. 당시 상황을 트루먼은 이렇게 설명했다. “나는 너무 심하게 놀다가 눈을 완전히 못 쓰게 되면 어쩌나 늘 걱정이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계집아이 같은 아이였다.” 주변 남자아이들은 그를 놀리고 괴롭혔다. 두꺼운 안경을 썼다고 해서 “네 눈깔”이라느니 “계집애”라느니 하는 별명이 따라다녔다. 방과 후 집에 가는 길까지 따라가며 괴롭히기도 했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렇게 벌벌 떨며 헉헉거리면서 집에 들어오면 어머니는 걱정 말라며 위로를 한답시고 ‘넌 원래 여자애로 태어날 운명이었다’는 식으로 말했다. 1912년에 그가 쓴 편지에 그런 얘기가 나온다. “그런 얘기는 다소 여성스럽다는 소리로 들리지만 그렇지 않다. 엄마는 내가 어떤 식으로든 여자로 태어날 운명이었다고 말한다. 그런 소리를 들을 때면 정말 돌아버리겠다. 하지만 그것도 아주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트루먼은 후일 “계집애”로 놀림을 당한다는 게 “사내아이에게는 너무 심한” 고통이라고 회고했다. 그런 소리를 들으면 “서럽고, 열등감에 빠진다. 그걸 이겨내려면 참 힘이 든다.” 놀랄 일도 아니지만 성 정체성 문제는 그를 오랫동안 괴롭혔다. 그는 종종 여성적인 외모나 성격에 대해 자조적으로 언급하곤 했다. 훗날 그는 자신이 계집애가 아닌 것은 물론 스탈린에게까지 맞서 누가 더 센지를 보여주는 사람이 된다.---p. 251-52 “지금으로부터 한 세기 후의 사람들은 20세기의 냉전을 참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라고 생각할 가능성이 높다. 지금 우리가 30년 전쟁을 바라보는 입장과 마찬가지다. 30년간 계속된 이 끔찍한 전쟁(1618~1648)으로 유럽의 상당 부분이 초토화된 것은 그리 오래전 일이 아니다.” 아서 슐레신저는 20세기를 회고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후손들은 냉전의 명분(사소해 보일 수도 있다)과 결과(그야말로 역사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었다) 사이의 그 불균형에 대해 충격을 금치 못할 것이다.” 냉전(冷戰)은 과연 그런 식으로 진행됐어야 했을까? 미국과 소련은 서로를 파괴하기 위해 핵무기를 배치했고, 여차하면 핵무기 사용의 부수적 피해로 인류가 전멸할 수도 있었다. 아니면, 냉전은 전적으로 피할 수 있는 일이었을까? 전후 세계에 대해 전혀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들은 없었을까? 평화와 선린을 유지하는 동시에 경쟁하면서 인류의 삶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가는 그런 비전 말이다. 냉전(Cold War)은 초기에 미국이 2차 대전 종전 이후의 세계에서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느냐에 관한, 근본적으로 다른 두 비전이 충돌하면서 촉발됐다. 그것은 20세기를 “미국의 세기”로 보는 헨리 루스의 헤게모니적 비전과 “보통 사람의 세기”로 보는 헨리 월리스의 유토피아적 비전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난 차이가 나게 된다.---p. 313-14 북한의 남침은 월리스에게는 결정적인 치명타였다. 진보당 지도부가 유엔군 참전에 반대하자 그는 독자적으로 “양심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소련이 원했다면 북한의 침공을 막을 수 있었고, 지금이라도 그렇게 할 수 있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나는 미국이나 러시아가 과거에 했던 일들을 지지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국이 전쟁 상황이고 유엔이 그 전쟁을 승인했기 때문에 나는 우리나라와 유엔을 지지합니다.” 그러나 미국 지도자들에게는 최근에 추진한 일련의 정책을 철회하라고 촉구하며 비판을 계속했다. “미국은 대지주와 재벌을 밀어주는 봉건적인 정권을 후원하는 한, 아시아에서 지는 싸움을 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는 과거 침략자들 밑에서 신음하던 인민들의 해방을 돕는 일을 하는 동안은 원자탄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미국이 인민을 위해 힘을 사용한다면 러시아보다 훨씬 강할 것입니다.” 3주 후 월리스는 진보당을 탈퇴했다. 모든 여건이 불리하고 때로 외로웠지만 여러 해 동안 용감한 투쟁을 멈추지 않았던 그가 마침내 진이 빠진 것이다. 스탈린이 배신하고 국내에서는 냉전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통찰력 넘치는 불굴의 지도자는 투쟁을 계속할 힘이 고갈됐다. 월리스는 뉴욕주 북부에 있는 농장으로 낙향해 여생을 옥수수를 재배하고 닭을 키우며 보냈다. 옥수수와 닭은 당시 전 세계 인구 상당수의 주식이었다.---p. 419 우리가 분명히 아는 것은 케네디가 적이 많았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1944년 헨리 월리스가 미국과 세계를 평화와 번영의 길로 이끌려고 했을 때 제동을 걸었던 세력들과 흡사하게 진보적인 변화를 열렬히 거부했다. 케네디는 미국을 소련과의 전쟁으로 몰고 가려는 강력한 세력에 용감히 맞섰다. 그가 보여준 용기는 흐루쇼프보다 훌륭했다. 이후의 세대들은 혼돈의 심연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한 두 사람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두 사람 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혼자서 핵전쟁을 막은 무명의 소련 잠수함 장교에게도 빚을 졌다. 