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제과 급제 이전기차운(次韻)해 백화보(白和父)에게 답하다진주(眞州) 새로 온 기생의 이름 - 완계사(浣溪沙)무진년(1328, 충숙왕 15) 겨울, 얼어붙은 한강(漢江)을 건너며기행(紀行)시 한 수를 지어 청주참군(淸州參軍)에게 주다천력(天曆) 기사년(1329), 예성강(禮成江)에서 배를 띄웠다가 강어귀에서 바람에 막히다자연도(紫燕島)에서뜻을 함께하는 여러 친구들에게 부치다첩박명(妾薄命)애왕손(哀王孫)사바검(?婆劍)당(唐) 태종(太宗) 육준도(六駿圖)한양참군(漢陽參軍) 정 모(鄭某)를 전송하며궁궐 내 여러 친구들과 자하동(紫霞洞)에서 놀며 차운하다포사(曝史)의 임무를 띠고 남쪽으로 내려가는 원지(員之) 안보(安輔)를 전송하며음주시(飮酒詩)무극(無極) 스님의 시에서 차운해 항주(杭州)로 돌아가는 그의 제자 경초(景楚)를 전송하다2. 제2·3차 재원(在元) 활동기원지 안보와 중권(仲權) 이달충(李達衷)이 동시에 옥당(玉堂)에 임명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시를 지어 축하하다7월 4일, 집에서 온 편지를 받고묵매(墨梅)매화김벽전(金壁傳)중서성 역사(譯史)의 모란도(牡丹圖)동년(同年) 한림(翰林) 남 모(南某)에게 부치다3. 정동행성(征東行省) 원외랑(員外郞) 근무기차운해 승통(僧統) 이 모(李某)의 시권(詩卷)에 쓰다권한공이 중양절에 용산(龍山)에 올라 두목(杜牧)의 시를 차운해 지은 시에 차운하다영양(英陽) 신촌(新村)의 이 거사(李居士)에게 부치다안강(安康) 이 모(李某) 선생(先生)에게 부치다완산(完山)의 동년 장원 최용갑(崔龍甲)에게 부치다중국 강남(江南)으로 돌아가는 비 태의(費太醫)를 전송하며경진년(1340, 충혜왕 복위 1) 봄날의 느낌병중(病中)에 초청을 받았으나 가지 못해 이문(理問) 게이충(揭以忠)에게 사과하다게이충(揭以忠)이 화답했기에 또 절구 4수를 짓다차운해 재상(宰相) 김영돈(金永旽)을 축하하다근재(謹齋) 안축(安軸) 선생을 축하하며신사년(1341, 충혜왕 복위 2) 새해 첫날의 느낌4. 제4차 재원 활동기신사년(1341) 여름 대도(大都)에 들어가면서 눌재(訥齋) 장항(張沆)에게 부치다호광행성(湖廣行省) 참지정사(參知政事)로 가는 백수(伯脩) 소천작(蕭天爵)을 전송하는 자리에서 동화진(東華塵)을 시운(詩韻)으로 받다중시(仲始) 사보(思補) 김대경(金臺卿)에게 부치면서 박 판사(朴判事)에게도 올리다식무외(式無外)의 염주(念珠)로 장난삼아 짓다옛 운(韻)을 써서 벗에게 답하다귀향하는 벗을 전송하며중양절에 여러 친구들이 찾아왔길래 술을 조금 마시다고려로 돌아가는 대언(代言) 신예(辛裔)를 전송하며참의(參議) 소천작(蕭天爵)의 자계서당(滋溪書堂)이문(理問) 홍빈(洪彬)에게 부치다춘헌(春軒) 최문도(崔文度)가 새로 전법판서(典法判書)에 임명된 것을 축하하며 부치다중시(仲始) 사보(思補) 김대경(金臺卿)에게 부치다요동(遼東)의 최(崔)와 홍(洪) 두 염방사(廉訪使)에게 부치다임오년(1342, 충혜왕 복위 3) 한식(寒食)김경선(金敬先)이 낙제해 고려로 돌아가려 할 적에 〈한식(寒食)〉 창화시의 운으로 시를 지어 만류하다차운해 순암(順菴) 스님에게 답하다칠석9월 15일 밤 〈중추(中秋)〉의 운으로 시를 짓다가을 밤비에 앉아순암(順菴)의 운을 써서 정승 성재(誠齋) 한악(韓渥)을 곡하다순암(順菴) 스님이 보내 준 동지 팥죽에 감사하고 아울러 박경헌(朴敬軒)에게 올리다수세(守歲)계미년(1343, 충혜왕 복위 4) 설날 숭천문(崇天門) 아래에서원소절(原宵節) 밤 석진교(析津橋) 위에서서산(西山) 영암사(靈巖寺)3월 14일 성남(城南)에서 놀며순암(順菴)이 새로 대장경(大藏經)을 봉안한 일에 대해 금주판관(錦州判官) 극례(克禮) 이인복(李仁復)이 시를 지어 찬미했기에 내가 그 시에 차운해 짓다서교(西郊)로 가는 길한식날에 홀로 앉아 감회를 적다금주판관 극례 이인복에게 부치다송도(松都)의 친구에게 부치다아쉬운 가랑비6월 1일6월 6일 밤비형님의 편지를 받고거리에서 서산(西山)을 바라보며오랜 비로 물이 불어 성안에서 많은 물고기를 잡다진주판관(晉州判官) 안 모(安某)에게 부치다귀국하는 의헌(義軒) 홍탁(洪鐸)을 전송하며칠석(七夕)날 조촐한 술자리황도(皇都)의 가을날차운해 판각(判閣) 방신우(方臣祐)를 곡하다병중(病中) 술회첫 추위흥에 겨워갑신년(1344, 충혜왕 복위 5) 새해 첫날입춘날 감회홀로 앉아작은 뜰에 오이를 심고서가랑비 내리는 새벽에 일어나서상국(相國) 한종유(韓宗愈)를 전송하며빗속에 홀로 앉아죽순을 먹으며 지은 시항주(杭州)를 여행하며 승상(丞相) 별가불화(別哥不花)를 만나러 가는 중부(仲孚) 정포(鄭?)를 전송하다제비두 분의 김 지평(金持平)에게 축하하며 부치다중양절겨울 초입눈 내리는 밤 조촐한 술자리치통혹독한 추위입춘을유년(1345, 충목왕 1) 설날인일(人日)에 두시(杜詩)를 읽으며 그 운으로 시를 짓다귀향하는 국정(菊庭) 참정(參政) 기철(奇轍)을 전송하며정동행성 유학제거사의 제거(提擧)로 부임하는 홍언박(洪彦博)을 전송하며청명 날 내리는 눈청명 뒤에 성 남쪽으로 나가서 서산(西山)의 눈을 바라보다차운해 형님께 답하다형님의 시운을 써서 아들 눌회(訥懷)에게 부치다행촌(杏村) 이암(李?)에게 부치다제과(制科)에 급제하고 귀향하는 동년 안보(安輔)를 전송하며극례(克禮) 이인복(李仁復)이 대언(代言)을 제수받았다는 말을 듣고 시를 보내 축하하다도중(途中)에 읊다사의(司議) 중부(仲孚) 정포(鄭?)의 죽음을 애도하며 그의 형인 판사(判事) 정오(鄭?)에게 올리다중추절 밤에 앉아평생 따라다니며 배운 이들을 하나하나 셀 수가 있는데, 그중에서 졸재(拙齋) 최해(崔瀣) 선생과 춘헌(春軒) 최문도(崔文度) 선생이 잇따라 세상을 떠났고, 중부(仲孚) 사의(司議) 정포(鄭?)도 저승 명부에 이름을 올리게 되었다. 이에 삼애시(三哀詩)를 지어서 치암(恥菴) 박충좌(朴忠佐)와 급고당(汲古堂)에게 부쳐 올리다회안(淮安)의 둔전관(屯田官)으로 부임하는 흥국로총관(興國路摠管) 홍빈(洪彬)을 전송하며5. 고려에서의 반삭(頒朔) 활동기차운해 눌재(訥齋) 장항(張沆)이 거처하고 있는 야운장(野雲莊)에서 짓다차운해 남의춘(南宜春)에게 답하다병술년(1346, 충목왕2) 중추절 한양부(漢陽府)에서여흥(驪興) 객사(客舍)에서 차운하다안렴(按廉) 성여안(成汝安)에게 부치다차운해 요양행성(遼陽行省) 조마(照磨)로 부임하는 안보를 전송하다병술년(1346, 충목왕 2) 제야(除夜)에정해년(1347, 충목왕 3) 새해 첫날나이 오십새해대언(代言) 정 모(鄭某)에게 부치다백화보(白和父)에게 부치다6. 제5차 재원(在元) 활동기안강(安康) 이 모(李某) 선생에게 부치다흥의역(興義驛)에서 묵으며눌재(訥齋) 장항(張沆)에게 부치다판서(判書) 박 모(朴某)에게 부치다장원(壯元) 김인관(金仁寬)에게 부치다급암(及菴) 민사평(閔思平)에게 부치다좨주(祭酒) 김 모에게 부치다총랑(摠郞) 이 모(李某)에게 부치다전리총랑(典理摠?) 