케네디는 대통령 취임연설에서 이제 횃불은 새로운 세대에게 넘어갔다고 말했다. 그런데 케네디의 죽음과 더불어 횃불이 다시 낡은 세대에게 넘어갔다. 존슨, 닉슨, 포드, 레이건의 세대다. 이들은 케네디보다 나이는 별로 많지 않지만 케네디가 집권 시절에 보여준 희망의 싹을 조직적으로 파괴하면서 미국을 다시 전쟁과 억압의 방향으로 돌려놓는다. ---p. 5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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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세기”를 내려놓고
“보통 사람의 세기”를 만들어가자! 세계적인 거장과 석학이 “더 좋은 세상”을 향해 외치는 간절한 호소! 오늘날 미국인은 더 좋은 세상을 향한 상상력을 잃어버렸다. 저자는 묻는다. 왜 미국은 세계 모든 지역에 군사기지를 보유하고 있는가? 왜 전 세계 나머지 국가들을 다 합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국방비로 쓰는가? 왜 더 이상 위협 세력이 없는데도 아직도 수천 기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가? 왜 미국은 다른 어떤 선진국보다 빈부 격차가 큰가? 왜 선진국 중에서 유일하게 전국민 의료보험이 안 되는 나라인가? 왜 한 줌도 안 되는 사람들이 전 세계 가난한 인구 30억 명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부를 장악하고 있는가? 왜 극소수 부자들만이 국내정치와 대외정책, 그리고 언론에 그토록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는가? 왜 미국인들은 정부의 감시와 무단개입, 시민권 침해와 프라이버시 상실을 그냥 감수하고 있는가? 왜 미국은 노동자들의 노조가입률이 그 어떤 선진 민주주의 공업국가보다 낮은가? 왜 대다수의 미국인은 더 나은 미래를 상상하기가 그토록 어려워졌는가? 이런 모든 질문들에 답을 할 수는 없겠지만, 그런 문제들이 생겨난 역사적 배경을 짚어보고자 하는 것이 이 책이다.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이 책은 낯설지 않다. 미국의 현대사에 한국의 현대사가 고스란히 들어 있고, 저자들이 제기하는 문제가 우리의 현실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세기” vs “보통 사람의 세기”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들의 안타까운 문제의식은 “미국의 세기”를 추진하는 세력이 “보통 사람의 세기”를 억누르고 미국 정책을 주도해왔다는 데서 출발한다. 사실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은 영국과의 독립투쟁을 통해 식민주의를 배격하고 독립된 공화국의 정신을 중시했다.(II권 464쪽) 그런 전통 때문에 미국이 제국으로 가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그동안 지도자들은 이를 극구 부인해왔다. 그러나 네오콘에 이르러 “제국”은 공공연한 이념적 표상이 된다. 과거의 직접적인 식민지 지배를 통한 제국이 아니라, 세계만방에 설치해놓은 “군사기지”를 통한 제국이 된 것이다. “보통 사람의 세기”의 주창자 중에 저자들이 가장 주목하는 인물은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정부 때 부통령을 지냈던 헨리 W. 월러스와 재직 마지막 시기(쿠바 미사일위기 이후)에 인식의 대전환을 보여주었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다. 그러나 월러스가 민주당 보수 실세들의 농간으로 부통령직에 오르지 못하고(트루먼이 간택된다), 케네디는 그 정책 전환으로 수많은 적들에 둘러싸여 결국 암살당하는 바람에 “보통 사람의 세기”는 맥없이 무너지고 만다. 이후 미국은 제국의 길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왔고, 다른 나라들의 적(敵) 또는 비웃음을 당하는 나라가 되었다. 이 책은 미국이 제국으로 변질되어가는 과정을 다큐멘터리처럼 추적해 들어간다.(실제로 동명의 다큐멘터리가 제작되었다.) 저자들은 역대 대통령을 중심에 놓고 그 주변의 핵심 참모들이 정책 형성을 이뤄가는 길목을 예리하게 들추어내고 있다. 피터 커즈닉의 엄중한 역사적 검증 및 해석에다 올리버 스톤의 문학적 감수성이 어우러져 박진감 넘치는, 달리 찾아보기 어려운 흥미진진한 역사서가 창조되었다. 각 대통령과 중심인물들은 공개?미공개 자료들을 통해 마치 현실로 튀어나온 영화 속 캐릭터처럼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또한 정책과 사건의 유기적 인과관계와 흐름은 미국의 전모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미국의 대외정책 결과물로서 한국의 현대사를 더듬어볼 수 있는 것도 물론이다. 그러나 저자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다. 현직 대통령 오바마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엄하게 비판하면서도 “보통 사람의 세기”라는 미국이 가야 할 길을 다시금 호소하고 주문한다. 사실 오늘날 세계의 역사는 미국의 역사로 적히고 있다. 저자들의 바람대로 미국이 바뀌어야 세계는 좀 더 평화롭고 평등한 세계가 될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