안보(安輔)가 본국의 관직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부치다밀직(密直) 이공수(李公遂)에게 부치다초은(樵隱) 이인복(李仁復)에게 부치다죽헌(竹軒) 김륜(金倫)을 애도하며감창(監倉) 유감혼자서 읊조리다동년(同年)인 시승(寺丞) 장 모(張某)에게 부치다7. 고려에서의 황혼기김맹견(金孟堅)의 시권(詩卷)우곡(愚谷) 정자후(鄭子厚)가 은잔을 보시한 시에 차운하다이문(理問) 김 모(金某)의 부인(夫人) 대흥 현군(大興縣君)의 죽음을 애도하며동년(同年) 김 모(金某)의 시에 차운하다연아체(演雅體)안렴(按廉) 정 모(鄭某)의 시에 차운하다낭중(郞中) 허백(許伯)의 시에 차운하다동년인 두 분 곽씨(郭氏)에게 부치다주행(舟行)을 기록해 송정 거사(松亭居士) 전 모(田某)에게 올리고, 아울러 임주(林州)의 사군(使君) 반 모(潘某)에게 글을 보내다도원역(桃源驛)에서 묵다충숙왕(忠肅王)이 철원(鐵原)에서 사냥하며 고석정(孤石亭)에 올라 절구 한 수를 남겼는데, 이때 안부(按部) 정자후(鄭子厚)가 객관(客館)에 썼다. 그리고 뒤에 삼장 법사(三藏法師) 조순암(趙順菴)도 그 시의 운을 따라 시를 지었다. 이에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기에 삼가 절구 두 수를 지었다금성현(金城縣)에서 묵다천마령(天磨嶺)에 오르다다시 통구현(通溝縣)에서 묵으며 느낀 점이 있기에회양부(淮陽府)에서 묵으며 벽에 붙은 집의(執義) 허 모(許某)의 시에 차운하다학사(學士) 윤 모(尹某)의 시에 차운하다철령(鐵嶺)에 오르다학포(鶴浦)의 원수대(元帥臺)에 올라학포현의 원수대에 근재 안축 선생의 시가 있었는데, 그 마지막 구절에서 “어떡하면 동해의 물이 불어나게 해서, 좋은 경치 모두 잠겨 이 고통 면하게 할꼬?”라고 했다. 이는 아마도 경치 구경하러 온 자들이 백성을 괴롭게 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그 뜻을 뒤집어서 절구 한 수를 지어 보았다삼일포(三日浦) 사선정(四仙亭)의 시에 차운하다흡곡(?谷)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간성(杆城)의 현판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만경대(萬景臺) 시에 차운하다동선역(洞仙驛) 관란정(觀瀾亭)의 시에 차운하다강릉(江陵) 객사(客舍)의 동헌(東軒)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예천군(醴泉君) 권한공(權漢功)이 지은 한송정(寒松亭) 시에 차운하다〈삼척 서루 팔영(三陟西樓八詠)〉 시에 차운하다울진(蔚珍) 객사(客舍)의 시에 차운하다영희정(迎曦亭)의 시에 차운하다흥해현(興海縣) 객사칠곡(漆谷)의 동년(同年) 규정(糾正) 배 모(裵某)의 초당성산(星山)을 지날 무렵부터 황간현(黃澗縣)에 이를 때까지 갈수록 더 황폐해지는 것이 가엽게 느껴졌다. 영동군(永同郡)에 도착해서 시 한 수를 남겨 왕래하는 사람들에게 보인다양산현(陽山縣)에 도착해서 보니 벽 위에 시가 있었는데 그 이름이 지워져 있었다. 장난삼아 그 운을 써서 두 수를 지은 다음에 그 시를 판(板) 위에 함께 써 놓고는 “이 판도 누가 떼어 내지 않을지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했다금주(錦州) 객사내가 지치(至治) 연간에 일 때문에 진동현(珍同縣)에 왔었다. 그런데 여러 집들이 허물어져 비바람을 막을 수 없길래 이미 백성이 정처 없이 떠나 버려서 다시는 인가(人家)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번에 와서 보니 영접하는 관리도 있고, 접대하는 장소도 있는데 왜 그런지 이유를 물었다. 그랬더니 진신로(陳臣老)라는 사람이 호장직(戶長職)을 맡아 다시 새로 지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나는 너무 기뻐서 진씨(陳氏) 집의 벽에 시를 써서 풍속을 살피는 직책을 맡은 사람에게 보이고, 현감에게 경계가 되게 하는 한편 온 마을 사람들이 진씨를 본받도록 했다연산(連山)에 도착해서 김광정(金光鼎) 선생이 가까운 고을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에 절구 2수를 지어 보낸다금산사(金山寺)의 벽 위에 있는 시에 차운하다학사 은 모(殷某)가 홍산(鴻山)에서 지은 시에 화답했기에 삼가 그 시에 차운해 바치다완산(完山) 가는 길에서시골집해설지은이 연표옮긴이에 대해
|
李穀
배규범의 다른 상품
|
고려의 글로벌 지성, 이곡의 시 세계를 만나다14세기 고려는 원나라라는 세계 제국의 질서 편입되어 격동의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 혼란과 기회의 시대에 ‘공부’ 하나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하고, 고려를 넘어 원나라 문단에까지 이름을 떨친 입지전적인 인물이 있었다. 바로 가정(稼亭) 이곡(李穀, 1298∼1351)이다. 신간 《이곡 시선》은 고려 문인 중 가장 오랫동안 원나라 관료로 활약하며 독보적인 발자취를 남긴 이곡의 주옥같은 시들을 엄선하여 엮은 책이다.이곡은 한산의 미천한 향리 가문에서 태어났지만, 탁월한 문학적 재능과 성리학에 대한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원나라 제과(制科)에 고려인 역대 최고 성적으로 급제했다. 그는 10년 넘게 대륙에 머물며 세계 제국의 선진 문물을 흡수하고 당대 최고의 지성들과 교류했다. 이러한 그의 경험은 고스란히 그의 문집 《가정집(稼亭集)》에 담겼다. 이번 시선집은 방대한 《가정집》 속에서도 이곡의 문학적 정수를 보여주는 시 492수 중 백미를 가려 뽑았다.그의 시에는 화려한 원나라의 문물과 그 속에서 느끼는 이방인의 고뇌, 고국에 대한 짙은 그리움, 그리고 피폐해진 고려의 현실과 농민들의 삶에 대한 연민이 공존한다. 특히 당시 고려 문인으로서는 창작하기 어려웠던 사(詞) 문학까지 능숙하게 구사했던 그의 폭넓은 작품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사건을 읊은 영사시(詠史詩)를 통해 그가 지녔던 역사의식과 시대적 소명감도 엿볼 수 있다.이곡은 훗날 고려 말 성리학의 태두가 되는 목은 이색(李穡)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아들에게 선진 학문을 전수하여 명문가의 기틀을 다진 교육자로서의 면모도 그의 시 곳곳에 배어 있다. 52년의 치열했던 삶 동안 다섯 차례나 문집이 간행될 정도로 후대에도 그 가치를 인정받았던 이곡의 문학. 이 책 《이곡 시선》을 통해 독자들은 700년 전, 경계인으로서 시대를 고뇌하고 새로운 세상을 꿈꿨던 한 지식인의 뜨거운 숨결을 생생하게 느끼게 될 것이다.
|